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59화 (59/629)

0059 ------------------------------------------------------

라롤린

수요일은 은지와 같이 듣는 영어회화 II가 있는 날이었다.

시황은 수업에 들어갔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대화를 나눠야할지 고민했다.

고백을 했을 때, 차이거나 찼다면 보통은 어색해서 서로 외면을 하게 되고 그대로 관계가 멀어진다. 하지만 은지랑 어색하게 지낸다거나 이대로 관계를 끝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은지를 빼앗기 위해 술수를 쓰겠다는 건 아니고 그저 평범하게 친한 사이로 지내고 싶었다.

차였다고 은지한테 악감정을 가지거나 복수해야겠다는 유치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섹스를 400번 넘게 한 놈팡이랑 사귀는 게 걱정이 됐다. 물론 객관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섹스를 많이 했다고 그 놈의 인성이 쓰레기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놈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203호 강의실에 들어가자 은지는 민영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시황은 혹시나 하고 은지의 섹스 횟수를 체크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처녀였다. 그런데 프로필 란에 새로 보는 항목이 하나 더 생겨있었다.

[상태 : 생리 중]

상태라는 항목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신체에 특별한 변화가 생기면 나타나는 듯 했다. 그렇다면 병의 종류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부분은 좀 더 많은 자료를 모아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시황은 바로 날짜를 살폈다. 5월 6일. 뜻하지 않게 은지가 지금 생리를 하고 있는 걸 알아버렸다.

“안녕.”

“아, 네. 오빠……. 안녕하세요.”

시황을 보자 은지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민영과 효주를 보고 인사를 했는데 민영의 프로필에 섹스 횟수가 22회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 친구와 잘 지내는 거 같다.

“안녕하세요.”

민영과 효주가 인사했지만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자리에 앉자 은지가 시황의 눈치를 본다.

“왜?”

“아, 아니요.”

시황이 웃으면서 말하자 은지가 손사래를 치며 과도하게 반응했다.

피식 웃은 시황은 평범하게 은지와 얘기했다. 어색한 사이가 되기는 싫었으니까.

시황이 이전처럼 편하게 얘기하자 은지도 처음처럼 크게 어색해하지는 않았다. 만약 시황이 아는 체도 안했다면 은지와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을 것이다.

수업을 끝나고 집에 온 시황은 바로 케즈론의 성으로 갔다.

수련실에 가기 위해서였다.

5시에 찬미와 만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전에 잠깐 몸을 풀 생각이었다.

어제 한 번 와봤지만 보면 볼수록 수련실은 거대했다.

한쪽 벽에 칼과 도, 창 등 다양한 무기가 걸려있었고 다른 쪽 벽에는 샌드백이 달려있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거 없는 수련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정 가운데 시황의 키와 비슷한 목각인형이 서있었다.

시황은 목각인형 앞으로 갔다.

단순히 목각인형 앞에 서있는데도 가벼운 긴장감이 피어났다.

수련실에 들어올 때부터 시야의 왼쪽 아래에 불투명한 버튼들이 여러 개 생겨나있었다. 그 중에서 배경을 숲으로 바꾸고 난이도를 일반인으로 했다.

그러자 수련실이 풀숲에 있는 연무장으로 변해버렸다. 어딘가로 이동한 게 아니었다. 신체변형을 할 때 시황의 얼굴과 몸을 나타냈던 그 방식처럼 수련실에 나무와 풀이 생겨난 것이다. 질감과 향기 전부 실제 풀숲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목각인형도 움직여 자세를 취하더니 순식간에 시황에게 달려들었다. 일반인 급의 움직임이었지만 생각보다 그 스피드가 엄청났다.

시황은 다가오는 목각인형을 보며 마기를 끌어올렸다. 10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거침없이 사지와 백해로 흘러들어갔다. 감히 이때까지는 상상치도 못한 거대한 힘이 끓어올랐다.

목각인형이 시황의 얼굴을 때리려고 팔을 조잡하게 휘둘렀지만 시황이 가볍게 쳐내어버렸다. 그리고는 즉각적으로 왼발이 앞으로 나가면서 목각인형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 스피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호흡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일어났다.

펑!

시황에게 얻어맞은 목각인형은 허공에 붕 뜨더니 차에 치인 것처럼 한참을 날아갔다.

[사망]

목각인형이 바닥에 쓰러지자 빨간색 글자가 시야의 상단에 떠올랐다. 일반인이라면 10년 마기를 사용한 시황의 주먹질 한방에 사망한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파괴력을 끌어 올린 것도 아니고 그저 마기의 힘으로 때렸을 뿐인데 말이다.

너무나 두려울 정도의 힘이다.

“후우, 너무 위험하단 말이야.”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시황은 가능한 이 힘을 자제하기로 했다. 아니, 자제를 안 하더라도 이 힘을 쓸 곳이 있을까 싶었다. 하여튼 힘이 가진 위험성을 인식하는 게 중요했다. 이 힘에 취해 막무가내로 쓴다면 깡패들과 다를 게 뭔가? 힘은 누군가를 찍어누리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보호 장치였다.

목각인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시황의 앞에서 멈춰 섰다.

시황은 하1 난이도를 선택했다. 목각인형이 아까와 다르게 체계가 약간 잡힌 자세를 취한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시황이 달려들었다.

어색했던 움직임이 계속된 연무로 조금씩 다듬어지고 정교해졌다.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리콘드라 행성으로 가는데 하루라도 쉴 틈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무력을 키워야했다.

“시황님 5시 20분이에요.”

한참을 목각인형과 싸우던 콘즈가 시간을 알려주자 목각인형을 멈춰 세웠다.

“후우…….”

시황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격렬히 대련을 했는지 티와 바지가 땀에 흠뻑 젖어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수련실에서 나와 샤워를 한 시황은 팬티만 입은 채 옷을 들고 오피스텔로 갔다.

“여기 물이요.”

문에서 나온 시황에게 아루가 물을 가져다주고는 땀에 젖은 옷을 가져가 세탁기 안에 집어넣었다.

물을 받아든 시황은 아공간에서 언어 습득용 알약을 하나 꺼내 단번에 삼키고 물을 마셨다. 찬미와 수업을 하기 전에 영어를 미리 익혀두기 위해서였다.

지구, 미국식 영어라고 생각하자 두뇌에서 찌릿한 통증이 잠깐 느껴진다. 신체 변형이나 혈도를 뚫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아픔이다.

이것으로 영어는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듣기는 물론이고 쓰기, 읽기, 말하기, 발음까지 원어민과 똑같은 수준의 어휘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얼마나 영어 실력이 늘었는지 궁금해진 시황은 학교에서 쓰는 영어 원서를 가지고 와서 읽었다. 언어학과 관련된 책이었는데 통사론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어로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 못했던 어려운 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읽는 즉시 이해가 되었다. 단어 자체의 의미를 완벽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 뉘앙스만으로도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영어를 읽고 한국어로 번역을 거치는 게 아니라 영어 그 자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걸로 이제 영어로부터 해방이었다. 토익이니 수능이니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게 바로 유산의 힘인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은 시황은 옷을 입고 과외를 받으러 갈 준비를 했다.

“아루야, 난 갈게.”

“네. 오빠 다녀오세요.”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하는 아루와 입을 가볍게 맞추고 찬미의 집으로 향했다.

띵동.

벨을 눌리자 찬미가 바로 문을 열어줬다.

“안녕.”

“오셨어요? 방에 들어가 계세요. 바로 준비할게요.”

찬미는 그때의 충격이 많이 가신 듯 편안한 반바지와 티를 입고 있었다. 프로필상 찬미가 발가락을 핥아주는 걸 좋아하는 걸 알아서일까? 허벅지도 허벅지지만 유채꽃과 비슷한 노란색의 매니큐어를 바른 발에 자꾸 시선이 갔다.

혹시나 하고 찬미의 프로필을 체크했다.

[섹스 횟수 : 1]

[상태 : 무모증]

“아!”

“네? 왜요?”

“아니. 갑자기 뭐가 생각나서.”

시황은 이제야 알았다. 찬미의 음부에 털이 없는 걸 보고 혹시 AV배우처럼 면도라도 한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모증 때문에 탈이 안 났던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다시 한 번 찬미의 음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유미와 다르게 찬미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왜 이렇게 남자를 싫어하는지 의문이었다. 섹스하면 정말 기분 좋은데.

하여튼 시황은 익숙하게 찬미의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놨다.

잠시 기다리자 찬미가 상을 가져왔고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시황이 제일 취약한 수학부터 했는데 어렵기만 하던 이전과 다르게 이해가 쉽게 되고 응용력이 많이 늘어 어려운 문제도 간단히 풀어내었다.

“어? 잘하시는데요.”

꽤 난이도가 있는 문제를 간단히 풀자 찬미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찬미가 가르쳐줘서 그런지 이해가 잘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황도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라면 문제를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가고 공식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딱 보는 순간 어떤 식으로 풀어야하는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렇다보니 재미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정신없이 수학문제를 풀다보니 유미가 언제 왔는지 시황의 맞은편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 유미 왔어?”

“네, 네. 아까 전에요.”

시황이 쳐다보며 말하자 유미가 볼을 붉히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시황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잠깐 쉬어요. 오빠 뭐 드실래요?”

찬미가 말했다.

“음, 난 녹차 마실래.”

“유미는?”

“난 커피.”

“웬일이야? 커피도 마시고.”

유미의 말에 찬미가 갸우뚱했다.

“그냥 마시고 싶어서…….”

“알았어.”

찬미가 나가자 시황은 미소를 지으면서 유미를 쳐다봤다. 약간은 음흉한 미소였다.

“유미야, 이쪽으로 와.”

“왜, 왜요?”

시황은 찬미가 앉았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유미가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모르는 거 있어서. 좀 가르쳐 줘.”

“알겠어요.”

사실 옆으로 오라고 했을 때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바로 알겠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워 한 번 튕겼을 뿐이었다.

유미가 상을 넘어 시황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좁아 은근히 밀착되면서 시황의 몸에서 나는 듯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시황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유미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유미를 가슴에 품고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유미는 저항은커녕 오히려 약간 거친 숨소리를 내며 가만히 있었다.

잠시 동안 유미를 안고 있던 시황은 유미의 고개를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 혀는 쓰지 않는 평범한 키스.

눈을 감은 채로 시황의 입술을 느끼고 있던 유미가 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시황을 밀쳐냈다.

“아, 안돼요. 언니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래요.”

“조금만 더 하자. 응?”

그리고 시황이 다시 입을 맞추자 걱정된 표정을 짓던 유미가 다시 눈을 감더니 얌전히 시황을 받아들였다. 시황은 순간적으로 유미의 가슴을 만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덜컥.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유미가 시황을 급히 밀쳐냈다. 얼굴이 완전 새빨개진 게 누가 봐도 둘이서 뭔가 은밀한 짓을 했다는 게 티가 났다.

“유미가 거기 왜 앉아 있어?”

차를 가지고온 찬미는 유미가 시황의 옆에 앉아있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 그게…….”

“내가 모르는 거 좀 가르쳐 달라고 했어.”

유미가 너무 당황해 말을 더듬자 시황이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면 옮기기도 힘든데 이 상태로 공부해요.”

찬미가 탁자위에 차를 놓으면서 말하는 동안 유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유미를 찬미는 의아한 듯 쳐다봤지만 방금 방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잠깐 쉬고 다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유미는 아까 전에 했던 키스가 자꾸 생각나서 도저히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촉촉하고 부드럽던 시황의 입술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자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져 몸을 비비꼬았다.

찬미는 그런 유미를 수상쩍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공부가 끝이 나고 시황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

“고마워. 그럼 갈게. 금요일에 보자.”

“어, 언니. 내가 오빠 데려다주고 올게.”

시황이 현관을 나가려고 하자 유미가 순간적으로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나서 부끄러운지 볼을 잔뜩 붉혔다.

“알았어. 전 그럼 들어갈게요.”

찬미가 들어가고 유미는 시황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둘만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대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가자마자 유미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없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아 아직 약간 밝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유미야, 이제 들어가.”

“아, 그……. 네.”

시황의 말에 유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물어물했다.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직접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대로 돌려보내는 시황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또 키스하고 싶어?”

“아, 아니요!”

갑자기 시황이 정곡을 찌르자 유미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거짓말.”

시황은 살짝 웃으며 말하는 시황의 말에 유미는 대답도 못하고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유미를 끌어안은 시황은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아까처럼 유미가 아무런 저항 없이 시황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농밀하지 않은 풋풋한 키스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유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은지를 놓쳐 처녀와 섹스를 하라는 퀘스트를 완료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주변에 처녀는 유미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미가 졸업하는 날까지 시황은 최대한 유미의 호감도를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선작, 쿠폰 감사합니다~

유미와는 이걸로 끝난 건 아니에요. 당연히 계속 스토리가 이어질 거에요~ 주인공 입장에서 ntr은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그리고 전개가 느리다고 하시는 분이 많이 계신데 좀 더 빠르게 전개하도록 할게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작품 되도록 노력할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