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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73화 (7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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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작

“왜, 왜 그러는데? 그런 거 없어.”

유미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지만 찬미의 말을 듣는 순간 시황의 얼굴이 바로 떠올랐다.

“있구나. 너 거짓말하면 티 나는 거 다 보여.”

눈을 못 마주치고 괜히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유미의 모습에 찬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 챘다. 사귀는 사이인지 유미가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아니라니까. 진짜 왜 그러는 건데? 나 짜증나려고 해.”

짜증난다고는 했지만 그건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내뱉은 말일 뿐이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찬미가 남자를 혐오스러워할 정도로 싫어한다는 걸 동생인 유미가 왜 모르겠는가? 혹시 실수로라도 시황의 얘기를 꺼냈다가는 과외고 뭐고 앞으로 시황과 만나지도 못하게 될 게 뻔했다.

“같은 고등학생이야? 설마 대학생은 아니지?”

어느새 찬미가 유미의 앞에 서서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172cm의 커다란 키라 그런지 위압감이 넘친다.

“지, 진짜 아니라니까.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빨리 나가.”

“대학생 같은데? 맞지? 설마…….”

찬미가 뭔가 알아차린 듯하자 유미는 다급해졌다. 여기서 시황의 얘기가 나온다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찬미는 계속 의심할 테고 그럼 앞으로 시황을 만나기 어려워진다. 남자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하는 찬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유미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빠르게 생각했다.

“그, 그래. 같은 고등학생 친구야. 사, 사귀는 건 아니고 내가 그냥 좋아하는 거야.”

결국 시황과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위험요소를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버렸다.

“너……. 너……. 요즘 이상하더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너는 고3이면서 어떻게 남자 만날 생각을 하니?”

다행스럽게 찬미는 시황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화가 난 표정으로 잔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안도가 되었다.

“그, 그냥 어쩌다보니 친해져서…….”

“앞으로 그 남자애랑 얘기도 하지 마. 알겠어? 그리고 내일부터 언니가 학교 끝나면 데리러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아, 알았어.”

어차피 학교에 친한 남자애도 없기 때문에 데리러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찬미가 겨눈 화살이 시황을 벗어난 거 같아 이제야 안심이 된다. 그나마 남자를 극히 혐오하는 것을 아는 유미이기에 이정도로 끝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황 오빠한테…….”

“시황 오빠는 왜? 시황 오빠는 아무 상관도 없잖아!”

갑자기 찬미의 입에서 시황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깜짝 놀란 유미가 소리를 쳤다.

유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시황 오빠한테 부탁해서 수요일, 금요일은 너 데리러 가게 할 거니까 그 남자한테 시황 오빠가 남자 친구라고 해. 알겠어?”

“엥? 뭐야 그게.”

유미는 순간 찬미가 뭘 잘못 말한지 알았다.

“그 애도 시황 오빠 같은 남자 친구가 있는 걸 알면 함부로 접근 못할 거잖아.”

“알았어.”

유미는 찬미의 말에 너무 기뻐 웃음이 나오지 않게 조심하면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시황과 못 만나게 될까봐 한 거짓말인데 오히려 수, 금마다 시황과 단 둘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옷 갈아 입고와. 언니는 오빠한테 부탁해 둘 테니까.”

“알았다니까.”

짜증난 듯 말하는 유미를 잠시 쳐다보던 찬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언제까지고 유미의 연애를 막을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유미가 성숙해지기 전까지 절대로 남자와 유미를 친하게 지내게 할 생각 따윈 없었다.

“어떻게 됐어?”

시황이 수학 문제를 풀다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찬미가 들어오자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빠 말처럼 좋아하는 사람 있데요.”

“진짜? 누군데?”

시황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찬미가 자연스럽게 시황의 옆자리에 앉자 시황의 몸에서 특유의 은근한 향기가 풍겼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찬미가 이 세상에서 가족들 말고 유일하게 믿는 남자가 시황이었다. 남자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자신을 구해주던 시황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같은 학교 남자애래요.”

“유미 다 컸네. 벌써 연애도 하고. 하하.”

시황은 찬미의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식으로 대화가 진행됐을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유미가 자신 말고 다른 남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는 사실과 찬미의 성격을 대입하자 계산기에서 결과물이 출력되듯이 답이 도출된 것이다.

“그래서 그 일로 오빠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뭔데?”

“혹시 수요일이랑 금요일에 시간 되시면 유미 학교 마칠 때 데리러 가주실 수 있으세요? 정 안되면 하루 만이라도 부탁드릴게요.”

“수, 금? 왜?”

시황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오빠가 유미 남자 친구인 척 해주셨으면 해요.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고 유미가 조금 좋아하는 정도인 거 같은데 미리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하면 그 남자애도 접근 안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유미가 남자 친구 있다고 말하는 걸로는 안 되려나?”

시황이 약간 곤란하다는 듯 말하자 찬미는 다급해졌다. 자신이 데리러 가는 건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학교에서는 계속 만날 게 뻔한데 겨우 방과 후에 자신이 데리러 간다고 그 남자애와 유미 사이에 거리감이 생길까? 이럴 때 시황이 남자 친구인양 방과 후에 데리러간다면 그 남자애가 확실히 유미를 남자 친구 있는 애라고 인식할 테니 자동적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생길 것이다. 계속 가는 건 당연히 무리인 건 알고 한달 정도만이라도 어떻게든 부탁할 생각이었다.

“부탁할게요. 오빠. 지금 믿고 부탁할 사람이 오빠밖에 없어요.”

“으흠…….”

시황은 고민했다. 유미를 데리러 가는 거야 일도 아니다. 지금 고민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이 기회를 살려 최대한의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좋아. 그러면 찬미 너도 나중에 내 부탁 하나 들어주면 해줄게.”

“어떤 부탁이요?”

부탁이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찬미가 말했다.

“그건 생각해보고.”

“알겠어요.”

시황이라면 무리한 부탁을 할리도 없을 테니 찬미는 별다른 의심 없이 수락했다. 자신이 부탁을 했으니 들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럼 앞으로 과외는 한 시간씩 밀리겠네?”

“네. 죄송해요. 오빠.”

“뭐, 유미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절대 순순히 들어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조심했다. 사람 심리라는 게 부탁을 쉽게 들어주는 거 보다 이런 식으로 약간 곤란하다는 듯이 들어주는 것에 더 고마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때 옷을 갈아입은 유미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지으려고 한 거는 같은데 시황의 눈에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다 보였다. 저런 것도 모르는 거 보면 찬미가 의외로 눈치가 없는 건가 싶다.

“오빠한테 말해뒀으니까 그 남자애한테 확실히 말해. 알겠어?”

“알았다니까. 그리고 나 너무 피곤한데 커피 좀 마시고 하자.”

이대로라면 계속 잔소리 할 거 같아 유미가 재빠르게 찬미에게 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볼이 살짝 붉어져있다.

“알았어. 오빠는 어떤 거 드실래요?”

“난 녹차 마실게.”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찬미가 나가자 유미는 기대감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저번에 했던 키스가 생각났던 것이다. 유미는 은근히 기대하며 시황을 쳐다봤는데 가벼운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빨리 옆에 앉으라는 말을 안 하면 찬미가 차를 가지고 들어올 텐데 왜 가만히 있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초조해진다.

“유미, 너 좋아하는 남자 생겼다며?”

“아,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그거.”

시황의 말에 유미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찬미를 속이려고 한 말인데 혹시라도 시황까지 믿어버리면 정말 큰일이다.

“진짜 아니야?”

“네. 언니가 자꾸 캐물어서 거짓말 한거에요.”

“그러면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것도 거짓말이겠네?”

“그, 그건……. 아, 아닌데…….”

“누구 좋아하는데?”

유미는 너무 부끄러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황이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자 자기를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몰라요. 묻지 마요. 오빠 완전 저질이에요.”

“이쪽으로 와봐.”

시황이 말하자 유미가 기다려다는 듯이 바로 일어나서 시황의 옆자리에 앉는다.

“응? 누구 좋아하는데.”

“모, 몰라요.”

시황이 유미와 키스라도 할 듯이 가까이 접근해 묻자 유미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볼에 입을 맞추자 유미가 다시 살며시 고개를 시황 쪽으로 돌려 입술이 닿게 하자 찌르르한 쾌감이 퍼져나간다.

매우 짧게 입을 맞추고 시황이 떨어지자 유미가 벌써 끝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시황과 입을 맞추는 순간 느껴지는 몸이 녹을 거 같은 달콤함을 조금 더 오래 맛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끝내자 너무 아쉬웠다.

“더 해줄까?”

“몰라요. 오빠 진짜 변태에요.”

시황이 유미의 티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허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말하자 유미가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앙……. 뭐에요.”

한 번 더 짧게 입을 맞추면서 티 위로 조금 더 깊숙하게 조금 손을 넣자 유미가 깜찍한 소리를 낸다. 반응이 재밌다.

그런 식으로 장난을 치며 키스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찬미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유미가 옷을 정리하고 밀착되다시피 한 시황에게서 조금 떨어진다.

“화장품은 잘 바르고 있어?”

당황해 하는 유미와 다르게 시황은 여전히 유미의 다리를 쓱쓱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어, 언니 오잖아요. 빨리 손 떼요.”

유미가 시황의 손을 잡고 떼어내자마자 찬미가 들어왔다. 만약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유미야 왜 거기 있어?”

“피부 좋아졌는지 확인한다고 이쪽에 앉혔어. 유미야 어때? 화장품 괜찮아?”

찬미는 별 다른 의심도 하지 않고 시황의 말에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은편에 앉아 차를 건네주었다.

“당연하죠. 그 화장품 진짜 짱이에요. 여드름 보이시죠? 조금씩 사라지는 거? 제가 진짜 시간만 나면 거울로 확인한다니까요.”

시황이 꼼꼼하게 살펴봤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여드름이 많기는 했지만 이전에 비하면 확연히 나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화장품을 더 바르면 유미의 예쁜 외모가 빛이 날 거 같다.

“많이 좋아졌네. 그러면 금요일에는 사진기 들고 와서 얼굴 찍어야겠다. 괜찮지?”

“모델인데요. 헤헷.”

“오빠, 이번 주 금요일부터 부탁드릴게요. 괜찮아요?”

시황과 유미를 지켜보던 찬미가 말했다. 지금 찬미에게는 이게 제일 급한 일이었다.

“데리러 가는 거 말이지? 알았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언제쯤 마쳐?”

“저 청소 다 끝나고 종례하면 5시가 조금 넘어야 될 거에요.”

“그래. 도착하면 문자해줄게.”

시황이 씩 웃으면서 말하자 유미는 너무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데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즉, 그동안 시황이랑 단 둘이 얘기를 하면서 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같이 학교에서 나오는 친구는 있지만, 걔는 집이 반대 방향이라 항상 정문에서 헤어지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쳐다보는 찬미에게 시황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과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6시가 조금 넘자 득달같이 지숙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빠 어디세요?]

[나 집으로 가는 길인데. 넌 어딘데?]

[저 지금 집이에요. 제가 마중 나갈까요?]

[아니, 괜찮아. 다 왔어. 그러면 도착하는 대로 씻고 가도 괜찮아?]

[네. 괜찮아요.]

바로 또 지숙에게 마사지를 해주러 가야한다. 일단 오늘까지만 해주고 내일부터는 카페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지숙과 은지의 일도 중요했지만 그만큼 카페를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

집에 도착한 시황은 바로 샤워를 하고 지숙의 집 앞에서 벨을 눌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문이 열렸다.

“오빠 들어오세요.”

집 안으로 들어가자 은지도 옆에 서있었다.

“오빠 어제는 죄송했어요.”

“아니야. 괜찮아.”

은지가 사과를 하자 시황은 웃으며 대답하고는 지숙과 은지를 눈으로 훑었다. 둘이서 경쟁이라도 하는 듯 상당히 짧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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