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89화 (8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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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케즈론

시황은 공사가 끝난 자신의 카페를 바라봤다. 비싼 돈을 들인 만큼 입구부터 귀티가 났다. 일관되고 평범한 느낌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다르게 외국의 아름다운 성 안에 있을 거 같은 카페였다.

“사장님 정말 예뻐요.”

카키 블론드의 기다란 웨이브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현주가 감동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때까지 보고 다녀본 그 어떤 카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급스럽고 아름다웠다. 간판도 쓸데없이 화려하지 않고 그 분위기에 맞게 고풍스러운 폰트로 ‘카페 케즈론’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현주는 카페를 보는 순간 그 어떤 여자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거라는 걸 느꼈다. 그만큼 매혹적인 카페였던 것이다.

시황은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처럼 아예 서서 카페를 구경하는 여자도 있었고 지나가면서 흘끔 쳐다보는 여자도 있었다. 수많은 여자 대학생들이 지나갔지만 눈길을 안 준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이정도면 상당히 만족스럽다.

“들어갑시다.”

“네.”

시황은 카페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내부는 자신이 보여준 사진과 거의 판박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고 벽에는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저만큼 크지 않았는데 아마 포인트를 확실히 주고자 크기를 키운 거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꼼꼼히 살피면서 화장실도 들어가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카페 내부와 잘 조화되어 있었다. 바닥, 천장, 간판 등 인테리어가 상당히 만족스럽다.

“어때요? 괜찮은 거 같아요?”

“정말,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가본 그 어떤 카페보다 신비롭고 고급스러워요. 이런 멋진 장소에서 저희 커피를 마신다면 반하지 않을 여자가 없을 거 같아요.”

현주는 평범한 대화는 잘 못하면서 카페나 커피에 관한 일에는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보였다.

시황은 그런 현주를 지그시 응시했다.

“왜, 왜 그러세요. 사장님?”

“저희 카페 분위기랑 현주 씨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요.”

“그, 그런가요?”

현주는 볼을 살짝 붉혔다. 그만큼 자신이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멋이 풍긴다는 말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괜히 더워져서 현주는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이제 테이블만 놓고 준비만 하면 바로 오픈해도 문제가 없겠네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도 지금 써야겠네요.”

“메뉴판요?”

“네. 직접 손으로 쓸 거거든요.”

“아…….”

단순히 이런 인테리어와 커피 맛으로만 승부를 볼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게는 글을 읽는 상대에게 가벼운 매혹효과를 거는 카론의 깃펜이 있었던 것이다. 이 깃펜은 콘즈에게서 라민차를 마셨을 때부터 이런 카페나 찻집을 차리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 때문에 선택한 거였다. 절대 여자한테 러브레터나 써서 꼬시려고 고른 게 아니었다.

시황은 카페 구석에 있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테이블에 앉았다. 인테리어를 다하고 서비스라며 주고 간 테이블이었는데 케즈론의 성에 있는 것들에 비하면 조잡하고 싸구려 같았다.

“앉으세요.”

“아, 알겠습니다.”

현주가 시황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런 멋진 카페에서 시황과 단 둘만 앉아 있으니 어쩐지 두근두근한다.

‘사, 사장님 안 돼요. 그, 그러지 마세요.’

‘권현주. 넌 내꺼야.’

시황이 거칠게 자신을 끌어당겨 입을 맞춘다. 능숙하고 감미로운 키스에 몸이 녹아내리는 거 같다. 거부해야 되는데 몸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때 시황의 손이 자신의 스커트와 팬티를 파고들더니 음부를 만지작거린다.

‘시, 싫어요.’

‘흥, 싫은데 이렇게 젖은 거야? 키스만으로 흥분하다니. 너무 야한데?’

‘그,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는 시황이 다시 거칠게 입을 맞추며 자신의 구멍에 손가락을…….

“메뉴판 디자인 괜찮죠?”

“네? 아, 네. 그, 그러게요. 머, 멋져요.”

시황이 자신을 거칠게 다루는 상상을 하는데 갑자기 현실의 시황이 말을 걸자 깜짝 놀란 현주가 말을 엄청 더듬으며 대답했다. 식은땀까지 조금 났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자 현주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도 망상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시황만 보면 이런 야하고 부끄러운 망상이 드는지 모르겠다.

시황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메뉴판을 보며 고민했다.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책 디자인을 메뉴판으로 만들었다. 인테리어만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도 조화를 맞추는 게 중요했다.

메뉴판 안의 텅 빈 종이에 뭐라고 쓸지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연습장과 볼펜을 꺼내 글을 끄적끄적거렸다.

[아메리카노, 카페 케즈론만의 특별한 생두를 써 달콤하고 고급스러운 풍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6000원.]

“음, 어때요?”

“괘, 괜찮네요. 그런 식으로 쓰면 될 거 같아요.”

“현주 씨도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한참을 고민고민하며 커피 종류와 사이드 메뉴, 차까지 적어 내려갔다.

[랑뛰르. 카페 케즈론만의 독창적인 커피. 달콤하기 그지 없는 이 커피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이때 고백을 하면 성공률이 올라갈지도? 9000원.]

한 달 동안 수많은 커피를 만들어냈고 랑뛰르라는 이 커피도 그중 하나였다. 일반생두 5, 블루 마운틴 2, 리첼리아 커피 1, 사랑의 랑뛰르 2의 비율로 섞어 맛과 효능을 동시에 잡아내었다.

[녹차, 카페 케즈론만의 특별한 찻잎을 넣어 몸이 개운해지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7000원.]

이 녹차에는 별 다른 건 없고 그냥 라민차의 찻잎을 5%정도 넣었다. 마시면 긴가민가하면서도 몸이 개운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게 조금 느껴졌다.

“다됐다. 이제 적을게요.”

현주의 도움을 받아 연습장에 메뉴를 다 적은 시황은 마력 회로를 가동시켰다. 지금은 글자를 잘 쓰는 손재주가 필요했다. 마력 회로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치료 능력과 다르게 이런 예술 쪽 능력의 마력 회로는 조절바를 최대치까지 올려도 그렇게 많은 마력을 소모하지 않았다. 거기다 10년이 넘는 마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시간 이상은 충분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카론의 깃펜에 잉크를 묻혀 연습장에 있는 메뉴들을 메뉴판에 옮겨 적었다. 고풍스러운 글자가 메뉴판에 새겨진다. 마치 컴퓨터로 인쇄를 하는 거 같이 전혀 비뚤함이 없는데다 손으로 쓴 특유의 맛이 살아있었다.

“대, 대단하세요.”

현주는 시황이 글 쓰는 모습을 입을 벌린 채로 쳐다봤다. 왜 직접 메뉴판에 글을 쓰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글 잘 쓰는 같은 반 애들을 많이 보긴 했었는데 시황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살다 살다 저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시황은 단번에 12개의 메뉴판을 다 작성했다. 분명 손으로 썼음에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가지런하고 띄어쓰기의 간격이 완벽했다. 그냥 보면 프린터로 여러장 인쇄를 했다고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마, 말도 안 돼.”

현주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이정도 능력이면 TV프로에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답게 글을 쓸 수가 있다니…….

딸랑.

그 때 한명의 여자애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아직 장사 안 하거든요.”

카페가 연지 알고 들어왔다고 생각한 현주가 여자애보고 말했다.

“오늘 찾아갈 거라고 사장님께 미리 전화 드렸는데요.”

“아, 지영 누나가 말한 박시연 씨군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시황이 가리키자 시연이 시황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긴장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시연의 생김새 자체는 제법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무뚝뚝하게 보였다.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데다 눈이 약간 사납게 생겨서 그렇게 보이는 거 같았다. 뭐, 보는 거랑 실제 성격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시황은 프로필부터 훑었다.

[박시연]

[나이 : 20세]

[키 : 162.1cm]

[몸무게 : 45kg]

[가슴 사이즈 : 75B]

[섹스 횟수 : 안함]

[임신 여부 : 안함]

[성감대 : 입술]

프로필 상에 특별한 건 없었다.

“이력서 가지고 오셨어요?”

“여기요.”

시연이 건네준 이력서를 살폈다. 시황이 살핀 프로필과 거의 같은 내용이 적혀 있을 뿐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아르바이트는 처음이시죠?”

“네.”

“커피는 좋아하세요?”

“아니요.”

아니었다. 얼굴이랑 성격이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성격도 얼굴처럼 무뚝뚝한데다 약간 까칠한 거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성격이 조금 무뚝뚝하신가 봐요?”

“네.”

“음…….”

이런 타입의 여자는 또 처음이다. 어디서 뭘 어떻게 접근해야 될지 전혀 모르겠다. 그런데 무뚝뚝하고 까칠하게 생긴 시연이 귀여운 카페의 유니폼을 입게 되면 그게 또 현주랑 정 반대의 맛이 있을 거 같았다.

“그럼 커피 종류는 알고 계세요?”

“대충요.”

“좋아하는 연예인 있어요?”

“네?”

뜬금없는 시황의 말에 시연이 이해가 전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르바이트생 뽑는 자리에서 왠 연예인이람?

“전 로즈마리의 김다연을 좋아하거든요. 항상 활달하고 노래도 잘하구요. 그런데 실제 성격은 무뚝뚝한데다 말이 없다고 하는데 방송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안 보이죠?”

시황은 딱히 연예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한창 인기가 많은 로즈마리의 김다연에 대해서는 뉴스기사와 TV를 통해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사장님. 저도 그거 봤어요.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소심하다고 하는데, 방송만 들어가면 망가지는 거 신경도 안 쓰고 빵빵 터트리잖아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현주도 옆에서 거들었다. 시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연씨도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네? 어떤…….”

하지만 시연은 시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까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거 같았다.

“손님이 시연씨에게 주문을 했는데 그렇게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면 대답하면 어떨까요? 기분이 조금 별로겠죠? 평소에는 상관없는데 일하실 땐 미소를 지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능하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번 웃어보세요.”

“여기 서요?”

“그럼요.”

시황과 현주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쳐다보자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시연이 약간 난처해했다. 웃음을 지으려니까 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빨리요.”

“후우…….”

시황의 재촉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시연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비웃는 거잖아요. 입꼬리를 양쪽 다 올리고 눈을 부드럽게 해보세요.”

“이, 이렇게요?”

시연이 약간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웃음 같기는 한데 시황이 원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조금만 웃음을 다듬으면 굉장히 매력적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연 씨 평소에 잘 안 웃으시나 봐요?”

“……네.”

“흐음, 알겠습니다. 시급은 시간당 5000원이고 6시 30분부터 12시까지 일하시면 돼요.”

“네? 제가 듣기로는 11시 30분까지였는데요.”

“30분은 끝나고 저랑 웃는 연습 좀 하게요. 대신에 그 30분은 1시간으로 쳐드릴게요. 그러면 하루에 딱 3만 원이 되네요.”

시황의 말에 시연은 표정으로는 안 나타났지만 엄청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30분간 웃음 연습이라니? 그런데 30분만해도 1시간 한 걸로 쳐준다고 하니 돈을 생각했을 때 안하는 게 바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내일 4시에서 5시 쯤에 올릴 거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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