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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화장실 밖에서 기다렸지만 유미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여자화장실 자체가 수용인원이 남자화장실에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시황은 방금 케즈론의 성에서 가져온 최하급 마법 아이템인 자외선 차단용 스프레이를 자신의 몸에 뿌렸다. 인공적이지 않은 산뜻한 향기가 풍겼고 일반적인 선크림과 다르게 끈적끈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 유미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집에 들르지 않고 학교에서 바로 오다보니 아직도 교복을 입은 상태였는데 고등학생 특유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이 가득 느껴졌다.
“가까이 와봐.”
“왜요?”
사람들을 피해서 시황에게 온 유미가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시황은 가까이 다가온 유미에게 자외선 차단용 스프레이를 몸 전신에 골고루 뿌렸다.
“이거 뭐에요 오빠?”
“자외선 차단하는 스프레이야.”
“아, 그렇구나.”
이미 시중에 이런 제품이 있었기 때문에 유미는 단번에 이해했다. 다만 시중 제품과 다르게 이건 자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건 물론이고 그 어떤 끈적임이나 불편함이 없었다.
“냄새도 좋고 괜찮네요. 어디서 샀어요? 오빠.”
“하나 줄까?”
“와, 고마워요. 오빠. 전 해드리는 것도 없는 자꾸 받기만 해서 죄송해요.”
“죄송하긴.”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시황은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횟집으로 갔다. 원래는 다른 걸 먹으려고 했는데 유미가 온 김에 회를 먹어 보고 싶다 해서 선택한 거였다.
점심을 먹은 시황은 유미와 함께 해수욕장 근처를 걸었다. 방학이라 수많은 커플과 가족들이 해수욕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황과 걸으며 살짝 눈치를 보던 유미는 은근슬쩍 팔짱을 꼈다.
“오빠 안 더워요?”
“응? 왜?”
“땀 하나도 안 흘리시잖아요.”
유미의 말대로 이 더운 여름철에 시황은 땀 하나 흘리지 않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뼈와 근육이 강해지면서 추위와 더위에 내성이 생긴 것이다.
“내가 추위랑 더위를 잘 안타거든.”
“부럽다. 전 추운 건 참을만 한데 더운 건 진짜 힘들거든요.”
“그래? 내가 더위를 안 타는 방법 아는데. 가르쳐 줄까?”
“더위를 안 타는 방법이요? 어떻게요?”
시황의 말에 유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그냥 가르쳐 주기는 조금 아까운데.”
“에이, 뭔데요. 오빠.”
시황이 뜸을 들이자 유미가 시황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유미의 그 깜찍한 장난에 시황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같이 유미의 허리를 간지럽혀주었다.
“꺄, 오빠 간지러워요.”
간지러움에 유미가 몸을 비틀자 교복 상의가 살짝 올라갔고 앙증맞은 배꼽이 드러났다.
“하, 짜증난다. 누구는 저렇게 여친이랑 좋아죽으려는데 우린 뭐냐.”
“우울하다. 진짜. 이런데는 여자랑 와야 하는데. 난 여자 친구 언제사귀어보나.”
한창 시황과 유미가 장난을 치자 그걸 본 남자 둘이서 억울한 듯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유미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시황에게서 떨어졌다.
“오, 오빠 일단 다른 데로 가요.”
얼굴이 붉어진 유미는 시황의 손을 잡고 해수욕장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앉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유미의 얼굴이 펴진다.
“아, 살 거 같다. 날씨 진짜 덥네요. 오빠.”
유미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시황이 휴지로 유미의 이마를 닦아주자 유미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힌다.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신 유미는 시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황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얼굴이 사르르 붉어졌다. 처음 시황을 봤을 때는 이렇게 까지 좋아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미에게 살짝 웃어준 시황은 호주머니에서 사파이어 목걸이를 꺼냈다. 유미를 위한 선물이었다.
최하급 장신구가 완전 개방이 됐기 때문에 유미만이 아니라 찬미, 은지, 지숙에게도 이런 목걸이 선물을 하나씩 줄 생각이었다. 여자들은 이렇게 작고 반짝이는 보석이나 가방 등 자신의 존재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들을 좋아했다. 허세니 된장이니 하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여자라는 동물이 가진 본능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본능을 이용한다면 이전 보다 더욱 강한 끌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걸 안하더라도 여자들이 자신을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시황은 그 이상을 원했다. 마치 개미지옥처럼 자신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쨘!”
“어? 그 목걸이 뭐에요?”
시황이 호주머니에서 푸른색의 고급스러운 목걸이를 하나 꺼내자 유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뭘까?”
“에이, 뭔데요. 오빠. 설마 저 주시려고요?”
그러지 않았으면 시황이 목걸이를 꺼냈을 리가 없었다. 기대감과 흥분감으로 유미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냈다. 거기다 자신에게는 넘칠 정도로 고급스러운 목걸이었다. 자기 반에도 몇몇 여자애들이 목걸이를 끼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싼 것과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과 품격이 있었다.
“응. 그런데 이 목걸이 주는 대신에 부탁이 있어.”
“부탁이요?”
“응.”
“어떤 부탁이요?”
“지금 뽀뽀해줘.”
“네? 여, 여기 서요?”
시황의 말에 유미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카페에는 제법 사람이 많이 있어 뽀뽀를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유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응. 여기서.”
“자, 잠시 만요.”
유미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꼭 저 목걸이를 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시황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살짝 주춤거리던 유미는 시황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슬쩍 주변을 눈치를 보다 빠르게 시황에게 입을 살짝 맞추어주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굴은 물론이고 유미의 목이며 귓불이며 할 거 없이 전부 붉게 물들어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슬쩍 쳐다보기는 했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나친 스킨십을 하거나 노출을 한다면 인터넷에 오를 정도로 비난을 받겠지만 이런 가벼운 입맞춤 정도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리와. 오빠가 달아줄게.”
시황은 유미의 껴안듯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푸른색의 사파이어가 유미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린다.
유미는 시황이 걸어준 목걸이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바라보았다.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 빛깔이 영롱하게 비친다. 얼마나 비쌀지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천연 사파이어로 만든 목걸이야. 이 천연 사파이어에는 더위를 막아주고 몸을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에이, 거짓말.”
황홀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유미는 시황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시황은 딱히 변명을 하기 보다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조금 더 차를 마시면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찬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깐만, 찬미한테 전화 왔네.”
“네.”
시황은 호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받았다.
[오빠, 오늘은 공부하러 안 오실 거에요?]
[미안. 유미랑 거제도에 와서 좀 늦게 도착할 거 같아.]
[거제도요? 갑자기 거기는 왜…….]
시황의 말에 찬미가 말을 흐렸다. 오늘 유미와 노는 건 알았는데 설마 거제도까지 가서 단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를 할지는 몰랐던 것이다. 유미에게 질투라는 생소한 감정이 살짝 생긴다.
[유미가 바다 보고 싶다고 해서 왔어.]
[네. 알겠어요. 오빠. 그러면 유미랑 재밌게 노세요. 유미가 고3이긴 해도 놀 때는 놀아야죠.]
찬미는 성격이 원래 그랬다. 시황을 제외한 남자들에게는 한없이 차갑지만 자신이 믿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희생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시황을 좋아하면서도 유미와 사귀어도 괜찮다고 한 거겠지만.
“언니, 여기 완전 예뻐. 나중에 언니도 놀러와.”
유미가 시황에게 가까이 붙어 전화기에 소리쳤다. 비록 시황과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기는 해도 다정한 자매였으니까.
[다음에 찬미도 같이 놀러 오자.]
[네. 오빠. 그렇게 해요. 유미랑 노는데 제가 방해했네요. 이제 끊을게요. 재밌게 노세요.]
[응.]
시계를 바라보니 벌서 5시가 넘어있었다.
“오빠 사진기 있어요?”
“아, 맞다! 사진 찍어야지. 차에 있으니까 가져올게 잠깐만 기다려.”
“네.”
시황은 카페를 나가 세워둔 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꺼내는 척 하며 아공간에서 예전에 사둔 사진기를 꺼냈다.
이 사진 안에는 유미의 사진이 가득했다. 과외를 하면서 틈틈이 찍어서 유미의 여드름이 변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둔 것이다. 중간 중간 부끄러워하는 찬미나 앙증맞게 웃는 아루의 사진도 있었는데 다들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기가 힘들 정도다.
사진기를 들고 간 시황은 카페로 돌아가서 차를 마시는 유미 사진을 찍었다.
“이것도 자꾸 찍으니까 익숙해지는 거 같아요. 이젠 좀 사진 괜찮게 나오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 유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유미, 넌 우리 케즈론 브랜드의 전속 모델인 걸.”
“오, 전속 모델이라니까, 나름 좀 있어 보이는데요. 헤헤.”
시황의 말에 유미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유미는 지금 이 순간 시황이 한 말이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꿔 놓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차를 다 마신 시황과 유미를 카페를 나왔다.
그런데 몽돌이 가득한 해수욕장을 시황과 팔짱을 끼고 걷는 유미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유미야?”
“신기하게 아까랑 다르게 하나도 안 더워서요.”
“내가 말했잖아. 천연 사파이어는 몸을 시원하게 해준다고.”
“진짜인가?”
이제는 시황이 하는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는 너무 더워 죽을 거 같았는데 목걸이를 끼고 나니 봄 날씨처럼 살짝 더운 거 보면 정말 이 목걸이에 신비로운 힘이 있는 듯 했다.
유미는 신기해하며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시황을 바라봤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목걸이를 자신에게 내주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유미는 그런 시황의 팔을 더 꼬옥 껴안았다. 이렇게 가벼운 스킨십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 뒤로 시황은 해수욕장을 걷는 유미, 저녁밥을 먹는 유미,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유미 등 화보 저리가라 할 만큼 아름다운 사진들을 수백 장을 찍었다.
이렇게 유미와 정신없이 놀다보니 벌써 저녁 8시가 되었다.
“이제 가자. 유미야.”
“돌아가기 아쉽다. 오빠 다음에 우리 또 놀러와요.”
“그래.”
유미의 머리를 만져준 시황은 이미 어두워진 해수욕장을 바라보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 탔다.
시동을 켜고 운전을 하자 얼마 지나지도 않아 유미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에 빠져있었다. 시황은 그런 유미를 보고 살짝 웃으며 최대한 부드럽게 운전을 했다. 평소 학업 때문에 바쁜 유미를 위해 준비한 이벤트였는데 어떻게 잘 됐는지 모르겠다.
여자들이 서로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좋아한다, 사귀고 싶다 정도가 아닌 자신이랑 헤어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했다.
그런 마음을 얻겠다고 단순히 선물만 주는 건 호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상황과 분위기를 잘 살피면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해야했다.
만약 이게 잘 돼서 여자들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확실히 알 게 된다면 어떤 결말이 날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화목하게 됐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건 또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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