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149화 (149/629)

0149 ------------------------------------------------------

도서관

[완전 쓰레기 새끼네. 난 방송으로 받은 달풍선 전부 기부했길래 괜찮은 놈인가 했더니 뒤에서 더러운 짓은 다하고 다녔구만.]

[으웩 역겹다. 근데 이거 범죄 아닌가?]

[완전 강간인데 이거. 여자애가 고소하면 저 남자 쇠고랑차는 거 일도 아님.]

별에 별 댓글이 다 있었다.

이건 마치 겨울철에 일어난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런 건 자신이 아무리 해명을 해봐야 사람들은 나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그 진실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거기다 이건 유미의 얼굴까지 팔아먹는 일이라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시황 님…….”

심각한 표정으로 시황이 인터넷을 보자 미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 죄송합니다. 인터넷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올라와서요.”

“그 글……. 아니신 거 맞죠?”

“그럼요. 당연히 거짓말이죠. 누가 저런 말도 안 되는 글을 유포했는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군요.”

그저 자신을 욕하는 글이라면 그냥 참았겠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허위 사실을 쓴 놈을 용서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후로 인터뷰는 다시 무난히 이어졌고 시황의 사진과 카페 사진, 그리고 아르바이트생과 현주까지 전부 모여 찍은 사진을 마무리로 인터뷰를 끝냈다.

미란이 가고 나서 시황은 테이블에 앉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루머가 더 퍼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할 텐데 지금 마땅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한사람의 힘으로는 다수의 여론을 이기기가 힘들었으니까.

“흐음……. 현주야, 나 잠시 집에 갔다 올게. 아루랑 있어.”

“네. 다녀오세요. 오빠.”

“전 현주 언니랑 놀고 있을게요!”

시황은 카페를 나와 자전거를 타고 바로 오피스텔로 갔다.

현재 시각 오후 3시.

4시에 과외를 하러 가야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시황은 문을 소환한 케즈론의 성으로 갔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유포한 사람을 단죄하기 위한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

그런데 성에 들어가는 순간 평소와 다른 미묘한 압박감이 전신에 가득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마치 바다 속에 있는 것처럼 움직임 자체가 미묘하게 불편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사나운 맹수 앞에 있는 것 마냥 털이란 털이 완전히 곤두선다.

“콘즈야.”

너무나 불편한 이 느낌에 시황은 콘즈를 불렀다. 그런데 평소라면 부르자마자 바로 나타나던 콘즈가 어째서인지 아무리 불러도 나올 기미조차 없었다.

“콘즈야.”

약간 불안해진 시황은 더 강하게 콘즈를 불렀지만 여전히 콘즈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시황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서재로 향했다. 그런데 서재로 다가가면 다가설수록 느껴지는 거대한 압박감에 숨조차 내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수준이 되자 자연스럽게 하단전에서 마기가 피어났고 빠르게 전신 혈맥을 내달린다. 30년이나 되는 마기가 일고 나서야 겨우 그 압박감에서 겨우 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자신의 성임에도 왠지 모르게 불길한 생각에 시황은 조심스럽게 서재의 문을 열었다.

“어?”

서재에는 허리까지 오는 금발의 남성이 항상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책상에 다리를 꼬아 올리고 있었다. 무심한 듯한 그의 눈이 시황에게로 향했고 동시에 시황의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엄청난 압박감에 다리가 절로 휘청거려 쓰러질 뻔 했지만 온 힘을 다해 참아내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가득 흘러내린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일반인이 흉포한 사자 앞에 서면 다리가 풀리고 오줌을 싸듯 시황은 저 금발의 남자 앞에 선 것만으로도 다리가 흔들 거릴 정도로 엄청 난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네가 케즈론의 유산을 이어받은 강시황인가?”

“시황 님. 안녕하세요. 여기 계신 이 분은 케즈론 님과 친밀한 사이였던 골드 드래곤 톨레이만 님이세요.”

톨레이만의 옆에 서있는 콘즈가 평상시의 표정으로 시황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시황은 콘즈의 말에 톨레이만을 살짝 쳐다봤는데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움이 일었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도 이런 존재감이라니…….

“바, 반갑습니다. 강시황입니다.”

“이제 4레벨이군. 하지만 진리에 도달하기 보다는 여자와 놀아나면서 닿은 경지군.”

톨레이만은 단번에 시황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았다.

“케즈론은 인정이 너무 많아. 그 레벨 업 시스템에 허점이 얼마나 많은지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말이야.”

“무, 무슨…….”

“넌 스스로가 4레벨에 이르는 유산을 받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톨레이만은 냉정한 눈으로 시황을 보며 말했다.

“너에게는 꿈도 야망도, 진리에 이르겠다는 목표도 없지. 그저 어떻게 하면 여자와 놀아날까, 돈을 더 벌까 하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만 가능할 뿐.”

“그, 그렇지 않습니다!”

톨레이만의 신랄한 말에 시황은 움찔하면서 반발했다. 그런데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황은 이때까지 해보지 못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행동해 왔던 건 맞으니까.

“내가 걱정한대로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위해서만 도구를 쓸 뿐이지. 케즈론은 그걸 예방하고자 진리에 이르러야만 도구를 쓸 수 있게 제한을 걸어놨지만 그건 말 그대로 최소한의 제한일 뿐. 제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어.”

톨레이만은 책상에 올렸던 다리를 내렸다.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거리는 눈과 금빛의 머리카락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

시황은 톨레이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 정도 제한으로는 너는 결국 어떠한 진리에도 다다르지도 못할 테고 꿈도 야망도 없이 탐욕어린 삶만 살다가 죽게 되겠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말이지?”

시황은 자신을 비난하는 톨레이만에게 지지 않기 위해 강하게 대꾸했지만 톨레이만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너에게 약간의 제한을 걸겠다. 너는 결국 케즈론이 선택한 존재. 이렇게 하찮게 살아가는 걸 내가 두고 볼 수는 없지.”

“제한이라니!”

이때동안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제한을 건다는 톨레이만의 말에 시황은 욱해서 소리를 쳤다.

“최소 한 달에 한번 격투 게임에 접속해서 누군가와 대전을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넌 죽게 된다.”

하지만 톨레이만은 시황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30%였던 고통 시스템을 100%로 만듦과 동시에 현실과 완벽하게 동기화를 시켜주겠다. 게임에서 죽는다면 현실의 너도 죽는다.”

이때까지 전체 이용가 게임이던 게 갑자기 19세 이상만 할 수 있는 게임으로 변해버렸다. 게임에서 죽는다고 현실의 자신까지 죽는다니? 시황의 안색이 파래졌다.

“그리고 무지몽매한 너를 이끌어 야망을 가지게 할 존재도 필요하겠군. 지금 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은 지구라는 평온한 세계에 찌들어 있을 뿐이니.”

짝!

톨레이만이 손뼉을 치자 한명의 소녀가 서재에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소환이 돼서인지 그 소녀에 눈에는 불안함과 어리둥절함이 가득했다.

“여, 여긴…….”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당혹스러운 음성을 내뱉었다. 그 소녀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은 톨레이만만큼이나 아름다운 금발이었고 신비롭게도 그 금발이 햇살에 부딪히자 묘한 은빛을 내뿜었다.

“세란 라논 톨레이만. 로하임 제국의 4왕녀.”

“다, 당신은 누구시죠?”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세란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말했다. 로하임 왕국은 수호룡인 톨레이만의 마법으로 방어가 되어 있어 그 어떤 마법으로도 뚫을 수가 없었는다. 그런데 지금 옆에 있는 이 남자는 그런 톨레이만의 마법을 가볍게 뚫고 자신을 이곳으로 납치한 것이다.

하지만 세란은 몇번 호흡을 내뱉으며 두려움을 진정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어봤자 나아지는 것 따윈 아무것도 없으니까.

“너는 앞으로 저 앞에 있는 남자를 도와야 한다.”

톨레이만의 말에 세란이 시황을 쳐다봤다. 둘의 눈이 부딪힌다. 이국적인 얼굴이었지만 금빛의 눈동자와 갸름한 얼굴선은 아루만큼이나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루가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 세란은 서양적인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 어째서 제가 그래야 하죠? 로하임 제국의 왕가를 마음대로 건드리면 수호룡이신 톨레이만 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겁니다!”

세란의 말에 톨레이만은 심유한 눈빛으로 쳐다만 볼 뿐이었다.

“강시황. 앞으로 더 지켜보도록 하지.”

그리고 톨레이만은 사라져버렸다.

“하아……. 뭐, 뭐지.”

시황은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에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마법 아이템을 구하러 성에 왔을 뿐인데 갑자기 톨레이만이라는 이상한 골드 드래곤이 나타나서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약을 걸어버렸다.

물론 이때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퀘스트를 하고 유산을 받아 편한 생활을 해온 건 맞다. 거기다 4레벨이 되고 가질 만큼 다 가져서인지 레벨에 대한 욕심도 많이 사라지기도 했었다. 현금 20억 이상과 매출 4000만 원이 넘는 카페만으로도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격투 게임에 접속을 안 해도 죽게 만드는 건 너무한 페널티가 아닌가 싶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당신들은 누구죠?”

그리고 거기에는 시황만큼이나 당황해하는 여자가 있었다. 세란은 뭘 하다 왔는지 몰라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과거 중세시대의 귀족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녀린 어깨선이 드러나는 그 드레스는 왕족답게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안녕하세요. 세란 님. 방금 세란 님을 소환하신 분은 골드 드래곤이신 톨레이만 님이시고 시황 님을 도와드리길 원하세요.”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콘즈의 정확한 설명에 세란은 얼굴 가득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지금 일어난 일이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오후에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시황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란을 보다가 일단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세란 님 여기 앉아보세요. 일단 대화를 해보죠.”

시황의 말에 세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맞은 편에 앉았다. 보통의 여자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울음을 터트리거나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해야 할 텐데 금세 냉정함을 되찾은 거 보면 세란도 심상치 않은 여자이긴 했다.

“당신을 도와주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죠? 아니, 애초에 그 사람이 우리 로 하임 제국의 수호룡인 톨레이만 님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군요.”

세란의 말에 콘즈가 주머니에서 조그만 동전을 꺼내주었다. 시황이 보기에는 별다를 거 없는 동전이었지만 그걸 받은 세란의 눈에는 경악이 어려 있었다.

“톨레이만의 동전…….”

잘은 모르겠지만 톨레이만을 상징하는 물건인 듯 했다.

“그럼 전 언제 돌아갈 수 있죠?”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던 세란이 모든 걸 수긍했는지 콘즈에게 물었다.

“글쎄요. 아마도 시황 님을 도와서 10레벨이 되시면 돌아가실 수 있지 않으실까요? 이 성에 로 하임 행성으로 가는 워프게이트가 있기는 한데 세란 님께서 일주일 이상 로 하임 행성에서 머무르시면 강제로 케즈론의 성으로 이송되게 톨레이만 님께서 마법을 걸어두셨거든요.”

콘즈의 말에 세란은 깊은 고민을 했다. 톨레이만의 동전까지 확인한 이상 방금 전 그 남자가 로 하임 제국의 수호룡인 톨레이만이라는 게 확실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에 그려진 톨레이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과 화려한 금발…….

“좋아요.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군요. 당신을 도와드리죠. 제가 뭘 하면 되죠?”

세란은 두렵거나 고민하는 모습 하나 없이 결연에 찬 표정으로 시황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판단이었다.

톨레이만은 저 세란을 통해 진리에 다다르며 꿈과 야망을 가져라고 했는데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글쎄요…….”

시황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톨레이만이 원하는 게 뭔지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거 같았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코멘트, 그리고 쿠폰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