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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169화 (16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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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저 빛이 한번 반짝인 것뿐이라 흥분했던 우락부락한 사내가 다시 의자에 앉는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시황이었기 때문에 아까처럼 인터넷만 하는 게 아니라 시황을 쳐다보면서 주의를 기울인다.

저 우락부락한 남자의 기억도 제거해야 하는데 앞에 앉은 브로커가 언제 정신을 차릴지 모르는 게 문제다. 잠깐 고민하던 시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시황이 갑자기 일어나자 우락부락한 사내도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던 것이다.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원인 마기를 끌어올린 시황이 단번에 박차고 나가자 마치 고양이과 야생동물처럼 그 움직임이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날렵하다.

“어?”

사내가 놀라 움찔하는 사이에 시황은 그 사내의 앞에 순식간에 당도했고 바로 사내를 바닥에 쓰러트려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구속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30년이라는 마기는 인간이라는 한계를 아득히 초월하게 만들어주었다. 10년의 마기만 있어도 한 번의 주먹질로 일반인을 사망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데 30년의 마기라면 이런 우락부락한 사내쯤은 이렇게 단번에 결박하는 건 3살먹은 어린애 손목 비트는 것 보다도 쉬운 일이다.

“너, 너, 이 새끼…….”

사내가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사내의 등위에 올라탄 시황이 가볍게 손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바위에 깔린 듯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황은 손에 들고 있는 기억 제거용 플래시를 우락부락한 사내에게 대고 버튼을 눌렀다. 빛이 번쩍 거리자 사내의 표정이 몽롱해진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시황은 바닥에 쓰러트린 사내의 위에서 내려와서는 브로커의 손에 들린 주민등록증 2개를 빼앗았다. 이 주민등록증 2개만 있으면 아루와 수란도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살 수 있다.

[유영미][서혜림]

주민등록증에는 수란과 아루와 전혀 닮지 않은 2명의 여자 고등학생의 사진이 있었다. 아루의 성을 서씨로 정했기 때문에 혹시 가능하다면 서씨로 하나 구해달라고 했었는데, 다행스럽게 서씨라는 성을 가진 주민등록증이 있었던 거 같다.

시황은 브로커의 기억을 제거하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브로커를 바라보자 아까처럼 시야가 기억 편집 모드로 전환이 된다.

[남은 시간 : 9분 10초]

아깐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오른쪽 상단에 있는 저 남은 시간이라는 건 사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시간인 듯 했다. 중급 마법 아이템답게 단순히 기억을 제거하는 걸 넘어 10분 동안 정신을 잃게 만들어서 손쉽게 기억을 제거할 수가 있었다.

시황은 먼저 자신과 통화한 기억, 그리고 자신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눈 기억을 깔끔하게 제거해버렸다.

[남은 시간 : 7분 39초]

이 기억 편집 모드는 상세하게 시간이 나타났기 때문에 시황은 간편하게 자신에 관한 기억들을 찾아서 지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시황은 쓰러진 남자에게로 가서 의자에 앉힌 뒤에, 마찬가지로 자신이 왔다는 기억자체를 다 지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어 시황은 브로커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자신과 통화했다는 내역을 지우기 위해서였는데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통화내역에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흐음…….”

잠깐 고민하던 시황은 그 휴대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혹시 관련 파일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을지 몰라 아예 포맷을 시켜버렸고 서랍에 장부가 있나 해서 뒤적거렸지만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대충 일처리가 끝나자 시황은 다시 브로커의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 4분 25초]

1분에 가까운 시간을 뒤적거렸음에도 이 주민등록증을 언제 얻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브로커가 이상한 점을 느껴 자신을 찾으려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만 그럼에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주민등록증과 관련된 기억을 최대한 제거하고 싶었다.

[남은 시간 : 33초]

“찾았다.”

생각 같아서는 세세하게 기억을 지우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해 통째로 그 사이의 기억을 날려버렸다. 제법 많은 분량의 기억을 제거해버린 거 같기는 했지만 어차피 인체에 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과거의 기억 몇 가지가 사라질 뿐이다.

사람이라는 게 어차피 중요한 기억 외에는 대부분의 기억을 잊기 마련이고, 이 남자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브로커이다. 시황이 기억을 날린 게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게 아닌, 불법적으로 주민등록증을 취득하는 과정이다 보니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충 마무리가 되자 시황은 그대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혹시나 싶어 브로커와 만났던 사무실에 cctv가 있나 들어갈 때부터 꼼꼼하게 체크를 했지만 그런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후우…….”

건물을 나와 근처 길가에 세워둔 자신의 BMW M6에 탄 시황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을 처음 해봐서 그런지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시황은 마무리로 주머니에서 브로커의 휴대폰을 꺼내 손으로 꾹 쥐었다. 30년의 마기를 휴대폰 따위가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단번에 액정이 부서지면서 휴대폰이 가루가 되다시피 변한다.

비닐봉지에 완전히 부서져버린 휴대폰을 집어넣은 시황은 다시 자신이 한 행동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최대한 모든 정보를 없앤다고 없앴는데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로커와 우락부락한 남자의 기억을 완전히 제거했고 자신과 연락한 휴대폰까지 박살을 내버렸기 때문에 이제 자신과 그 브로커 사이에 있었던 만남은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생각을 하려고 해봐야 기억자체가 없는데 그 무엇도 유추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거기다 주민등록증을 불법적으로 얻은 일련의 과정조차도 다 지워버렸으니 자신이 얻은 주민등록증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후우…….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가슴을 진정시킨 시황은 주민등록증 2장을 꺼내서 확인했다. 둘 다 주소가 서울로 돼있다. 이제 이 주소와 이름을 바꾸게 되면 아루와 수란은 비로소 한국 국적을 얻게 되는 것이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자 시황은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항상 올바르게 살아오다 처음으로 이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해서인지 느낌이 묘하다.

“오빠!”

집에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아루가 달려와 자신을 꼬옥 껴안으며 반겨준다. 향긋한 아루의 향기를 맡자 그제야 약간 무겁던 마음이 편해진다.

“오셨어요?”

수란은 보던 만화책을 옆에 탁자위에 올려두고 시황에게 인사했다.

“응. 하던 거 해. 난 컴퓨터 좀 할게.”

“네! 오빠.”

시황의 말에 아루가 수란의 옆에 앉아 만화책을 읽었다. 그런데 둘이 보는 만화가 약간 달랐다. 시황은 케즈론의 도서관에서 수십 종류의 만화책을 가져다주었는데, 수란은 중세시대 배경의 좀 진지한 스토리의 만화를 보는 반면 아루는 보통 여자애들이 보는 순정만화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아루는 TV나 컴퓨터로 한국의 문화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도 하고 취향 자체가 그런 쪽이다 보니 오글오글거리는 순정만화를 재미있게 보는 듯 했다.

시황은 컴퓨터를 켜고 개명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개명을 하려면 주민등록증에 등록된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에서 개명 허가 신청을 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시황이 얻은 2개의 주민등록증 나이가 아직 성인이 채 되지 않은지라 이름을 바꾸고 주소지 이전을 하려면 올해는 넘겨야했다. 덕분에 이 주민등록증은 아직까지는 전혀 사용할 수가 없는 무가치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킥…….”

한창 시황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루가 킥킥거리면서 만화를 본다.

“아루야 재밌어?”

“네. 오빠. 엄청 재밌어요. 여기에 나오는 여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하는데 남자애는 여자애가 자기를 싫어하는지 알고…….”

시황이 묻자 아루가 만화책의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말한다.

“재밌죠? 오빠.”

스토리를 다 말한 아루가 정말 재밌지 않냐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게 엄청 재밌겠네. 계속 재밌게 봐 아루야.”

옛날과 많이 변한 아루를 흐뭇하게 바라본 시황이 말했다.

“네. 오빠.”

아루가 다시 만화책을 들고는 킥킥 웃으면서 본다. 정말 엄청 재밌나보다.

“언제부터 그리실 거에요?”

“응?”

뜬금없는 수란의 말에 시황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만화요. 계속 보다보니까 저도 엄청 그려보고 싶어서요. 언제부터 그리실 거에요?”

“음……. 일단 만화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한명 섭외했으니까, 이번 주에 만나서 어떻게 할지 얘기를 해보자.”

“그렇군요. 아, 그리고 저 내일 밖에 나갈 건데 괜찮죠?”

“밖에? 어디?”

수란의 말에 시황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냥 여기저기요. 이 세계에 와서 아직 한 번도 밖을 안 나가봤는데, 대충 문화도 알아봐야 하니 슬슬 나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게요.”

“나가는 건 상관없는데, 대신 나랑 같이 가자.”

수란이 4서클의 마법사이기는 해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에 시황은 절대 수란을 혼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러죠.”

“오빠, 저도 같이 갈래요.”

“그래. 그러면 내일 다 같이 여기저기 놀러나 가자.”

“와! 오빠 최고!”

아루가 소파에서 일어나 시황에게 안겨든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안 그래도 수란에게 이 세계에 대해서 안내를 해줘야 했다. 계속 집에서만 지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루야 노예였다 보니 사회성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집 안에만 있게 했지만 수란이라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시황은 기쁘게 웃는 아루를 보며 내일 어디로 놀러갈지 고민을 했다.

아침에 케즈론의 성에 가서 온도 조절이 가능한 목걸이를 하나 가져와서 아루에게 건네주었다. 유미와 같은 사파이어 목걸이는 아니었고 조그만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오빠, 저 목걸이 있어요.”

옛날에 시황이 아루와 처음 만났을 때 냄새가 너무 심해 건네준 그 에메랄드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루의 보물 1호였다.

“오늘은 이거 써 아루야. 그거 끼고 나가면 더우니까.”

“같이 껴도 돼요?”

아루는 악취를 제거해주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벗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시황에게 물었다.

“오늘은 이거 끼고 그 목걸이는 갔다 와서 껴.”

“네. 오빠.”

“오빠가 껴줄게.”

시황은 에메랄드 목걸이를 벗겨내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아루의 목에 걸어주었다. 자신이 준 목걸이를 그렇게나 소중히 생각하다니. 은근히 감동이다.

“준비 다 됐으면 이제 가죠.”

시황이 준 원피스를 입은 수란이 말했다.

집이 아닌 밖에 나가는지라 시황은 수란에게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히고 노출이 심하지 않은 원피스를 주었다. 다른 남자들한테는 수란의 속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여름이다 보니 약간 원피스가 약간 짧아서 수란의 미끈한 다리와 희고 고운 어깨가 드러났다.

수란의 알몸을 여러 번 본 자신조차도 그 어여쁜 모습에 발기가 될 정도인데 밖에 나가면 어떤 난리가 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래. 나가자.”

“네!”

활기차게 대답한 아루와 함께 오피스텔을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수란은 처음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시황에게 그게 뭔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를 꼼꼼하게 물어보았다. 그저 와와 하면서 다니던 아루와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호오, 이게 차라는 거군요.”

수란이 BMW M6에 타며 말했다. 아루가 시황의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수란은 뒷자리에 앉았다. 쿠페이긴 했지만 뒷좌석이 별로 좁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수란은 시황이 건네준 발이 편한 하이힐을 벗고 드러눕다시피 하며 뒷자리를 다 차지했다. 원피스가 살짝 올라가며 하얀 허벅지가 보인다.

“그럼 가자.”

시황은 차를 몰아 부산으로 향했다. 이왕 수란에게 보여주는 김에 좁은 시내보단 커다란 대도시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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