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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아루는 순정만화를 가지고 와서 차 안에서까지 킥킥거리면서 봤고 수란은 신기한 눈으로 창문을 통해 거리를 바라봤다.
“건물들이 저렇게나 크고 높다니…….”
사람이 많니, 건물이 높니, 끝없이 감탄을 하고 있었다. 수란의 반응만 봐도 로 하임 제국은 그렇게 발전을 이룬 곳은 아닌 듯 했다. 자신이 고른 마법 아이템들을 보면 지구와 비교도 안 되게 발전한 세계도 많은 듯 한데 그런 곳은 레벨을 좀 더 높아져야 갈 수 있는 듯 했다.
“어때?”
“대단한데요? 특히 이 자동차라는 이동수단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 건지 정말 궁금하기도 해요. 그냥 다 너무 새롭고 신비로워요. 이런 세계가 있을 줄이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부산에 도착했다. 시황은 어디로 갈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큰세계 백화점으로 향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기도 하니 관광을 한다는 느낌으로 다니면 좋을 듯 하다.
시황이 BMW M6를 몰아 큰세계 백화점 근처로 가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보인다.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자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큰세계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내리자.”
시황의 말에 아루와 수란이 차에서 내렸다.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주차장마저 화사하게 만들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오빠, 저 오빠랑 팔짱끼고 싶어요.”
“그래.”
아루의 말에 시황이 팔을 살짝 벌려주자 아루가 시황에게 달려와 팔짱을 낀다. 순정만화랑 드라마를 많이 보더니 남녀사이에 하는 이런 애정 어린 행위를 부쩍 하고 싶어 한다.
“호…….”
수란은 시황과 아루가 팔짱을 끼든 말든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구경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주차장을 나와 백화점 내부로 들어서자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온다. 세계 최대의 백화점답게 온갖 명품이 다 있었고 브랜드란 브랜드는 다 있는 곳이었지만 정작 여기 있는 것들보다 시황이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는 케즈론의 물품들이 훨씬 질 좋고 성능도 좋았다.
시황은 수란과 아루를 데리고 백화점의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그런데 아루와 수란이 다른 세계에서 왔어도 여자는 여자인지 여자 옷 파는 곳에서 구경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잠깐 심심해진 시황이 주변을 둘러보자 남자들이 수란을 힐끔 쳐다보는 게 보인다. 그러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다.
아루야 팔찌를 끼고 있어 다른 남자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지만 수란은 그럼 마법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수란아, 남자들이 너 자꾸 쳐다보는데?”
시황이 수란에게 말했다.
“그런가요?”
시황의 말에 수란은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당연한 일이니까. 남자들이 자신의 미모에 선망과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시황처럼 자신을 본 듯만 듯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고 말이다.
“부담되지 않아?”
“이게 당연한 일인걸요. 뭐, 시황 오빠는 잘 모르시는 거 같지만요.”
평소보다 콧대가 높아진 수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게 바로 나의 위엄이라는 표정이다.
“그렇구나.”
시황은 감탄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수란의 콧대가 더 높아진다.
백화점을 구경하고 점심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 보석이며 옷 같은 건 전부 케즈론의 성에 널렸기 때문에 돈 아깝게 사지는 않았다.
백화점 구경을 다하고 BMW M6를 몰아 해운대로 갔다. 그런데 여름이다 보니 사람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이 있었다. 펼쳐진 해운대 백사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고 있다.
차를 세워두고 해운대를 돌아다니며 많은 여자들을 살펴보았지만 수란이나 아루만큼 예쁜 여자는 없었다.
해운대 주변을 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수란은 상당히 감명 받은 모습이었다. 아루야 이미 이 세계에 적응할 대로 적응을 해서 그저 신나게 놀기만 할 뿐이었는데 수란은 눈을 빛내며 모든 걸 꼼꼼하게 살폈다.
저녁은 나름 분위기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꽉 채운 부산 관광이었는데 수란과 아루는 상당히 만족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땠어?”
소파에 앉은 시황이 말했다. 해운대에 갔을 때 엄청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시황은 마기로 인해 그런 더위를 전혀 못 느꼈고 아루는 시황이 준 목걸이로 땀 하나 흘리지 않았다. 수란도 어떤 마법이라도 쓴 건지 전혀 더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는지라 관광을 하기에 더없이 쾌적했다.
“신기했어요. 대충 이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제야 대충 알 거 느껴지네요.”
“오빠, 저도 재미있었어요.”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이제 씻고 슬슬 잘 준비하자.”
“네!”
시황의 말에 아루는 옷을 훌렁훌렁 벗었고 수란도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옷을 벗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좀 부끄러운지 가슴과 음부를 살짝 가리긴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 같았다.
시황이 바라던 그런 결과였다.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시황은 여전히 수란에게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채 아루만 바라봤다. 그 모습에 수란은 다행스러우면서도 살짝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루 가슴 예쁘다.”
“힝, 전 가슴 너무 작아요. 오빠.”
“아니야. 오빠는 수란이처럼 큰 거 보다 작은 가슴을 더 좋아하는 걸.”
“진짜요?”
“응.”
시황의 말에 아루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지만 수란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시황의 말에 살짝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매력 넘치는 가슴보다 저 빈약하고 조그만 가슴이 더 좋다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럼 씻으러 가자.”
“네!”
시황은 기분 나빠하는 수란을 보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약간은 음흉하면서도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미소를 말이다.
“시연아 들어와.”
시황은 시연을 데리고 자신의 오피스텔로 왔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앗! 안녕하세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루가 시연에게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시연도 아루에게 어색하게 인사한다. 그러면서 힐끔 아루를 쳐다본다. 그 미모에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갔기 때문이다.
“수란아, 인사해. 우리랑 같이 만화 그릴 사람이야.”
“박시연입니다.”
시연이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유수란이에요.”
유씨는 시황이 얻은 2개의 주민등록증 중에 있는 성 중 하나였는데 수란이라는 이름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마치 꽃 이름 같은 느낌이다.
“자, 탁자에 앉아.”
“네.”
시연이 수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수란이 보고 있는 만화책을 힐끔 쳐다본다. 평소 무뚝뚝한 표정이 아닌 흥미가 가득한 표정이다.
시황은 시연과 수란의 맞은편에 앉아 탁자에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를 올려놓았다.
“음, 나는 단순히 취미로 만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팔리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어. 예를 들면 투피스 같은 거 말이야.”
시황은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에 앞서 자신의 포부에 대해 얘기를 했다.
“아…….”
시연이 살짝 놀란다. 단순한 취미로 그리면서 자신에게 그런 많은 돈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큰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일단 스토리는 내가 어느 정도 짜뒀는데, 수란이랑 시연이가 읽어보고 부족한 점을 말해줘.”
시황은 무스 모룬의 모험을 좀 더 간단하면서도 읽기 쉽게 각색한 시나리오를 시연과 수란에게 건네주었다.
시연과 수란이 시나리오를 받아들어 진지한 표정으로 읽어본다. 원작이 워낙 뛰어나서 그런지 시연과 수란이 금세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몰입한다.
“호오, 상당히 재미있는데요? 특히 던전을 간다든지, 미지의 숲을 탐험할 때 느껴지는 그 두근두근함이 굉장해요.”
수란은 연신 칭찬을 했다.
“재미있기는 한데 좀 부족한 느낌이 있네요.”
그에 비해 시연은 약간 비판적인 태도로 나왔다.
“어떤 점에서?”
“시나리오 자체가 전부 모험에 관한 얘기밖에 없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갈등이 생기고, 아름다운 로맨스도 가미가 되어야 한다고 전 생각하거든요.”
“로맨스라…….”
“네. 이게 로맨스 만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정수준의 로맨스는 있어야 보통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기 마련이에요. 이런 모험위주의 만화는 작품 자체로는 수작일지 모르나 흥행적인 면에서는 조금 의문이 생기죠.”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던 시연이 만화가 관계되자 자신의 주장을 술술 말한다. 그 주장이 틀린 부분은 아닌지라 시황은 나름 고민을 했다. 확실히 이 시나리오는 모험에 관한 얘기 밖에 없다는 게 장점이자 큰 단점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수정할지 우리 생각해보자.”
시황의 말에 시연이 다양한 의견을 냈고 수란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덕분에 시나리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여자들이 원하는 로맨스도 첨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여자들 취향의 만화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만하면 어때?”
“음, 괜찮은 거 같아요. 아니, 충분히 재미있는걸요?”
“시연이는?”
“저도 나쁘지 않네요.”
시연이는 말은 그래놓고 표정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보완된 스토리가 엄청 마음에 든 듯 하다.
“좋아. 스토리는 됐고 이제 좀 더 세세하게 캐릭터의 특징같은 걸 정하고 그림으로 표현해보자.”
시황은 흰종이를 꺼내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기를 끌어올려 마력회로를 가동한다. 자신이 상상한 루스 모룬의 이미지를 흰 종이에 그렸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데다 그림 자체도 말도 안 되게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말도 안 돼.”
시황이 그림 그리는 걸 처음 본 시연이 입을 벌리고 말했다. 자신도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기 때문에 시황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어때?”
시황은 자신이 그린 모스 모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람의 정서를 생각해서 우락부락한 주인공이 아닌 선이 가늘고 잘생긴 모습으로 그렸고 평범한 인상으로 느껴지지 않게 약간의 특징을 첨가했다.
“괜찮은 느낌인데요?”
“시연이는?”
“괘, 괜찮긴 한데 주인공이라는 인상을 확실히 나타낼 수 있는 특징이 더 필요한 거 같아요.”
“음? 그래?”
시황은 시연의 의견대로 주인공과 여주인공, 그리고 기타 캐릭터들까지 단숨에 그려내었다. 이렇게 단순히 사람을 그리거나 풍경을 그리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만화를 만화답게 만드는 컷 분할이라든가, 연출 등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 만화를 어떻게 출판하실 생각이세요?”
“응? 출판사에 투고할 생각인데.”
“그런가요? 그러면 열심히 해야겠네요.”
시연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시연이 너 엄청 무뚝뚝한지 알았는데 만화 얘기를 하니까 은근히 말이 많은 걸?”
“그, 그런가요?”
뜬금없는 시황의 말에 시연의 얼굴이 붉어진다. 약간 부끄러워 하는 거 같다.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도 이 시간쯤에 오도록 해.”
벌써 오후 3시였다. 시황이 카페 문을 열고 바로 시연을 데리고 오피스텔로 온 건데 그림 몇 개를 그리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다보니 6시간이나 지난 것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면 좀 더 늦게까지 하겠지만 일단은 연습 위주이고 공부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이렇게 이정도 시간만 투자할 생각이었다.
“아, 네. 그럼 내일 오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시연이 인사를 하고 오피스텔을 나갔고 수란은 신중한 표정으로 만화를 그리는 법에 대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 난 나갔다 올테니까, 수란이는 그거 보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책에 집중한다고 건성으로 인사한 수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시황은 오피스텔을 나가 찬미의 집에서 과외를 받았다.
그리고 찬미를 카페에 데려다 주고 나서 집에 다시 돌아온 시황은 소파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했다. 한국의 만화 시장은 이미 끝난지 오래였다. 이런 곳에서 자신이 아무리 재미난 만화를 그려봐야 웹툰처럼 많은 독자층을 끌기가 힘이 들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단순히 만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저 만화만 그려서 인기를 끌겠다는 건 열악한 한국 시장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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