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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말뜻은 이해했지만 정말 그런 이유로 속옷을 벗으라는 건지 하는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 까칠하게 굴던 시황이 갑자기 이러니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도 묘한 기대감 비슷한 게 생긴다.
“아무 짓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으, 응.”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말하는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별다른 거부조차 못하고 조심스레 브레지어와 속옷을 벗었다. 평소에도 시황이 까칠하게 말해도 크게 거부를 못하고 따르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다정하게 말해주니 안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사회에 있을 때는 주변에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난 남자들 천지라서 평범한 호의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시황이 하는 호의 같지도 않은 작은 호의만 받아도 괜히 가슴이 떨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유진아는 속옷을 옆에 두고 몸을 살짝 움츠렸다. 어제는 알몸으로 자도 별 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은 시황의 말 때문에 벗어서 그런지 부끄러움과 울렁거림이 뒤죽박죽 혼합돼서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을 만들어냈다.
“역시 이렇게 자니까 느낌이 좋네. 앞으로는 둘 다 알몸으로 자자.”
“새, 생각해보고.”
시황이 유진아를 껴안으며 말하자 유진아가 시황의 가슴에 묻히며 낮게 중얼 거렸다. 거대한 시황의 성기가 음모 근처를 쿡쿡 찌르자 나중에 이대로 자위를 해도 되겠다는 음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자신에겐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이는 시황을 가지고 자위할 생각만 하는 게 정말 한심하다 싶지만 본능이 그 쾌감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자기 전에 이렇게 껴안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흥분이 돼서 호흡이 조금 가빠졌다.
“그래. 네가 편한 대로 해.”
“응…….”
시황이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알몸으로 껴안고 자는 마당에 별 거 아닌 행동일 수도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 손길에 따라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내가 처음에 왜 널 안 좋아 한다고 말한지 알아?”
“어? 자, 잘 모르겠는데.”
갑작스런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약간 당황해서 대답했다. 평소에는 이렇게 그냥 잠이 드는 게 보통이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시황이 유독 잘해주기도 하고 상냥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래. 네가 알 수가 없겠지. 그런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까.”
머리는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지만 실망했다는 듯한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가슴에 송곳이 박히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울렁거리던 그 흥분되던 기분이 사라지고 어느새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유진아는 빠르게 생각했다. 뭘 잘못했는지 생각을 돌려봤다.
보통의 이렇게 남녀가 싸우면 여자가 뭘 잘못했는지 아냐고 묻고 남자는 제대로 대답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연출돼야 하지만 시황과 유진아의 관계는 시황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서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 보, 보석은 미안해. 내가 너무 지나쳤던 거 같아…….”
한참을 생각한 끝에 시황에게 보석을 산다하고 약간 협박 비슷하게 했던 게 생각이 나서 빠르게 사과했다. 분명 어디서 훔치거나 불법적으로 얻은 보석이라 생각해서 그랬던 건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겪어보니 시황이 그런 나쁜 짓을 할 사람도 아니고 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엔 까칠하기는 해도 은근히 상냥한 남자였으니까.
그리고 사회에서라면 그런 사실을 알더라도 사과를 하지 않았겠지만 무인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바가 좀 있기도 했고 어째서인지 시황이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낄까 두렵기도 했다.
“그것도 있지만 사실 그거보다 너한테 훨씬 실망했던 일이 있었지.”
나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서 사과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자 유진아의 표정이 크게 안 좋아졌다. 빠르게 한 번 더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미안. 앞으로 조심할게.”
처음엔 이런 사과도 못했었는데 이제는 간단하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됐어.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차피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냉정한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갑자기 가슴이 아릿해지는 걸 느꼈다. 생각해보면 시황의 말이 틀린 건 없었지만 그 냉정한 말이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일주일간 같이 지내면서 나름 사이가 좋아지고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신만의 착각인 거 같았다.
“미안. 정말 미안해. 무슨 일이었는지 말해주면 내가 앞으로 조심할게. 흑…….”
“글쎄, 어차피 우리가 사는 방식도 다르고 생각 자체도 다른데 그게 될까?”
유진아가 동그란 눈으로 눈물을 잔뜩 글썽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황은 냉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일부러 분위기를 잡은 건 맞지만 유진아가 생각 외로 저자세로 들어와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게 조심했다.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진 못하더라도 그 거만하고 오만한 모습을 약간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음…….
시황은 유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고민하는 척을 했다.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이 없자 유진아가 훌쩍 거리면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여자의 무기라더니 우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약해지긴 한다.
“너는 별 거 아니라고,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는 그런 말 때문에 정말 실망했었거든. 네가 남부러울 거 없는 우리나라 최고 그룹의 딸로 태어난 건 알지만 그건 너의 노력으로 얻은 것도 아니고 네가 부자라고 다른 사람을 무시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미안. 난 정말 몰랐어. 흑…….”
시황의 말을 들으니 처음 시황과 대화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아무런 생각 없이 시황의 부모님보고 보잘 것 없는 일을 한다고 표현했는데 그게 시황에게 상처가 되었던 거 같았다. 이때까지 그 누구도 자신에게 뭐라 한 적 없었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을 하층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무인도에 오니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져버렸다.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그런 일들이, 권력이 모두 환상이었던 것 마냥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현실에서 시황의 말을 들었다면 그저 코웃음 치고 말았겠지만 이 무인도에서 시황에게만 의지한 채로 일주일간 지내보니 시황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그건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정말 미안해…….”
“원래라면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요즘 네가 열심히 하고 내 말대로 잘 해주다 보니 마음에 들어서 말해주는 거야. 만약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화내고 거만하고 그랬으면 답 없다 생각하고 바로 다른 데로 가버렸을 걸?”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시황에게 계속 화를 냈다면 지금처럼 지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이 이상한 무인도에서 싸늘한 시체가 됐을 게 분명했다. 단순히 말로만 잘못했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겨우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운명이 결정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고마워. 흑……. 앞으로는 절대로 안 그럴 게. 정말, 정말 약속할게.”
그리고 처음 시황의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가슴이 송곳에 찔리는 듯 아팠는데 요즘은 마음에 들게 잘하고 있다는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정말 별 거 아닌 말 한마디였지만 이때동안 받은 그 어느 칭찬보다 기분이 좋았다.
“뭐, 일단은 믿어볼게. 옛날처럼 그런 행동만 안 하면 혹시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만날지도?”
“정말 잘할게.”
주도권에 대한 쐐기를 박는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앞으로는 더욱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이때까지 지내오면서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말로 했던 적은 없었다. 유진아가 그다지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완벽하게 모든 주도권을 시황에게 내어주고 만 것이다. 이때까지는 그저 시황이 무인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일시적인 주도권이라 현실로 돌아가면 금세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사시 준비하는 여자 친구를 열심히 뒷바라지 했더니 합격하고 나자마자 차이는 경우와 비슷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말로 주도권의 공고히 다졌기 때문에 이건 현실로 가서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확실한 주도권을 현실에서도 쥘 수 있게 되리라.
“그래. 네 말대로 앞으로 잘하면 되니까 울지 마.”
“으, 응. 이제 안 울게.”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눈을 닦으면서 대답했다.
“요즘 진아가 은근히 귀엽다니까.”
“고, 고마워.”
귀엽다는 말에 유진아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가슴이 울렁울렁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황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면서 울먹거렸는데 이젠 귀엽다는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너무 좋아 시황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러니까 마치 시황에게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거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슬슬 자자. 내일도 또 돌아갈 방법을 찾아봐야 하니까.”
“응. 이제 잘게.”
요즘 순순히 말을 잘 듣기는 했지만 방금 그 일 때문인지 유진아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더 고분고분해졌다. 이때까진 좀 귀찮고 짜증나는 느낌이 강했는데 방금 기분 풀어주려고 한 귀엽다는 말처럼 정말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잘 자.”
시황은 유진아의 귀에 살며시 속삭이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주었다. 시황도 평범한 남자인지라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했지만 이런 걸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꾹 참고 해준 거였다. 채찍을 줬으니 이젠 당근이 필요할 때였으니까.
“……너도 잘 자.”
시황의 의도가 잘 먹혔는지 유진아는 갑작스런 시황의 입맞춤에 어쩔 줄 몰라 하다 겨우겨우 평범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심장은 아까부터 터질 듯이 두근거렸고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아까 시황이 했던 얘기와 귀엽다는 말, 잘자라고 입을 맞춰준 게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까 전에 시황에게 혼나고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시황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시황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행동이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그런 일을 겪었으면 더 볼 것도 없이 다시는 안 봤을 텐데 시황은 그런데도 자신을 잘 챙겨줬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정말 고맙고 멋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꼭 끌어안은 시황의 가슴에서 남자의 은근한 체취가 느껴졌다. 역겨운 땀 냄새가 전혀 아니라 왠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런 섹시한 남자의 향기였다.
한참동안 시황의 냄새를 음미하고 등을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 일을 떠올리다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예상은 했지만 눈을 감아도 아까 시황이 한 행동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노력해도 아까부터 계속 가슴이 울렁거려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시계가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족히 1시간은 넘게 잠 못 들고 시황의 품에 안겨있었다.
거기다 마음이 진정되기는커녕 배꼽 근처를 찌르는 시황의 성기 때문에 욕정까지 생겨나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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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