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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시황과 유진아의 눈이 동시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짐승으로 눈이 향했다. 얼마 크지 않은 동굴 안에는 은은하게 금빛을 내는 보석함이 있었고 그 앞에는 사람 몸만 한 크기의 거대한 짐승이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유진아는 그 짐승을 보자 너무나 두려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이때동안 섬에서 지내면서 별다른 동물이나 짐승을 못 봐서 마음 놓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에 끔찍할 정도로 두렵게 생긴 짐승을 보자 사고가 마비되며 두려움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유진아는 아무런 말조차 못하고 두려움에 몸만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도망가자.”
그런데 그때 시황이 유진아의 손을 잡고 단숨에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유진아는 엉겁결에 시황을 따라 빠르게 뛰었는데 너무나 두려워 뒤에 짐승이 쫓아오는지 감히 확인해 볼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동굴 밖에 있는 숲으로 나오자 짐승도 따라서 동굴 밖으로 나왔는데 계속 낮은 자세로 위협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공격을 하겠다는 의사가 아니라 시황과 유진아를 보고 깜짝 놀라 취한 방어적 행동일 뿐이었다. 오히려 카헬이라 불리는 저 마물은 무리가 없으면 공격조차 하지 않았다.
“내 뒤에 있어.”
“어, 어떡해. 우리 이제 어떡해……. 흑…….”
시황이 유진아를 자신의 뒤로 옮겨 일부러 짐승이 잘 보이도록 하며 말하자 유진아가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작은 강아지도 사납게 짖으면 무서운 마당에 사람 덩치만한 짐승이, 그것도 가만히 있어도 이빨이 날카롭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주는 짐승이 적개심을 가지고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일반적인 여자인 유진아가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옛날에 개그 소재로도 많이 쓰이던 폭력배로부터 여자를 구해줘서 호감을 얻는 방식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런 스케일과 방식은 시황이 아니면 불가능했기 때문에 유진아는 시황이 꾸민 일이라는 것도 모르고 시황의 손을 잡은 채로 뒤에 숨어서는 두려움에 훌쩍이고 눈물만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까.”
시황은 유진아의 손을 꾹 쥐며 말했다. 평소에 쓰기엔 지나치게 오글거리는 말이었지만 상황만 받쳐준다면 오글거리는 대사가 평범한 대사보다 더욱 그럴싸하고 커다란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
“오, 오빠…….”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이런 와중도 큰 감동을 받아서 시황의 쳐다봤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더 시황의 등이 넓어보였다. 정말 위험하고 두려운 순간이지만 시황이 옆에서 다독여주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이 되었다.
“크르릉…….”
마물은 시황과 유진아를 보며 계속 위협을 했지만 공격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그저 슬금슬금 시황과 유진아의 옆을 천천히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 도망가면 저 짐승한테 공격당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유인을 할게. 진아는 집 쪽으로 도망쳐 알겠지?”
“오, 오빠. 그, 그러면 위험하잖아. 그, 그냥 이대로 천천히 도망가자.”
유진아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마. 적당히 도망가다가 나무에 올라가면 되니까. 오히려 같이 움직이면 더 위험해져. 알겠지? 내가 유인하면 바로 도망가.”
“아, 안 돼. 오빠. 제발 그러지 마.”
시황이 돌을 집어 들며 말하자 유진아가 시황을 말리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위해 힘써주는 시황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올 거 같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위험한 짓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 방법 밖에 없어. 안 그러면 정말 우리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난 도망칠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바로 도망가 알겠지?”
“그래도,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그냥, 그냥 같이 도망가자 흑…….”
유진아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난 꼭 살아남을 테니까.”
시황은 분위기를 잡으며 이와 중에 유진아와 입을 맞추었다. 보통 영화 같은 걸 봐도 항상 이런 순간에 마지막 키스를 하는 법이니까.
“흑……. 오빠…….”
유진아는 시황의 키스에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시황이 죽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슬퍼서 눈물 밖에 나지 않았다.
“도망가!”
시황은 유진아를 밀치며 마물에게 돌멩이를 맞췄다. 마기를 끌어올린 상태라 근력이 상당히 증가해있었지만 일부러 돌멩이는 약하게 던졌다. 강하게 던졌다가 마물이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계획이 어긋나니 말이다.
“오빠!”
“빨리 가! 빨리!”
간절하게 외치며 시황이 앞으로 뛰어나가자 유진아는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시황이 잘 도망갈 수 있기를 끝없이 신에게 빌었다.
유진아가 제대로 된 상황도 모르고 정신없이 도망을 가자 시황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멩이에 맞은 마물은 달려들기는커녕 약간 겁을 먹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황이 앞으로 다가가자 달려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로 살짝 물러난다. 약한 마물을 부르기는 했는데 이건 약해도 너무 약했다. 그래도 확실한 끝맺음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황은 마물에게 달려들어 헤드락을 걸 듯 마물의 목 부분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힘을 주었다.
“끄, 끄응…….”
목이 강하게 조여오자 마물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시황을 보며 도망가려고 몸을 비틀며 낑낑거렸다. 유진아는 시황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것과 완벽하게 정반대였다. 오히려 마물이 죽음의 위기를 느낀 순간, 갑자기 시황이 소리를 고통에 찬 소리를 질렀다.
“크악!”
마물이 시황에게서 벗어나려고 계속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강하게 비틀었고 시황은 얼굴을 찡그린 표정으로 고통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으니 얼추 그럴싸한 장면이 나오기는 했다.
한참 정신없이 도망치던 유진아는 갑자기 들리는 시황의 비명이 발을 멈추었다. 설마 시황이 제대로 도망치지 못하고 짐승에게 다친 걸까 라는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유진아는 고개를 돌려 상황을 보려고 했지만 너무 두려워서 몸이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의 두려움에 오줌이 찔끔 흘러나오고 손과 발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끄아!”
또다시 시황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지자 유진아가 몸을 움찔 떨었다. 시황이 너무 걱정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는 몸을 돌려 그 동굴 근처로 빠르게 뛰어갔다. 발바닥이 너무나 아팠지만 그런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오, 오빠!”
동굴 근처에서는 시황과 짐승이 부둥켜안고 싸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피 같은 흔적은 전혀 없었는데 시황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거 보니 이러다 시황이 잡아먹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유진아는 주변에서 빠르게 커다란 돌멩이를 찾았다.
“지, 진아야! 도망가! 오지 마……. 큭!”
다행스럽게 유진아가 오자 시황은 더 힘든 척, 더 위태한 척 열심히 연기를 했다. 정작 마물은 제발 좀 놓아달라는 눈빛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유진아가 그런 걸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모서리가 뾰족하면서 때리기 좋을만한 크기의 돌을 집어든 유진아는 빠르게 마물 근처로 다가왔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지 손발이 벌벌 떨리고 오줌이 자꾸 찔끔찔끔 새어 나왔지만 시황을 구해내야겠다는 마음에 커다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시황과 엉켜있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 마물의 머리가 시황의 팔 사이로 튀어나와있어서 유진아는 온 힘을 다해 돌멩이를 내리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마물의 움직임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진아는 다시 한 번 돌멩이로 마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퍽.
다시 한 번 뼈와 돌이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방금 얻어맞았을 때부터 마물의 움직임이 확연히 줄더니 한 번 더 맞는 순간 마물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더니 완벽하게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마물의 머리가 움푹 들어간 채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 오빠. 괘, 괜찮아?”
마물의 움직임이 멈추자 유진아는 돌멩이를 옆으로 버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직까지 팔과 다리가 떨렸고 팬티는 새어나온 오줌 때문에 흥건히 젖어버렸다.
“크윽……. 고, 고마워. 진아야. 너 때문에 살았어.”
마물과 싸우며 다친 듯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토해내듯 말한 시황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마물 옆에 쓰러지듯 드러누우며 말했다.
“오빠 어, 어디 다친 거야? 오빠. 흑…….”
유진아는 마물을 죽였다는 생각보다 시황에 대한 걱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시황에게 다가가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격하게 싸웠는지 팬티가 흘러내리며 성기가 튀어나와있었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크윽……. 거, 거긴 만지지 말아 줄래.”
유진아의 손이 다리를 더듬자 시황이 아픈 척 소리를 냈다.
“마, 많이 아파?”
“조, 조금 아프네. 그래도 크게 다친 건 아닌 거 같으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조금만 부축해줄래?”
“으, 응, 알았어. 흑…….”
유진아가 부축해주자 시황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다친 듯 약간 절뚝거리며 걸었다. 팔이나 가슴 이런 데는 다친 티도 안 나니 다리를 다친 척하는 거였다.
“이, 일단 집에 돌아가자. 흑……. 오빠부터 빨리 치료해야지.”
“어디 부러지고 그런 건 아닌 거 같으니까 조금 지나면 나을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동굴 안에 들어가 봐야지.”
“그래도…….”
“진아가 적절한 순간에 와줘서 살 수 있었어. 고마워.”
“내가 고맙지. 흑……. 오빠 아니었으면 죽을지도 몰랐는데. 정말, 정말 고마워, 오빠.”
시황은 유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까 소리를 쳤을 때 유진아가 안 왔으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는데 다행스럽게 와줘서 쉽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쯤 했으면 이 무인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유진아는 시황을 부축하고 동굴로 들어갔다. 혹시나 또 짐승이 있을까 싶어 두려움에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지만 다행스럽게 동굴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어린 보석함뿐이었다.
“오, 오빠. 보, 보석함이야.”
보석함에 다가간 유진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석함을 만져봤다. 황금빛이 어려있는 보석함이 너무나 신비로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는 다행스럽게 허상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열어봐. 안에 보석이 있으면 우리 돌아갈 수 있을거야.”
“으, 응.”
시황이 편하게 기댈 수 있게 위치를 잡아준 뒤에 유진아는 조심스럽게 보석함을 열었다.
“아! 핑크 다이아몬드…….”
황금빛 보석함 안에서 드러난 찬란한 다이아몬드의 모습에 유진아는 감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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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