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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좋아. 그러면 말 나온 김에 바로 하자. 일단 만화를 타블렛에 넣을 테니까 수란이는 아루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줘. 아, 옷 갈아입는 것도 잊지 말고.”
“알겠어요.”
수란이 아루를 데리고 올라가서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동안 시황은 타블렛에 직접 스캔한 만화를 집어넣었다. 요즘은 세상이 얼마나 편한지 타블렛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영상이나 만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만화를 다 넣고 혹시나 싶어 시황은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연예인 급은 아니지만 유투브나 TV에 몇 번 출연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나름 관련 글이 올라와서 읽으면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요즘 시황인가 뭔가 하는 사람 왜 TV에 안 나옴?]
자신의 근황에 관심을 가지는 글이 바로 보이자 시황은 바로 클릭했다.
[노래 진심 개잘하던데 솔직히 그 정도 실력이면 요즘 나오는 가수들 다 개바르는데 왜 가수 안함? 나 같으면 바로 가수할 건데 ㅋㅋ 유튜브로만 돈 벌 생각인가?]
[가수들 다 바른다고? 시황이 노래 잘하는 건 맞는데 개바르는 건 아니지. 아직 라이브로 검증된 것도 아닌데 무슨 개소리함? 내 생각엔 박흥신이 노래 훨씬 잘한다고 본다.]
[뭔 개솔? 전에 케이블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거 못 들어봄? 박흥신 개바르는 레벨인데. 귀가 막히셨나 ㅋㅋㅋㅋㅋ]
원래부터 과격한 사이트라서 그런지 서로 험한 말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자기를 두고 싸우는 게 약간 민망하기 했지만 그보다 유튜브로 돈을 번다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유튜브로 돈을 번다고?”
흥미가 생긴 시황은 어떻게 해야 유튜브로 돈을 버는지 검색했다. 몇 가지 글을 읽고 나니 대충 어떤 방식인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유튜브 수익의 기본은 광고였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틀었을 때 나오는 광고는 유튜브 자체에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영상을 올린 사람이 수익을 얻기 위해 트는 광고였던 것이다.
어찌됐든 조회수가 1000만을 넘긴다면 대략 1000만 원 이상의 수익 정도나 난다고 했다. 그러니까 시황이 전에 올린 노래 영상의 조회수가 3천 만이 넘었으니 못해도 3천만 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흥미로운데?”
어쩌다 보니 새로운 수익원을 찾게 되어버렸다. 이런 걸 알았으면 전에 올린 영상에 광고를 넣을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오빠 준비 다 했어요.”
한참 생각을 하고 있는 시황에게 아루가 앞에 서서 말했다. 아까 전에 가볍게 입었던 티와 반바지가 아니라 외출을 위해 스타킹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예쁘고 매력적인지 매일 아루를 보는 시황조차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였다.
“아루 예쁘네.”
“헤헷. 오늘은 팬티도 예쁜 걸로 입었어요.”
시황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아루는 스커트를 들어 올리며 말했는데 팬티스타킹 때문에 어떤 팬티인지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오빠는 그대로 가실 건가요?”
“호오……. 수란이도 오늘 엄청 예쁜 걸?”
수란에게 고개를 돌린 시황은 낮게 감탄을 하며 말했다. 수란은 아루와 다르게 키가 크고 몸매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몸에 달라붙는 팬츠와 도트 무늬의 검은 블라우스를 입은 것만으로 쉽게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고고하게 피어난 한 송이의 꽃 같다고나 할까?
“고마워요. 그런데 여자 문제를 그만 만들고 싶으면 그런 말은 자제하시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시황의 말에 얼굴을 살짝 붉힌 수란이 말했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별 거 아닌 말인데 너무나 순수한 얼굴을 가지고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하다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릴 정도로 마음에 와 닿았다. 저러니 여자가 꼬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다.
“아, 그런가? 하하. 하여튼 나도 옷 갈아입고 올게. 잠시만.”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유진아의 집에서 입은 추리닝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시황은 바로 옷을 벗고 옷장에서 깔끔한 옷을 꺼내 입었다.
“이제 가자. 아루에게 잘 알려줬지?”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시황이 말했다.
“네. 일단은요.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 제가 놀랄 정도던데요?”
“연습 좀 했지. 그럼 가자.”
시황은 수란과 아루를 데리고 찬미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 오전이기 때문에 찬미와 유미는 집에 있을 게 분명했다. 차를 타고 가기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기도 하고 구경도 할 겸 해서 느긋하게 걸었다.
그런데 근처에 대학가라 그런지 학생들이 제법 많았고 수란이 지나갈 때마다 눈을 못 떼고 쳐다보는 남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나마 아루는 수 진의 백금 팔찌 덕분에 있는지도 몰라서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다 너 쳐다보는데?”
“그런가요? 할 일 없는 사람들이군요.”
시황의 말에 수란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봄에도 엄청 여유로운 태도다.
“그러고 보니 너 로 하임 제국의 왕녀였지. 그 정도면 이렇게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 정도는 별 거 아닌 건가? 그런데 또 댓글을 볼 땐 엄청 열심히 봤잖아?”
“얼굴이랑 권력은 제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일 뿐이니까요. 그런 걸로 관심을 받아봐야 결국 저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걸 잘아요. 그에 비해 제가 그린 그림에 달린 댓글은 오로지 제 능력에 보내는 찬사니까 그 두 가지 상황은 비교조차 할 수 없죠.”
“오호, 그런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이미지이기는 했지만 이 말을 듣고 보니 새삼스레 수란이 달라 보인다. 부모 믿고 까부는 왕녀의 이미지와 정반대라고 할까? 톨레이만이 괜히 붙여준 거 아니다 싶다.
“그러면 이렇게 손잡고 가면 사람들이 덜 쳐다보려나?”
시황은 수란의 손을 잡았다. 아루야 진작부터 손을 잡고 있었지만 수란은 시황과 약간 떨어진 채 걸어서 사람의 눈이 대부분 수란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똑같을 걸요.”
“그럴까?”
움찔한 수란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지만 딱히 시황의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전에는 단순히 수란에게만 향하던 사람들의 눈길이, 시황이 수란의 손을 잡자 뭔가 분하고 배아프다는 날카로운 눈길로 변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고 말도 못 걸어본 여자지만 그 여자가 너무 예쁘다 보니 단순히 사귀는 걸로 추정되는 남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배가 아픈, 아주 묘한 심리였던 것이다.
시황은 그런 눈빛들을 즐기며 일부러 단순히 맞잡은 손에서 깍지로 바꿨다. 보통의 남녀라면 대놓고 사귀고 있다는 표현. 물론 시황과 수란은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다만 겉보기에는 대놓고 사귀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수란은 약간 의아하면서도 복잡한 표정으로 시황을 바라봤다. 이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손을 잡고 걸으니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괜히 가슴이 떨리기도 하는 게 평소보다 즐겁기까지 했다.
느긋하게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걸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찬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황이 찬미의 집 앞에서 벨을 눌리자 유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앗! 오빠!”
“잘 있었어?”
“으앙, 어디 갔었어요. 내가 얼마나 오빠를 보고 싶어 했는데…….”
유미는 정말 반가웠던지 시황의 품에 파고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물까지 찔끔 나는 게 어지간히 보고 싶긴 했나 보다.
“미안. 바쁜 일이 있어서 연락도 못 했어. 일단 안에 들어가자.”
“네. 흑…….”
시황이 유미를 달래고 집 안에 들어가자 그제야 찬미가 방에서 나왔다. 밖이 소란스러워서 무슨 일인가 보러 나온 것이다.
“오, 오빠.”
거실에 있는 시황을 본 찬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일주일 동안 시황을 못 봤을 뿐인데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고 평소와 비교도 안 되게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고 느꼈었다. 이젠 정말 시황을 빼면 자신의 인생을 상상도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언니 안녕하세요.”
“아루랑 수란이도 왔구나.”
찬미는 아루의 인사에 살짝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일단 유미랑 아루, 수란이 있기 때문에 시황을 안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시황과 키스라도 하며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았다.
“오빠는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르죠?”
“잘 알지. 나도 유미 엄청 보고 싶었는걸.”
“정말요?”
시황의 말에 유미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도무지 시황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찬미야 원래 신경 쓸 게 아니고 아루랑 수란도 시황의 동생에다 사촌이니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유미야, 그러면 오빠가 못 앉잖아. 오빠 그만 불편하게 하고 이리로 와.”
“오빠, 미안해요. 너무 기뻐서.”
“괜찮아.”
시황은 자신에게 떨어지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럴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오빠 그동안 어디 갔었던 거예요? 제가 전화를 얼마나 많이 전화를 했는데 한 번도 안 받고.”
거실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자 유미가 바로 질문을 했다. 대충 급한 일 때문에 간다고 하고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었으니 저렇게 안 물어 보는 게 이상했다.
“미안. 휴대폰 충전기를 안 챙겨가서 나도 어떻게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
시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유미와 찬미에게 얘기를 해줬다. 당연히 유진아와 있었다는 부분은 전부 빼버리고 사람도 거의 없는 곳에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었다는 것만 말해줬다.
“어디인데 전기도 안 들어와요? 그런 곳이면 경치는 엄청 좋았겠다.”
“유미야, 오빠한테 중요한 일이 있었겠지. 오빠도 힘들 테니까 그만 물어보고 가서 과일이라도 좀 깎아와.”
“힝, 귀찮게. 오빠 잠깐만 기다려요.”
유미가 시황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자 찬미가 적당히 말을 끊고 과일을 내오라고 말하자 유미는 울상을 짓더니 싫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부엌으로 가서 빠르게 과일과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깎고 오는 게 아니라 와서 깎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유미랑 찬미는 별 일 없었지?”
“그럼요. 오빠 보고 싶었던 것만 빼면 아무 문제없었어요. 카페에서 일도 열심히 했는걸요. 근데 요즘은 새로 들어온 알바가 있어서 전 별로 일할 것도 없었지만요. 헤헤”
유미는 시황과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듯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유미를 보고 있으면 수란과 아루와는 또 다른 이제 갓 20살이 된 여자애의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졌다. 거기다 날이 가면 갈수록 피부가 애기처럼 뽀얘지다 보니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마냥 때묻지 않은 순수함에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맞다! 오빠 저희 서울에 언제가요? 저 좀 있으면 신입생 OT가는데.”
“안 그래도 그 얘기도 하려고 했어. 이제 며칠 안 있으면 서울에 갈 거니까 슬슬 가져갈 거 생각해놔. 정확한 날짜 정해지면 내가 말해 줄 테니까.”
“우왕! 드디어 서울 가는구나.”
시황의 말에 유미는 얼굴 가득 들뜬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과 헤어진다는 사실보다 서울에서 시황과 지낸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는 훨씬 기쁜 듯 했다. 이미 유미의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가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오빠 저희 서울 올라가는 날 부모님께서 집도 확인해볼 겸 같이 가겠다는데 괜찮아요? 오빠가 정 불편하면 제가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볼게요.”
단순히 행복함에 취해있는 유미와 다르게 찬미는 현실적인 문제를 시황에게 얘기했다.
“나야 전혀 상관없지. 그러면 그 날 수란이랑 아루도 인사시키고 서울에서 밥이라도 먹자.”
“고마워요. 오빠. 그러면 저희는 부모님 차에 타면 되고 아루랑 수란이는 오빠 차에 타고 가면 될 거 같아요.”
“힝, 난 오빠랑 같이 차타고 가고 싶은데.”
“유미야! 그러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쳇쳇.”
찬미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하자 유미의 입이 살짝 튀어나왔다. 4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찬미는 이런 저런 일을 겪어서인지 생각이 참 깊은 거 같았다.
“그건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번에 나랑 수란이가 그린 만화보고 평가 좀 해줄래?”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시황은 슬슬 관계 정리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새벽에 올렸어야 하는데 글 쓰다가 잠깐 쉰다는 게 저도 모르게 자버렸네요 ㅎㅎ; 될 수 있는한 새벽에 올릴 수 있도록 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