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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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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었다. 개강 첫날이라 별다르게 한 것도 없었는데 간만에 학교를 와서 그런지 시간이 상당히 빠르게 지나갔다.
세워놓은 차를 타고 집으로 갈까 하다가 카페도 확인해볼 겸 청담동으로 갔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 안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자리가 다 찬 건 당연하고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의 수가 상당했다. 시황이 운영하는 카페 케즈론은 테이크아웃을 해도 할인 혜택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커피맛이 워낙 압도적이라 커피를 먹기 위해 사가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초코 쿠키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그건 한참 전에 다 팔렸습니다.”
시간대가 좀 늦다 보니 초코 쿠키는 진즉에 다 팔렸고 지숙은 짜증내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었다.
“힘들어?”
“앗! 오빠 언제 오셨어요?”
대충 구석에 앉아 있던 시황은 좀 한산해지자 지숙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방금 전에. 나 카페라떼 하나만 줄래? 잠깐 그것만 마시고 가게.”
“네. 오빠.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 학교는 어땠어요?”
“괜찮았어. 첫날이라 별로 하는 것도 없었고. 아, 손님 오네. 그럼 난 자리에 앉아 있을게.”
지숙이랑 조금 더 얘기하려고 했는데 손님이 와서 시황은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타블렛을 꺼내 인터넷을 조금 하고 있는데 지숙이 커피를 가져다줬다.
“오빠, 이거 제 마음인 거 아시죠?”
하트 문양이 그려진 커피였다. 어디서 이런 재주를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신기했다. 현주한테 배운 걸까?
“그럼 나는 이거 줄게.”
시황은 가방에서 하트 모양으로 된 초코 쿠키를 꺼내서 현주에게 주었다.
“헤헤헤. 고마워요. 오빠. 전 그럼 이제 일 열심히 하러 갈게요!”
카페에도 가득한 평범한 하트모양의 쿠키였지만 시황이 줬다는 이유만으로 지숙에게는 정말 특별한 쿠키가 되었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은 지숙은 카운터로 가서 그 쿠키를 정성스럽게 박스에 포장을 했다. 시황은 먹으라고 준 쿠키였지만 어쩐지 그 쿠키를 먹는 일은 없어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시황은 인터넷으로 카페 케즈론에 대한 글을 살폈다. 여자들이 주로 가는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보여서 확인해봤다.
[카페 케즈론 정말 강추해요~ 새로 오픈했다고 해서 갔는데 가격이 너무 비싼 거예요. 그래서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비싼가해서 먹어봤는데 정말 정말 너무 맛있지 뭐에요~ 특히 초코 쿠키랑 초코 빵 강추해요. 이름은 평범한데 맛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
그 밑에 댓글도 제법 달려 있었다.
[맞아요! 저도 오늘 갔다 왔는데 그동안 마신 커피값이 너무 아까웠던 거 있죠. 그 돈이었으면 카페 케즈론에서 커피를 얼마나 마시는 건데 ㅜㅜ 아마 전세계에서 카페 케즈론이 가장 커피가 맛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당~ 쵝오.]
칭찬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나씩 다 읽어본 시황은 검색된 다른 글도 클릭했다.
[언니들 사실 난 카페 케즈론에 훈훈한 사장 보려고 간다. 얼굴도 순하고 엄청 매력있게 생겼는데 몸매가 정말 장난 아니야. 보고 있으면 침이 절로 꿀꺽 넘어간다니까. 내가 너무 변태같은가 ㅋㅋ]
[언니도 봤구나. 그 사장 정말 볼매 아니야? 엄청 친절하고 착하고 돈 많고. 하……. 나도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당. 전화번호 달라면 줄까?]
별에 별 글이 다 있었다.
이어서 검색된 글들을 더 보자 노을의 SNS도 있었다.
[카페 케즈론 넘 좋다. >_<;;; 커피는 먹어도 먹어도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어진당. 이러면 살 쪄서 안 되는데.]
[카페 케즈론의 사장에게 받은 특별한 초콜릿! 나한테만 특별히 준 거다. 이 맛을 표현하자면 초코로 된 강에서 헤엄을 치는 기분. 정말 맛있당! 우리 멤버들 하나씩 주니까 하나만 더 달라고 난리다.]
[카페 케즈론은 초코 쿠키랑 초코 빵이 너무 빨리 팔린당 ㅠㅠ 더 먹고 싶은데 항상 부족해 힝…….]
노을이 올린 SNS의 내용 대부분이 전부 카페 케즈론에 관한 거였다. 중간 중간 같이 촬영하는 언니들한테 초콜릿을 나눠줬다는 글이 있는 거 보면 약속한 사항은 잘 지키고 있는 듯 했다.
노을의 SNS를 본 김에 노래나 들을까 하는 생각에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아공간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그리고 타블렛에 연결한 뒤에 유투브에 들어가 노을이 속한 그룹인 핑크펫의 노래를 유투브에서 찾아서 들었다.
후 센 카드론의 이어폰이 뿜어내는 음질이 워낙 좋아 마치 노을이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선명하고 맑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4레벨이 되면서 후센 카드론의 이어폰 설계도를 받았는데 이제 이걸 슬슬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강 그룹의 삼강 전자는 고급 이어폰을 취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어폰같은 음향기기 사업에 아예 무관심한 건 아니었다. 스마트폰에도 번들용 이어폰이 들어가기도 하니 유진아와 얘기를 해보고 이어폰 판매액의 일정부분을 받는 걸로 계약을 한다면 상당한 수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55개가 있는 후 센 카드론의 이어폰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는 그래도 100만 원이 넘는 고음질 MP3의 수요도 있고 100만 원을 우습게 넘기는 이어폰의 수요도 제법 있는 편이니 나름 영향력 있는 그쪽 매니아들에게 인정만 받는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커피를 다 마신 시황은 노을이 부른 노래를 몇 개 더 들은 뒤에 커피를 치우고 카페를 나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찬미와 유미가 와 있었다.
“오빠 오셨어요?”
“오빠! 다녀오셨어요?”
거실에 들어가니 찬미가 가장 먼저 말을 걸었고 이어서 아루가 달려오더니 바로 안겼다. 거실에 찬미와 아루를 포함해서 수란과 유미, 은지까지 있으니 마치 화원에라도 들어온 거 같았다. 흔히 여자를 꽃으로 비유를 하는데 은지는 물론이고 찬미, 아루, 수란, 유미 전부 다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하나 없었다.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다 받아준 뒤에 시황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아루와 수란을 제외한 여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잠깐 흘렀지만 자연스럽게 찬미와 아루가 시황의 옆에 앉았다.
“찬미랑 유미는 오늘 학교 어땠어?”
“별 다른 건 없었어요. 첫날이라 간단히 설명만 하고 끝났는걸요.”
“유미는?”
“대학교는 처음이라 전 좀 떨렸어요.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OT때 친해진 애들이랑 수업을 들어갔는데 애들이 카페 케즈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거기가 맛있다고 인터넷에 글도 많이 올라온다고 다음에 같이 가자는 거예요. 근데 전 일부러 거기 사장이 오빠라고 말 안했어요. 괜히 애들이 오빠한테 부탁하고 그러면 오빠만 힘들잖아요. 헤헷.”
“하하. 괜찮아. 힘들 게 뭐가 있어. 그럼 내일 오빠가 쿠키랑 빵 좀 줄 테니까 가지고 가서 애들이랑 나눠먹어.”
“헤헤. 고마워요. 오빠.”
유미는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았다. 오히려 찬미가 학교에서 어떨지 더 걱정이 됐다. 뭐, 믿음직한 찬미인만큼 잘 알아서 하겠지만.
“수란이는 만화 언제 나온데?”
“다음 주쯤에 나온다는 거 같아요. 그리고 출판사에서 홍보도 할 겸 인터뷰를 조만간 하자고 연락 왔어요. 오빠도 가실 거죠?”
“당연히 가야지. 내 강의 없는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잡아봐.”
“알았어요.”
시황은 이후에도 은지에게도 하나하나씩 물어서 체크했다. 떨어져 살 때는 모르겠지만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해서 이런저런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없이 잘 생활할 수가 있었다. 대신 원활한 성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이 문제도 어떻게 해결을 봐야했다.
시황은 수란을 쳐다봤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 수란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번에도 수란의 도움이 필요할 듯 했다.
어떻게 해야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지 시황은 곰곰이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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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케즈론의 인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음 오픈할 때부터 카페 케즈론을 다녀간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글들을 써댔기 때문에 오픈한지 일주일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카페 케즈론에 대해 알고 있었다.
특히 커피도 커피지만 초코 쿠키와 초코 빵이 이런 큰 인기 몰이의 원인이었다. 처음 이름을 지을때 뭐로 할까 하다가 일부러 초코 쿠키와 초코 빵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평범한 이름으로 해야 카페 케즈론이라는 명칭이 항상 앞에 들어간 뒤에 초코 쿠키나 빵이라고 말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시황이 노을에게 나눠준 초콜릿의 힘과 연예인들이 메이크업을 받고 헤어를 관리 받는 샾들이 청담동에 많은 만큼 접근성이 좋아서 그런지 카페 케즈론에 부쩍 연예인들의 방문이 잦았다.
그냥 어느 시간이든 가면 연예인 한둘은 항상 보였다. 그것도 대부분 여자 연예인들로 말이다.
어느새 카페 케즈론의 명물로 초코 쿠키와 초코 빵이 되어버려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메뉴이기도 했다. 단순히 맛이 있어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항상 제한된 수량만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희소한 가치 때문에 더 인기를 끄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대량으로 구입하려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1인당 10개로 제한을 걸어두었다. 그런데도 워낙 순식간에 다 팔려버려서 초코 쿠키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인지 여자들 사이에서는 카페 케즈론의 쿠키와 빵이 일종의 유행처럼 될 기미가 살짝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 옛날 초, 중학생들이 포켓볼에 들어가는 몬스터가 그려진 스티커가 있는 빵을 돈이 생기는 대로 구입을 한 것처럼 일단 카페 케즈론의 쿠키와 빵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주변에서 선망의 눈길들을 보내었다.
“유미야, 오늘도 초코 쿠키랑 빵 가지고 왔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유미 주변에 제법 많은 여자애들이 몰려있었다. 요즘 한동안 시황이 유미에게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초코 쿠키와 빵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미의 인기가 날로 증가했고 유미의 성격이 워낙 활달하다 보니 주변에 몰려드는 애들이 끊임이지가 않았다.
“응. 오늘은 다 주려고 내가 오빠한테 특별히 많이 받아왔어. 다들 하나씩 먹어.”
“우왕, 유미야 정말 고마워.”
유미가 가방에서 제법 커다란 상자를 꺼내서 초코 쿠키와 빵을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진짜 부럽다니까. 유미랑 친한 오빠가 카페 케즈론 사장이라니. 하……. 나는 왜 주변에 그런 오빠가 없지?”
“유미야, 그 오빠 나도 소개시켜 주면 안 돼?”
유미의 친구들이 하나같이 유미를 부러워하면서 한마디씩 했다.
“안되거든! 안 그래도 오빠 주변에 경쟁자가 많아서 힘들단 말이야. 나를 특히 좋아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보니까 연예인들도 자꾸 오빠랑 친해지려고 해서 좀 걱정된다구.”
“연예인 누구?”
“헐, 대박이다. 어떤 연예인이 그러는데?”
“비밀.”
유미의 대답에 주변에 있던 여자애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연예인이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오빠에 관한 거라면 유미의 입이 정말 무거워서 그런 건 또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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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