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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그건 어떻게 보면 가격에 비해 너무나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금빛이 감도는 시침과 분침은 군더더기 없을 정도로 올곧은 직선을 가지고 있었고 시계판에는 조잡해 보이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너무나 평범할 수 있는 이 시계의 디자인적인 묘는 하단에 뚫려져있는 동그란 구멍이었다. 그 구멍에는 정체불명의 기계적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밑에 달린 건 뭐죠?”
“고객님. 시계 하단에 보이는 기계적 장치는 뚜르비용(tourbillion)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로는 회오리바람이라는 뜻인데 중력에 의해 생기는 시계 오차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스프링 같은 내부적 장치가 중력에 의해 하중을 받는데…….”
시황의 물음에 깔끔하고 훤칠하게 생긴 남자 직원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요약해서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저 뚜르비용이 달린 시계는 가격이 시황이 보기에도 정말 억소리 나올 정도로 비쌌고 안 달린 게 그나마 싸서 몇 천만 원대였다. 아무데나 골라잡아서 들어온 시계 매장이었는데 좀 많이 비싼데를 온 거 같았다.
“이게 그나마 싸네요. 이걸로 주세요.”
“야, 정말 살 거야? 1억이 넘는데?”
“하하.”
시황은 은비의 걱정에 가볍게 웃어주고는 뚜르비용이 달렸음에도 그나마 가격대가 싼 1억 3천만 원짜리 시계를 샀다. 뚜르비용이 달린 건 제일 싼 게 1억 원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나마 현실적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원래라면 적당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사려고 했는데 한번 마음에 드니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 생겨났던 것이다. 아무래도 남자이다 보니 시계와 차, 전자제품 등에 끌리는 건 본능적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단번에 결제를 하고 시계를 받아든 시황은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은비와 함께 가계를 나왔다. 1억 원이 넘는 돈을 시계에 지출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5레벨까지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런 지출용 경험치는 몇 가지 더 있기는 했지만 가면 갈수록 비싸지기만 하고 주는 경험치는 어정쩡했기 때문에 효율이 상당히 떨어졌다. 단순한 예로 300억 원짜리 전용기를 구입해도 경험치는 15000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억짜리 시계에 경험치가 3천인데 300억 원짜리 전용기가 15000이니 가격 당 경험치로 따지자면 시계 구입은 상당히 효율이 높은 쪽에 속했다.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좀 더 고민하고 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이게 마음에 들었는걸요. 그리고 시계는 꼭 필요하기도 했고요. 한번 차볼까요?”
시황은 박스를 뜯어 바로 시계를 찼다.
천박하게 반짝이는 금빛이 아니라 진중함과 중후한 멋을 가진 금빛의 시계였다. 줄넘기로 인해 180미터는 진작 넘은 큰 키와 조그만 얼굴을 베이스로 해서 미끈하고 하얀 피부에 걸린 시계는 마치 시황을 위해 만들어진 것 마냥 잘 어울렸다.
“대단하다니까. 난 그렇게 비싼 시계는 스크래치라도 날까봐 차고 다니지도 못할 거 같은데. 근데 진짜 비싼 시계라 그런지 예쁘기는 예쁘다.”
“맞다. 조금 있다가 차에 가서 화장품 하나 드릴게요. 나중에 저희 브랜드로 나올 화장품인데 한번 써보세요.
“오, 화장품? 어떤 화장품인데?”
“미리 말하면 재미없으니까 나중에 가서 보여드릴게요.”
“좀 기대되는데?”
2층을 빠져나와 시황과 은비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계속해서 쇼핑을 했다. 다양한 여성복과 남성복이 있었지만 이런 옷들 말고 디자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훨씬 우수한 옷들이 케즈론의 성에 널려있었기 때문에 시황은 나중에 마음에 드는 옷 스타일을 은비에게 선물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쇼핑을 끝내고 시황과 은비는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를 탔다. 산거라고는 시황의 시계 달랑 하나였지만 이 시계는 에르메스 매장에서 가방을 몇 개나 사도 될까말까한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니고 있었다.
시황은 아까 약속한대로 은비에게 화장품을 건네주었다. 전에 유진아와 만나서 화장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나서부터 좀 더 본격적인 홍보를 위해 은비에게도 화장품을 줘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 가격은 안 정했지만 대략 2천만 원 정도 하는 화장품 세트에요?”
“응? 뭐라고? 2천원이라고?”
“2천만 원이요.”
“거, 거짓말 하지 말라구 바부야. 세상에 2천만 원짜리 화장품이 어디 있어.”
“그만한 가치를 하는 화장품이니까요. 다른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하는 명품화장품 여러 개 사는 거 보다 그 화장품 하나가 훨씬 나을 거예요. 말이 화장품이지 피부 관리 받는 다고 1억 원 넘게 돈을 들이는 거 보다 효과가 좋거든요. 기본적으로 잡티는 물론이고 흉 진 거, 여드름, 뾰루지까지 전부 완벽하게 없애줘요.”
“지, 진짜?”
시황의 말에 화장품을 바라보는 은비는 눈빛이 변했다. 시황이 허튼 소리 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갔다. 안 그래도 요즘 밤늦게까지 촬영한다고 뾰루지도 올라오고 피부도 안 좋아지는 느낌이라 조금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써보실래요?”
“아니. 나중에 집에 가서 뜯어볼게. 화장품 정말 고마워.”
처음에는 그냥 뜯어볼까 했는데 막상 2천만 원짜리 화장품이라는 걸 알게 되니 너무 아까워서 도저히 뜯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은비는 나중에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을 하면서 뜯을까 생각 중이었다.
“그래도 되고요. 나중에는 샘플 줄 테니까 주변에 친한 분들한테 나눠 주실 수 있어요?”
“응. 그 정도야 간단하지. 그, 그리고 원하는 거 있으면 지금 말하라구. 선물 줬으니까 들어줄게.”
“하하. 원하는 거요?”
“그래. 바부야. 자꾸 말하게 하지 마. 네가 비싼 선물 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성이 갸륵해서 들어주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구.”
“그러면 지금 가슴에 얼굴 파묻어도 괜찮아요?”
“뭐, 뭐래 변태가. 갑자기 그런 짓을 왜 하려는 거야? 진짜 변태라니까. 아휴. 이번만 그런 부탁 들어줄 테니까 다음부터 이런 말하기만 해봐. 알겠어? 변태야.”
“하하. 고마워요.”
다음에 말해도 또 들어줄법한 표정을 지은 은비가 주변을 둘러본 뒤에 시황에게 가슴을 살짝 내밀었다. 그런데 A컵의 작은 가슴이라서 내밀기는 했지만 그다지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은 없었다. 그럼에도 은비가 워낙 예뻐 어쨌든 좋다는 느낌이지만.
시황은 은비의 허리에 손을 감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흰색의 티와 그 안에 있는 브래지어 때문에 유진아처럼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옷이라도 없으면 약간 말랑한 느낌이 날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딱히 가슴의 그 감촉을 느끼지 않더라도 은비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와 심장이 튀어나오기라도 할 듯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는 가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이제 됐지? 영화 시간 다 돼가니까 이제 얼른 가자구. 변태야.”
“음, 은비 씨 가슴 크게 해드릴까요? 제가 가진 로션을 가지고 특별한 방법으로 만져주면 가슴이 커지거든요.”
“거, 거짓말! 이건 진짜 거짓말이다. 내가 그런 거에 속을 줄 알아? 내 가슴 만지고 싶어서 그런 거지? 흥흥, 모를 줄 알고? 차라리 가슴 만지고 싶다고 말했으면 만지게 해줬을 건데. 바보.”
“하하. 충분히 그렇게 의심할만하죠. 물론 은비 씨 가슴도 만지고 싶지만 그거보다 정말 가슴을 크게 키워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A컵이 C컵이 되고 그런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긴 커질 거예요. 만약 조금도 안 커지면 은비 씨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요.”
“진짜지? 진짜 안 커지면 내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 거지?”
“그럼요.”
확신에 찬 시황의 말에 은비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거보다 만약 가슴이 안 커져도 시황이 다 해준다는 말에 좀 더 끌렸다. 가슴이 커지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거고 안 커져도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니까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었다. 벌써부터 어떤 부탁을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은비는 히죽 웃음을 지었다.
“알았어. 만약 내 가슴 안 커지면 가볍게 안 넘어갈 거니까 각오해 두라고.”
“하하.”
시황은 가볍게 웃고는 차를 운전해 은비가 미리 예약해둔 극장으로 갔다. 은비와의 데이트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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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을 한 건 아니었지만 새벽이 되어서야 시황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은비와 한강에서 산책을 하고 근처에 있는 모텔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느라 밤이 늦었던 것이다. 은비가 연신 내일 새벽에 촬영이 있다고 걱정하기는 했지만 음양공생공으로 질내에 사정을 했기 때문에 잠을 얼마 자지 않더라도 활기가 샘솟을 것이다.
자는 애들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온 시황은 방에 딸린 욕실에서 가볍게 씻고 케즈론의 성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바로 최하급 마법물품이 있는 곳에 가서 몇 가지 도구들과 내일 입고갈 옷을 찾았다.
[보호용 스프레이. 이 스프레이를 뿌리면 3개월간 방수방진은 물론이고 스크래치도 나지 않는 강한 코딩이 덧씌워진다. 하지만 물건이 파손될만한 강한 충격을 받게 되면 덧씌워진 코딩이 전혀 보호해 주지 못하니 주의하도록 하자. 방수방진, 스크래치에만 보호되니 파손된 물건은 A/S가 되지 않는다.]
[바샤의 뿔테안경. 맵시 있게 디자인된 이 뿔테안경은 콧잔등과 옆머리에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으며 뜨거운 공기를 정면에서 받더라도 안경알에 김이 서리지 않는 건 물론! 자체적인 시력 보정으로 안경을 쓰기만 해도 시력이 향상됨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 약간의 매력 보정이 이루어져 평소보다 더 지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오, 좋은데?”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봤을 도구와 안경이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유용했다.
보호용 스프레이를 쓰면 1억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더라도 스크래치나 물, 먼지에 안전해지니 그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100만원도 안 되는 스마트폰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아무리 경험치 때문에 샀다지만 1억짜리 시계에 스크래치가 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안경은 오후에 만날 유진아의 친구들을 위해서 고른 거였다. 시력적인 부분은 관심이 없었고 매력 보정을 통해 지적이게 보인다는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물건을 사줄 고객으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첫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옛날처럼 어설프게 화장품을 파는 게 아니라 유진아를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화장품 홍보를 시작하는 만큼 제대로 할 필요성이 있었다.
시황은 조금 고심해서 4레벨 옷장에서 내일 입을 옷들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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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시황이 강의실에 들어갔을 뿐인데 여자들에게서 약간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교정을 한 시황은 사람을 잡아끄는 순수한 매력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와, 오빠 오늘 무슨 일 있어요? 평소에도 멋있는데 오늘은 정말 멋있는데요? 안경을 써서 그런가? 엄청 지적이게 보이기도 하고. 제가 아는 오빠가 아닌 거 같아요. 보영아 그지? 오빠 엄청 멋있지?”
“으, 응.”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신경 좀 썼는데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네.”
시황은 가방을 옆 책상에 대충 올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어제 4레벨 옷장에서 고심해서 고른 안경과 옷들 덕분에 매력 보정이 제법 이루어진 상태였다. 옷이 날개라는 표현을 쓰듯 깔끔하면서도 고상한 기품과 지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코디덕분에 아까 그런 탄성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오빠, 사진 찍어도 괜찮아요? 사진 찍어서 팬 카페에 올리고 싶어서요.”
“조금 쑥스럽긴 한데 뭐, 괜찮아.”
“헤헷. 고맙습니다.”
시황의 허락에 고운은 휴대폰으로 신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실 팬 카페에 올리기도 할 거지만 그건 한두 장만 올리는 거고 대부분은 자신의 방에 장식을 하는데 쓸 생각이었다. 아직까지 벽에 시황의 사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될 수 있는 한 많이 시황의 사진을 수집해야 했다.
“어? 오빠 안녕하세요. 오늘 옷 엄청 잘 입고 오셨네요. 데이트 있으신가 봐요? 부럽다.”
“하하. 아니야. 일이 있어서 그냥 이렇게 입은 거야.”
평소라면 가볍게 인사정도만 할 여자애들도 오늘은 평소보다 더 시황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말을 건넸다. 확실히 매력보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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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일찍 올려야 하는데 제가 게을러서 쉽지가 않네요. 으으... 나도 성실해지고 싶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