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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34화 (33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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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

시황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정체불명의 여자를 쳐다봤다.

흑색이지만 곱디고운 머리카락은 만지기만 해도 향기로운 냄새가 날 것만 같았고 목선에서 떨어지는 몸매 라인은 완벽함을 넘어 인간을 초월할 정도였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한계를 초월해 궁극에 도달하는 아름다움을 가진다면 바로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시황은 이 여자가 누군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단순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존재를 딱 한명 알고 있긴 알고 있었다.

“오빠, 이 분은 누구에요?”

유진아가 빙수를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여자가 얼마나 예쁜지 유진아는 약간 질린 표정을 지으며 설마 또 경쟁자는 아니겠지 라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찬미의 심정도 유진아와 비슷해서 테이블에 빙수를 내려놓고 시황을 바라봤다.

“강시황이 맞는가?”

여자는 표정조차 바꾸지 않고 무표정하게 다시 물었다.

“응. 맞아.”

“나는 율나르 님의 명령대로 당신을…….”

“잠깐만. 그 얘기는 다른데서 하자.”

더 이상 얘기를 하게 놔두면 곤란할 거 같아 시황은 여자를 데리고 매장을 벗어나며 찬미와 유진아 등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매장도 그렇고 바깥 거리도 그렇고 명동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얘기를 할 만한 공간 자체가 별로 없었다. 만약 평범한 여자와 만났다면 명동에 수두룩하게 있는 카페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어도 됐지만 지금 시황과 같이 있는 여자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 걸어갈 때마다 자석처럼 남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일단 매장 밖으로 나가 어디 한적한 곳이라도 찾으려고 했는데 매장 근처에 잔뜩 몰려있는 남자들을 보니 계획을 조금 바꿔야 할 거 같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일루미나다.”

“일루미나? 엘프?”

“그렇다. 나는 고귀한 엘프의 피를 타고나…….”

“그러면 사람들 안 쳐다보게 마법으로 존재감을 지우거나 그런 거 못해? 율나르는 마법 잘하는 거 같던데.”

시황은 쓸데없이 길어지는 일루미나의 대충 말을 끊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일루미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넋을 놓고 일루미나를 쳐다보던 남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말도 안 되게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까 엄청 평범하게 생겼던 거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럽게 못생겼네.”

일루미나의 보려고 매장 앞에 뭉쳐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생긴 일루미나를 보고는 한마디씩 욕을 뱉으며 단번에 흩어졌다.

“이제 좀 괜찮아졌네. 잠깐 바로 옆 카페에서 얘기 좀 하자.”

혹시나 혼잡한 명동에서 일루미나를 놓칠까봐 시황은 별 다른 생각 없이 일루미나의 손목을 잡고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려고 했다.

“남자와 손을 잡고 싶지는 않군.”

그런데 일루미나가 가볍게 손을 털어 시황의 손을 떨쳐냈다. 성에 대해 엄청 보수적이라더니 가볍게 팔목을 잡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옛날의 시황이라면 애초에 여자의 팔목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평범한 여자라도 이상치 않은 반응일 수가 있었다.

“미안. 사람 많아서 혹시 놓칠까봐 그랬어.”

“당신을 놓치는 일은 없을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일루미나의 말투가 많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일루미나와 함께 대충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생과일 음료를 두 개 시킨 뒤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갔다.

“나쁘지 않아. 하지만 과실의 기본적인 신선함이 떨어진 상태로 만든 음료라 최상의 맛이 아닌데다 혀를 미묘하게 자극하는 첨가물이 상당히 거슬리는군.”

딸기 스무디를 먹으며 일루미나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

일루미나의 맞은편에 앉은 시황이 물었다.

“율나르 님께서 당신을 보좌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에 따라 율나르 님의 차후 지시가 있기 전까지 당신을 보좌하겠다.”

“그러면 내가 내리는 지시는 다 수행하는 건가?”

“합당한 일이라면. 무리한 일은 응하지 않겠다.”

“그래?”

시황은 약간 아쉬워하며 일루미나를 바라봤다. 아까 전만 해도 여신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예뻤었는데 마법 한 번에 너무나 평범하게 변했다. 생긴 건 똑같은데 도무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서로 하자.”

“무슨 말이지?”

“널 비서로 소개한다는 말이지. 안 그러면 같이 있기 힘드니까. 물론 일도 비서처럼 해야 되고.”

“그렇게 하겠다. 여기는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 테니.”

“그런데 다 좋은데 말투는 어떻게 못해? 말투가 너무 어색한데? 비서가 반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

“어떻게 말하라는 건가? 아니, 겁니까? 이렇게 하는 건가?”

“많이 이상한데.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잘 곳은 없지?”

“엘프는 숲에서 태어난 영광스런 존재. 잠은 숲에서 자면 된다.”

“여긴 숲에서 자면 사람들이 신고해서 절대 안 되는 일이지. 일단 호텔을 알아봐 줄 테니까 거기서 며칠 지내봐.”

호텔이야 유진아에게 말하면 쉽게 해결이 가능할 테고, 집은 오피스텔 괜찮은 곳으로 구하면 될 거 같았다.

원래 이런 일을 비서가 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황이 일루미나를 위해 집을 알아봐주고 있었다. 찬미를 비서로 쓰면 모를까 애초에 일루미나에게 원하는 건 그런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작 시황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름은 간단하게 윤미나로 하자. 알겠지?”

“이름이 변한다고 나의 존재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알겠다. 그렇게 하지.”

율나르는 별로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일루미나, 아니 미나는 말투나 하는 말 자체가 너무 독특해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엘프이기에 나오는 독특함일 듯 한데……. 어쨌든 저대로는 일상생활을 하기엔 큰 무리가 따랐다.

“다시 한 번 말해줄게. 네 이름은 윤미나고 내 비서로 일하는 거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은 그 정도만 숙지하고 있어.”

“알겠다.”

율나르는 일루미나에게 섹스를 가르쳐 주라고 했지만 시황은 섹스보다 일루미나의 마법에 더 관심이 많았다. 수련을 계속 하고는 있지만 어떤 위험함이 있을지 모르는 곳에 수란과 프린을 데리고 가기 보단 엘프인 일루미나를 데리고 가면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 돌아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그러지.”

시황이 미나와 함께 빙수 매장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빙수 매장에 있는 유진아와 찬미, 유미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 여자가 누군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데리고 나갔는데 시황과 어떤 관계인지 온갖 불길한 상상은 다 들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아앙, 행복해. 그런데 찬미 언니는 빙수 안 먹어요? 유미도 빨리 먹어. 엄청 맛있어.”

“으, 응. 아루 많이 먹어.”

지금 이 공간에서 빙수를 먹는 건 아루 밖에 없었다. 찬미와 유진아는 물론이고 유미까지 그 여자가 신경 쓰여 빙수가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언니, 그 여자 누굴까? 설마 여자 친구는 아니겠지? 나 살면서 그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봤어.”

“여자 친구는 아닐 거에요. 그 여자는 오빠가 누군지 모르는 듯 했으니까요.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분명해요.”

유미의 말에 유진아가 끼어들어 말을 했다. 분명 강시황이 맞냐고 하는 걸 들었었다. 여자 친구면 그런 말을 할리가 없었다.

“아! 맞다. 저도 들었어요. 휴,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예쁜 여자가 오빠보고 사귀자고 하면 아무리 시황 오빠라도 넘어가지 않을까? 언니 나 걱정 돼.”

“유미야. 오빠를 믿어. 오빠는 여자 얼굴 보고 사귀는 가벼운 남자가 아니잖아? 오빠가 우리를 믿고 베풀어주는 것처럼 우리도 오빠를 믿으면 돼.”

유미의 말에 찬미가 덤덤하게 얘기를 했다. 처음에 여자를 보고 놀랐던 건 사실이지만 시황을 믿고 있기 때문에 금방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겠지만 시황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저기요.”

시황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 한명이 유미에게 다가왔다.

“네?”

유미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사인 한 장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 사인이요?”

“네. 여기에 좀 부탁드려요.”

남자가 펜과 종이를 건네자 유미는 당황한 표정으로 찬미를 바라봤다. 찬미가 작게 해드리라고 말하자 유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사인을 했다. 애초에 사인이랄 게 전혀 없어서 종이에 이유미라고 자신의 이름을 나름 정성껏 적었다. 사인을 하고 마지막으로 남자와 함께 사진도 한 장 찍었다.

“휴, 깜짝이야. 설마 나한테 사인해 달라고 할지 몰랐네.”

유미가 흐르는 땀을 닦는 사이에 시황과 미나가 돌아왔다.

“오빠! 저 빙수 하나 더 먹어도 돼요?”

“응. 아루 먹고 싶으면 또 시켜.”

시황이 돌아오자 아루가 빙수를 먹고 싶다고 했고 찬미가 주문을 했다. 하지만 속편한 아루와 다르게 미나가 돌아오자 유미와 유진아는 다시 긴장을 하며 미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아까 전에는 분명 말도 못하게 예뻤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엄청 평범한 느낌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사람 얼굴이 각도에 따라 변하고 첫 인상과 이후의 인상이 다르다지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시황과 미나가 같이 테이블에 앉고 유미는 미나의 옆에 앉았다.

“소개할게. 이름은 윤미나이고 앞으로 내 비서 일을 맡아주기로 했어.”

“비서요?”

유진아가 되물었다.

“응. 요즘 일이 많아서 비서를 둘까 해서. 나 혼자 일을 다 처리하기 힘드니까.”

“비서 필요하면 제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구해줄 수 있는데…….”

유진아는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한테 말했으면 정말 능력 좋은 사람을 구해줄 수 있었다. 물론 남자지만. 어쨌든 아무 말 없이 비서를 구했다는 거에서 유진아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미안. 미안. 아는 사람이 추천해줘서. 하여튼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저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유미가 미나를 보며 나이를 물었다.

“내 나이는 177…….”

“아니아니, 미나 나이는 25살이야.”

미나가 실제 자기 나이를 말하려고 하자 시황이 빨리 말을 끊고 25살이라고 말했다. 보기엔 이제 갓 20살이 된 것처럼 앳돼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177살이니 적어도 유미나 찬미 등이 존댓말은 써야할 나이로 정했다.

“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으시네요. 앞으로 만나면 언니라고 부를게요.”

유미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활달하고 친구를 잘 사귀었기 때문에 미나에게도 잘 다가갔다. 조금은 경계하는 눈빛을 가진 유진아와 침착하게 상황을 응시하는 찬미와는 확실히 다른 성격이었다.

“진아는 계속 매장에 계속 있을 거야? 난 오후에 일이 있어서 다른데 가봐야 할 거 같은데.”

“네. 그럴 생각이에요.”

“그래? 그러면 유미랑 찬미도 매장 가서 홍보 할 거니까 잘 좀 도와줘. 아루는 먹을 거 주면 좋아하니까 맛있는 것 좀 챙겨주고. 부탁할게 진아.”

“알겠어요. 오빠. 제가 잘 할게요.”

“그래. 아루 빙수만 다 먹으면 이제 돌아가자.”

혼자 먹기엔 상당히 많은 양임에도 아루는 빙수를 2그릇이나 먹었다.

빙수 매장을 나와 유진아와 찬미, 유미는 다시 백화점으로 돌아갔고 시황은 미나의 일부터 확실히 처리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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