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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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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사진 한 장이었지만 케즈론 유니폼을 입은 은비의 사진이 어마어마하게 이슈가 되고 있었다. 얼룩말 같은 스키니 바지를 입고 시구한 여자 연예인 이후로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 인기를 끈 연예인은 은비가 유일했다. 케즈론 유니폼을 입은 은비의 모습이 남자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보자마자 빠져드는 그런 마력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이렇게 인기를 끌 수가 없었다.
유행이라는 게 참으로 묘했다. 시황이 이런 효과를 노리고 은비를 데리고 온 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생각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음 주에 이루어질 럭키백 행사에도 사람들이 대단한 관심을 보내고 있었다. 몇몇 연예인의 매니저들이 직접 카페로 찾아와 선물과 함께 명함을 건네주며 럭키백 행사 날 자기 소속사 연예인을 써달라고 말하고 갈 정도니 럭키백 행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수많은 매니저들이 왔음에도 정작 시황은 크게 내키지 않았다. 지금처럼 은비만 부르려다가 문득 노을이 생각나자 마음이 조금 변했다. 노을이 SNS로 그렇게 카페 홍보를 해줬는데 이정도 보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시황은 노을이 속한 그룹인 핑크펫을 부르기로 했다.
시황은 유진아에게 전화해서 방금 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주고 미나와 프린이 머물고 있는 오피스텔로 갔다. 핑크펫을 섭외하는 거야 이제 유진아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거 없었고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일을 해결할 때가 됐다.
오피스텔은 시황의 집과 크게 멀지 않은 강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급스러운 오피스텔 지하에 주차를 하고 시황은 미나와 프린이 머무는 방으로 가기위해 엘리베이트를 탔다.
“잠깐만요.”
닫음 버튼을 누르려고 했는데 방금 주차를 했는지 한 여자가 달려와서 열림 버튼을 눌러 여자가 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날도 쌀쌀해져 가는데 짧은 옷과 명품 핸드백을 든 여자가 타자 짙은 향수 냄새가 풍겼다. 시황은 7층을 눌렀고 여자는 1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트의 문이 닫히고 부드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 엘리베이트 안에는 정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시황은 엘리베이터에 기대고 있었는데 여자가 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사람의 시야각은 200도 정도. 정면을 바라보더라도 옆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었다.
여자는 상당히 예쁜 편이었다. 콧대는 부자연스럽게 높고 눈은 커다랬다. 화려한 인조 장미 같았다. 은비와 찬미가 비교도 안 되게 매력 있고 예쁘긴 하지만 지금 엘리베이터에 있는 여자도 상당히 인기가 많을 건 분명했다.
옛날의 시황이라면 감히 쳐다보는 것 말고는 접근도 못할 만큼의 존재감.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여자가 시황을 슬쩍 쳐다보며 관심을 보였고 시황은 정작 아무런 관심이 없어 엘리베이터의 변해가는 층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7층. 미나와 프린이 사는 층에 도착했다. 시황은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지독할 정도로 강한 향수 냄새가 사라지고 공기가 쾌적해졌다.
703호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에 들어갔다. 혼자 살기에 적합한 좁은 오피스텔이 아니라 20평이 조금 넘어 둘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주인님!”
시황이 사준 타블렛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프린이 침대에서 일어나 시황에게 다가왔다.
“잘 있었어?”
“네. 그런데 주인님이 자주 안 와서 심심했어요. 프린이 보고 싶지 않았어요?”
프린은 시황의 손을 잡고는 살짝 흔들며 말했다. 아까 전 엘리베이트 때의 여자와 다르게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들어 자연스럽게 미소가 생겨냈다. 프린이 가진 싱그러운 아름다움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이라……. 왠지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를 거 같기도 했다.
언제까지 여기에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미나가 시황을 보며 물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집에 방이 없어서. 그거보다 슬슬 존댓말을 써야하지 않겠어? 비서가 반말하는 건 이상하잖아?”
“그런가? 알겠……습니다.”
미나는 존댓말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살짝 어색하게 말을 했다. 반말이나 존댓말이나 평범한 사람들에 비하면 어색할 게 분명했지만 반말에 비하면 존댓말이 훨씬 덜 어색할 게 분명했다.
“주인님.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이제 프린도 한국어 할 줄 알아야겠지.”
시황은 언어습득용 알약을 프린에게 먹이고 한국어를 익힐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에 있어 프린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게 매우 중요했다.
“자, 소파에 앉아봐. 얘기 좀 하자.”
시황이 소파에 앉으며 말하자 프린이 이어서 소파에 앉았고 미나도 프린의 옆에 앉아 시황이 무슨 얘기를 할지 응시하고 있었다.
“프린은 이 세계에 익숙해 졌어?”
“네! 주인님.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린은 밖에 나가서 원하는 거 다 할 수 있어요. 음식도 사먹을 줄 알고, 물건 파는데서 먹을 것도 살 수 있어요.”
프린의 옆에 항상 미나가 따라다니도록 말해두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미나는 믿을 수 있지만 프린은 썩 믿음이 가지 않았다. 왠지 아기 고양이처럼 프린을 혼자 돌아다니게 내버려뒀다면 길을 잃고 엉엉 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하철을 타는 건?”
“지하철이 뭐에요? 프린은 잘 모르겠어요.”
과연 프린을 믿고 일을 맡겨도 되는 걸까? 시황은 자신의 계획을 재고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미나야. 원하는 사람을 멀리서 항상 지켜볼 수 있는 마법 같은 거 있어?”
“있다.”
“존댓말 해야지.”
“실수군.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법을 그 대상자를 보고 직접 써야한……합니다.”
“그래? 음…….”
시황은 턱을 만지며 고민했다. 원래는 진상을 피웠던 파워 블로거를 프린보고 미행을 하라고 시킬 생각이었다. 기척을 없애주는 마법 아이템과 장애물 무시 후프를 이용해서 파워 블로거의 집에 숨어 들어간 뒤, 케즈론의 성에서 가지고 온 녹음기를 달고 나오게 하고 밖에서 누굴 만나는지 감시하면 무슨 일을 꾸미든 시황이 다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프린이 쉬지도 않고 감시해야 해서 효율성이 많이 떨어졌다. 신용이 안 가는 건 둘째치고 말이다.
그렇다면 미나의 마법을 이용하게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대상자를 보고 직접 마법을 쓰는 거야 미나라면 손쉽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 위치랑 얼굴 가르쳐 주면 안 들키고 마법을 걸 수 있어? 마법을 걸면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건가? 아니면 볼 수만 있는 거야?”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거울이나 물을 통해 마법을 건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법은 탐색 마법에 매우 취약합니다.”
“여긴 탐색 마법 같은 건 없어서 문제없어. 그러면 이렇게 하자.”
시황은 자신의 생각을 프린과 미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간단하게 미나가 직접 마법을 걸고 오피스텔에서 그 블로거의 말을 녹음을 하며 프린에게 지켜보게 할 생각이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프린은 화장품에 대한 얘기가 나오나 안 나오나 확인만 하면 됐다.
화장품을 사간지 조금 됐기 때문에 벌써 뭔가 일을 만들어도 이상치 않았지만 현재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만약 일을 만든다면 세간의 관심이 몰린 이런 타이밍일 게 분명했다. 그 블로거가 얌전히 화장품만 사갔으면 이렇게까지 안 하는데 대놓고 두고 보자고 말하면서 사가니까 시황이 이렇게 손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르고 당하면 모를까 알고 당하는 건 바보였다.
시황은 위치 추적기로 그 블로거의 집을 가르쳐 주었고 프린과 미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서 시황과 함께 오피스텔을 나섰다.
원래 계획이라면 프린에게 맡겨두고 보고만 받을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는 될 거 같지 않았다. 일처리로 바쁜 건 유진아지 시황의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시간이 남는다면 일처리를 꼼꼼하게 하는 게 맞았다.
차를 타고 파워 블로거가 사는 지역으로 갔다. 블로그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강동구쪽에 있는 제법 괜찮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위치 추적기로 파워 블로거가 집에 있는 건 확인했기 때문에 들어가서 무난하게 마법을 걸기만 하면 됐다.
“준비 됐어?”
“그렇……습니다.”
“안 들키는 게 중요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투 알룬 카유.”
정체불명의 말을 내뱉은 미나가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차에서 내린 미나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투명 마법이라도 쓴 걸까? 시황은 아파트 입구를 바라봤지만 미나가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시황의 예상대로 미나는 투명 마법을 사용한 상태였다. 여기에 기척을 없애는 마법까지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이 상태라면 웬만한 존재에게 들키려고 해도 들키기가 어려웠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투명화 마법 자체를 쓰기도 어렵겠지만 루나모스에게 선택받은 엘프인지라 미나의 마법적 재능과 능력은 인간이 상상하는 범위를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단숨에 계단을 통해 블로거가 사는 집 5층에 올라갔다. 굳건하게 닫혀 있는 문. 보통이라면 택배 왔다는 식으로 집 주인의 방심을 유도해 문을 열게 만들겠지만 미나는 간단한 마법으로 콘크리트 벽을 통과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투명화에 기척도 없애고 원하는 집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 완벽한 범죄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마법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꿈꾸는 꿈의 능력이기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건 딱히 관음증이 아니더라도 다들 한 번씩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어찌됐든 간단하게 들어간 미나는 거실의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여자에게 마법을 걸고 빠져나왔다. 프린에게 시켰으면 상당히 어려웠을 테지만 미나가 하니 어리아이 손목 비틀 듯 간단하게 해냈다.
차에 다시 탄 미나는 투명화를 풀고 시황에게 성공했다고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정작 시황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그거 투명화 마법이지?”
“그렇습니다.”
“나한테도 걸어줄 수 있어? 아니, 물약 같은 거로 내가 원할 때 투명해질 수 있을까?”
“마법 주문서를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 한 개만 만들어 줄래?”
“집에 가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좋아.”
시황은 입 꼬리를 말아 올려 음습하게 웃었다. 이걸로 수란을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다. 투명 마법이라는 걸 이용해 찬미나 유미에게도 장난 치고 싶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어 수란에게만 장난을 치기로 했다.
오피스텔로 돌아간 시황은 미나에게 투명 마법 주문서를 하나 얻고 나서 파워 블로거의 모습을 살폈다. 그릇에 떠놓은 투명한 물 위로 파워 블로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가 치는 키보드 소리가 물에서 흘러나온다. 참으로 신비로운 광경이다.
“응? 얼굴이 왜 저러지?”
예전에 화장품을 사갈 때는 멀쩡하던 얼굴이 지금은 울긋불긋하게 이상해져 있었다.
“저럴 작정이었단 말이지?”
마법으로 사람을 감시한다는 건 시황으로서도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파워 블로거는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가 이상해졌다고 글을 올릴 게 분명했다. 몰랐으면 제법 치명적으로 당할 수 있는 공격이지만 알았기 때문에 그 공격을 방어할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인터넷 이후로 불어난 방대한 정보량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없는 정보가 혼재되어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최소한의 근거, 왠지 그럴싸하다 싶으면 그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 믿게 되었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만약 그게 어떤 특정인이나 기업의 안 좋은 루머라면 단번에 오프라인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커다란 파급력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연예인들은 비밀스럽게 흘러나온 올바른 정보로 연예계에서 퇴출이 되거나 중학생 여자애가 쓴 올바르지 않은 정보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경우도 흔했다.
그리고 지금 시황이 그런 정보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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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가 자꾸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와우의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빨리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써서 그런지 수란을 미란으로 써버렸네요. 수정했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