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364화 (36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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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땀을 왜 그렇게 흘려?”

“네? 땀이요?”

“응. 엄청 흐르네.”

시황이 휴지로 노을의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노을은 순간적으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상황을 파악했다. 아까까지 시황에게서 발 마사지를 받다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야한 꿈을 꿨었다. 시황의 체취가 가득한 침대에서 자서 그런 걸까? 그런 꿈을 꿔본 건 처음이라 심하게 당혹스러웠다.

“벌써 7시야. 같이 저녁이나 먹자.”

“잠시 만요. 아직 정신이 없어서…….”

“정신 차리고 옷 갈아입어. 난 나가 있을게.”

시황이 방을 나갔다.

노을은 이불을 걷어내고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이상하게 아랫부분이 축축했다.

“어?”

트레이닝 반바지가 젖어있었다. 그것도 음부 쪽에 젖어있어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젖은 부분에 손을 갖다 대자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노을은 혼란에 빠졌다. 살면서 그렇게 야한 꿈을 꾼 것도 처음인데, 그 꿈의 내용이 엄청나게 충격적이라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은비와 시황이 섹스를 하는 걸 훔쳐보며 자위를 하는 꿈.

노을은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어 확인했다. 오줌이 아니고 애액이 나와서 젖은 게 맞았다. 그 꿈 때문에 트레이닝 반바지까지 젖을 정도로 흥분해버린 것이다. 오줌을 싼 게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이거대로 최악이라 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찌됐든 스스로에게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옷이나 갈아입자.”

시황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트레이닝 반바지를 벗었는데 젖은 흔적이 지나치게 티가 났다. 이대로 시황에게 줄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먼저 옷부터 갈아입고 트레이닝 반바지와 티는 가방 안에 넣어놓았다. 일단 가져가서 빨고 다시 돌려줄 생각이었다.

노을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가 시황과 찬미 등과 밥을 먹었다. 시황과 찬미가 말을 걸어줬지만 노을은 아까 전의 꿈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 넋이 빠진 것처럼 대답했다.

밥을 다 먹고 시황이 직접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에서 내리려던 은비는 옷을 빨고 준다는 걸 아직 말 안 한 게 떠올랐다.

“오빠 옷은 제가 빨아서 드릴게요. 가방에 넣어왔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러면 그냥 집에서 입어.”

“아니에요. 정말 빨고 드릴게요.”

“어차피 입는 사람도 없어. 너라도 입어주면 좋지.”

“네. 죄송해요.”

갑자기 옷을 받게 되자 노을은 상당히 미안해했다.

차에서 내린 노을은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 멤버인 소호와 제인이 말을 걸었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요즘 따라 뭔가 이상했다. 시황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기는 했다. 짝사랑 비슷한 감정이라는 건 어느 정도 스스로 알았다. 그런데 아까 정체불명의 머리카락을 본 이후로 이상한 생각만 자꾸 났다. 얼마나 그 인상이 강했으면 꿈에서까지 그랬을까 싶었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하아…….”

한숨을 쉬던 노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공책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적어 내려갔다.

그건 지금 감정을 담은 노래 가사였다. 이 감정을 토해내고 싶은데 SNS에 쓰기 보단 가사로 지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시황이 요구한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가사가 아니라 짝사랑 하는 여자와 그걸 몰라주는 남자에 대한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짝사랑 하는 여자는 노을이고 대상인 남자는 시황이었다. 노을은 시황을 좋아하지만 시황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그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을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잘 보이기 위한 여자는 은비를 생각하면서 썼다.

[넌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와 키스를 했겠지. 그녀와 키스하는 너의 얼굴을 보고 싶어. 난 참을 수 없어. 사랑을 나누는 너의 모습은 섹시.]

이런 식의 가사였는데 생각나는 그대로를 썼더니 엄청 이상했다. 주 내용이 다른 여자와 스킨십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걸 노을이 직접 지켜보고 싶다는 거였는데 이 가사 그대로를 시황에게 보여줬다가는 이상한 여자로 볼 게 분명했다.

여기서 내용을 수정했다. 이상해 보이는 건 다 빼고 평범하게 질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써넣었다. 약간 조잡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가사의 틀은 잡혔다. 여기서 더 수정을 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가사가 될 것 같았다.

“은비…….”

가사를 쓰고 보니 정말 은비와 시황이 어디까지 스킨십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은비와 친해 보이고 은비가 시황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도 사귀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만약 사귀고 있었다면 자신에게 사귀는 척 하자는 말도 안 했을 테니까.

나중에 은비를 만나면 슬쩍 떠볼 생각이었다.

며칠 뒤에 노을은 사적으로 은비를 만났다. 원래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주 만나곤 했다.

은비와 함께 카페 케즈론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둘 다 특별히 하는 얘기 없이 잠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있잖아. 나 시황 오빠랑 노래하기로 했는데……. 알아?”

“어? 노래? 무슨 노래? 갑자기 무슨 말이야?”

노을의 말에 은비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시황에게서 노을과 노래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앨범을 내는데 나랑 같이 하자고 부탁했어. 노래는 만들었고 가사만 붙이면 돼.”

“그, 그래? 잘 됐네. 오빠 노래 잘하니까 너랑 잘 어울 릴거야.”

은비는 침착한척 말했지만 당혹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다른 사람이면 별로 신경을 안 쓸 텐데 노을과는 시황이 전에 친하게 얘기 하는 모습이 사진이 찍힌 적이 있어서 상당히 신경 쓰였다.

“전에 오빠 방에 갔는데…….”

“뭐?”

“뭐라니?”

“아니. 오빠 방에 왜 갔는데?”

은비의 표정이 굳었다. 노래를 같이 부른다고 시황의 방에 간다? 은비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을과 시황이 그렇게 친하단 말인가?

“같이 가사 만든다고 갔는데 그 날 스케줄도 있고 해서 오빠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깜빡 졸았어.”

“오빠 침대에서 네가 왜 자는데? 아니, 나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은비의 표정이 질투심으로 달아올라있었다.

노을은 은비를 그런 살폈다. 저건 정말 진심으로 질투를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은비는 확실히 시황을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하고 자신도 모르는 일을 했으면 저렇게 질투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노을은 이상하게 은비에게 질투심이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둘의 사이가 어느정도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잠깐 누웠는데 졸았던 거뿐이야. 은비가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거 같은데. 오빠랑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내가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너도 연예인이고 여자인데 남자랑 단 둘이 그러면 위험하니까 하는 말이지.”

은비는 시황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노을은 이미 은비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오빠는 그런 짓 안 하잖아. 근데 너 이제 오빠 안 좋아하나 봐? 그러면 내가 대쉬해도 돼? 사실 나 오빠 좀 좋아하거든.”

“어?”

갑작스런 상황의 변화에 은비는 약간 넋이 빠진 표정을 짓다가 노을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는 상당히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가사 만든다고 오빠하고 자주 만났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네가 괜찮으면 오빠한테 고백이라도 해보게.”

“저기, 있잖아. 너무 갑작스러운데 너 아이돌이잖아? 오빠하고 사귀다 스캔들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좀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을 해봐. 아이돌 그만 둘 거 아니잖아?”

“그 말은 너하고는 상관없고 나만 괜찮으면 고백해도 된다는 거지?”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노을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당황하는 은비의 모습을 보니 상당히 재미있기는 했다. 사실 자신보다 시황의 여자 친구로 어울리는 건 은비였다. 인기도 비교가 안 되고 외모도 몸매도 훨씬 나았으니까.

“네가 괜찮다고 하면 고백하고 네가 마음이 있으면 포기할게.”

노을은 선택을 강요했다. 일단 이것부터 돼야 시황과의 관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있었다.

은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시황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밝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실 너한테 말은 안 했는데 이미 나랑 오빠 거의 사귀고 있어. 내일 당장 사귀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할까? 미안. 진작 말 안 해서.”

“진짜? 진작 말해주지. 난 또 네가 관심이 없어 보여서 그런 건데……. 그러면 내가 포기해야지.”

“미안해.”

은비는 사과를 하면서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을 밝히는 걸 꺼려해서 계속 어중간한 태도를 취했으면 정말 노을이 시황에게 고백했을지도 몰랐다.

“근데 아직 확실히 사귀는 건 아닌 거지?”

“아니. 거의 사귀는 중이야. 아직 오빠가 사귀자고 말을 안했을 뿐이지.”

은비는 노을이 안 사귄다 하면 다시 고백한다고 말할까봐 좀 더 확실하게 말을 했다. 거의 사귄다고 하기엔 넘어야 할 것들이 좀 많았지만 일단 노을이 시황에게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혹시 키스도 했어? 이런 건 말하기 좀 부끄럽나?”

“어? 어……. 했어.”

은비는 노골적인 노을의 질문에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쯤은 해야 노을이 확실하게 시황을 포기할 것만 같았다.

“입에만 살짝? 설마 혀도?”

“…….”

“와, 진짜? 대박이다.”

아무런 말없이 부끄러워하는 은비를 보고 노을은 정말 놀랐다. 그때 시황의 침대에서 꾼 꿈이 단순한 꿈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 수도 있었다. 벌써 머릿속에선 은비와 시황이 혀를 섞으며 키스를 하는 모습이 자동적으로 그려졌다.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키스만 하고 끝낸 건 아니지? 설마 마지막까지?”

“아,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안 했어.”

은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엄청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저런 반응을 보니 노을은 시황과 은비가 섹스를 했다는 걸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안 해서 아니라고 했을 수도 있었지만 왠지 직감이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방문 틈으로 시황과 은비가 섹스를 하던 걸 본 게 순전히 망상은 아니었다. 어쩌면 꿈과 똑같은 자세로 섹스를 했을 수도 있었다.

노을은 그런 상상을 하자 팬티가 조금 젖는 걸 느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황이 다른 여자와 그런 걸 하는 상상을 하면 몸이 저절로 흥분을 해서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망가진 것 같았다.

그런 걸 알면서도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침대에 있던 머리카락은 은비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여자가 또 있는 걸까? 집에 같이 사는 여자들 중 한명일까?

“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면 안 돼. 너한테만 말해준 거니까.”

“응. 걱정 마. 나도 너한테 오빠한테 고백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러면 다음에 우리 오빠 데리고 같이 데이트하자. 내가 잘되게 도와줄게.”

“어? 어. 그래.”

은비는 노을이 무슨 생각으로 같이 데이트를 하자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지 의심이 되었던 것이다. 일단 같이 데이트를 하게 되면 최대한 시황과 잘 지내는 걸 보여줘서 노을의 마지막 남은 시황에 대한 마음까지도 없애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노을은 단지 순수하게 은비와 시황이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게 흥분되고 즐거웠다.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은비와 노을의 눈빛이 순간 교차했다. 공기가 일렁이는 착각이 일 정도로 강렬한 눈빛들.

시황이 전혀 모르는 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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