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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해,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침착할 것만 같던 로실린이 당황하며 대답했고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루펠린도 얼굴을 붉혔다.
시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는 로실린을 끌어안았다. 얼굴 가득 적나라하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실린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어주었다.
“고귀하신 시황 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고 몸을 떨면서도 로실린은 도리어 시황에게 예를 갖추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로실린은 남자와 키스를 해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남자와 말을 섞은 일 자체도 드물었다. 시황의 입맞춤이 그저 입만 살짝 갖다 대는 것뿐이라 해도 그 당혹스러움과 민망함은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이렇게 부끄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이래도 괜찮아? 이거보다 훨씬 더 야한 거 할 텐데? 이제라도 포기해도 돼.”
“아닙니다. 루나모스 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큰 영광일 따름입니다.”
얼굴 표정은 크게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로실린은 여전히 정중하고 예의 있게 시황에게 말했다. 세계를 구해줄 유일한 희망이자 루나모스의 주인을 어찌 거부하겠는가? 만약 루나모스가 대가로 순결이 아닌 목숨을 바치라 했어도 망설임 없이 했을 것이다.
“정말? 그러면 가슴 만져도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시황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꿈틀거리며 로실린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루펠린은 차마 그 모습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고 로실린도 눈을 질끈 감았다.
세계를 구하러 온 희망이 아니라 성녀를 납치해 희롱하는 악당이나 진배없는 모습이었다. 소설이나 영화라면 이쯤 정의로운 존재가 예배실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나 시황을 저지하기 마련이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아...”
꿈틀거리던 손이 그대로 성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안에 속옷을 두텁게 입은 듯 했지만 성녀의 가슴을 그대로 만졌다는 게 중요했다. 시황도 흥분으로 순식간에 발기를 하고 말았다.
“흠, 이정도로도 나에게 순결을 준다는 그 다짐을 포기하지 않는구나. 네 각오는 잘 알았어.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그 굳건한 다짐이 느껴져.”
시황은 손을 뗐다.
“저의 각오를 보기 위한 시험이었던 거군요. 세계를 지키고 싶다는 제 마음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좋아. 그러면 나도 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 볼게.”
사실 그런 종류의 시험은 아니었고 희롱하면 어떻게 반응하나 궁금했던 것뿐이었다. 혹시라도 엄청 싫어하고 혐오스러워하면 억지로 순결을 바치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크게 부끄러워하고 민망해하긴 했지만 싫은 걸 루나모스의 명령 때문에 억지로까지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 정도는 괜찮았다.
“감사드립니다. 위대하신 시황 님께 저와 루펠린이 순결을 드릴 수 있어 큰 영광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부족한 몸이지만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우...”
루펠린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가슴이 만져진 로실린은 침착하게 답변한 반면 루펠린이 더 긴장을 하며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뭐,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부터 먼저 설명해줄래? 루펠린은 엄청 다급해 보이던데 어느 정도로 위험한 거야?”
로실린하고 루펠린과 섹스하는 거야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괜히 그런 걸로 시간을 보내다 죽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큰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만 같았다.
“지금 마왕의 군대가 성의 근처까지 와 있는 꽤나 위급한 상황입니다. 제가 성에 있는 총사령관에게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부탁해.”
로실린이 어느새 침착해진 얼굴로 시황의 앞에 서서 안내를 했다.
예배실 문을 열고 나가자 언제 모였는지 햇빛이 부서지듯 뿌려진 넓고 환한 홀에 수백 명의 여자들이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들은 성녀나 기사단장인 루펠린보단 작고 소박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희고 고운 날개를 가졌다는 것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성스럽게 보였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그녀들은 시황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 정교하게 맞춰진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극진한 환영에 시황은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하지도 않고 걷는 로실린을 따라 침착한 얼굴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성당 밖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성당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건물의 일부가 붕괴된 듯 큰 귀를 멍하게 하는 큰 소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시황은 화들짝 놀랐지만 정작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고 있는 수백 명의 여자들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황 님, 모두와 함께 마왕의 군대를 막으러 가도 되겠습니까?”
“응? 당연하지. 나한테 묻지 말고 그런 건 알아서 해도 돼.”
로실린의 말에 시황은 빠르게 대답했다. 바깥의 상황이 대단히 위급해 보였다. 비명소리가 끝없이 들려오고 건물이 허물어지는 듯한 굉음이 귀를 괴롭힌다.
“감사드립니다. 모두 일어나세요. 마왕의 군세가 쳐들어온 거 같으니 빨리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다치신 분들을 치유해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맞춘 그녀들은 날개를 펴고 단번에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열려있는 거대한 창으로 단번에 빠져나갔다.
바지를 입고 있어 팬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백 명의 날개를 단 여자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우리도 빨리 나가자.”
“알겠습니다!”
시황의 말에 로실린과 루펠린이 접고 있던 날개를 폈다. 접고 있을 땐 몰랐는데 펴고 나니 몸만큼 거대한 날개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단번에 치솟아 올랐고, 시황도 그녀들을 따라가기 위해 용언으로 몸을 띄웠다. 처음으로 해보는 비행이라 아주 잠깐 어설프게 날아오르긴 했지만 금세 익숙해져 그녀들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비행을 했다.
대성당을 나와 그녀들과 도시를 내려다봤다. 거대한 도시는 이미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어떻게 했는지 굳건한 성벽을 뚫고 들어온 수많은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갑옷을 입은 기사단이 날아서 오고 있었지만 이미 몬스터들이 도시 내부까지 밀려들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시황의 인상이 단번에 찌푸려졌지만 막대한 마기와 환골탈태로 인해 굳건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 토하거나 패닉에 빠지는 추한 꼴을 보여주지 않았다.
“시황 님, 전 성기사단이 올 때까지 최대한 보호막을 만들어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하겠습니다. 루펠린, 시황 님을 보좌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로실린은 날개를 펼치고 마왕의 군대가 몰려드는 지점까지 날아가 양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날개에서 아름다운 금빛 가루가 퍼져나가며 단번에 거대한 도시를 지켜내는 반투명한 보호막을 생성했다.
도시에 들어온 몬스터들은 어느새 흰 날개를 펼치고 날아온 기사단이 처리했지만, 성벽 밖에 도저히 수가 가늠이 가지 않는 어마어마한 몬스터들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보호막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거야?”
“저렇게 많은 군대가 몰려들면 아무리 성녀님의 권능이라도 채 10분을 버티지 못합니다. 거기다 보호막이 깨질 정도로 마력을 다 쓰시게 되면 성녀님의 몸 또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크윽... 제가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도...”
루펠린은 분한 듯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그 수는 자신들이 도저히 어찌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성녀의 권능으로 어떻게 버텨내고는 있지만 무조건 패배가 확정된 거나 다름 없는 싸움이었다. 만약 시황이 없었더라면 여기서 큰 절망을 했으리라.
“쟤네들 다 죽이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게 됩니다.”
“뭐, 일단 가서 해볼게.”
시황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날려고 노력하며 보호막까지 날아갔다. 루펠린은 급히 시황의 뒤를 따랐다. 시황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나 적이 너무 많았다. 성기사단을 모아 싸우는 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그래도 루나모스의 주인인 시황이었기 때문에 루펠린은 주제 넘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시황은 아공간에 손을 넣어 루나모스가 준 보석 중 하나를 꺼냈다.
강림하는 불씨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 주문석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마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시야에 지도가 뜨며 밀려드는 몬스터가 빨간점으로 표시되었다. 현 상황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마법을 쓰는 지점과 그 범위까지도 한 번에 나타나 어디를 어떻게 써야 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시황이 마기 투입량을 증가 시키자 마법 범위가 점점 늘어났고 시황이 가진 마기의 5분의 1정도까지 투입하자 더 이상 범위가 늘지 않았다.
이정도로는 비록 밀려드는 모든 몬스터들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수를 포함하는 범위는 되었다.
시황은 의지력으로 강림하는 불씨를 발현했다.
하늘에서 거대한 진홍색의 불씨가 나타났다. 그 불씨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낙하했고 시황이 지정한 지점의 정 중앙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잠시, 1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루펠린조차도 의문을 가질 무렵, 진홍색의 불씨가 폭발하듯 거세게 번져나갔다.
아무런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으로 제대로 식별조차 되지 않는 속도로 뻗어나간 진홍빛의 불길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세상이 불길에 휩싸인 듯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 불길 앞에선 몬스터의 강약이란 무의미 했다. 그저 불길을 지피기 위한 연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십만이 넘는 몬스터 군대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길은 꺼지지 않고 지옥의 구덩이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다 모든 것을 태우고 나서야 사그라졌다.
뜨거운 열기가 퍼져 나와 주변의 기온을 순식간에 한 여름, 아니 한증막처럼 만들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로실린이 친 보호막 덕에 도시 안의 사람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
분주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성기사단원들도 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십만이 넘는 몬스터가 일순 불길에 잡아먹혀 사라졌다. 신의 기적이었다. 신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힘이었다. 위대한 존재가 강림하여 몬스터들을 멸하였다.
“아...”
절망감에 물들어 있던 그녀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루펠린도 전율했다. 감히 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었다. 루나모스가 수십만의 군대를 한 번에 없애버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그저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루나모스의 주인인 시황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번에 십만이 넘는 몬스터를 불태워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전율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힘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번엔 이걸로 해볼까?”
시황은 멸망의 뇌성 마법 주문석을 꺼내 아까처럼 위치를 지정하고 발현했다.
단번에 거대한 먹구름이 생겨나더니 의지를 가지기라도 한 듯 몬스터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벼락이 내려쳤다. 귀를 따갑게 만들 정도의 천둥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며 신이 벌을 내리고 있는 걸 보여주었다.
이쯤 되니 몬스터들을 이끄는 보스 몬스터처럼 보이는 것들도 공포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해일처럼 밀려들던 몬스터들의 기세가 완전히 꺾이고 사방팔방 도망가기 바빴다.
마지막으로 시황은 공간 압축기 마법 주문석을 꺼내 달아나는 몬스터들을 일일이 죽여나가기 시작했다.
지정한 범위에 공간을 압축하자 공간이 소멸하듯 응축이 되더니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짜부라졌다. 압축한 공간을 해제해도 보이는 거라곤 피떡으로 변한 몬스터들의 사체들뿐이었다.
시황도 루나모스가 건네준 마법 주문석을 쓰면서도 새삼 자신의 능력에 감탄했다. 마법 자체는 루나모스가 준거긴 해도 이런 위력 있는 마법을 써도 마기가 아직까지 넉넉할 정도로 남았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어느새 수십만에 이르던 몬스터 군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성기사단원들도, 시민들도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가 큰 소리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루나모스 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루나모스에게 감사하다고 외쳤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공간 압축으로 몬스터들이 짜부라져 죽는 건 좀 역겹긴 했지만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시황도 흐뭇했다. 아직 마왕인가 하는 건 못 죽이긴 했지만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된 기쁨이 이런거구나 하고 느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루펠린은 전율하며 시황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할 뿐이었다. 만약 시황이 아니었다면 저 많은 몬스터의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성이 함락되고 말았을 것이다. 너무 기뻐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시황은 이와중에 눈물을 흘리는 루펠린을 살짝 끌어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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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