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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577화 (576/629)

00577  문명 발전  ========================================================================= Reg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났지만 밖에서는 전혀 반응 하지 않았다. 평소 한강규의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괜히 반응을 보였다가 욕이나 먹을 거라는 걸 다들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강규는 배트를 몇 번 더 내려치고는 가방에서 평소 쓰는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방금 사이트에 가서 다시 사진을 지우려고 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류 때문에 계속 삭제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이딴 개같은 일이 다 있냐고! 이 사이트 만든 새끼들 절대 가만히 안 둔다!”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를 지른 한강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사이트에 전화해서 글을 내린다고 해도 이미 사진은 퍼진 뒤였다. 그러면 언론은 돈으로 틀어막고 더 자극적인 시황의 사진을 뿌려서 사람들의 눈을 돌려야 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물러날 길은 없었다.

한강규는 사진 데이터가 있는 usb를 꽂은 뒤, 미리 봐뒀던 다른 사이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는 여자들이 많이 다니는 사이트라서 시황이 여러 여자들과 문란하게 키스하고 가슴을 만지는 사진을 올리게 되면 산불처럼 논란이 점점 번져나가 도저히 수습도 못하게 될 법한 곳이었다. 사람의 이목을 돌리는데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케즈론 강시황 대표의 본색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평소 여자들을 협박해 성관계를 갖고 문란하게 생활하는 모습입니다. 저도 처음 사진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파파라치 사진을 전부 첨부해서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잠시 로딩화면이 생겨나고 글쓰기가 완료됐다. 그런데 한강규는 글쓰기가 완료되자마자 나타난 사진을 보고 이번에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분명 시황의 사진이라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하고 첨부를 했는데 정작 올라간 건 자신이 문란하게 생활하며 여자들을 협박하고 성관계를 맺는 사진이었다.

한강규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스크롤을 내려 봤지만 전부 자신의 사진이었다. 그것도 여자들을 거칠게 다르고 강압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런 사진은 찍은 적이 없었다. 찍은 적도 없고 파일조차 없는 사진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올린 글조차 멋대로 변경되어 있었다.

[프리메로 본부장 한강규의 본색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평소 여자들을 협박해 성관계를 갖고 문란하게 생활하는 모습입니다. 저도 처음 사진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황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한강규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이건. 꿈이라도 꾸는 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이게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지금이 지독한 현실이라는 걸 한강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해킹을 해서 파일을 조작하고 글도 변경한 게 분명했다. 누가 그랬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강시황밖에 없었으니까.

“개 같은 새끼. 이렇게 비열하게 나온다 이 말이지? 나한테 대든 대가가 뭔지 톡톡히 보여주겠어.”

모니터에 있는 자신의 노골적인 사진을 보며 한강규는 시뻘게진 눈으로 시황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다. 감히 자신에게 이런 수치를 줘? 원래라면 시황을 파멸만 시키고 여자들을 가지려고 했지만 마음이 변했다. 아주 잔혹하게 죽여 버리기로. 이 세상에서 줄 수 잇는 최고의 고통을 선사하기로.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절망을 맛보여주기로 했다.

“으아악! 죽여 버릴 거야!”

부들부들 몸을 떨던 한강규는 노트북을 집어서 그대로 집어던졌다. 뭔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파열음이 크게 나자 밖에 있던 사람들도 움찔 했다. 평소보다 한강규가 더 심하게 난리를 쳤던 것이다.

“두고 보라고.”

살의를 듬뿍 머금은 눈이 짙게 빛나고 있었다.

*

당연하게도 한강규가 의도치 않게 올린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 사진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일부러 논란을 유발하려고 여자들이 많이 다니는 사이트에 글을 쓴데다, 그것도 여자를 때리고 폭행하며 성관계를 요구하는 범죄 사진을 올렸으니 논란이 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저 지금 사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해서 손이 떨려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루머로 A대표라고 해서 케즈론 대표인 강시황인가 했더니 전혀 아니었네요... 저런 범죄자 놔두고 애꿎은 강시황 대표만 또 욕먹을 뻔 했어요...]

[저도 눈물 날 거 같아요. 여자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고... 근데 저렇게 여자 폭행하고 강제로 성관계 요구하는데도 경찰은 저런 사람 왜 놔두는 거죠? 대기업 회장 아들이라고 봐주는 건가요?]

한강규가 올린 사이트가 여자들이 주로 하는 사이트이긴 했지만 워낙 이슈가 될 만한 사진이었기 때문에 산불이 아니라 휘발유에 불이라도 붙은 듯 순식간에 모든 사이트로 한강규의 사진이 퍼져나갔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엄청난 속도의 정보 전달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뉴스로도 한강규에 대한 기사가 뜨기도 했다.

모든 비난이 한강규에게 쏠렸다. 이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었고 막강한 팬을 가진 존재도 아니었기 때문에 옹호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비난을 받았다. 그러면서 도리어 오해받을 뻔한 시황의 이미지가 묘하게 상승했다.

[솔직히 강시황이 스폰하고 강제로 성매매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워낙 다리를 걸친 게 많기는 하지만 강제는 아니니...]

[한강규보니까 강시황이 얼마나 능력있고 여자들한테 잘 대해주는지 느껴지네요. 저놈은 저렇게 범죄까지 저지르는데 강시황은 여자들하고 원만하게 합의하고 사귀잖아요? 차라리 이게 낫다 싶네요.]

[저 강시황 사진 있는데 올려도 되려나? 일단 올려봄 ㅋㅋ 이거 개귀여움.]

개 중에는 시황이 찬미와 함께 대학교 벤치에 앉아 연애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한강규와 다르게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연애를 하는 시황의 모습은 대단히 건전하고 로맨틱하게 보였다.

[헐, 진짜 왤케 귀여움 ㅋㅋㅋㅋㅋㅋ 대학교 벤치에 앉아서 노는 모습 현실감 넘쳐서 더 귀여움 ㅋㅋㅋ]

[와, 화보같다. 근데 여자가 입은 옷 케즈론 거네. 저거 내가 알기로 1억 원 가까이 나가는 옷으로 아는데... 남친이 케즈론 대표라 다르긴 다르네. 부럽다...]

사진이 올라오자 찬미가 입은 옷이 뭔지 곧바로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됐든 한강규 덕분에 시황의 이미지가 조금은 상승했다. 여러 여자들과 사귀지만 한강규와 다르게 강제적이거나 스폰이 아니라 평범하게 서로 좋아하고 연애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그나마 좋게 본 듯 했다.

이건 범죄자 급인 한강규와 대비효과를 통한 이미지 상승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사회 통념상 시황의 연애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시황이 여자애들과 소박하게 연애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리고 있을 때, 프리메로 측에서는 그 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한강규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사진 속의 남자와 한강규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비교해서 점의 위치와 신체적 특성 부분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애초에 올라간 사진이 흐릿하거나 저화질이 아니라 어느 정도 얼굴이 전부 구분이 되는 나름 괜찮은 화질의 사진이라서 프리메로 측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변명을 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시황은 컴퓨터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매우 흡족해했다.

한강규가 의도한 대로 언뜻 보면 그럴싸해 보이는 성추행 사진이 올라갔으면 지금의 비난 여론이 자신에게 쏠릴 수도 있었다. 진위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은 사진이 올라오고, 이전부터에 나쁜 루머가 돌고 있었다면 그 누구라도 그 사진을 성추행하는 사진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나모스의 능력을 이용해서 아예 사진을 바꿔치기 해버렸다. 그 사진들은 한강규의 기억과 여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거였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디테일적이 부분이 조금 다를 수는 있어도 그 상황자체는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덕분에 한강규가 많이 화가 났다는 사실도 시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불가능해 보이는 영화 같은 일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가족이나 소중한 자신의 여자들을 건드릴지도 몰랐다. 끔직한 상상이 자연적으로 떠오르자 심연과도 같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한강규가 그러겠다고 해서 그게 가능하지는 않지만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절대 한강규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분노하기 보다는 인간쓰레기나 다름없는 한강규를 통해 반사적인 이익을 얻는 게 중요했다. 시황은 지금 이 상황조차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이용할 작정이었다. 한강규의 처리는 그 뒤에 해도 충분했다. 분노는 모든 것을 이루어 내고 터트려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단순한 분노보단 냉철한 판단이 중요했다.

시황은 루나모스가 건네주는 전화번호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신호음이 가고 상대방이 받자 시황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강규를 위한 성대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다.

**

한강규는 가진 바 능력을 총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돈만 주면 인신매매까지 해주는 극악무도한 무리를 이용해 시황의 주변 여자들부터 납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황이 보는 앞에서 능욕할 작정이었다.

한강규의 의뢰를 받은 무리들은 마스크와 복면을 쓰고 시황의 집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대기를 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미리 사람들이 시황의 집 주변으로 걸어 다니지 못하게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세워 다른 길로 가도록 유도를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되자 시황의 집 주변 길로는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차로 시황의 여자 중 한 명이 걸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사 중이라며 길을 막고 있던 팻말을 치워 시황의 집 쪽으로 혼자만 걸어오게 유도했다.

은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집으로 걸었다. 주변이 왠지 적막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상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묘하게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났다. 설마 하는 마음에 슬쩍 뒤를 보자 마스크를 쓴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왠지 무서워진 은지는 빠른 걸음으로 빨리 집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여러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싶은 순간, 누군가 목을 조르듯 팔로 묶고 천으로 억세게 입과 코를 막았다.

“읍읍!”

은지는 저항하려고 몸을 크게 흔들려고 했지만 이내 몸에 힘이 빠지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남자들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은지를 옆에 세워둔 차에 실었다. 이제 이 소중한 상품을 한강규에게만 전달하면 막대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은지를 차 뒤에 실은 남자들은 위치를 조금 옮겼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자 한강규가 그토록 원하던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서양 미녀가 하나 걸어왔다. 시황의 여자 중 하나인 루나모스였다.

그들은 다시금 비릿하게 웃더니 차에서 내려 루나모스의 뒤를 은밀하게 뒤쫓았다. 왠지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힐끔 쳐다본 루나모스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그들은 은지에게 했던 것처럼 재빠르게 다가가 루나모스의 목을 조르듯 몸을 봉쇄한 다음에 천에 적신 마취제를 코와 입에 갖다 대었다. 반항을 하려고 움직이던 루나모스의 몸이 이내 멈추자 그들은 재빠르게 차에 싣고는 곧바로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서울 외각에 있는 으슥한 산이었다. 한참을 달려서 허름한 폐가에 있는 거대한 창고로 은지와 루나모스를 데리고갔다.

창고 문을 두드리자 쇠를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그들은 은지와 루나모스를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히고는 끈으로 몸을 포박했다.

“데리고 왔습니다.”

“크큭. 잘했어. 들키지는 않았겠지?”

“저희가 일처리는 깔끔하지 않습니까. 그런 건 걱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좋아. 돈 준만큼 제대로 일하는군. 마음에 들어.”

한강규는 빛조차 비치지 않는 구석진 곳에 앉아 있다가 걸어 나왔다. 희뿌연 전등이 비친 그의 입가에는 지독할 정도로 역겨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한강규는 옆에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에게 턱짓을 했고, 그는 돈이 든 가방을 은지와 루나모스를 납치해 온 남자들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또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깔끔하게 일 처리 해드리겠습니다.”

은지와 루나모스를 납치해 온 남자들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한강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의자에 묶여있는 은지와 루나모스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두 여자를 희롱하고 싶었지만 지금 희롱을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한강규는 시황에 대한 복수심으로 눈이 멀어있었다. 시황을 여기에 불러내 보는 앞에서 두 여자를 희롱하고, 시황은 영원히 세상 빛을 못 보게 패죽일 작정이었다. 이미 시황을 처리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있었다.

한강규는 담배를 피며 은지와 루나모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보면 볼수록 둘 다 아름다운 미녀였다. 남자라면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극한의 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성형을 하지 않아 특색과 자연스러움이 남달랐다.

저런 미녀들을 시황이 독차지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한강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황이라는 존재는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었다. 뭐, 오늘로 시황이라는 존재 자체가 끝이겠지만.

“으응...”

은지와 루나모스가 정신을 차리는 듯하자 한강규는 옆에 있는 남자에게 전화를 건네받았다. 이미 시황에게 신호가 가고 있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시황이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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