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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 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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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월드, 카필로니아가 출시되고 네 달이 지났다. 처음부터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출시가 되고 나서 이례적일 정도로 루나R이 판매 됐고, 어느새 천만 명이 넘는 동시접속자를 가지게 되었다.
이미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은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 크게 몰입해서 반쯤은 현실에 가까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리얼 월드인 만큼 현실에서 쉽사리 느끼기 힘든 즐거운 감각을 게임에서는 손쉽게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식사를 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돈을 줘야 했지만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서는 비록 배가 차진 않지만 손쉽게 맛있는 음식들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현실보다 더욱 손쉽게 천상에 가까운 맛을 느끼게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음식점과 케즈론 카페에도 피해가 갔기 때문에 적당히 맛있는 수준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반쯤은 현실이라 해도 될 만한 수준이다 보니 과금을 통해서만 나오는 희귀한 옷이나 멋진 얼굴 파츠 등을 위해 거액의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화폐 경매장에서는 그런 옷들이나 몬스터를 잡고 희귀하게 얻은 아이템들이 수백, 수천만 원에 이를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다.
이렇게 현실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배제되고 천국과도 같이 즐거운 감정만 느끼는 가상현실인지라 사람들은 더욱 더 몰입해서 게임을 즐겼다.
28세의 모태솔로 백수 민규진도 하루의 대부분을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 소비할 정도로 빠져있었다. 현실은 못생긴 얼굴로 여자와 제대로 된 말조차 주고받지 못한 모태솔로였지만 게임에서는 그 누구보다 능력 있는 남자였다.
식사를 마친 민규진은 재빠르게 침대에 드러누워 루나R을 머리에 썼다. 그리고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 접속했다. 아무런 이질감 없이 뇌와 게임이 단번에 동기화가 되며 검게 물든 시야가 선명해졌다.
민규진, 캐릭터 아이디 진황은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게임 상에서 알아주는 딜러로 활약하는 민규진은 어제 밤늦게까지 음침한 악마의 숲에 들어가서 깊은 숲의 동굴이라는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었다.
잡기 힘든 걸로 유명한 깊은 숲의 동굴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자 보랏빛과 황금빛의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졌고, 민규진은 살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꼈었다. 다른 게임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진실한 초월자가 된 듯한 감각은 실존하는 몬스터를 잡은 듯한 착각이 들어 전율할 정도로 커다란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사냥을 간 4명의 모험대와 고가의 아이템을 분배했다. 그리고 자신이 쓸 아이템을 착용하고 나서 화폐 경매장에서 아이템을 팔려는 찰나, 하필이면 부모님이 들이닥쳐서 크게 혼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종료하고 말았다.
황금빛의 초월 아이템을 처음으로 먹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취직은 언제 할거냐라는 말과 제발 좀 정신 좀 차리라는 호통을 듣고 나자 그 좋던 기분이 사라질 정도로 우울해졌다. 그나마 잠을 자고나니 우울함이 사라져서 다시 힘내서 게임을 할 수가 있었다.
물론 28살이나 돼서 백수로 지내면 안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중간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해서는 일자리를 쉽사리 찾기 어려웠고, 실의에 빠져있던 와중에 우연찮게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신세계를 만났다.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세계는 본래의 성에 따라서만 캐릭터 생성이 가능했고, 얼굴과 체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미남, 미녀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평생 모태솔로였던 민규진도 같은 길드원인 어여쁜 캐릭터를 한 여인과 처음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비록 캐릭터이긴 하지만 모델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상냥한 그녀는 민규진이 꿈꾸던 이상형에 가까웠다.
“경매장부터 가볼까.”
침대에서 일어난 민규진은 여관을 나와 경매장으로 갔다. 거리에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대충 느껴질 정도로 그 나라의 미남, 미녀 상을 한 캐릭터들이 수없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서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의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조금이라도 괜찮은 옷과 아이템을 사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민규진은 2층에 올라가서 아름다운 경매장 NPC에게 말을 걸어서 거래창을 띄웠다. 케즈론 화폐 경매장 시스템은 사기나 선제시 같은 불합리한 일을 겪지 않도록 구축되어 있었다. 아이템을 아공간에 꺼내서 창에 올리자 자동적으로 이때까지의 경매 기록과 예상가격 등이 나왔다.
[루나모스의 축복을 받은 티겔바인의 악령 퇴치 스태프]
[초월, 성장형]
[이전 거래가격 : 1억 1천만 원~ 1억 4천만 원]
“뭐, 뭐라고?”
거래 가격을 확인한 민규진은 만화처럼 입을 벌리고 말았다. 황금빛의 초월 아이템이 비싼 건 알았지만 설마 1억 원이 넘는 엄청난 가격일지는 몰랐다. 초월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꽝이 나오면 몇 십만 원밖에 하지 않는 것도 있어서 비싸봐야 몇 백만 원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돈이었기 때문에 크나큰 희열을 느꼈던 건데, 설마 이정도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민규진은 떨리는 손으로 이전 거래 가격의 중간 정도인 1억 2천만 원에 티겔바인의 스태프를 경매장에 등록했다. 등록하기 전에 30%의 수수료가 제외되고 정확히 얼마정도 수중에 들어오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어서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거래가 안 된다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가격을 더 내려서 등록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1억 원 가까이에 팔수는 있었기 때문에 민규진은 벌써부터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보는 엄청난 액수였던 것이다.
[등록한 경매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수수료 30%을 제한 금액은 케즈론 포인트(KP)로 적립되며 언제든 통장으로 출금하실 수 있습니다.]
“뭐?”
막 경매장을 나가려던 민규진은 순식간에 아이템이 판매되자 혼비백산했다. 팔려도 며칠, 어쩌면 몇 달간 계속해서 가격을 변경하며 등록해야 팔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분 되지도 않아 금세 팔렸던 것이다.
빠르게 여관으로 돌아와서 정보창을 띄웠다. 그러자 이전까지 0KP이던 게 84,000,000KP로 되어 있었다. 혹시 꿈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이 모든 게 현실이었다.
통장 번호를 등록하고 출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게임과 연동된 은행에 들어가자 8천4백만 원 그대로 통장에 입금 되었다. 너무 기뻐 잠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민규진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정말 행복해서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신비롭게도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는 부정적 감정은 배제되어 있지만 감격으로 눈물이 나오는 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이러니 현실처럼 느끼며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창 기뻐하는 와중에 거의 여자 친구처럼 친한 하얀토끼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빠, 뭐해요? 저 요리 스킬 배웠는데 드셔보실래요? 진짜 맛있는 요리에요.]
[앗, 그럼 바로 가야지. 지금 뛰어갈게.]
하얀토끼와 문자를 나눈 민규진은 곧바로 그녀가 산 집으로 갔다. 카필로니아에서는 집도 살 수 있었는데 게임 상의 돈이나 현금으로 케즈론에 월세로 지불하면 가격에 맞는 장소와 형태를 가진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케즈론은 게임 밸런스에 미치는 부분에선 그 어떠한 과금요소가 없었지만 조금 더 현실처럼 폭넓게 즐기기 위해서는 제법 돈이 드는 게임이었다.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조그만 집에 방문했다. 그러자 반갑게 하얀토끼가 맞이해주었다. 꼭 실제 여자 친구처럼 느껴지는 찌릿한 감정에 민규진은 가상현실을 뚫고 나아가 현실에서 발기를 하고 말았다.
하얀토끼가 배웠다는 요리 스킬로 만든 풍요로운 식사를 한 민규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오늘 경매장에서 아이템을 팔아서 큰돈을 벌었다는 걸 말했다. 액수까진 말하진 않았지만 하얀토끼에겐 꼭 밝히고 싶었다.
“어머, 정말요? 대단하다. 전 오빠가 그렇게 능력 있는 딜러일 줄 알았다니까요. 정말 축하드려요.”
하얀토끼는 얘기를 듣고는 뭘 사달라고 하지 않고 순수하게 축하해주었다. 그 착하고 선한 모습에 민규진은 마음을 굳혔다.
“사실 이 돈은 부모님한테 대부분 드리려고. 축하해줘서 고마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말하고 싶었다.”
“역시 오빠는 착하시다니까요. 제가 그래서 좋아...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고.. 하, 하여튼 오해하지 마세요.”
오해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크게 수줍어하는 하얀토끼의 모습에 민규진은 도저히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잠시간 말이 없었지만 방에선 미묘한 공기가 피어났다. 현실이라면 용기가 없어서 도망쳤을지 모르지만 이건 가상현실이었다. 민규진은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저기 있잖아. 나랑 결혼할래?”
“네? 저, 저랑요?”
“예전부터 널 좋아했었어. 비록 가상현실 게임이지만 너 같은 여자가 여자 친구면 얼마나 행복할까 틈만 나면 생각했거든. 가진 거 없는 나지만 결혼해줄래?”
민규진의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 가상현실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마치 꼭 현실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네...”
“정말? 아...”
하얀토끼가 수줍게 허락하자 민규진은 환희에 찬 얼굴을 했다. 비록 현실에서 결혼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뻤다.
“정말 사랑해.”
민규진은 그대로 하얀토끼를 안으려고 했지만 보호막이 생겨나며 스킨십을 거부되었다. 경고문에는 결혼 전에는 스킨십이 안 된다는 문구가 생겨났다.
“빨리 가서 결혼하자. 그리고 집도 좀 더 좋은 데로 옮기자.”
“갑자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지금 집이 작기는 해도 둘이 살기엔 괜찮은데.”
말을 하면서도 민망한지 하얀토끼의 귀가 붉어졌다. 이 섬세한 게임은 도통 현실과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 정도는 괜찮아. 앞으로 몬스터 잡아서 더 많이 벌면 되니까 걱정마. 내가 얼마나 능력있는지 보여줄게.”
“기뻐요.”
쑥스럽게 웃은 민규진은 하얀토끼를 데리고 루나모스의 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50,000KP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번 돈에 비하면 푼돈일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같이 돌아다니며 도심에 위치한 크고 화려한 집도 샀다. 한 달에 200,000KP나 들었지만 앞으로 같이 살게 될 곳인데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돈이었다.
집까지 구매하자마자 민규진은 그 집에서 곧바로 하얀토끼를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연예인 급의 미모를 가진 여자와 완벽하게 현실과 같은 느낌으로 키스를 하자 민규진은 크게 흥분해서 실제 현실에서 쿠퍼액까지 줄줄 흘렸다.
비록 섹스를 하거나 옷을 벗겨서 가슴을 만지진 못했지만 키스를 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민규진은 크게 감격했다.
얼마나 기쁜지 하루 종일 하얀 토끼와 키스를 하고 실제 결혼한 것처럼 놀다 보니까 어느새 부모님이 마치고 올 시간이 되었다.
정신없이 하얀토끼와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너 도대체 뭐하는 거야!”
그리고 평소보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어머니의 호통이 이어졌다.
현실의 민규진은 얌전히 누워있었지만 게임상의 민규진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오빠 왜? 무슨 일 있어?”
결혼하고 어느새 말을 놓은 하얀토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미, 미안. 나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싫어.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
하얀토끼가 안겨오자 민규진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곤혹스러워졌다.
“부모님이 와서. 미안. 나중에 접속하면 또 연락할게.”
“히잉. 아쉽지만 부모님이 오셨다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마지막으로 작별 키스해줘.”
“응. 알았어.”
어머니가 호통을 치는 와중에도 민규진은 마지막으로 하얀토끼와 키스를 하고 나서 루나R을 벗었다. 평소라면 어머니의 호통에 기가 죽어야 할 텐데 민규진은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 직장 구하라고 했어? 안 했어?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면 아빠한테 말해서 컴퓨터 팔아버린다고 했지?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얼마나 답답한지 알아?”
“엄마. 할 말 있어. 아빠도 있지?”
“뭐? 있긴 한데, 무슨 말? 혹시 취직했어?”
평소와 다르게 당당한 민규진의 태도에 어머니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변했다.
궁금해 죽으려고 하는 어머니와 함께 거실로 간 민규진은 한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얼굴을 했다.
“저 자식 오늘 왜 저래?”
아버지가 한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 오늘 5천만 원 벌었어.”
나중에 쓸 돈을 위해 일부러 5천만 원만 말했다.
“뭐? 어떻게? 복권이라도 된 거야?”
“아니. 게임으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니? 그걸 믿으라는 거야?”
어머니는 기도 안 찬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케즈론에서 출시한 게임 몰라? 그 게임에선 나처럼 몇 천만 원이 아니라 수십억 버는 사람도 엄청 흔해. 지금 얼마나 유명한데.”
“케즈론? 정말?”
케즈론이라는 말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표정이 변했다. 그만큼 케즈론이라 하면 신용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5천만 원 번 거 다 줄게. 그러면 나 이제 게임하러 가도 되지? 가서 또 몬스터 잡고 돈 벌어야 하거든. 아이템 잘 뜨면 5천만 원이 아니라 억도 우스운 게 케즈론에서 만든 게임이야.”
“어? 어. 그, 그래. 그런데 정말이니?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돈은 언제 줄거니?”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던 어머니는 다시 의심한 가득한 눈초리를 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줄게.”
민규진이 곧바로 돈을 보내자 부모님의 얼굴에 놀람과 감격이 생겨났다. 그리고 방금까지 그토록 화를 내던 어머니의 얼굴이 온화해지고 한심해하던 아버지의 표정도 밝아졌다.
민규진은 짜릿함을 느꼈다. 평생 못 사귀던 여자 친구를 비록 게임에서나마 사귀고 거액의 돈을 번 것도 모두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은 비단 민규진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현실 속에 파고든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점점 더 현실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현실보다 더 시간을 들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