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 문명 발전 -->
대규모로 펼쳐진 이번 대회를 계기로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했다. 말로만 듣던 가상현실 게임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제 눈으로 보고 나니 흥미를 가진 중장년층이 생겼던 것이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 없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 보면 되는데다 마치 영화처럼 지나침이 없으면서도 화려한 무술로 싸우니 단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중년의 여성들은 재봉이나 요리 등으로 치열한 승부를 겨루는 영상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관심이 점점 폭넓어지자 케즈론의 후원으로 방송사에서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서 예능을 찍기도 했다. 50대 이상의 연예인들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처음으로 배운 능력들로 승부를 겨루는 가벼운 예능이었다.
가상현실이 뭔지도 모르고 참여한 50대가 넘는 연예인들은 현실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 마치 젊은 시절처럼 가벼운 감각에 진심으로 놀라며 즐거워했다.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나이와 비슷하게 생성이 됐지만 어리게 만들면 최대 40대 초반 정도로는 생성이 가능했고 원하면 자기 나이와 맞도록 머리도 희게 바꿀 수 있었다.
어찌됐든 현실과 똑같으면서도 본래와 다르게 가볍고 지치지 않는 몸과 신비로운 분위기에 몰입해서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다들 즐겁게 녹화했다.
녹화한 예능이 방영되자 별 생각 없이 지켜보던 중장년층은 도대체 어떤 기분이기에 저렇게나 좋아하는지 궁금해 했고 이에 맞춰 시황은 간단하게 가상현실 게임을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소를 지역마다 설치를 했다.
흥미를 가졌던 사람들, 그 중 나이가 제법 나가는 어르신들이 속속 방문해서 가상현실 게임을 체험했고 현실과도 같으면서도 젊은 시절처럼 몸이 가벼운 그 느낌에 빠져들어 구입해 가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루나R을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케즈론 측에선 집에 컴퓨터가 있는지, 혹은 케즈론에서 나온 스마트폰을 쓰는지 확실하게 묻고 팔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여지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젊은 층만이 아니라 나이가 제법 있는 어르신들도 젊은 날의 건강함을 되찾게 해주는 가상현실에 빠져들었다.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 번이라도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를 체험하게 되면 그 중독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접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현실과 다르게 꿈에서만 상상하던 다양한 능력을 발현하게 되니 삶에 의욕을 잃은 사람들조차도 가상현실에 푹 빠져들었다.
이렇게 되니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생기게 됐다. 지나친 몰입성으로 인해 학업이나 일을 하지 않고 가상현실에만 빠져 생활해 나가는 사람들이 급증했던 것이다. 가혹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꿈과 희망만이 가득한 천국 같은 가상현실에 빠져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여러 활동으로 돈을 벌 수도 있었다. 비싼 아이템을 주워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 아니라 길가다 있는 여러 재료들만 주어다가 경매장에 팔면 현실에서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다 가끔 희귀하게 나오는 재료 아이템을 얻기라도 한다면 몇 달 동안 일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을 단번에 얻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아르바이트처럼 지치거나 힘들게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스킬도 올리면서 즐겁게 돈을 버는 가상현실을 선호하는 사람이 점점 증가했다.
가상현실에 대한 과몰입으로 인한 지적이 인터넷 뉴스나 공중파 뉴스에 슬슬 등장할 무렵,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던 20대 후반의 남성이 피로 누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 그는 계속된 취직 실패로 꿈과 희망만이 가득한 가상현실 게임에 모든 시간을 사용했고, 식사를 하라는 경고문구가 떴음에도 신경도 쓰지 않고 밤까지 새며 게임을 하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과몰입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해나가던 찰나에 이런 사건이 나오게 되자 단번에 가상현실에 관한 문제점을 크게 부각하는 언론매체가 증가했다. 특히, 중, 고등학생의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애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가상현실 게임에 빠져있다고 크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결국, 9시 뉴스에도 가상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얼마 전, 한 청년이 지나치게 가상현실에 몰입해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요즘 지나친 현실성으로 인해 가상현실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나운서의 질문에 옆에 앉아 있던 전문가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케즈론에서 나온 가상현실 게임은 기존과 다르게 실제와도 같은 감각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우리의 몸이 위험할 때 보내는 신호인 불안, 초조, 허기, 고통 등이 게임 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마약을 한 것처럼 행복한 감각만을 느끼게 되어 큰 중독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케즈론 측에서 고쳐야 할 점은 없을까요?”
“지나친 현실성으로 인해 현실에 대한 의욕도 잃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게임 시간을 제한하고 인간이 느끼는 신호를 게임 상에서도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현실과 같이 몸에 좋지 않은 여러 신호를 느끼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게임 시간을 줄이고 건전한 현실 생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나운서와 전문가가 인사하며 뉴스를 마쳤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고 했지만 뉴스를 본 사람들이 느끼기엔 기도 차지 않는 해결책이었다. 재미있으려고 하는 게임인데 현실처럼 힘들고 괴로우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게임이 재미있다고 시간제한을 걸어서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발언은 게이머들의 큰 분노를 샀다. 마음대로 자신들이 즐기는 게임 시간을 제한하려는 강압적인 해결책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단번에 뉴스를 진행했던 방송국 뉴스 게시판에 불이 났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를 즐기던 게이머들 사이에 어쩌면 시간제한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비극적인 뉴스가 전파되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게시판에 비난글을 작성했다.
[안 그래도 세상살이에 지쳐서 게임으로나마 위안을 받는데 이걸 제한한다고? 이 새끼들은 양심도 없나?]
[아예 일만하라고 그러지? 아, 근데 일자리가 없나? 이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임? 케즈론은 엄청난 기술력으로 국내 위상이라도 높이지 이 새끼들은 하는 것도 없으면서 제한만 하려고 하네]
[이번 사건은 게임 중독으로 몰아갈 게 아니라 취업난으로 인한 현실 도피 쪽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가 중독성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안전을 위한 장치가 잘 되어 있고 실의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현실과 같이 생활해나가며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자칭 전문가라는 놈들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게임 규제만 하려고 하는데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의 기술력과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취업률 증가를 위한...]
안 그래도 쌓여 있던 불신이 이번 일을 계기로 터져 나오다 시피 했고, 쓸데없이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전문가에 대한 비난이 끝없이 이어졌다.
실제로 현재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와 흥행을 끌며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여자든 남자든 예쁜 옷을 뽑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고, 결혼, 월세 등 가상현실에서 문화를 누리기 위해 다양한 지출을 했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의 성공은 케즈론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게임이니 제한을 한다는 말에 유저들이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현실보다 가상현실에 더욱 애착을 가진 사람까지 존재했다.
시황 또한 이런 논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락을 받기도 했고 직접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기도 했다.
그래서 논란을 잠재우고 가상현실이 가진 무궁무진한 기회를 보여줄 겸, 시황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건 여러 가지 신체 문제로 거동을 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케즈론에 신청만 한다면 간단한 심사를 거쳐 무료로 루나R과 컴퓨터를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꽤나 크게 홍보를 했기 때문에 수많은 신청이 쇄도했고, 시황은 그 중에서 몇 명을 선택해 몸이 아픈 사람의 집에 직접 방문을 하기로 했다.
**
시황은 찬미와 함께 컴퓨터와 루나R을 차에 싣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으로 들어갔다. 이미 차들이 가득 들어찬 골목에 간신히 주차를 한 시황은 케즈론Z와 루나R을 가지고 내렸다.
금이 간 콘크리트 담장을 지나 녹이 슨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벽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요란한 소리가 나자 세월의 흔적이 얼굴이 가득 담긴 70대의 노인이 나와 대문을 열어주었다.
“누구요?”
할머니는 말쑥한 시황을 훑어보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강시황이라고 합니다. 혹시 할머니께서 케즈론에 지원 신청하셨어요?”
“케 뭐, 뭐요? 난 그런 거 모릅니다.”
역시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듯 했다.
“그러시면 혹시 자녀분에게 물어봐 주실 수 있으세요?”
“잠깐만 기다려 보쇼.”
할머니는 집으로 들어가더니 큰 목소리로 케 어디서 왔다면서 잠깐 나와 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가, 강시황이다!”
그리고 시황을 보는 크게 놀라 소리를 쳤다.
“안녕하세요. 혹시 케즈론에 가상현실 게임 지원 신청 하셨나요?”
“아, 네, 네. 제가 했어요. 혹시 된 건가요?”
“네. 사연을 보고 제가 직접 케즈론Z와 루나R을 전해 드리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강시황 대표님께서 이런 곳을...”
그는 혹시 TV촬영을 하려고 카메라하고 같이 왔나 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리 봐도 시황과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뿐이었다.
“몇몇 분들은 제가 직접 방문해서 설치해드리고 있어요. 여기서 얘기할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 죄송합니다. 들어오세요.”
시황은 팔은 물론이고 다리와 몸 전체가 좋아 보이지 않는 보이는 남자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설치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사연부터 들었다. 그는 원래부터 몸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일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팔과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얘기 도중 시황은 용언을 사용해 조금이나마 몸이 편안해지도록 만들어 주었다. 시황의 능력이라면 완벽하게 치료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지 단번에 치료해버리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만 생길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오늘따라 몸이 편하네요. 누추한 곳에 대표님께서 와주셔서 그런가 봐요. 하하.”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죠.”
시황은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도 치유력을 발현하고 있었다. 시황의 용언 덕에 남자는 앞으로 몸이 아프지 않게 지낼 정도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다.
남자를 위로해준 시황은 슬슬 본격적으로 가상현실을 체험시켜주기 위해서 케즈론Z에 루나R을 연결했다. 그리고 자리에 누운 남자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물었고, 시황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자, 이제 접속 됩니다.”
“어? 어?”
검게 물든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갑자기 잔잔한 바람이 부는 숲속이 시야에 들어오자 남자는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잘 움직이지 않던 팔과 다리가 아무 이상도 없이 멀쩡한 것이 아닌가?
남자는 곧바로 조심스럽게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신비롭게도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팔과 다리가 멀쩡하게 움직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그 감각에 남자의 얼굴이 복잡 미묘하게 변하더니 이내 더 없이 환해졌다.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하하...”
못 믿긴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곧이어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이 자유로운 감각을 느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비록 가상현실이라고는 하나 다시 이렇게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몸까지 떨려왔다.
간단한 튜토리얼을 마치고 캐릭터 까지 생성해 자유롭게 모험자의 도시 펠론트를 정신없이 구경하던 그는 시황이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자 황급히 게임을 종료하고 성치 않은 몸으로 루나R을 벗어냈다.
“죄송합니다. 너무 몰입해서 대표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깜빡했어요.”
“괜찮습니다. 게임은 만족하셨어요?”
“아... 정말, 정말 만족했습니다. 게임이라고 하지만 꼭 진짜 제가 성한 몸을 움직이는 것만 같아 정말 기뻤어요. 이런 감각을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이런 대단한 걸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게임을 하더라도 너무 몰입은 하지 마시고 식사도 하시고 즐겁게 즐겨주세요.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벌써 가시게요? 이렇게 비싼 걸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대접해드린 게 없는데...”
남자는 시황이 일어나자 같이 일어나려고 했다.
“괜찮아요. 누워 계세요. 아프신데 일어나시면 제가 죄송해요. 혹시라도 쓰시다가 문제가 있으면 부담 없이 언제든지 저희 회사로 연락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할머님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황은 할머니에게도 인사를 했다.
“벌써 가는 거요? 더 있다 가지 그래.”
“일이 있어서요. 두 분 다 항상 건강하세요. 이제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시황과 찬미가 인사를 하고 허름한 대문을 나갔다.
남자는 자리에 누워 시황의 뒷모습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잠시밖에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왜 시황이 그토록 대단한 남자인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언론용으로 쓰기 위해 카메라까지 동원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시황은 진정으로 걱정하고 위로를 해주었다.
잠시간 시황과의 만남을 음미하던 남자는 이내 다시 루나R을 썼다. 다시금 자유롭던 그 감각을 느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