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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625화 (62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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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 발전 -->

긴장도 걱정도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분노라는 감정까지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만약 루나모스나 자신에게 초월적인 능력이 없어서 그녀들이 끔직한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울컥할 정도로 뜨거운 분노가 생겨났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한강규가 했다기엔 이미 그는 꿈도 희망도 없이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복수를 할 온전한 정신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짓을 할 존재는 누구인가?

시황은 유산을 얻은 이후로 누군가에 피해를 줬나 생각해봤지만 별다르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업이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건 시황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복수나 원한은 어떠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높이기 위해 치밀한 설정을 짜두기 마련이다. 갑작스러운 상황과 뜬금없는 복수는 의아함만을 가져올 뿐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욕망과 질투 등의 감정으로 점칠 되어 어떠한 이익이나 목적, 분노 등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이 존재했다. 시황이 전혀 모르는 곳에서 이익을 위해 위험한 일을 꾸몄다고 해도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의 이례적인 성공으로 그런 사람들이 특히나 많이 늘었다. 어떻게든 해킹해서 정보를 빼내려는 사람이나 불법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사람, 핵심 기술을 훔치려는 사람 등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케즈론을 공격했다. 물론 유산으로 받은 고위문명의 보안 시스템과 루나모스의 능력으로 손쉽게 막고는 있지만 말이다.

시황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방에는 이미 루나모스가 침대에 앉아 있었고 바닥에는 냉동이라도 된 듯 의식 없이 굳어버린 직원이 누워있었다. 그는 아까 짐을 들어줬던 사람 중 하나였다.

“어떻게 된 거야?”

“그가 복도에 폭탄이 든 가방을 내려놓고 도망가려기에 붙잡아 뒀어요.”

“어떤 계획이었던 거야? 누구한테 지시 받은 건가?”

“맞아요. 그는 블러드문이라는 테러 단체의 지시로 폭탄을 설치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큰 위력은 아니지만 몇 명을 죽을지도 모르는 파괴력은 가진 폭탄이었어요. 그들은 경고의 의미로 먼저 폭탄을 터트리고 계속된 위협을 가해 막대한 돈을 뜯어내려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납치를 계획하기도 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그건 조금 어렵다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렇군. 나도 이제 그런 위험에 처하는 존재가 된 건가. 그런데 그 정보를 전부 이 남자한테 뜯어낸 거야?”

“이 남자는 명령을 받고 폭탄만 설치했을 뿐이에요. 정보는...”

*

사람 하나 다니지 않을 만큼 좁고 으슥한 골목길에 어두운 코트를 입은 남자가 거대한 호텔을 바라봤다.

묵묵히 지켜봤지만 케즈론이 인수한 휘황찬란한 호텔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실패한 건가?”

남자는 왼팔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밤 12시 47분. 예정된 시간보다 42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갔다.

그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시황이 머무는 호텔을 폭발시키기 위해 일하는 직원을 거액으로 매수했다. 예정대로라면 정확히 12시 05분에 건물의 일부를 폭파해 시황의 연인 몇 명을 죽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42분이나 지났음에도 폭발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여태껏 기다리고는 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잠시 더 지켜보던 남자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매수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전화기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생각해보니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 확실한 건 매수한 직원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 전화를 끊는 게 마땅하지만 그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었다.

“누구지?”

그는 여전히 미간을 찡그린 채로 물었다. 계획이 어긋났거나 실패했다는 건 이미 직감했다. 그렇기에 지금 전화를 받은 남자의 정체를 알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이 노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네가 강시황인가? 대단하군. 직접 전화 받을 생각을 하다니.”

시황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남자는 바보처럼 황급히 전화를 끊거나 하지 않았다. 도리어 여유롭게 대화를 했다.

“무슨 목적으로 절 노리신 거죠?”

“글쎄? 궁금한가? 크큭. 한 가지 가르쳐주지. 이번 건 경고일 뿐이야. 운 좋게 미리 폭탄인 걸 알아차렸나 본데 다음번엔 더 성대하게 맞아주도록 하지. 아아, 걱정은 말라고. 피해를 보는 건 네가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이지 너는 아니니까. 크큭.”

할 말을 끝낸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애초에 이렇게 대화한 것도 시황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을 잃고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더 이상 가진 걸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순순히 말을 듣기 마련이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전부 가상현실을 만드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을 빼앗기 위한 과정이었다. 사실 이미 이전부터 가상현실 게임의 핵심 기술을 훔치기 위해 여러 번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떻게 관리는 하는 건지 보안이 너무 강했던지라 어떤 수를 써도 핵심 기술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황이 여행을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쓰기로 결정한 거였다. 공포에 빠진 인간만큼 말을 잘 듣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방금 전의 전화로 보나마나 강시황은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겠지? 하지만 한국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을뿐더러 떠나기 전까지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였다.

“마지막 안식을 즐겨두라고. 크큭.”

남자는 케즈론 호텔을 뒤로 하고 어둠속에 몸을 숨기려고 했다. 전화통화를 했다고 해서 시황이 자신의 위치를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악역으로서 이렇게 사라지는 게 당연한 거였다.

“벌써 잠이 다 깨버려서 말이죠.”

그런데 남자 앞에 한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누구지?”

그는 다시금 미간을 찡그리며 앞에 나타난 남자를 쳐다봤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건장한 체격을 한 남자, 바로 시황이었다.

“당신이 찾는 듯 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어, 어떻게 여길 알고.”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남자가 당황했다. 방금 통화를 했다는 건 분명 호텔이라는 말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신이 있던 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다 아는 수가 있죠. 보니까 꽤나 무서운 짓을 계획하신 것 같은데, 그만큼 각오도 되신 거겠죠?”

“흥, 네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수고를 덜었군. 널 납치해서 정보를 빼내는 쪽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니까.”

잠깐 당황하던 남자는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 곧바로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시황을 겨누었다.

“그, 그건...”

전역한 이후로 처음 총을 보는 시황이 크게 당황해하자 남자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드리웠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배에 총구를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거대한 소음과 함께 탄환이 시황을 향해 질주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피하지도 못하고 막아낼 수도 없는 끔찍한 무기가 죽음의 이빨을 드리우고 시황의 배를 파고들려고 했다.

텅!

그런데 시황의 배 부분에 금빛의 비늘 같은 게 생겨나더니 그대로 탄환을 튕겨냈다. 그리고 튕겨진 탄환은 그대로 남자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 이게 무슨... 컥!”

당연히 시황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어야 하는데 정작 자신의 가슴이 뚫리고 말았다. 남자는 급격한 고통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저런, 많이 아프시겠어요? 원래는 제가 총에 맞아드려야 하는데 이를 어쩌죠?”

시황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목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커억...”

“내가 다른 건 참아도 내 여자 친구들을 건드리는 건 못 참아. 그런데 너희들은 나한테 가장 건드리면 안 될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어.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 블러드문인가 하는 단체를 깡끄리 없애주지.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민망한 대사가 되는 건가? 어쨌든 너희들 다 죽이겠다는 말이야.”

시황은 서서히 남자의 목을 졸랐다.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힘에 남자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커억, 나, 나를... 죽이면 너, 넌 더욱 위험해... 컥...”

“뭐? 위험에 처한다고? 진짜? 어쩌지?”

시황은 손에 힘을 풀고 남자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다시 가슴에 있는 권총을 하나 더 꺼내 시황을 겨누었다. 남자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내가 왜 널 놓아준 지 알아? 너무 쉽게 죽이는 게 아까워서야. 너희같은 쓰레기들은 조금 더 고통을 받아야 하거든.”

시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금 총성이 울렸지만 인간 따윈 가볍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총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황은 총을 빼앗아 남자의 배에 그대로 총을 쐈다. 몇 번의 총성이 울리고 남자의 배에서 흥건히 피가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남자가 완벽하게 허물어졌다.

“커억...”

“네가 죽인 사람들의 고통을 느껴보라고.”

시황은 남자가 고통만 느끼고 죽지 않도록 용언을 사용했다. 그리고 드래곤만이 해독가능한 독을 걸었다. 30분이면 인간의 전신을 잠식하고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죽게 만드는 그 독은 어떠한 흔적조차 남지 않는 두려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 살려...”

땅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는 남자를 잠깐 쳐다보던 시황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연인을 죽여 원하던 것을 얻어내려던 블러드문인가 하는 테러 단체를 아예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이미 루나모스를 통해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들을 낱낱이 봐둔 상태였다. 그들은 돈이 된다면 살인 따위는 우습게 할 정도의 쓰레기들이었다. 죽인다고 해서 죄책감 따위가 들리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몇 걸음 걷자 순식간에 블러드문이 숨어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시야가 변하고 나타난 곳은 거대한 방이었다. 환하게 빛나는 거대한 방은 블러드문의 수장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거대한 침대에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나체가 된 채로 블러드문의 수장과 질퍽한 섹스를 하고 있었다.

시황은 용언으로 여자들을 잠재우고 한참 흥겹게 섹스를 하고 있는 블러드문의 수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떤 새끼야!”

그러자 당연하게도 대머리의 블러드문 수장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시황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절 찾는다고 해서 왔습니다.”

시황은 가볍게 인사를 했다.

“무슨 개소리야. 이 새끼 넌 내가 죽을 때까지 칼로 쑤셔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으라고. 야! 들어와서 이 새끼 잡아!”

블러드문의 수장이 소리쳤지만 밖에선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 있죠. 그게 심지어 살인이라 하더라도. 평범하게 살아왔던 제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테러 단체의 대상이 돼서 심히 두렵고 어리둥절하긴 합니다만, 당신들을 이 세상에서 전부 죽이는 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 되는 듯해서 곧바로 오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악당이란 이익을 위해서, 목적을 위해서 시황처럼 선량한 사람을 불시에 괴롭히기 마련이었다. 약간 얼떨떨하긴 했지만 시황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블러드문인가 하는 테러단체를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

알량한 선의로 경고만 줘봐야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연인을 노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불행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그들을 처리해야 했다.

시황은 이미 반신에 다다른 존재였다. 원한다면 지구조차 멸망시킬 수 있는 막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새 이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시황은 새삼 자신이 가진 능력에 놀라워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강대한 힘을 품은 고고한 시황의 눈동자가 흥분한 블러드문의 수장을 응시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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