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12. 확장 =========================================================================
“장전 후 자유롭게 쏴!”
- 타탕! 탕! 탕!
“첨지 영감! 기마군은 어떻게 합니까?”
사격 중에 기마군에서 전령이 와서 이민호에게 명령을 촉구했다. 이민호는 뒤에 나타난 적부터 잡으라고 명령했다.
전령이 탄 말이 달려가고, 잠시 후 기마군이 움직여 후방의 적군 뒤로 돌아갔다. 기마군은 세 발씩 쏜 다음 창과 칼을 빼들고 파폴라족의 배후로 일제히 돌격했다. 뒤는 기마군에게 맡기고 이민호는 앞쪽을 주로 신경 쓰기로 했다.
“착검 후 계속 쏴!”
- 탕! 타탕!
“1, 2열 전진하면서 쏴!”
이민호가 권총을 꺼내들며 명령을 내렸다. 대열 중간에서 대정들이 지휘해 발을 맞춰 앞으로 전진했다. 적이 몰려올 때마다 소총을 일제 발사해 파폴라족은 아직 단 한 명도 총병 대열에 뛰어들지 못했다.
파폴라족 전사들이 쓰는 칼은 쿠크리 단검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것을 거꾸로 든 듯한, 그러니까 보통 문화권의 기준으로 바로 든 모습이었다. 칼날이 날카롭게 뒤로 휘어져 사람 목 베는 것쯤은 문제도 안 될 것 같았다.
- 타앙!“
장전 중이던 간수군들에게 뛰어들려던 파폴라족 전사가 배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민호가 쏜 총에 맞아 죽어가던 전사가 증오가 가득 담긴 눈길로 쏘아보았다.
- 푸욱!
그러나 눈길을 마주치자마자 간수군이 총검으로 그 전사를 찔러 죽였다. 대열은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소총을 발사하고, 땅에 쓰러져 이미 죽어가는 전사들을 총검으로 찔렀다.
기마군이 좌우에서 협공한 뒤쪽은 벌써 정리됐고, 3, 4, 5열도 1, 2열에 따라붙었다. 화력이 두 배 이상 증가하자 파폴라족 전사들은 늘어나는 피해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기마군이 대열 좌우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파폴라족의 전의도 완전히 꺾여버렸다. 그토록 용감하게 돌진해오던 파폴라족 전사들이 뒤돌아 도망치고 있었다.
“교대로 쏴! 퍼부어!”
들판에 가득한 피비린내를 참으며 이민호가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는 원주민들이 등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들은 기마군이 창으로 찌르고 칼로 내리쳐 죽였다. 들판이 온통 기장보다 더 붉은 피로 물들었다.
역시 실탄 휴대량 50발은 너무 많았다. 간수군들 중에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열 발 이상 쏜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실탄 휴대량을 줄이면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수 있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
“도련님! 추장인 것 같아 잡아왔습니다.”
계복이 비단옷을 몸에 두른 파폴라 전사의 목에 밧줄을 걸어 끌고 왔다. 계복이 탄 말에 끌려오느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중년 전사가 끝없이 소리를 질렀다.
이민호가 그 전사의 얼굴을 확인했다. 고산국 궁궐에 찾아와서 이번 정벌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사절단 중의 한 사람이 분명했다. 추장이 중국어로 이민호를 꾸짖었다.
“너희들은 침략자야! 침략자를 몰아내는 일이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너는 침략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겠지? 그러나 하늘도 알고 땅도......”
- 탕!
추장이 쓰러지자 이민호가 권총을 사슴가죽 권총집에 담았다.
“누가 아니래?”
이민호는 침략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원주민들을 도와주고 협력했지만 애초에 대만 섬을 정복할 의도로 이 섬 북단에 상륙해 기반을 닦았다.
물론 섬 전역 구석구석까지 정복할 생각도 없고,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나 가능하다면 정복하는 것이 나았다. 원주민 부족들이 합심하여 대만 섬 전체를 들어 바친다면 사양할 생각이 없었다.
“왕 아닌 왕이시여.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국왕전하! 저희들이 중간에 도망간 것이 아니라 다만 유리한 위치를 잡아 적을 포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전투 중에 도망갔던 부족의 지도자들이 이민호에게 다가와 절을 했다. 추장들은 네 배나 많은 수의 파폴라족 전사들에게 양쪽에서 포위당하고도 전혀 피해 없이 무찌르는 모습을 보고 충격 받은 표정들이었다.
이민호는 그들을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었으나 전황에 크게 상관없었을 테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미 승리했는데 낯붉힐 필요도 없고, 길게 봐서 이게 나았다.
“됐소. 전리품을 챙겨서 전사들에게 나눠주시오. 그리고 궁궐에 가면 상을 내릴 테니 꼭 받아가시오.”
“항상 백성들을 굽어 살피시는 국왕전하의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추장들이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 동안은 이민호가 그냥 호구라서 생각했었을 텐데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니 대하는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이들이 욕심을 접은 것은 아니었고, 이민호는 그들의 눈빛에서 타오르는 탐욕을 느꼈다.
이때 파폴라족 마을 쪽에서 화려한 복장에 무거운 머리장식을 한 노파가 젊은 여자 둘의 부축을 받으며 이민호에게 다가왔다. 노파가 젊은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전쟁에 패했으니 승리자인 국왕 마음대로 하시오. 마을에서 성인 남자들을 찾아서 다 죽여도 좋소. 다만 이 늙은이를 죽임으로써 다른 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주시고, 애들도 살려주시오.”
파폴라족 대추장이라는 노파가 오체투지하며 최상의 예를 이민호에게 보냈다. 그러나 다른 부족 추장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파폴라족 마을들을 불태우고 부족원들을 모두 노예로 삼아야 합니다. 파폴라족에게 그 동안 피해를 입은 부족들에게 보상으로 나눠주소서.”
“파폴라족은 모든 것을 저런 늙은 여자들이 결정합니다. 여자 추장들을 남김없이 처형하고 젊은 딸들을 능욕해 더러운 파폴라족의 혈통을 끊어야 합니다.”
추장들이 이민호에게 간언했다. 그러나 이들의 눈빛에 탐욕이 가득해서 이민호는 혐오감을 느꼈다. 겁쟁이들이 원하는 것은 많았지만 다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파폴라족 전체를 10년 간 고산국왕의 노예로 삼고 그 땅을 왕실의 직할지로 삼겠소. 그러니 다른 부족들은 국왕의 노예와 땅을 침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 그것은 좀...... 아이들이 자라면 복수하러 나설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 씨를 말려야 합니다.”
“오늘처럼 떼죽음 당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도전하라 하시오.”
이민호의 이 발언은 다른 부족들에 대한 경고도 충분히 됐다. 추장들이 감히 대꾸를 못했다.
파폴라족 전사 수천 명이 쓰러진 벌판에 무릎 꿇은 여자 대추장이 여전히 절을 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병력을 이끌고 북상을 시작했다. 고산국의 무력을 접하고 겁에 질리거나, 전리품을 못 받아 불만에 쌓인 원주민 전사들도 이민호를 따랐다.
오후에 도착한 곳은 바부자 부족 영역 안에 보급품 수레가 모인 들판이었다. 이민호는 여러 부족의 추장들을 모았다.
“한 달 정도의 원정을 예상했으나 여러 부족들의 도움으로 하루에 전쟁을 끝내게 되었소. 이로 인해 고산국도 전비를 절약했으니 그 이익을 여러 부족들과 나누고자 하오.”
파폴라족을 점령한다 해도 전리품이란 사실상 없으니 결국에는 이민호가 또 호구 짓을 하게 됐다. 쌀과 소금, 간장과 술을 충분히 나눠주니 추장들이 기뻐했다. 파폴라족 마을을 약탈하지 못했지만 얻은 것이 많아 이로써 추장들의 권위가 설 것 같았다.
경인년(1590) 여름, 외륜선 두 척이 마카오로 향했다. 마카오는 원래 광저우 바깥 작은 섬이었는데 오랜 세월 모래가 쌓여 육지에 이어지면서 반도가 되었다. 이곳 바닷가에 명나라 남부지방의 어부와 항해자들이 숭배하는 여신 아마를 모시는 사당 마조각(媽祖閣), 별칭으로 아마각(阿媽閣)이 세워져 있었다. 이것을 광둥어 발음으로 읽은 아마가오에서 마카오라는 이름이 나왔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물에 젖은 상품을 말린다는 핑계로 해도부사(海道副使) 직책의 명나라 관리에게 부탁해 자리를 잡고, 나중에는 뇌물을 주면서 은근슬쩍 정착한 곳이었다. 1572년에 정기적인 뇌물 수수현장이 중앙 관리에게 들키면서 공식적인 세금으로 전환되고, 정식으로 거주하고 나서 건물도 많이 세우게 되었다.
선착장에 들어선 외륜선 두 척이 돛을 접은 갈레온과 나우 사이에 정박하고 이민호가 수하들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선수루와 선미루가 높은 외륜선은 포르투갈의 카락인 나우와 외형이 무척 비슷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탄 산타마리아호가 스페인식 나오였으니 이미 100년이나 된 낡은 선형이었다.
마카오의 첫 느낌은 덥다, 두 번째는 찐다는 것이었다. 위도가 낮아서 그런지 대만 북부보다 훨씬 더워 생고생을 하게 됐다. 짐을 진 수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이민호를 따랐다.
세나도 광장으로 향하는 중간에 포르투갈어로 자비의 성채라는 간판이 붙은 허름한 판잣집이 서 있었다. 나중에 유명해질 성 도미니크 성당이란 곳도 지금은 나무로 지어진 작은 예배당 수준이었다. 지금은 수도원 옆으로 옮긴다고 공사 중이었다.
마카오에 요새나 시의회건물 같은 것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1580년에 완성된 성 바울 성당만이 마카오에서 유일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이 성당은 1595년과 1601년에 화재로 소실된다. 1637년 그 자리에 다시 지어진 성당도 1835년에 또 화재가 발생해 앞쪽 벽면만 남고 무너진다.
마카오는 이민호가 현대에서 알았던 화려한 도박도시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소박한 가운데 로마 가톨릭의 경건한 종교적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포르투갈 상인과 선원들, 예수회 선교사들, 탐험가, 여행자 등 포르투갈 백인들과 마주쳤다. 언덕에는 중국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으며 명나라 관리들은 상인들이 거래하는 물품에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필리핀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짐을 이고 돌아다녔다.
“동 리! 동 리!”
애처롭게 부르는 소리가 있어 이민호가 고개를 돌렸다. 웬 거대한 체구의 포르투갈 상인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동 리 아니십니까? 오오! 주여! 감사합니다. 제가 나가사키에 찾아갔습니다. 동 니시무라의 상회에 가보니 얼마 전에 동 리께서 나가사키를 방문했다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뜻밖에 여기 마카오에도 이민호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지난해 나가사키에서 옥 도자기를 구입했던 포르투갈 상인 두아르테였다. 두아르테가 원래 두 아르떼(du Arte)에서 나온 합성어인데 여기에 다시 포르투갈어 경칭인 동(dom)을 붙이니 문법 구조가 이상해졌다.
당시 항해기술로는 마카오에서 6~8월에 계절풍을 타고 나가사키로 갔다가 겨울에 북풍을 받고 돌아와야 하므로 일 년에 딱 한 번밖에 항해를 할 수 없다. 당시 범선이 역풍을 이용할 수 있다지만 정상적인 항해를 하기 어려웠다. 남풍이 부는 이 계절에 두아르테가 마카오로 돌아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동 두아르테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설마 벌써 고국까지 다녀오신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배에 보물을 약간 넘기고 나머지는 말래카에서 이슬람 상인들에게 넘겼습니다. 무굴제국 상인들과 아랍인들이 옥 도자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황제나 술탄에게 진상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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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중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