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5 13.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 =========================================================================
“첨지 영감, 오셨습니까?”
“가르치는데 뭐 어려운 건 없소?”
댕기머리 여선생이 교무실로 쓰는 방에서 같이 차를 나누며 대화를 가졌다. 이민호는 고산국의 국가체제가 정비되면서 자기에게 왕이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게 했다. 허수아비 여송 사람을 국왕이라 부르고, 이민호는 때에 따라 절도사나 예국 참판을 칭했다. 조선 출신들은 흔히 이 첨지로 이민호를 불렀다.
“학생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으니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조선말이 외국인들이 배우기에 굉장히 어려운가 봐요.”
“아랍어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말이랍니다. 최 선생이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학교 건립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많아져서 이곳저곳에 학교가 많이 필요합니다.”
“교사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데 지원자가 별로 없어요. 고산국에는 교육 받은 사람 자체가 드물고, 양반이나 서출이 간혹 있지만 녹봉을 많이 준다는데도 교사 일은 하지 않으려 해요.”
“교사는 하늘에서 내린 천직이라 하니까요. 체질이 아니면 버티기 어렵죠. 억지로 교사직을 맡기려 해도 다들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도 어렵군요.”
여선생 나이는 겨우 십대 후반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답게 선생 앞에서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말하기, 읽기보다는 앞으로가 걱정이시죠?”
“예. 의과와 잡과도 만들어서 의원과 하급 관리들을 양성해야 하는데 고산군에 의원은커녕 약제사도 없으니 큰일이오.”
“이 첨지께서 신분에 구애받지 않으신다면 서얼 가문 소생이나 서출들을 불러보세요. 조선 팔도에서 잘 찾아보면 여기서 훈장이나 의원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많을 거여요.”
“학식이 높은 선비는 필요가 없고 사실 고을 관아에서 일하는 녹사나 아전급만 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구하기 어렵지 않겠소?”
“그렇군요. 소문이라도 나면 좋으련만. 제가 친척이나 벗들에게 편지를 써볼게요.”
“고맙소.”
최 선생이 살짝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미녀들에 둘러싸인 채 살아왔던 이민호가 잠시 흔들릴 정도였다.
“고맙긴요, 저도 첨지 영감의 백성인 걸요.”
“최 선생은 백성보다는, 음. 관료가 되는 것이 좋겠소.”
젊은 남녀가 한 방에 오래 있는 것이 걸려서 이민호가 서둘러 물러 나왔다. 최 선생은 규수로서도 아주 괜찮을 것 같았지만 괜히 처녀 신세 하나 망쳐놓을 것 같아 이민호는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갖자니 좀 그렇고 남 주기에는 아까운 그런 여자였다.
이주를 희망한 도공 두 가족을 고산국에 정착시키고 호위를 붙여 고령토를 찾게 했다. 내수사에서 경상도 남해안의 도공들을 보살펴주긴 했으나 철없는 양반이나 아전들이 재산을 침탈하는 경우가 있어 열 받아 건너 온 도공들이었다. 도공들 중에 첫 번째 이주자들이라 이민호는 이들을 잘 대해주었다. 장기적으로 도공들 일부를 고산국으로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이민호가 기억하기에 현대의 대만에서 고령토가 대량으로 생산됐으니 시간이 지나면 찾을 것이 확실했다. 고령토는 도자기 제작뿐만 아니라 제지산업과 세라믹 제작에 있어서도 필수 원료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공들이 하얀 색의 고령토를 발견했고, 그 근처에 가마를 짓고 생산 준비에 들어갔다. 이민호는 가마에 땔감을 공급하라고 근처 원주민 열 가구와 계약해 도공들에게 배정해주었다.
그러나 조선인 기준으로 품삯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열 가구가 매달 받는 쌀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주민 300명이 나눠먹기에 충분했다. 케타갈란족 사냥꾼 마을 하나가 나무를 베고 심는 일 빼고는 거의 매일 놀고먹게 되었다.
그게 꼴 보기 싫어서 이민호가 마을 주민들에게 도공의 호위와 가마 주변의 경비를 맡겼다. 추가된 품삯은 단 2명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왕이 인정했다면서 기고만장, 기세등등해져서 가마 주변을 완전히 통제했다.
말을 타고 해중국에서 해삼과 전복 양식하는 곳을 찾았다. 물레방아를 돌려 차가운 바닷물이 무한정 공급되는 종묘장에는 플랑크톤에 가까운 아주 작은 어린 해삼과 전복이 자라고 있었다. 만 바깥이라 수온이 낮아서 조선에서 가져온 품종도 잘 자랐다.
이민호는 일꾼들을 격려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에서는 미카의 하녀 네이, 지금은 신분이 상승해 시녀가 된 네이코(寧子)가 나기나타를 들고 며칠 전에 도착한 신입 해녀들에게 잠수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해녀들은 천을 끈처럼 꼬아 묶어 치부를 살짝 가린 속옷 하나만 걸치고 있어서 이민호가 보기에 무척 민망했다. 그러나 조선이나 일본의 해녀들은 원래 홀딱 벗고 물질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제주도에 해녀만 있고 해남이 없는 이유는, 1680년에 제주목사가 남녀가 함께 조업을 하지 못하게 명령을 내린 탓이었다.
“네이! 너무 심하게 하지 마.”
“예, 주인님. 하지만 생명에 관련된 일이니 소홀히 할 수 없어요.”
“그래. 안전장비는 항상 착용하고, 둘 이상이 조를 이뤄서 작업을 하도록 해. 여긴 섬 북쪽 끝이라 해류에 한 번 휩쓸려 가면 시체도 못 찾아.”
이민호가 해녀들을 위해 부표와 물안경, 오리발을 만들고 있는데 아무래도 남쪽에서 고무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남미산 파라고무나무는 아직 발견도 되지 않았고, 인도고무나무는 대만은 물론 심지어 조선에서도 온실이나 실내에서 키울 수 있었다. 이민호는 다음에 류큐국 상선이 오면 동남아에서 고무나무를 구해 오라고 시킬 생각을 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먼 나라에 팔려갈 뻔한 불쌍한 여자들을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주인님은 항상 자상하세요.”
이민호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한 네이가 오늘따라 부끄럼을 타며 얼굴을 붉혔다. 갑작스런 묘한 분위기에 당황한 이민호가 헛기침을 했다.
전에 나가사키에서 데려오면서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니 네이는 이민호의 여자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네이를 비롯해 미카의 시녀들을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안지 않았다.
사실 이민호만 아직도 성장하고 있지 시녀들은 이미 다 커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천천히 수확할 때였다.
“네이는 평생 내 여자니까 초조해 하지 마.”
이민호가 네이를 뒤에서 껴안고 옷깃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지금도 매일 무예 수련을 해서 탄탄한 네이의 살결이 만져지는 가운데, 가슴만은 말랑말랑 무척 부드러웠다. 일본 만화에서 여자 무사가 천으로 붕대처럼 가슴을 싸매는 묘사를 봤었는데, 네이는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
“주인님. 아랫사람들이 봐요.”
“내 여자 내가 만지겠다는데 남들이 보면 좀 어때? 군주는 무치라고 누가 말했었지?”
“제가 아니라 여진족 호닌과 굴마훈이 말했어요.”
너무 부끄러워하기에 바위 그늘로 데려가 네이를 꼭 안았다. 이민호가 바람피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미카의 눈치를 보느라 소홀했던 자기 여자들 중의 하나를 예뻐해 주는 것이었다.
이민호는 어느새 알몸이 된 네이와 입을 맞추며 온몸을 더듬었다. 달콤한 네이의 숨결을 들이마시며 하얀 피부에 입 맞추면서 이민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가 큰소리를 내고 갈매기가 지나가면서 욕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이민호는 옷을 벗은 곳에 네이를 눕히고 위에서부터 애무하며 내려왔다. 배에 복근이 탄탄하게 각이 져 있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네이가 온몸을 파들파들 떨 때까지 애무해주었다. 이론과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민호에게 네이가 버틴다는 것은 무리였다.
5분쯤 지나 정신을 차린 네이가 이번에는 무사 집안의 여자가 배운다는 기술을 이민호에게 시전했다. 네이가 나무 깎은 것으로 예전에 연습을 해두었지만 실전은 처음이라 많이 서툴렀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흘러 익숙해지자 이민호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끝나고 나서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이민호도 아주 만족했다. 그래서 헛구역질을 하는 네이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경인년(1590년) 시월 중순이 되었다. 새로 건조한 대형 외륜선 세 척에 조공품부터 시작해 사행무역을 통해 판매할 상품까지 모두 실었다. 나가사키와 마카오에서 1년 동안 팔 물건이 한꺼번에 실린 셈이었다.
그리고 명나라에 입조할 사신단 인원이 최종 확정되자 리허설 같은 예행연습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꼭두각시 국왕은 머리 좋은 사람답게 항상 의젓하게 제 할 일을 다 했고, 호주 원주민 출신 가짜 왕비도 이제는 시녀들의 수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라방 장 점주는 입조 기간 동안 임시로 고산국의 관직을 받아 사신단을 수행하기로 하고 연습에도 참가했다. 장 점주는 구리와 유황이 산출되는 고산국에 명나라 조정이 감합무역을 허가할 예정인데 아직 입항할 곳이나 선척 수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입조해서 정식 책봉만 받으면 정기적으로 매달 몇 척씩 명나라 항구에 합법적으로 들어가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명나라는 해금령이 발효되는 중에도 해외로 나가는 자국 상선에 대해서는 눈감아주었다. 그래서 광저우에서 말래카나 마닐라를 왕복하는 명나라 상인들은 사실상 밀수업자가 아니었다. 장 점주도 고산국 항구에 들어와 무역을 하니까 더 이상 밀수꾼이 아니라 당당한 무역업자였다. 이민호는 신라방 상인들을 위해 특별히 무역 허가장을 써주었다.
“도련님! 국왕과 왕비가 직접 입조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습니다. 명나라에 정 잘 보이고 싶으면 가짜로 태자를 하나 만들어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전례가 있지. 항복한 나라의 국왕은 황도에 입조를 해.”
입조(入朝)는 조회(朝會)에 참가한다는 뜻이다. 자국 관리든 외국 사신이든 구별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주변 국가가 중국에 항복하더라도 보통은 세자를 보내 입조해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몽골의 원나라는 고려에 7차례나 침입하면서 왕의 입조를 여러 번 요구했다. 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왕의 입조를 제시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왕의 입조를 요구하면서, 또는 왕의 입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침입한 경우도 여러 차례였다.
고려는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7차 침입 때 조건부 항복하고 왕이 원나라 조정에 입조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때마침 고종이 승하하고 그때 원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태자가 급히 돌아와 원종으로 즉위하면서 국왕의 입조는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도련님! 고산국이 명나라에 항복한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체면이 중요해? 여긴 조선이 아니라 신생 고산국이야. 물건을 최대한 팔아먹고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최대한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원주민들은 명나라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지만, 문명화된 우리는 못 막는다는 것을 기억해 둬.”
“예.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좀 그렇습니다.”
“계복이 너는 내가 명나라나 일본에 고개를 숙이는 게 싫다는 거지? 나는 좋은 줄 알아? 그런 불만을 품을 시간에 고산국을 두 나라보다 더 강하게 만들 생각을 해봐!”
“그, 그게 가능합니까?”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다니겠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어디 조용한 곳에 틀어박혀 편히 살았겠지.”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는 계복을 제외하고 처음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명나라 사람들에게 강한 첫 인상을 주기 위해 항저우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는 절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
왕과 왕비, 그리고 대신이 하선해서 줄을 서는 과정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이 내려서 춤을 추고 가비알 악어를 내리는 것까지 일일이 연습했다. 피부가 하얗고 순하게 생긴, 그리고 의상의 노출도가 심한 아미족 원주민들이 아주 잘해주었다.
드디어 입조를 위해 출항하는 날이었다. 현대인이 보기에 별 거 아닌 것 같고 국가의 체모를 손상시키는 행위처럼 보이겠지만 당시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입조와 조공을 매우 중요한 외교행위였다.
일본은 본국 귀족들의 사치품에 대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겨우 10년 1공만을 인정받았다. 그 전에 명나라에게 책봉 받는 것을 체면 깎이는 일로 간주해 책봉관계를 거부한 탓에 줄어든 것이다. 모자란 사치품은 밀무역에 의존하다가 결국 명나라 해안에 왜구가 창궐하게 되고, 명나라는 일본에 대해 더더욱 빗장을 닫아걸었다.
조공은 제후국에 이득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유지됐다. 명나라는 조공무역이라는 당근으로 사대관계에 속한 나라들을 조정하고, 때로는 정벌이라는 채찍을 휘두르곤 했다. 조선이 1년 3공, 후에는 1년 4공 이상 조공을 하도록 명나라가 허락한 것은 명나라 국경에 대한 여진족의 위협 때문이었다. 조선 개국 초기 명나라가 조선과 공동으로 여진족을 정벌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조선의 존재 가치를 높이 보고 특혜를 베푼 것이다.
고산국이 1년 1공을 허락받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고산국은 우연히 팽호도의 해적을 복건 순무가 지휘하는 명나라 수군과 함께 정벌하고, 조사에게 고산국이 남만인들과 대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명나라의 해양방어선의 한 축으로 인정받았다. 이제 앞으로 명나라로부터 뽑아먹을 일만 남았다.
이민호는 이렇게 사대관계 속에서 살 길을 찾았다. 자존심 강한 현대 한국인들이 그토록 욕하는 조선시대 사대주의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사신단 전원이 배에 탑승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이민호가 배에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두에 몰려와 영송했고, 미카는 시녀들과 함께 손수건을 흔들면서 눈물을 뿌렸다. 그러나 이민호는 바로 이웃 동네에 상행 가는 기분으로 배에 올랐다.
강에서 바다로 나오자마자 항로를 북으로 잡았다. 역풍이 불었지만 사공들이 돛대를 잘 조절하고 지그재그 항법으로 북으로 향했다. 황소들도 오랜만에 힘을 썼다.
복건성 앞바다를 지나는데 서쪽 수평선에 배 여러 척이 나타났다. 사공이 망루에 올라 배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서쪽에 명나라 군선 12척! 복건 순무어사의 깃발입니다!”
“명나라 사선과 속도를 맞춰 나란히 간다. 소총이 보이지 않도록 해라.”
사공들이 배를 조종해 명나라 군선들과 나란히 항진했다. 이번 사신 행렬에 조선 국적을 가진 간수군들은 단 한 명도 태우지 않았다. 하지만 사공의 절반 이상이 조선 국적이었고, 직할군 대부분은 조선에서 건너와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이 절도사! 입조하러 가는 길이시오?”
“순무 대인! 승진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산국에 대해 좋은 보고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축하해주셔서 고맙소. 이 절도사는 비록 외국의 장수이지만 대명의 간성(干城)이시니 어찌 나쁜 이야기를 위에 보고하겠소?”
보아 하니 복건 순무가 고산국 사신단의 출항일에 맞춰 미리 바다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대국의 고관대작이 이렇게 정성 들여 인사를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이민호는 너무 고마워서 가슴이 울컥했다. 그러나 어느새 복건성과 절강성의 경계가 가까워졌다.
“입조를 한 다음 무역을 허가받으면 복주에 인사하러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강녕하십시오!”
“언제든 오시오. 환영하오. 그럼 장도에 행운을 빌겠소!”
명나라 입장에서는 수시로 동원해서 써먹을 괜찮은 수군 세력을 얻기 위해 잘 대해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민호 입장에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여차하면 명나라의 용병으로 나서서 에스파냐나 포르투갈과 싸울 각오도 되어 있었다.
이민호는 임진왜란 때 조선국 장수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지원하는 제후국 장수로서 조선에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민호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입조를 마치고 나서 전라좌수영에 가면 이순신 장군이 이미 부임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