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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77화 (26/1,000)

00077   14. 입조  =========================================================================

사실 구리는 일본에서 수입해 은 성분을 뽑아낸 것을 명나라에 넘기려고 가져왔다. 이 시대에 구리는 주로 동전을 주조하면서 소모됐고, 명나라에서는 공식적인 동전 외에도 사적으로 주조한 동전이 지역별, 용도별로 유통된 시대라서 구리가 많이 필요했다. 인도 구자라트에서 동전을 처음 주조할 때는 명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구리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의 대명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유황과 구리였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그 두 가지 중요한 수출품이 사라지게 생겼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가늘게 연결돼 있던 교역 선을 차단하는 것이 이민호가 이번 조공에서 세운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였다.

이번 입조로 인해 목표가 어느 정도 성공하자 이민호가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놓으면 이민호에게 여러 가지 유용한 무기가 생긴다. 일본의 구리 수출 가격을 폭락시켜 이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고, 무역적자에 시달린 일본이 임진왜란을 아예 못 일으키게 만들거나, 조선이 아닌 명나라를 공격하게 유도할 수도 있었다.

명과 일본의 무역을 차단시키기 위해 이민호가 들인 노력은 사실 별 거 없었다. 유황은 고산국 궁궐 북쪽 온천지대 근처 노지에서 주웠고, 구리는 일본에서 수입한 구리에서 은을 뽑고 남은 것이었다. 고산국에서는 아직 단 하나의 광산도 개발하거나 운영하지 않았는데도 지하자원이 풍부하다는 소문이 명나라 조정에 나돌았다.

감합무역은 조공무역의 한 가지로 일련번호가 붙은 서류를 서로 맞춰 선박 수와 인원, 교역품의 종류와 양 등을 확인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정기적인 무역이었다. 항저우에 오기 전에 이미 감합무역을 허가받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이번에 구리를 명나라 조정의 예상보다 더 많이 가져온 덕택에 감합무역 규모도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조총을 공물로 준비하셨는데, 대명에 충분히 많은 조총과 대포가 있으니 앞으로 이런 것은 가지고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산국 병졸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까?”

“예. 천조에서 조총을 비싸게 산다는 말을 노인에게 들었는데, 저희가 잘못 안 것 같습니다. 고산국에서 쓰는 조총과 같습니다.”

이민호가 조공을 위해 구한 조총 2정은 완전 골동품이었다. 류큐에서 쓰라고 이민호가 만들어준 것보다 성능이 더 뒤떨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고산국이 사용하는 화약무기의 성능이 뒤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예부 주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해삼과 전복을 많이 가져 오셨군요. 해삼 전문 유통 상인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만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이건 권백 아닙니까?”

“먼 섬에 군사들을 보내 절벽에서 떨어져 가면서 간신히 구했습니다. 보통 흔한 권백이 아닙니다.”

“여러 후궁에서 구해달라던데 잘 됐습니다. 대명에도 좋은 약재가 많이 나지만 꾸준히 천하의 약재를 시험하고 비교해봐야 의학이 발전하는 법입니다.”

양치식물인 부처손은 만년초, 장생불사초, 회양초(回陽草) 등으로 불리고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항암 치료용 약재로 썼다. 여성의 불임증과 냉대하에 큰 효험이 있다고 의학서에 적혀 있었다. 잎이 붙은 모양이 불상의 말아 쥔 손 같다 해서 약 이름으로는 권백(卷柏)이라 불렀다.

“예부 관원으로서 저는 귀국이 준비한 조공품에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과연 정성을 다해 준비해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첫 입조라서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사행무역은 내일부터 지방 관리의 입회하에 진행하도록 하십시오. 첫 조공이고 국왕전하께서 직접 입조하셨으니 가져온 것을 다 팔아 여비에 보태 쓰십시오. 혹시나 물품이 팔리지 않고 많이 남으면 국고에서 나온 자금으로 사드릴 테니 언제든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천조에 폐를 끼치기 두렵습니다.”

“사행무역은 면세 혜택을 받으니 혹시나 관리가 농간을 피우거나 뇌물을 요구하더라도 속지 마십시오. 팽호도 해적을 토벌한 공을 감안해 많은 편의를 봐드리라는 칙명이 있었으니 이렇게 특혜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주사 대인께도 감사합니다.”

예부 주사가 아주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원하는 대로 된 것 같아 이민호도 만족했다.

사절단이 북경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날을 기한으로 커다란 객사 건물을 공짜로 몇 달 빌리고 그곳을 기반으로 사행무역을 시작했다. 사행무역은 정식 조공에 속하지는 않으나 사신단의 왕래 비용으로 쓰라고 명나라 조정에서 허락한 공무역에 속했다. 그 외에 사신이나 역관 개인이 가져온 물건을 교역하는 사무역도 일정 규모까지 허락됐다.

일단 1년 1회 조공하는 것만으로도 특혜였다. 류큐는 2년 1회, 베트남과 태국은 3년 1회, 일본은 10년에 1회 조공이 허락된 것으로 대명회전에 아예 명문으로 규정돼 있었다. 조공 회수는 1년 4공의 조선이 첫 번째, 2년 1공의 류큐가 두 번째였으나 고산국이 1년 1공을 허락받음으로써 세 번째로 물러났다.

사행무역은 황실에 보내는 조공품보다 최소 네 배나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항저우의 상권이 워낙 커서 홍삼 500근이 하루에 다 팔릴 정도였다. 결제대금을 금으로 받았더니 상인들이 더 좋아했다.

홍삼은 전에 신라방 상인이 위탁 판매한 가격보다 더 올랐는데, 홍삼으로 인해 병에 차도를 보인 유명 인사들이 많아서 널리 입소문을 탄 덕택이었다. 북경에 가져가면 조선 사신들이 판매하는 홍삼 가격이 내릴까봐 조공품에 포함시키지 않고 양자강을 넘기 전에 사행무역으로 판매했다.

지금까지 이민호에게서 상품을 받아 처분을 맡았던 신라방 상인들이 이번에도 사신단을 따라다니면서 판매를 도와주었다. 이민호는 직접 거래에 나서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았다.

“오오! 이것은 봉래 해삼 아닙니까? 맞습니까?”

“이놈아! 살 놈이 물건을 알아봐야지! 대인! 저한테 다 넘겨주십시오. 전에 어떤 놈이 찔끔찔끔 팔아서 맛도 못 봤습니다.”

해삼을 두고 상인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흑해삼과 봉래 해삼 두 가지 모두 가격이 꽤 뛰어올랐다. 흑해삼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조선에서 구한 것이라 밝혔으나, 봉래 해삼은 부상(扶桑)이라는 가상의 섬에서 구한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원산지가 조선 동해안이라고 밝혀지면 명나라에서 조선에 조공품으로 포함시키라고 요구할까봐 숨길 수밖에 없었다.

흑해삼 2천 근과 봉래 해삼 천 근이 하루만에 판매됐다. 해삼은 북쪽에서 더 비싸기에 봉래 해삼 천 근은 북경에서 팔기 위해 남겨두었다.

이어서 조선에서 채취한 자연산 전복 말린 것도 판매했다. 해삼을 팔 때와 달리 이번에는 광둥어를 쓰는 상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해삼은 강북, 전복은 강남이라더니 전복이 절강 이남 지역의 상인들에게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산 전복이 여기서는 금값이었다. 명나라 해안에서 채취되는 전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지방관들이 바닷가 백성들에게 공물로 바칠 전복 채취를 독촉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흔했다. 그러나 정작 궁궐에 도달한 전복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납으로 바친 전복이 왕실에 가는 중간에 다 샌다는 이야기였다.

제주도에 부임한 탐관오리들은 어민들에게 정해진 공납 외에 추가로 전복을 채취하게 하여 강제로 싸게 수매한 다음 육지에 팔면서 두 배를 남겨 먹었다. 정조대왕 같은 경우 해녀들을 불쌍히 여겨 수랏상에서 전복을 빼고 제주도의 전복 공납을 면제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남자아이를 낳으면 고래밥이라 불렸다. 배를 타고 나가는 어로 작업 중에 풍랑을 만나 남자들이 하도 많이 죽으니 성인이 되면 남자들이 못해도 3명, 많으면 열 명까지 처를 거느렸다고 한다. 그러니 제주도에서 여성들이 물질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밖에 없었다.

해중국 특산품이라는 판유리와 거울도 사행무역을 통해 판매했다. 제대로 된 부자 소리를 들으려면 뒤뜰에 온실 하나쯤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아 판유리가 잘 팔렸다. 이 시대에 화장품 자개함의 일부를 구성하는 거울도 상인들이 남김없이 사갔다.

그러나 지금까지 팔린 것이 다가 아니었고, 진짜 대박 물건은 따로 있었다. 상인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이건 자지 아닙니까? 이 귀중한 걸 정말로 판매할 건가요?”

“우와! 자지가 정말 크다!”

영지버섯은 색에 따라 자지(紫芝), 흑지(黑芝), 청지(靑芝), 백지(白芝), 황지(黃芝)로 구분됐다. 옛날에 중국에서는 영지버섯을 발견하면 황제에게 의무적으로 헌상해야 했다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관리에게 뇌물로 주는 경우가 많았다. <신농본초경>에 영약으로 기록된 이후 중국 왕조 대대로 불로초 대접을 받았다.

사행무역에 나온 영지버섯은 경기도 광주 천진암 계곡에서 따온 것들이었다. 참나무가 밀생한 곳에 지천으로 자라서 아이들을 시켜 따서 모았다. 이민호가 특별히 항저우에 팔기 위해 준비해온 것이 바로 이 영지버섯이었다.

항저우와 쑤저우, 그리고 서호를 배경으로 하는 전설로 백사전이 있었다. 백사전은 수천 년 동안 도를 닦은 백사와 청사라는 뱀과 허선이라는 젊은이의 러브 스토리였다. 백사 백소정은 허선을 살리려고 영지초를 구하기 위해 그것을 지키는 신선과 싸운다. 이민호는 서극 감독이 연출한 영화 청사를 본 적이 있어 이번 조공에서 영지버섯을 떠올렸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영지버섯은 하루 열 개만 팔았다. 현대 한국에서는 영지버섯을 재배해 물량이 많고 약효가 없다는 소문이 퍼져서 가격이 낮지만 이곳은 명나라 항저우였다. 영지버섯이 워낙 커서 최고 품질로 인정받아 비싸게 팔려나갔다.

다른 무역 품목들도 상인들에게 인기가 좋아 하루 만에 상품이 동나고 말았다. 사행무역을 통해 판매할 상품 중에서는 북경에서 판매할 봉래 해삼과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돌릴 일부 상품만 남았다. 그리고 객사 응접실에 황금과 은 궤짝이 차곡차곡 쌓였다.

“와! 이 맛에 사대관계를 맺고 조공을 하는 거군요. 몇 달 동안 준비한 물품을 단 하루에 팔아치웠습니다.”

“무슨 소리야? 아직 조공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어.”

“아차! 오늘은 사행무역이었죠.”

이민호와 계복, 신라방의 장 점주가 가득 쌓인 금괴와 정은을 분류해 궤짝에 다시 담아 넣었다. 배 세 척만 끌고 온 것이 한탄스러웠으나, 지난번에 고산국에 온 칙사와 그렇게 협의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조공품에 대한 회사품은 아직 받지 않았다. 회사품은 입조와 책봉 후에 받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감합무역 허가장을 받은 다음부터는 거의 자유롭게 명나라의 항구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민호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명나라 예부 주사는 고산국 사신단이 먼 길을 왔다는 이유로 객사에서 사흘을 머물러 쉬게 했다. 사실 고산국에서 항저우까지 뱃길로 딱 하루 거리였으니 이민호 입장에서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간이 남아돌게 되자 이민호는 계복과 호위들을 거느리고 항저우 시내 구경에 나섰다. 사신을 안내한다면서 명나라 하급 관원과 병졸들까지 따라다녀서 이민호가 은근히 기대했던 무림인과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

낮에 반점에서 오겹살 돼지찜 요리인 동파육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음식을 먹고 나서 시인묵객들이 찾는다는 서호로 향했다. 항저우 시내에서 멀지도 않아 거의 시내였다. 항저우 지방관으로 부임한 시인들인 당나라 백거이, 송나라 소동파가 쌓은 제방에서 자란 버드나무가 줄기를 축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서호는 6평방킬로미터의 넓이에 호수 가운데에 섬이 두 개나 있었다.

구경 잘하고 돌아오는데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있는 곳이 있었다. 이민호가 호기심에 사람들을 헤집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사람들이 몰린 곳 중심에 황금 3천 냥에 자신을 판다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미인이긴 한데 황금 3천 냥에는 턱없이 모자라지.”

“아직 덜 큰 꼬마가 욕심이 많아.”

“발 큰 것 봐. 발 크기가 한 뼘이 넘는 여자는 부잣집 귀한 딸이 절대 아니야.”

이민호는 구경꾼들의 평가를 들으며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부모의 병환 등으로 인해 빚에 내몰린 어린 소녀가 스스로 몸을 파는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상품을 확인해보니 예쁘장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당시 여자의 발을 묶어 성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족이 유행하긴 했으나 아직은 양자강 이북 지역에 국한됐다. 그래도 여자의 발이 작은 쪽이 인기가 좋았다.

“도련님! 황금 3천 냥이면 백미로 6만 석이 넘는데 그런 큰돈을 주고 누가 여자를 사겠습니까? 혹시라도 불쌍하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너무 큰돈이다.”

계복의 말에 이민호도 동의했다. 황금 3천 냥이면 나가사키에서 일본 처녀를 3만 명 넘게 살 돈이었다. 화약제조 기술이 낙후한 일본에서 염초 값이 비싸긴 하지만 적나라하게 말해서 말똥과 오줌으로 처녀를 사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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