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6 14. 입조 =========================================================================
예부 우시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제야 편히 앉았다. 황제의 뜻은 이민호에게 정식으로 즉위하라는 사실상의 압박이었다. 조선에 입조할 때도 이번과 같은 사행을 하려고 했는데 잘못하면 이민호가 국왕이라고 밝혀야 할 판이었다.
강민호에서 이민호, 이제는 고민호로 성을 바꿔야 하게 생겼다. 그러나 명나라와 주고받는 국서에만 고민호로 쓰고 평소 활동할 때 이름은 이민호로 하기로 했다.
만약 귀엽고 뚱뚱한 여동생이 생긴다면 이름을 고민영으로 지어주기로 했다. 곰인형이었다. 이민호는 호닌과 굴마훈이 생각나 고 씨 성을 주면서 이름을 바꿔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이나 이름의 뜻 자체는 귀여운데 발음하면 오크 이름 같아서였다. 건강미 넘치고 착한 애들이라 이민호는 둘을 무척이나 아꼈다.
국왕 자격의 명나라 벼슬 외에 수군절도사 겸 예국의 수장인 참판으로서 이민호가 따로 받는 명나라 명예직 벼슬이 있었다. 내일 이민호가 받는다는 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황제의 성지에 따라 작성될 예정이라고 했다.
‘준허한다. 그에게 상사할 저사(紵絲), 사라(紗羅) 각 4표리와 은 일백 냥을 주고, 칙서를 써서 그에게 주라. 해당 아문은 알아서 시행하라.’
황제가 허가하면 예부에서, 또는 환관이 미사여구를 덧붙여 칙서를 쓰고 그것을 다시 황제가 옥새를 찍는 식으로 칙서가 발행됐다. 그런데 성지에 황제가 써 갈긴 내용은 정말 성의가 없어보였다. 웬만하면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었다.
“명예직이라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각종 의전에서 이 관직이 서열의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참판 각하께 수여될 관직은 이주도독부 좌도독동지 고산국 군국사 겸 영 국자감사 이국공입니다.”
“오오! 영광이로군요. 성은이 망극합니다.”
“하례 드립니다, 이국공!”
대만의 별명인 이주의 군주라는 뜻인데 글자만으로 놓고 보면 오랑캐 왕이라는 뜻이었다. 명예직이라지만 명나라 군부와 교섭할 때, 또는 해적을 토벌할 때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 명나라 관직이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명나라 관직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 전략에 따라 조정에서 해적끼리 싸움을 붙일 때 관직을 통해 제어했다. 그러나 해적이 관직을 받아 일단 합법화되면 작은 해적들을 흡수해 몸집을 키우는 것은 금방이라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주로 사설감 태감과 대화했다. 원래 이런 일은 사례감이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내부 사정이 있는지 이민호는 알기 어려웠다. 그 다음 이름 때문에 잠깐 끼어들었다가 오래도록 지켜보던 예부 우시랑이 입을 열었다.
“감합무역부가 나왔습니다. 무역할 항구는 고산국의 위치를 감안해 항저우와 광저우, 푸저우 세 곳으로 결정됐습니다. 무역할 배는 매년 30척 이내이며, 각 항구마다 10척 이내로 무역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단, 구리와 유황을 실은 배는 별도로 무제한으로 입항할 수 있으며, 구리와 유황 무게의 절반까지 다른 물품을 무역할 수 있습니다.”
“불쌍한 고산국의 백성들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성은이 망극합니다. 두 분께도 감사합니다.”
정조사를 보내는 기간 두 달 빼고는 매달 평균 3척을 확보했다.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에 매달 한 척씩 보내 무역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농사 안 지어도 전 국민이 먹고 살 수 있을 것으로 이민호는 판단했다.
드디어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를 세운 보람이 생겼다. 이제 자금에 여유가 생길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제대로 진출할 만한 재정적인 여력이 생겼다.
“해중국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판 각하의 제안도 있고 하니 칙서를 전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해중국이 유구국을 도와 일본 살마주의 침입을 격퇴했다 하여 그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해중국도 역시 1년 1공으로 입조 시기는 성절사(聖節使)가 적당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입조 후에 감합무역 규모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칙서는 반드시 전해드리겠습니다. 해중국 국왕전하께서 진심으로 기뻐하실 겁니다.”
해중국 국왕은 지금 이 자리에서 속으로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성절사는 황제의 생일에 축하하러 가는 사절인데 황제가 나오지 않으니 가서 장사만 하고 오면 될 것 같았다. 만력제의 생일은 9월에 있었다.
“이번 서류는 회사품 목록입니다. 회사품은 내일 텐진의 부두로 전달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신단은 가볍게 가실 수 있습니다. 새해 명절을 북경에서 쇠시고 날이 풀리거든 천천히 텐진으로 가십시오.”
“황제폐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예부 대인들과 태감님들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민호는 회사품 목록을 보고 입이 찢어질 뻔했다. 보통 제후국이 바친 공물의 열 배 정도 되돌려 준다고 들었는데 목록에 기록된 품목과 수량을 보면 그 이상이었다.
회동관에서 나와 우시랑, 태감과 헤어지는데 사설감 태감이 이민호에게 아주 정중히 대해 이민호는 물론 우시랑이 더욱 놀랐다. 태감들은 이민호가 부마가 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비밀리에 미망인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부마는 아니었다. 그래도 황제의 입김이 작용하므로 알게 모르게 명나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될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5일 후 이민호는 사신단을 이끌고 텐진에 도착했다. 그 전에 두루두루 인사를 다니고 선물도 돌렸다. 남은 해삼과 전복, 거울은 잘 봉해서 모조리 황실로 보냈다. 북경에서 조선의 동지사 사행단과 마주치지 않아서 무척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 동안 배를 지키고 있다가 사신단을 환영하는 사공들에게 이민호가 공치사를 했다.
“추운 데서 배 지키느라 수고했어. 사공들에게 특별 상급을 주겠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참판 영감의 수고만 하겠습니까?”
사공들이 그 동안 짐칸에서 회사품과 생사를 잘 정리해 묶어놓았다. 이민호는 시간 죽이느라 힘들었고, 나중에는 공주와 밤일 하느라 즐거웠는데 그런 소리를 들어서 미안했다.
배를 출항시키면서 이민호가 지참금 명세서를 살폈다. 숫자가 좀 이상한 것 같았지만 한자라서 착각하기가 더 어려웠다. 이민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은 8백만 냥?”
명나라가 이른바 만력삼정이라 불리는 1590년대의 전쟁 세 번에 쏟아 부은 전비가 은 8백만 냥이었다. 명나라가 임진왜란, 보바이의 난, 양응룡의 난에 군대를 보낸 것이 만력삼정이었다.
이민호가 대학 1학년 교양 국사를 배울 때 만력삼정에 소요된 과도한 전쟁 자금으로 인해 본격적인 명나라의 몰락이 시작됐다고 배웠다. 그런 엄청난 금액이 단지 지참금으로 들어온 것이다. 자그마치 은 300톤이었다. 명나라의 전세 2년 치에 해당하는 이 금액이 모두 황제 개인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에 이민호는 더 놀랐다.
“황제께서 통이 크시군. 딸바보인가?”
그러나 만력제는 절대로 딸바보가 아니었다. 나중에 왕자들 중 하나를 장가보낼 때는 은 2400만 냥을 썼다. 자기 무덤을 만들 때는 더 썼다.
겨우 8백만 냥을 쓴 만력삼정은 핑계에 불과했고, 명나라 멸망에는 황실의 낭비가 결정적인 요인일 수가 있었다. 대신들이 전비가 부족하다고 내탕금을 빌려 달라했을 때 황제는 단 한 푼도 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황제는 환관들을 광세사로 내보내 여러 지방의 경제를 초토화시켜 반란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만력제가 바보가 아니라면, 신권과 황권의 대립이 감정싸움으로 번져 황제가 막장 행각을 벌인 셈이었다.
만약 이때 황제에게 신하들이 굴복해 전제황권이 확립됐다면 명나라가 근대국가로 전환되며 급격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인재와 자금은 충분했으니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민호의 자유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성리학이든 양명학이든 전제황권을 용납하는 경우가 없었다. 신하들에 의해 황제가 허수아비로 전락하지도 않겠지만, 황제가 신하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도 어렵다는 뜻이었다.
텐진에서 출항한 외륜선 세 척은 북서풍을 받아 잔뜩 부풀린 돛을 펼치고 남동쪽으로, 산둥반도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바람처럼 달렸다. 해도와 육분의 등 항해도구 덕택에 외륜선들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도, 밤에도 항해가 가능했다.
텐진에서 출항한지 겨우 사흘 만에 고산국 부두에 외륜선들을 정박시켰다. 이민호는 두꺼운 옷을 벗을 수 있어 몹시 즐거워했다.
이민호가 두 달 넘게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고산국은 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미카가 관리들과 협의해 나라를 돌보고 최 선생이 잘 보좌해주었다. 고산국에 두고 온 집안 종들과 여진족 감불이 등이 간수군 병력을 이끌고 치안을 유지했다.
“새로 나라를 세우느라 여기저기 건설하는 소리로 시끄럽소. 공주가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소.”
“창업 초기의 활발함이 느껴져서 저는 좋게 보고 있습니다, 전하.”
배에서 내려 공주 일행을 궁궐로 안내했다. 수레를 타고 포장된 도로를 지나는데 원주민들이 진심으로 환영해주어 이민호와 공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거의 완성돼 가는 궁궐에 도착했다. 해중국의 궁궐은 해적들과의 전투에 대비해 완전 요새로 만들었지만 이곳은 멋도 조금 부렸다. 이민호는 공주를 별궁에서 거하도록 하고 궁녀 40명을 배치했다.
이민호가 비운 겨우 두 달 반 사이에 조선에서 사람들이 많이 건너왔다. 그들은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고 농지를 개간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북경에 다녀온 사이에 고산국에서 고구마가 수확됐다. 지난여름에 두아르테가 여송에서 잔뜩 짊어지고 온 것이었다.
첫 재배를 맡은 농민들은 너무 많은 수확량에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고구마를 나눠주는 조건으로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총동원돼 고구마를 수확했다. 이민호는 백성들에게 앞으로 더운 곳에서는 고구마, 추운 곳에서는 감자를 심으라고 멀리 떨어진 마을까지 나누어주었다. 고산국은 더워서 고구마 온상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어 재배하기 간단했다.
이후 고산국에서는 여름에는 감자, 겨울에는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었다. 그리고 수확이 끝난 부산물인 고구마 줄기 덕택에 돼지도 마음껏 키울 수 있게 됐다. 그 동안에는 차마 곡물을 돼지 사료로 줄 수 없어 많이 키우지 못했다. 돼지고기와 풍부한 건어물, 그리고 넘치는 곡물 덕택에 고산국 백성들은 굶주림을 잊게 되었다.
고구마로 소주, 감자로 보드카를 만든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산속 깊이 살던 원주민 마을까지 고구마와 감자를 받아가면서 대만 섬 거의 전 지역이 고산국에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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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재는 더 이상 없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는 동안 하루에 한 편만 연재하겠습니다.
양이 적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