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2화 (41/1,000)

00092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 끼이이이이잉~

“동력 연결해!”

이민호가 터빈에서 나는 소음에 뒤지지 않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장장이가 고주파음을 내는 기관으로 달려가 클러치를 잡아당겼다. 연결된 동력축이 빠르게 돌아가며 철로 제작된 작은 수차를 돌렸다. 시험을 위해 쇠바퀴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들 주렁주렁 매달았는데도 거뜬히 선풍기처럼 돌려버렸다.

이 정도면 최소 100마력은 넘어 대형 외륜선뿐만 아니라 새로 건조 중인 군함에도 충분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륜선의 바퀴 바깥을 외장재로 감싸면 외부 공격에 대한 대비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추진장치로 아직도 물갈퀴가 달린 바퀴를 쓰는 것은 블레이드의 설계가 어려운 스크루를 아직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크루는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나 잘 만드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었다. 견본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수한 삽질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작업이라 뒤로 미루었다.

증기기관이든 디젤엔진이든 실린더 속에서 직선 왕복운동을 하는 피스톤이 회전 운동을 하는 크랭크축을 통해 동력을 전달하는 왕복기관은 구조가 복잡하고 부품이 많이 필요했다. 정밀한 금속가공기술과 밀폐가스를 막기 위한 개스킷과 복잡한 윤활 계통도 필요했다. 원통형의 실린더 하나 만드는 것 자체가 정말 장난 아니게 어려웠다.

현재 이민호가 보유한 금속가공기술로는 실린더부터 시작해서 내연기관을 만드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내연기관이 어려우니 그 다음 선택은 만들기 쉬울 것 같은 증기기관인데, 이것도 전혀 만만치 않았다. 증기기관도 결국 피스톤과 실린더 제작의 정밀도 문제에 부딪쳤다.

그리고 애를 써서 비싼 바이오 디젤을 만들어 그것을 증기기관을 때는 단순한 연료로 쓰고 싶지도 않았다. 석탄을 쓰자니 배가 움직일 모든 항구에 석탄 적치장을 미리 만들어놓아야 해서 이것도 곤란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선박과 차량, 기차와 항공기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 가능한 터보 샤프트 엔진이었다. 풍차와 원리는 같고 구조는 더 간단했다.

“축 회전수 올려!”

이민호의 지시에 따라 대장장이가 엔진을 조작했다. 압축기가 더 빠르게 돌아가자 엔진이 공기와 연료를 더 많이 빨아먹으며 동력축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동력축과 연결된 바퀴도 더 빨리 돌았다.

압축기 블레이드와 축 사이는 이중 막을 형성한 점탄성 에어 포일 베어링으로 지지해 윤활유가 따로 필요 없고 진동도 적었으며 초기 구동할 때 급속한 마모현상도 줄어들었다. 이것이 핵심 기술이라 혹시나 엔진을 적에게 빼앗기더라도 사용은 가능하되 결코 복제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시험 결과 일단은 엔진이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시험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흘 동안 연속 돌리시오. 연료통을 계속 살피면서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연료를 추가하는 것도 잊지 마시오.”

“예, 전하. 연료통 눈금을 살피며 시간별 연료 소모량도 기록하겠습니다. 하오나 이 기관이 중간에 고장이 나거나 연료가 떨어지면 배를 움직일 것은 돛밖에 없습니다. 새로 만들고 있는 배는 너무 무거워 순풍을 받더라도 돛만으로 움직이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터보샤프트 기관의 신뢰성과 내구성을 믿지 못하는 선임 대장장이가 단점을 지적했다. 대장장이는 배를 만들 때 필수적인 장인이기 때문에 대장장이들도 배를 잘 아는 편이었다.

그러나 기관의 신뢰성만으로 따진다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비효율적인 터보샤프트 이상 가는 기관이 드물었다. 사실 배의 동력기관으로 쓰기에 터보샤프트의 효율은 디젤 엔진보다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연료비가 적게 들고 공간을 덜 차지해서 헬기나 민수용 여객기 등 항공기 엔진으로는 괜찮았다. 그리고 이민호는 엔진을 배에 하나만 달 생각이 없었다.

“배마다 기관 두 개를 달 것이오. 배가 출발하거나 고속으로 움직일 때는 두 개 다 돌리고, 저속 순항 중에는 하나만 돌리면 됩니다. 둘을 교대로 작동시키면서 쉬는 쪽을 정비해야 합니다. 돛은 서양 범선처럼 여러 개를 달 것이오.”

“제작부터 운용까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무척 비싼 배가 되겠군요. 하오나, 전하! 기관 하나를 만들고 고쳐가며 제대로 움직이는데 여섯 달이 걸렸습니다. 저희 장인들이 기술을 익혀 양산을 한다 해도 석 달에 하나 겨우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수많은 조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배가 될 것이니 비싼들 대수겠소? 최대한 만들어 봅시다. 내년 봄까지 기관 두 개를 단 배가 최소 세 척은 필요해요.”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하시니 만들어보겠습니다.”

“고맙소. 최대한 지원해드리겠소.”

나중에는 같은 엔진 두 개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크고 작은 엔진 둘, 또는 다른 형식의 엔진 두 개를 달 예정이었다. 현대의 군함도 용도나 요구 성능에 따라 다양한 조합으로 엔진을 결합시킨다.

이민호는 터보 샤프트 엔진 개발에 성공하고 나니까 내연기관을 만들려고 골머리를 앓던 지난날들이 바보짓처럼 느껴졌다. 이제 기차와 항공기 제작도 가능해졌다. 과거로 날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자 몸과 마음이 아주 개운해졌다.

터보 샤프트 엔진을 장착해 시속 370km로 달리는 Y2K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만들 수도 있으나, 이민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배기가스의 열기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민수용으로 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단열팽창을 시켜 배기가스의 온도를 급속히 낮추더라도 추가적인 냉각탑이 필요했다.

이 엔진으로 전차 제작이 가능하지만 전차가 과연 필요할까, 도로 사정이 나빠 전선으로 이동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접어두었다. 전차를 만들려면 엔진뿐만 아니라 주포와 장갑, 캐터필러와 서스펜션 등 골치 아픈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을 때서 기관 장치를 돌리는 것은 알겠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연료는 무엇이옵니까, 전하?”

“사탕수수 줄기 썩힌 것과 아마 씨, 땅콩에서 짠 기름을 섞었어.”

“어머나! 그래서 설탕과 땅콩이 남아도는데도 두 가지를 많이 심으라고 하셨군요.”

“이게 만약 실패하더라도 설탕과 땅콩은 두고두고 먹으면 되잖아?”

사탕수수에서 연료용 에탄올을 뽑고 땅콩과 콩, 유채에서 바이오 디젤을 뽑아 섞은 것이 이번에 제작한 가스 터빈 엔진의 연료였다. 쉬운 말로 술에 콩기름을 탄 다음 불을 질렀다고 봐도 된다. 연료도 시험을 더해봐서 적정한 혼합비율을 찾아야 했다.

이 엔진은 디젤 엔진에 비해 기관에 가해지는 압력과 온도는 낮지만 열효율 자체가 디젤엔진이나 증기터빈보다 훨씬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금속가공 기술이 부족한 현재 정밀한 실린더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껍데기를 대충 적당히 만들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연료도 효율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충 아무 거나 써도 된다. 나중에 석유를 구하면 등유로 대체해도 되고, 석유를 못 구하면 해양 미세조류를 양식해서 뽑아 써도 될 것이다. 일단 이것을 선박용 엔진으로 쓰다가 나중에 디젤 엔진 제작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강 건너 조선소에서는 고산국 최초의 본격적인 군함이 건조 중이었다. 이 배는 화물 적재량보다는 속도와 견고함에 중점을 두고 설계했다. 대형 외륜선 뒤와 옆에 달렸던 커다란 바퀴가 사라지고 배 뒤에 쇠로 만든 덮개 안에 작은 물갈퀴 바퀴 두 개가 숨어 있었다.

주 갑판 아래는 겉에 타르를 칠해 전체가 온통 새까맣게 생겼고 보기보다 훨씬 무거웠다. 미얀마와 접촉하지 못해 나무는 브루나이 제국,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산 티크목이었다.

중형 외륜선 몇 척을 류큐왕국에 내줘서 지금도 사공들이 열심히 길고 두꺼운 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팽호도 해적 소탕 사건 이후 외륜선이 무섭다고 소문이 났는지 명나라 해적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이번 봄에는 조선에서 더 많은 가족 단위 이민자들이 입국했다. 이앙법으로 인해 광작이 널리 유행하면서 농지에서 밀려난 소작농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이민이었다. 거주지 수령에게서 소작할 농지가 없는 유민이라는 확인증을 받은 이민자 가족들이 수영 선착장에서 고산국으로 가는 외륜선에 올랐다.

그런데 사실은 소작지를 잃은 자들 중에서 이민자는 극소수였고 감자의 도입으로 인해 옛날보다 쉽게 화전민이 될 결심을 한 자들이 훨씬 많았다. 여기에 고구마까지 도입됐으니 화전을 하더라도 최소한 먹고는 살게 되었다. 고산국으로 올 이유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이민자들이 오는 만큼 고산국의 노동력은 더욱 풍부해졌다. 뿐만 아니라 병력 수급이 훨씬 쉬워져 조선인 출신을 중심으로 직할군을 2천 명으로 늘릴 수 있었다. 흑인 노예들은 고산국에 오자마자 대부분이 직할군으로 지원해 병력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았다. 전원 모병제 군인들이라 운영비가 상당히 들었지만 임진왜란 일 년을 앞두고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병력이 늘자 계복이 육군과 수군, 아니면 방어군과 원정군으로 분리할 군제 개혁안을 제출했다. 사공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으니 유럽처럼 전문 수군을 운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민호는 많이 망설였다.

조선 수군이 특별할 뿐 이 시대 대부분 국가에서 항해 관련 종사자들이 아직 군인 취급을 못 받았다. 유럽이든 일본이든 노를 젓거나 돛을 조작하는 자들은 아주 가끔 특별한 경우에 창칼을 휘둘러 전투에 직접 참가하더라도 전투에 동원된 민간인에 불과했다. 반면에 조선 수군의 격군은 수군 정병이며 선두무상 등 사공들도 판옥선에 상시 배치되는 군속에 가깝고, 일부는 수군 정병 신분인 경우도 있었다. 이민호는 뱃사람인 사공들도 장기적으로는 군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민호는 계복과 최 선생을 불러 협의한 다음 군제 개혁을 단행했다. 궁성에 황궁호위대가 배치되고 수도 외곽에 직할군 주력부대가 주둔했다. 주요 거점마다 직할군이 파견돼 치안유지 임무에 투입됐다. 마을마다 예비군이 창설돼 간단한 군사훈련과 함께 화재 진압 등 재난구호 임무를 주로 맡았다.

고산국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조선 국적의 간수군 천 명 전원을 해병대로 개편했다. 해병대는 선상 전투와 상륙 후 지상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을 받게 됐다. 훈련이 힘들어 관두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빈자리는 신병으로 빠르게 채워졌다.

직할군 천 명은 해병대로, 천 명은 육군 승마보병으로 개편했다. 나중을 위해 황무지로 비워둔 벌판에서 간수군 해병대보다 더욱 힘든 훈련을 받았다. 총기도 소총과 6연발 리볼버 기병총 두 가지로 나눠 지급받았다. 기병총이란 것은 사실 리볼버 권총에 개머리판을 붙이고 총구를 연장한 것뿐이었다.

고산국에 고용된 사공들이 여전히 외륜선을 몰았기에 현재 해군 함선은 몇 척 있으나 해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민호가 물어보니 사공들은 군인보다는 민간인 신분에 머물러 있길 좋아했다. 그래서 해군을 창설할까 하다가 이대로 두었다. 함포를 군함에 배치하더라도 해군이 없으니 해병대에게 함포 운용을 맡기기로 했다.

군제 개혁에 몰두하고 있는데 동부 중앙 산악지대에 사는 원주민 여러 부족들이 공동으로 대표단을 보내 국왕 알현을 신청했다. 이민호는 처음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뭐요? 식인종 부족이 있다고요?”

============================ 작품 후기 ============================

오늘은 세 편 채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하루에 한 편만 써도 성실연재입니다. ㅡ.ㅡ

며칠 후에 시간 여유가 다시 생기면 마구마구 쓸 테니 앞으로 며칠만 하루 한 편으로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