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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98화 (47/1,000)

00098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아프더라도 좀 참아.”

“꺄악!”

“컥!”

처음 결합하는 순간에 너무 아파서 처녀가 비명을 지를 수야 있다지만 이번 일은 이민호가 상상도 못했다. 고민영의 주먹이 이민호의 턱을 날려버린 것이다. 옆으로 쓰러진 이민호가 두 손으로 턱을 감싸며 침대 위를 떼굴떼굴 굴렀다.

“전하! 죄송해요!”

“어머! 어쩜 좋아! 안 아프세요?”

“괘, 괜찮아. 우경호대장의 주먹은 매우 강력해서 경호대장으로 잘 뽑은 것 같아. 어금니가 조금 흔들리는 것 빼고는 괜찮아.”

“입에서 피 나요!”

여자를 얻기 위해 이 정도 고통쯤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민호였다. 옥체에서 피를 흘리게 했다고 고민영을 잡아 가두거나 능지처참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곧 고민영도 피를 보게 될 것이므로 피장파장이었다.

입에서 피를 뱉어내고 대충 치료를 마친 이민호가 다시 합궁을 시도했다. 그러나 옥체의 안전을 위해 고민영의 자세를 수치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가 뒤에서 들어가는 동안 고민영은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버텼다. 고민영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번에는 잘 참았다.

고민영은 가슴도 큰 편이었다. 특히 뒤에서 널따란 등을 내려다보면 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허리가 잘록한 편이라 묘하게 육감적이었다. 결합하는 동안 이민호는 고민영의 몸으로 인해 시각적으로도 큰 만족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민영은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이민호는 드러누운 다음 고민영을 끌어안았다. 고민영이 품에 파고 들어오고, 이어서 고민희에게 손을 뻗자 마찬가지로 품에 파고들었다.

“잘 참았어. 이제 우린 한 몸이야. 늙어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거야.”

“설마 매번 이렇게 아픈 건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지. 별궁에서 공주나 미카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자주 봤잖아? 내일 못 움직일 것 같으니 하루 푹 쉬어.”

혹시 표정은 못 보고 신음소리와 비명만 들었다면 무서울지 모르겠지만, 이민호가 찾아갈 때마다 공주와 미카가 얼마나 반기는지 알기에 둘은 그 문제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닙니다. 주인님을 경호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루씩 걸러서 안아주셨으면 경호에 만전을 기했을 텐데요.”

“괜찮아, 쉬어. 나도 내일은 궁궐 안에만 있을게. 항상 셋이서 함께 지내서 그런지 너희 둘은 같은 날 동시에 안고 싶었어. 오늘 처음이라 아프겠지만 난 너무 좋았어.”

오랜 소원을 풀었다고 생각하는지 둘이 활짝 웃었다. 좋긴 해도 많이 아팠을 거라 생각해 이민호가 둘을 가슴에 꼭 품었다.

싱싱하고 건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둘을 차례로 안고 난 이민호는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능력만 있다면, 아니 능력이 없어도 핏줄만 잘 타고 나면 얼마든지 여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결혼해야 하는 시대에 서로 좋아서 안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행운이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내일부터 공주님 뵙기가 민망하겠어요.”

“태어날 때 신분은 달랐어도 이제는 동등한 위치야. 서로 존중해주도록 해.”

“네! 주인님.”

셋의 관계에서 신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민호가 황제가 되든 거지가 되든 전혀 상관없었다. 여진족 호위 둘도 자기들의 신분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둘은 궁궐에 거주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궁녀를 거느리지 않았다.

셋이 껴안고 같이 잤다. 새벽에 이민호가 잠깐 깨었을 때 달빛에 비친 둘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이민호는 둘의 몸이 튼튼하다는 것만 믿고 한 번씩 더 안을까 하다가 꾹 참았다. 첫날부터 몸을 다치게 해서 앞으로 내내 겁먹게 할 수도 없었고, 둘은 여자 이상의 동지적, 가족적 관계였기 때문이다. 혜영과 혜진이 없는 고산국에서 둘은 혜영 자매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오랜만에 방문해주셔서 기쁩니다.”

“반갑소. 니시무라 씨도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이오.”

나가사키의 일본인 조력자 니시무라 겐타로는 매달 나가사키를 왕복하는 외륜선 편으로 편지를 보내 이민호에게 정보 보고를 하고 있었다. 금과 은의 교환도 신라방 상인들이 담당하고 있어 이민호가 직접 나가사키에 올 필요는 없었지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전쟁을 앞둔 일본의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나가사키에 왔다.

“관백이 큐슈 전체에서 인부들을 대거 동원해 나고야 성을 쌓고 있습니다. 규모가 워낙 커서 거의 오사카 성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일본 각지에서 보낸 병력이 꾸준히 그곳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나고야라면, 오사카 동쪽에 있는 옛 도시 이름 아니오?”

“오사카 동쪽에 그런 도시가 있었던가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나고야 성은 대마도에 가까운 사가의 가라쓰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조선 침략을 위한 큐슈의 전진기지는 이민호가 아는 명고옥(名古屋)이 아닌 명호옥(名護屋)이라 쓰고 발음은 나고야로 같았다. 이키 섬 건너편에 성을 세운다는 것은 이키 섬과 대마도를 징검다리 삼아 경상도를 통해 조선을 침범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민호가 알고 있던 나고야는 1614년에 기요스 마을을 옮긴 이후에 시작된다. 발음은 그때부터 나고야였지만 한자로는 여러 가지로 표기되다가 1870년에 가서야 지금 쓰는 한자로 고정되었다. 겐타로가 모르는 것이 정상이었다.

“언제쯤 그 성이 완성될 것 같소?”

“규모가 크고 기와에 일일이 금박을 입히는 정성을 들이는 탓에 보통이라면 몇 년 걸려야 합니다만, 인부가 워낙 많이 동원됐으니 단기간에 축성이 완료될지도 모릅니다. 가토 토라노스케와 데라자와 히로타카가 축성 책임을 맡았습니다.”

“가토 그 인간이 워낙 삽질을 잘하니까 금방 완성될 것 같소.”

가토 기요마사는 17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성을 5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버렸다. 7층의 천수각, 혼마루를 비롯한 5개의 성곽, 11개의 구역, 120개의 우물과 저수지, 130여 개에 달하는 다이묘들의 숙소까지 전쟁 직전에 완성했다.

“각지에서 배를 만들고 병력과 사공을 뽑아 보내고 있습니다. 관백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30만인데 절반 이상을 조선에 보낼 것 같습니다. 내년에 남풍이 불기 시작하면 즉시 공격한다고 합니다.”

“준비가 많이 필요할 테니 아마 4월 초에 출병해서 일본력으로 4월 14일쯤 부산포를 공격할 것 같소.”

“전쟁이 일어난다면 두 나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은 마음입니다.”

“일본은 지금 막 전국시대를 끝내면서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어요. 누가 나서서 전쟁을 막더라도 겨우 몇 년 연기시킬 뿐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오.”

어차피 벌어질 전쟁, 왜군이 한성을 점령해서 조선에 큰 충격을 주고 덕택에 고산국에 이민이나 많이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민호였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이민호는 중간에 생각이 자주 변했다. 지금은 미래를 위해 꾹 참고 있었다.

“지금 니시무라 씨는 사람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소?”

“제가 잘 아는 사무라이 50명을 모을 수 있고, 추가로 낭인 무사 200명쯤은 고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주인님은 제가 나고야에서 방해공작을 펴시길 바라십니까? 명령만 내려주시면 무엇이든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니오. 첩자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오. 니시무라 씨는 하던 일을 계속하시오. 다만 이곳 일본의 사정을 꾸준히 전달해주면 좋겠소. 그리고 니시무라 씨는 나중에 큰일을 해야 하니 미리 준비하도록 하시오.”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첩자를 좀 더 많이 고용해서 정보를 취합해서 보고하겠습니다.”

겐타로는 이민호를 위해 특별히 그냥 차를 준비했다. 차에 곡물 가루를 섞어서 먹는 일은 이민호에게 고역이었다. 그런데 그냥 녹차만 마시는 것도 겐타로에게 힘든 일이었다. 둘은 찻잔 옆에 과자를 쌓아두고 먹었다.

“니시무라 씨도 전국시대의 무사였지요. 만약 니시무라 씨가 관백의 상대편이라 치고, 관백의 전쟁 수행 능력을 줄이려면 무엇을 최우선적으로 하시겠소? 그런 조언을 내게 해주시오.”

“제가 만약 조선의 책임 있는 장수라면 가장 먼저 이와미 긴잔을 무너뜨리겠습니다.”

“은광 말이오?”

“조선해에 접한 산인(山陰) 지방의 하나인 이와미 국에서도 동쪽에 큰 은광이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10리도 떨어져 있지 않으니 배를 타고 와서 공격하기도 쉽습니다. 비록 관백과 모리 가문의 군대가 지키고 있으나 주인님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략해서 갱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미 은광은 현대의 시마네현 위치에 있는 은광으로 16세기 전반부터 은이 채굴됐다.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회취법이 전해진 다음 대규모로 채광되어 한때는 세계 은 생산량의 3분의 1을 감당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당시 일본 최대의 은광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당시 일본에서 동해를 조선해, 일본 남동쪽인 북서 태평양을 일본해로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작성된 지도가 일본에 현대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은광 운영을 관백이 직접 한다는 말이오?”

“처음에 오우치 가문이 개발한 다음 이즈모의 아마고 가문과 은광의 운영권을 두고 싸우다가 마지막에 관백과 모리 집안이 채굴된 은을 나눠가지기로 했습니다. 조선 출병, 죄송합니다. 조선 침략의 군자금이 대부분 그 은광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싸웠다고 하면 말다툼을 하거나 소송을 걸었다는 뜻이 아니라, 영주들이 군대를 동원해 서로 죽여가면서 뺏고 빼앗겼다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지방의 작은 영주들 싸움 같지만 오우치 요시오키는 상락을 달성해 메이오 정변으로 쫓겨난 쇼군 아시카가 요시타네를 복귀시켜 한때 천하 패자로 군림했던 다이묘였다.

“이와미 은광과 나고야 성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니 구해보시오. 이왕이면 지도도 그려주시오.”

“예. 한 달 이내에 완벽한 지도를 준비하겠습니다.”

처음에 이민호는 일본이 조선을 공격하는 시점에 오사카 성을 공격하려고 했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조선에 대한 침략을 소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이 작전을 위해 일본 깊숙이 들어가야 해서 억지로 무리해서 터보 샤프트 엔진과 새 군함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겐타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 성이 아니라 나고야 성에 있을 모양이었다. 현대에서 알던 것과 차이가 많았는데, 사실 나중에 도요토미가 오사카로 돌아갔으니 그가 알던 것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도요토미가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다.

“주인님! 전에 응접실 천장에 침입했던 닌자들의 배후를 알아냈습니다. 조력자 역할을 맡은 쿠노이치를 겨우 잡았는데 마침 임신 중이라 짧은 시간 내에 실토를 받아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사쓰마의 시마즈 가문에서 보냈습니다.”

겐타로가 여자 닌자에게 어떻게 실토를 받아냈는지,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둠의 세계에는 그에 걸맞은 규칙이 있는 법이었다.

“역시 나 때문에?”

“아닙니다, 주인님. 제가 동생의 영지를 되찾을까봐 감시한 것이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나 제가 해결했습니다.”

겐타로 가문의 영지는 구마모토 동쪽 지방, 아소산 인근에 있었다. 주군 가문이 아소 씨와 오랜 세월 숙적이었는데 사쓰마나 휴가, 후고에서 공격해올 때는 주변의 다른 가문들과 연합해서 좁은 산길을 막는 식으로 싸워서 꽤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시마즈 가문 당주의 동생 시마즈 요시히로가 주변 독립 세력들을 토벌할 때 아소 가문의 배신으로 주군 가문이 멸문을 당했다고 했다. 겐타로는 주군 가문의 남은 핏줄을 찾고 있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임진왜란 전까지 한 편 남았습니다.

수정을 마치고 오전까지 마저 올리겠습니다.

그 동안 할 일은 별로 못하고 이것만 쓰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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