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7 19.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 =========================================================================
“전쟁이 났는데도 기대한 만큼 많은 유민들이 고산국으로 가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조선에 식량 사정이 아직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서 고산국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좀 다르군요.”
“하필 파종기에 전쟁이 나는 바람에 한 해 농사를 이미 망쳐서 내년에는 조선 전역에 기근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만약 내년에도 도련님이 계속 쌀을 나눠준다면 피난민들이 더더욱 고산국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할 수 없소. 그러나 백성들이 굶어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사실 모순이 있습니다. 도련님이 조선에 쌀을 퍼줄수록 고산국으로 이민 갈 사람은 적어집니다. 도련님의 대업을 위해 한 번만 눈을 질끈 감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고산국의 인구가 너무 적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민호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 사람들은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었다. 이민호의 조상인 강 씨도 본관인 진주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 곳곳에 퍼져 살았다. 시간여행의 패러독스가 적용되어 이민호의 몸이나 기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이민호는 조선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아니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소. 조선 백성들을 굶기지 않을 능력이 내게 충분한데, 고산국으로 유인하기 위해 백성들 일부를 굶겨 죽여야 한단 말이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소. 그리고 만약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가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을 잃은 백성들이 나를 원수로 여길 것이오.”
“과연 호, 아니 도련님이십니다. 도련님이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계시니 앞으로도 백성들이 도련님을 좋게 볼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을 이미 얻으셨으니 그 백성을 얻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제가 충심으로 보좌하겠습니다.”
“항상 고맙소. 나하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꺼리지 말고 충언을 해주시오. 대방이 나를 호구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군대를 보낼 때보다 효율적일 때가 많았소.”
대방이 몹시 당황하더니 얼른 주제를 바꿨다.
“험! 험! 이번에 임금께 황금상을 또 바쳤습니다. 혜영 아씨께서 손을 대서 그런지 더더욱 세련되고 아름다운 상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시던가요? 황금 대신 군량미를 사오라던가, 구리와 유황을 사라는 전교는 없던가요?”
그 동안의 일로 미루어 볼 때 선조 임금은 명나라 만력제처럼 절대 국가를 위해 왕실 재산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나 쓰더라도 조정 대신들이 압박하는 동안 버티려고 끝까지 발악했다. 이민호는 부친 이응화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계사년에 조정 대신들이 내수사의 전세를 호조로 돌려 군량으로 쓰게 하자고 청하자 임금은 조선에 부자들이 많으니 상을 넉넉히 주고 군량을 얻으라는 식으로 거절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사헌부 등이 청하는데도 내수사 전세는 얼마 안 되니 전과 같이 하라는 식으로 회피했다. 조정 대신들이 압박해 결국은 선조 임금이 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양보했지만 임금이 내수사를 얼마나 챙기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함경도군은 임진년에 왜군의 침략과 국경인의 반란에 의해 와해되고 나서 남은 군사들도 남방으로 보내느라 북방의 경비가 허술해졌다. 그래서 정유년에 함경북병사 오응태가 내수사 노비들을 방수군으로 징발하자고 건의했다. 임금이 몇 달 동안 반대하고, 오응태가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얻어 끝내 관철시키긴 했지만 뒤끝은 좋지 않았다.
임금에게 단단히 찍힌 오응태는 함경북병사에서 파직되고 한성에서 무직으로 놀았다. 그때 유사시 충원할 무관을 예우할 목적으로 오응태에게 적당한 관직을 줘서 요미를 받게 하자고 대신들이 청해도 임금이 막았다. 무술년에는 충청수사로 임명됐지만 노량해전에 참가하지 않고 전공을 세운 적도 없다면서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주본에서 오응태의 이름을 끝내 빼도록 했다.
“그런 전교는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행재소에서 강화도로 황금상을 옮길 걱정을 하시기에 제가 먼저 나서서 내관의 감시 아래 강화도로 옮겨드렸습니다.”
“쯧!”
그러나 군사들의 삼엄한 호위 속에 신상을 옮기는 날 강화부 백성들이 수레에 실린 커다란 것이 황금상인 것을 바로 알아챘다고 한다. 수레 근처를 지나가던 아이를 군사가 창대로 후려치자 민란이 일어날 뻔했다는 이야기도 대방에게 듣게 됐다.
“황금상을 전비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강화부와 황해도의 민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서 왕실의 황금에 눈독 들이는 자들이 백성들을 충동질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 황금상을 녹여 명나라에서 총과 대포를 사들여서 왜적을 몰아내자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군요. 탐욕스런 인간들이 명분은 참 잘 내세워요.”
“혹시 도련님이 의도하신 거라면 잘 되고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요. 다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하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왕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 흐름을 도련님이 의도하신 대로 끌어가실 수 있습니다.”
대방이 전에는 이민호가 왕권을 노리는 줄 알고 경계하더니 요즘은 어떻게든 이민호를 왕으로 세우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나서려 하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조선의 정권에 관심이 없소. 아버지의 뜻도 계시고, 또한 내 양심상 절대 조선을 병탄하지 않을 것이오.”
백성들은 현 정권을 탐탁찮게 여긴다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선조 임금을 싫어하더라도 역성혁명은 바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다른 이들의 주도로 반정이나 역성혁명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나 반정이 일어난다 해도 내버려둘지언정 그 어느 쪽도 돕지 않을 것이오. 지금 국왕전하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내가 나서서 조선을 장악한다면, 그 이후에 당연히 이어질 골치 아픈 여러 가지 일들에 끌려 다니기 싫소. 그 시간에 차라리 남방이나 북방에서 훨씬 넓은 영토와 더 많은 백성을 다스리겠소.”
“도련님의 뜻을 각골명심하겠습니다.”
“보급이 끝난 모양이오. 수하들이 부르니 어서 가시오.”
“기회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항상 강건하시길 빌겠습니다.”
대방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작별을 고했다. 대방도 예전에 비해 사고의 폭이 굉장히 넓어진 것을 이민호가 알게 됐다. 대신 현실 정치에 불만을 품고 개입하고 싶어 했다.
이민호는 시간이 좀 더 흐른다면 대방에게 괜찮은 자리를 넘겨주기로 했다. 정옥남의 경우처럼 위험하고도 비효율적인 짓을 하게 내버려두느니 차라리 해외에서 웅지를 펴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민호는 조선 왕조를 전복시키는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민했다. 그러나 군사를 일으키며 왕조에 대한 충성이라는 중요한 명분을 잃는 순간 혁명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성공하더라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조선을 가진다 해도 얻을 이익은 많지 않았고, 다만 인구만 나눠받길 원했을 뿐이었다.
이순신에게 저녁식사 초청을 받은 이민호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좌선을 방문했다.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의 장수들이 떠들썩하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당포해전에서 펼친 무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그들 사이에 끼었지만 전공을 하나도 못 세워서 할 말이 없었다.
“오! 통지! 어서 오게. 대단히 수고했네. 당포에서 아군 사상자가 적은 것은 유군이 좌우 언덕의 조총 쏘는 왜군을 몰아내준 활약 덕분이네.”
“그렇습니다. 이 동지 영감 덕에 편하게 적선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과 오응정이 칭찬해줘서 이민호의 기분이 좀 풀렸다. 이순신은 역시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무장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옻칠한 곽에서 금부채를 꺼내 이민호에게 내밀었다.
“우후가 왜장의 배에서 구한 것인데 통지 자네가 한 번 살펴주게.”
금부채는 전라좌수영 우후 이몽구가 왜장의 배에서 구한 것이라고 했다. 유진장은 좌수사의 군관이며 전 만호인 윤사공이, 전라좌수영 전체 지휘는 조방장 정걸이 맡은 덕택에 우후도 해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금부채에 6월 8일, 우시축전수, 수길이라는 글자가 있네. 평수길이 우시축전수라는 왜장에게 선물로 보낸 부채가 맞겠지?”
“우시는 하시바라고 읽고 수길의 성이며 축전이라면 평수길이 명목상의 영주인 구주 북쪽의 지쿠젠입니다. 그러니 우시축전수, 하시바 지쿠젠노가미는 평수길을 뜻합니다.”
이민호는 겐타로가 써준 책에서 풍신수길의 항목을 펼쳐서 이순신에게 보여주었다. 풍신수길의 여러 가지 이름이나 칭호 중에 우시축전수가 확실히 들어 있었다.
“우시축전수가 평수길이라. 금부채 얻은 것을 장계에 쓰려고 했는데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군. 평수길을 죽이면 좋겠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장계에 쓸 수는 없지. 그럼 그 부채의 주인, 오늘 죽은 왜장은 누군가?”
“부채에 따로 구정유구수전(龜井琉球守殿)이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구정은 가메이 고레노리라는 왜장의 성입니다. 유구국이 이 왜장의 소유라는 뜻은 아니고 수길이 침략한 다음 그 땅을 그 왜장에게 하사하겠다는 뜻으로 그런 명칭을 준 것 같습니다.”
“그럼 권 부사에게 화살을 맞고 목이 베인 왜장은 구정이라는 놈이 맞는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마 다른 왜장 같습니다.”
이민호는 당포에서 전사하고 금부채를 빼앗겼다는 가메이 고레노리가 살아서 몇 년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당포에서 죽은 왜장은 구루지마 해적 가문의 도쿠이 미치토시일 것 같았다. 해당 항목을 펼쳐 군기 모양을 확인해 보니 낮에 당포에서 본 군기와 일치했다.
“그 책에는 득거통년(得居通年)이라는 이름의 왜장이로군. 래도통총(来島通総)의 형이라는데 어째서 형제가 성이 다른가?”
“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다른 가문의 양자로 들어갔나 봅니다. 일본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휴우! 알기 어렵군. 왜놈의 문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왜학훈도는 왜말은 잘하는데 왜놈들의 사정은 잘 모르더군.”
“맞습니다. 주변 나라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다음 날 6월 3일에는 전날 도망친 일본 함대를 찾기 위해 경상도 바다 전역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하루 종일, 견내량 너머 가덕도와 거제도 주변까지 계속 탐색했는데도 결국 왜군 함대를 찾지 못했다. 수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그 왜군 함대가 부산포나 일본으로 이미 도망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6월 4일 이른 아침에 당포에 들렀다. 부서지고 불탄 왜선들은 그대로인데 왜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조선인 하나가 판옥선들을 따라서 바닷가를 달리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순신이 사후선을 보내 그 사람을 좌선으로 실어왔다. 이민호와 이응화도 좌선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당포 토병 강탁입니다. 이틀 전의 대첩을 경하드립니다. 미륵산 중턱에서 해전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주 후련한 승첩이었습니다.”
“고맙네. 당포의 왜적들은 어디로 갔나?”
“스스로 왜군 시체를 모아 불태운 다음 엉엉 울면서 북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다들 정신이 나가서 그런지 제가 옆에 서 있는데도 그저 통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혹시 나중에 왔던 왜군 함대를 본 적이 있나?”
“아! 왜 대선 20여 척 말씀입니까? 거제도 방향으로 간 것만 확인했습니다. 견내량을 통과했는지, 아니면 거제도 남쪽으로 해서 대마도로 갔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으음. 견내량 너머를 다시 수색해봐야겠어. 만약 견내량 쪽으로 들어갔다면 속도로 봐서는 절대 부산포로 못 빠져나갔을 텐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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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해전만 줄기차게 따라갈 예정은 아닙니다. 다만 이순신 등 무장들을 고용할 것에 대비해 어느 정도 도와줘야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