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19.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 =========================================================================
이민호가 외륜선으로 돌아가려고 단정에 탔을 때 사후선이 급히 좌선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지켜보는 중에 깃대에 오른 여러 판옥선의 선두무상들이 동시에 우렁차게 외쳤다.
“전라우수군이 옵니다! 판옥선 수십 척이 오고 있습니다!”
이민호와 이응화 부자는 다시 좌선 상갑판으로 올라갔다. 모든 장병들이 여장 위로 고개를 길게 내밀고 있었다. 잠시 후 과연 전라우수영 함대 판옥선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당포로 들어오고 있었다. 판옥선들마다 정예한 수군 병사들이 갑판에 늘어서서 위용을 뽐냈다.
“하하하! 이제 안심하고 왜놈들을 실컷 두들길 수 있겠어. 그런데 선두무상! 우수군이 몇 척이지? 전라우수영이니 설마 50척은 넘게 왔겠지?”
“전선 25척입니다.”
“아하! 아쉽다. 아직 육군에서 병력을 못 돌려받은 모양이지. 하지만 저 정도라도 몰고 온 게 어디야? 안 그런가, 통지?”
“맞습니다.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전라좌수영의 두 배 규모인 전라우수영에서 겨우 25척이 왔으니 이순신은 이만저만 실망이 큰 게 아니었다. 반면에 군사들은 전라우수영 함대가 일단 온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전라우수영 판옥선들이 당포에 정박하고 나서 부장급 이상 장수들이 전라좌수영 좌선에 모두 모였다. 이억기가 계단을 통해 올라오자 이순신이 가장 먼저 환영했다.
“오오! 우수백 어서 오시게. 경수 자네를 보니 비로소 안심이 되네.”
“여해 형님께서 어마어마한 전공을 세우고 계시다기에 너무 부러워서 관찰사 영감에게 깽판 좀 치고 달려왔습니다. 좌수영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수영에 왜적 포로가 너무 많아서 왜적에게 점령된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왜적 수급도 잔뜩 쌓여 있던데요?”
“지금까지 잡은 것은 잔챙이에 불과하네. 경수 자네가 왔으니 큰놈들을 잡아야겠어.”
“어이쿠! 수급 수백에 포로 수백이 잔챙이라고요? 기대보다는 걱정되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순신이 준비 없이 모험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항상 정찰을 먼저 한 다음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세워 이것을 실행했다. 반대로 명량해전 때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좌선 홀로 왜선 수십 척의 포위망 안에서 버티거나 왜군 함대에 돌격해 싸우기도 했다.
다른 장수와 반갑게 인사하던 이억기가 마지막으로 이민호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억기가 몇 년 동안 순천부사를 지냈으니 이민호와는 이미 구면이었다. 전라좌수영이 순천부 영역 안에 들어 있기에 이민호는 전라좌수사보다 순천부사와 부딪칠 일이 더 많았다.
몇 년 동안 순천부사를 지내는 동안 이억기가 오히려 이민호의 협조자에 가깝게 변했다. 지방수령과 유력한 상인의 역학관계는 언제든 쉽게 뒤집힐 수 있었다.
이 관계는 이억기가 전라우수사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억기는 이민호의 사업적 감각과 자본을 필요로 했고, 이민호는 이억기로부터 여러 가지 행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정경유착이었지만 항상 백성들을 위한 사업을 펼쳤기에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완도에 전복 양식장을 세울 때에도 해남현감보다 힘이 강한 전라우수사의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순신과 이억기 같은 시전부락 토벌전의 또 다른 전우 이경록은 현재 나주목사를 지내고 있었다. 좌수사와 우수사, 남해안에서 가장 큰 고을의 목사까지 이민호와 사선을 넘나든 이후 친하게 지내는 무관들이라 전라도 남해안 지방은 이민호가 활동하기 아주 편했다. 문관들은 동, 서인 나눠서 항상 다투지만 무관들은 당파 구별 없이 아무하고나 잘 지내기도 했다.
“이보게, 통지! 아니, 이 동지 영감. 아우가 나보다 품계가 높으니 이거 영 불편하구먼.”
“편하게 말씀하세요. 경수 형님답지 않게 품계를 따지세요?”
30대 초반인 이억기는 아버지뻘인 다른 장수들과 달리 이민호와 훨씬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우하하! 자넨 역시 화통해. 언제 시간 나면 우수영으로 와서 관할 고을들 좀 봐주게. 전에 자네가 봐줬지만 내가 이번에 다시 잘 살펴보니 답답한 곳이 여전히 많아. 무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관이라면 고을을 잘 다스리는 일이 기본일 텐데 왜 그리 멍청하지?”
“백성들이 그만큼 많이 세워줬으면 됐지, 경수 형님은 송덕비가 더 필요하세요?”
“그깟 돌덩이, 소문만 들었지 내가 가서 본 적도 없네.”
순천부 관아 객사 서쪽에는 이억기의 송덕비가 두 개나 세워져 있었다. 하나는 다른 원님들 것이 다 그렇듯이 처음 부임할 때 선정을 기대하며 세워졌다. 오자마자 송덕비까지 세워줬는데 설마 원님이 가렴주구를 할까 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고을 수령의 부임 초에 송덕비를 세우게 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그러나 두 번째 송덕비는 이억기가 순천부를 떠난 다음 세워졌다. 순천부의 선비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문장을 짓고 백성들이 돈을 모아 세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진짜 송덕비였다. 이억기가 순천부사로 재임하는 동안 백성들이 살기가 너무 편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민호가 많이 도와주어 여러 가지 사업을 성공시키고 자금이 풍부하니 선정을 베푸는 것도 가능했다.
조정에서는 이억기가 몇 년 사이 순천부의 인구를 급증시키는 공을 세우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자 이억기를 아예 문관으로 돌릴까 고민했다. 그러나 이억기는 적당한 목사 자리가 비기 전에 간발의 차이로 전라우수사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순천부사 재임 중에 고을을 잘 다스렸다고 하지만 이억기 본인은 확실한 무관 체질이었기에 당상관이 되고 나서도 문관을 할 마음은 없었다.
“이번에 급한 일이 끝나면 전라우도를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일단 전쟁에서 이기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육도와 삼략에서 말하는 것은 좀 다르지 않은가? 후방에서 지원을 제대로 해줄 수 있어야 전방에서 승리하기 쉽지.”
“윽! 제 앞에서 육도삼략이나 손자병법 이야기 더 이상 꺼내지 마세요. 머리 아픕니다. 형님하고 전술전략 논의는 앞으로 절대 안 하렵니다.”
같은 무경칠서를 읽었는데도 이억기와 이민호가 이해하는 정도가 달랐다. 이민호는 육도에서 문도, 무도, 용도 같은 국가전략까지는 이억기와 대화가 가능했지만 호도, 표도, 견도 같은 실제 전술이나 전투방법에 있어서는 이억기가 훨씬 이해가 깊었다. 전문 무관인 이억기가 이민호보다 나은 게 당연했지만, 이순신 빼고는 이민호가 다른 무관들에게 대화에서 밀린 적이 없었으니 이억기도 뛰어난 무관임이 틀림없었다.
<육도>에서 강조하는 전쟁의 목적은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후방의 모든 경제 활동이 전쟁 준비의 토대가 되므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적으로 번영해야 한다는 병농합일의 가르침이 핵심이었다. 이차대전 때 티거 전차가 T-34나 셔먼 전차보다 훨씬 우수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생산량에 압도당한 독일이 패배한 것과 같았다.
“태공망과 통지 자네는 치부의 수완이 좋아. 하지만 나는 백성들이 재산을 불리게 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네. 전부터 통지 자네가 백성들에게 무한정 퍼준다고 비웃는 자들이 있더군. 만약 육도와 삼략을 읽었다면 그런 소리를 함부로 못할 걸세. 오히려 긴장하겠지.”
“문인들이 무서를 경시해 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민호가 움찔했다. 육도와 삼략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 좋은 미끼로 큰 물고기를 낚듯이 후하게 대우해서 인재와 백성들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민호가 퍼주고 호구 노릇해서 사람들의 인심을 얻은 것은 이민호의 성격이 무른 탓도 있었지만, 길게 보면서 일관되게 추진한 그의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육도>를 읽고 그대로 실천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백성들을 위한 일을 하다 보니 우연히 비슷해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통지 자네가 국방에 관심이 많은 상국(相國)이나 선비들에게서 관심을 받지 않았나? 동시에 의심도 받았고 말일세. 자네는 <육도>에서 말하는 인과 덕, 의와 도를 갖춘 사람이니까.”
“저는 역적이 아닙니다. 고산국은 나라 바깥에 있지요.”
이억기가 씩 웃었다. 그는 임금으로부터 후원과 견제를 동시에 받는 왕실 사람이었다. 이억기는 양녕대군 5대손으로서 효령대군 7대손인 이경록의 할아버지뻘이었다. 물론 나이와 항렬을 따지지 않고 이억기와 이경록은 친하게 잘 지냈다.
“그걸 알고 있으니 내가 자넬 의금부에 고변하지 않고 이렇게 웃으며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전쟁이 끝나면 일본을 공격할 계획이지? 그때 나한테도 한 자리 주게나.”
“오! 경수 형님 같은 분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고맙네. 요즘 돌아가는 일을 보니 나라의 화와 복은 임금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하늘의 시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육도>의 구절이 생각나더군. 하지만 자네도 좀 참아주게. 광해군께서 보위를 이어받으신다면 아주 훌륭한 군주가 되실 걸세.”
“그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충과 효, 하늘의 뜻과 예의 등을 강조하는 형이상학적인 유교의 가르침과 달리 <육도>는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는 병서였다. 그래서 더더욱 <육도>가 주나라 시대의 강태공이 지은 것이 아니라 후대에 지어졌을 거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강태공은 문왕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에 삶을 이어받은 만민의 천하입니다. 그런 천하의 이득을 천하 만민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진 군주는 천하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천하의 이득을 자기 혼자 독점하려는 자는 반드시 천하를 잃게 됩니다.”
퍼주기나 호구 짓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하늘에는 춘하추동 네 계절이 있어 음과 양이 순환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지에는 생산이 이루어져 재물과 보화가 있게 됩니다. 이 하늘의 시(時)와 땅의 재(財)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인이 있는 곳에 천하의 인심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을 건져주고,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며, 사람의 환란을 구제해 주고, 위급한 사람을 구원해 주는 것은 덕(德)입니다. 덕이 있는 곳에 천하 인심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뭇 사람들과 시름을 같이 하고, 뭇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면 이것은 의(義)입니다. 의가 있는 곳에 천하의 인심이 쏠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사는 것을 즐거워하며, 덕을 좋아하고 이득을 따릅니다. 애써 사람을 살리며 사람을 부유하게 하려고 꾀하는 것을 도(道)라고 합니다. 도가 있는 곳에 천하의 인심은 귀의하는 것입니다.”
인과 덕, 의와 도의 의미가 다른 경전에서 규정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천하를 얻기 위해 군주가 백성들에게 호구 짓을 해야 한다는 것이 <육도>의 가르침이었다. 또한 농업과 공업, 상업을 나라를 편안하게 할 세 가지 보배라고 지칭함으로써 농업에 치우친 다른 경전과 달리 농공상을 조화롭게 발전시켜 전체적인 부의 증진을 추구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 모든 것이 이민호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비슷했다. 그러니 이억기가 <육도>를 언급했을 때 이민호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는 백성들에게 더 잘 해주고 싶어도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문무 관료와 임금, 그리고 선비들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웠다. 이민호가 <육도>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호구 짓을 할수록 위험하다는 느낌이 뇌리에 경종을 울렸다.
그 날 거제도와 고성군 사이 착량, 현대 지명으로는 미륵도와 통영 사이의 좁은 물길인 착량에서 밤을 새웠다.
아침에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76척으로 늘어난 연합함대가 견내량으로 향하니 협선과 사후선까지 합해 150척에 달하는 대함대가 길게 늘어서게 되었다. 이때 작은 배를 몰고 온 거제도 주민들이 와서 왜선들의 향방을 알렸다.
“저희들이 지난 이틀 동안 왜선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견내량을 지난 왜선들은 거제 서쪽 바다에서 이틀 내내 헤매다가 당항포로 잘못 들어갔습니다. 저희들이 밤낮으로 교대하며 지켜봤지만 나오는 것은 아직 못 봤습니다.”
“하필 당항포라. 그래서 못 찾았었군. 고맙네. 그 왜적들을 반드시 쳐부수겠네.”
이순신이 거제에 사는 백성들에게 상을 내려주고 가능하면 경상수영이 재건된 남해군으로 피난 가라고 타일렀다. 이들 중에 김모(金毛)라는 사람은 일본에서 조선에 귀화한 향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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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호구짓에도 이런 철학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