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2 19.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 =========================================================================
연합함대는 그 날 밤을 진해현 앞 바다에서 보냈다. 저녁에 해동상단의 중형 외륜선 네 척이 찾아와 함대에 보급을 추진한 다음 왜인 포로와 전리품들을 싣고 돌아갔다. 그리고 이민호가 주문한 방탄유리를 놓고 갔다.
그러나 해동상단 소포 분점에 보관한 방탄유리는 딱 한 세트였다. 이민호는 원래 부친이 타는 외륜선 선미루에 방탄유리를 설치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어차피 다시 사는 인생, 운명을 하늘에 맡기겠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다른 장수를 골랐다.
부친이 추천한 장수는 녹도만호 정운이었다. 원래 9월에 벌어지는 부산포해전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한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이민호는 녹도 제1선의 장대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전투 중에는 절대 유리창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녹도만호 정운에게 신신당부했다. 정운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사또께서 진정으로 소장의 안위를 위해 이 유리판을 설치하라고 하셨단 말씀입니까?”
“물론이라니까요. 정 만호를 잃으면 좌수영의 전력 절반이 깎이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정 만호의 안위가 중요하다고 저한테 하명하셨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정운을 특별히 아끼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정운의 사기도 올려줄 겸, 이순신과의 관계도 단단히 해줄 겸 이민호는 립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오오! 사또께서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소.”
“그러니 정 만호는 최소한 내일 벌어질 해전에서만이라도 무용을 뽐내기보다는 안전을 먼저 생각해주세요.”
“사또 밑에 있다 보면 앞으로 해전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 아쉽더라도 내일은 이 동지 영감의 말씀을 따르겠소이다.”
정운은 이순신보다 두 살 많고 무과 식년시 합격자로서 이순신의 6년 선배였다. 그러나 문관이라면 영의정이라도 일개 선비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무관의 특성상 나이나 선후배 관계보다는 직급이 우선하는 경우가 흔했다.
신립이 1546년생이며 1567년에 무과에 급제했고 이일은 1538년생이며 1558년에 무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삼도순변사 신립이 충주전투 직전에 경상도 순변사 이일을 참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일을 두고 전혀 비난받지 않았다.
조선 수군 연합함대는 6월 6일 아침 일찍 거제도 북단을 향해 출항했다. 출항 전 새벽에 가덕도 방향으로 보낸 탐망선이 돌아와 전라좌수사에게 왜군 수급 세 개를 바쳤다.
탐망선장 진무 이전과 토병 오수는 가덕도 인근에서 왜 소선 한 척을 잡았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거제도 북쪽에 위치한 율포에 적선 7척이 정박 중이라고 알렸다.
연합함대는 율포를 들이치기 위해 움직였으나 왜선들이 먼저 포구에서 빠져 나와 부산 쪽으로 도망쳤다. 마침 순풍이 불어서 판옥선들이 뒤쫓기에는 돛 하나짜리 왜선에 비해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순풍, 역풍 안 가리는 대형 외륜선들이 왜선들 앞을 가로막은 다음 조선 수군 판옥선들이 왜선들을 몇 겹으로 포위해 공격했다.
왜인들은 배에 실린 물건을 바다에 버리면서 빠져 나가려고 발악했다. 그러나 배에 탄 왜군과 왜인들이 포위망을 벗어나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연합함대는 왜 대선 5척, 중선 2척을 분멸하고 수급 수십 개를 베었다. 왜군이 많이 없는 것으로 봐서 전투선이 아니라 수송선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한창 전장정리를 하고 있는데 탐망선이 급히 달려와서 보고했다. 탐망선은 당연히 이순신이 탄 좌선으로 갔고, 외륜선 깃대의 망루에서 사공이 이민호에게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동지 영감! 김해강에서 왜선 수십 척이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 오늘은 운이 무척 좋군!”
왜선들이 낙동강을 통해 자주 왕래한다지만 그들을 잡을 가능성은 많이 떨어졌다. 만약 조선 함대가 그 왜선들을 잡겠다고 낙동강 하구에서 버틴다면 서쪽의 가덕도나 남쪽 거제도, 동쪽의 부산포나 심지어 대마도 방향에서도 조선 함대를 발견한 왜선들이 떼를 지어 몰려올 수 있었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연합함대가 바쁘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재빨리 가덕도 뒤에 숨어 왜선들이 낙동강 하구에서 모두 나오기를 기다렸다. 외륜선들이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낙동강에서 왜선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좌선에서 중군영하기가 세워졌습니다! 휘는 북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최고 속도로 전진!”
전라좌수영 좌선에서 명령을 내린 순간 이민호가 외륜선들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대형 외륜선 4척이 왜선들의 배후로 돌아가 낙동강의 두 지류인 김해강과 양산강 하구를 차단하고 4척은 부산으로 가는 바닷길을 막았다. 그 사이 섬 뒤에 숨어 있던 판옥선들도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강에서 나온 왜선들이 우왕좌왕했다. 대마도나 부산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히고 낙동강으로 돌아가려 해도 외륜선에 막혔다. 시간이 갈수록 넓게 퍼져 있던 판옥선들이 왜선들을 빙 둘러싸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왜선들은 돛을 펴고 항해 중이었고 노를 저을 사람이 부족해 속수무책으로 대응을 아예 못하고 있었다.
왜선들 한가운데로 거북선을 들이밀자 겁에 질린 왜인들이 얼어붙었다. 왜인들은 거북선을 군선이 아닌 거대한 바다 괴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흔했다. 약탈품을 가득 싣고 강에서 나온 왜선 50여 척은 빠져 나갈 틈이 없고 거북선이 눈앞에서 어른거리자 즉시 항복했다.
이순신은 왜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곧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화포와 활을 쏘려고 대기 중이던 수군들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왜선을 지키는 왜병이나 왜인들이 몇 명 되지 않아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제대로 된 전투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대형 외륜선에 포로 250명과 물건을 옮겨 싣고 빈 왜선은 바닥에 구멍을 내고 가라앉혀 버렸다. 그 사이 가덕도와 거제도를 수색한 사후선들이 돌아왔다. 낙동강에 가까운 가덕첨사진 성과 천성보에 왜적이 없다는 보고를 들은 이순신은 이민호와 이응화 부자를 불렀다.
“죽도왜성을 공격할까 하는데 판옥선이 들어가기에 강폭이 너무 좁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미리 말씀드려야겠는데, 그곳은 적지 한가운데라서 간수군만 내려서 공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 그런 제안은 하지 말아주시오.”
왜군은 전쟁 초기부터 낙동강 죽도에 왜성을 쌓고 주둔했다. 현대의 김해국제공항에서 서쪽 강 건너편 위치였다. 이 죽도왜성은 나중에는 구포왜성 및 양산왜성과 함께 삼각형의 방어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곳은 거의 부산포에 필적하는 왜군의 상륙 교두보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판옥선들이 강으로 들어가 공격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낙동강 하구 자체의 폭은 넓지만 곳곳에 모래톱이 쌓여 있어서 판옥선이 좌초될 위험이 컸다. 이응화가 반대 의견을 냈다.
“김해강 하구는 수심이 수시로 변하는 곳이라 판옥선 같은 큰 배가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죽도까지의 30리 길을 일일이 물 깊이를 재가면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사이 육지 쪽에서 왜적의 화공을 받게 되면 대응하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부산포를 치시지요.”
“부산포라. 죽도를 치느니 차라리 더 크더라도 부산포가 공격하기에 더 낫겠소. 먼저 탐망선을 보내겠소. 부산포 앞바다에 들어가기 직전에 통지 자네가 절영도 언덕에 배치된 화포를 제거해주게.”
“맡겨주십시오!”
이민호는 지난번에 부산포를 공격하다가 절영도 언덕의 해안 포대에게 혼쭐 난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그 해안 포대를 내버려둘 경우 연합함대가 부산포를 공격하는 시간 내내 높은 곳으로부터 포격을 받게 되니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곳이었다.
“민호야! 원래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한 곳이다. 그곳을 반드시 제압하도록 해라. 그리고 너도 조심해라.”
“예. 저는 용감한 놈이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단정을 타고 유군장선에 돌아오는 길에 부친이 이민호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만용을 부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산포 방향으로 정찰 나갔던 탐망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탐망선장은 부산포 가는 길 곳곳에 왜선들이 활동하거나 정박 중이라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무장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탐망선만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 연합함대 전체가 천천히 전진하기로 결정했다.
연합함대는 낙동강 하구를 지나다가 장림포에서 왜 대선 4척과 소선 2척과 마주쳤다. 왜선들이 허겁지겁 해안에 배를 대고 육지로 다 도망가 버려서 빈 배를 불태우면서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연합함대는 다대포와 몰운대를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크게 우회했다. 다대포와 몰운대 사이가 지금은 바닷물이 지나가고 있어서 이민호가 신기하게 여겼다.
연합함대는 부산포와 절영도를 목표로 항진했다. 이민호는 바닷가 산꼭대기에 설치된 왜군 초소에서 왜병들이 뛰쳐나와 부산포 쪽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부산포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음을 예상했다. 부산포를 지키는 왜군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부산포는커녕 절영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접근을 알아차리고 대응에 나설 것 같았다.
판옥선과 협선이 150여 척이나 돼서 주변 바닷물이 안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부산포에 매일 정박하는 왜선 숫자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들은 대부분 수송선이라고 판단했기에 수군 연합함대가 적의 중심부인 부산을 이렇게 과감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 탕! 타탕!
드디어 왜선들이 연합함대를 요격하러 몇 척 단위로 줄줄이 나왔다. 그러나 판옥선 수십 척이 집중 포격을 퍼붓자 왜선들은 나타나자마자 박살나 버렸다. 대포 소리가 울리자 주변 포구에 정박했던 왜선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연합함대는 다대포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화준구미에서 왜 대선 5척, 안쪽 다대포에서 나오던 왜선 8척, 서평포 앞바다에서 대선 9척을 박살내거나 불태웠다. 왜군이 새로 배를 타고 몰려나오더라도 지금까지 계속 승리한 조선 수군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왜군들은 싸움이 불리해질 것 같으면 얼른 배를 육지에 대고 산으로 도망가 버려서 의외로 싱겁게 끝난 경우도 많았다.
절영도에는 왜선 두 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왜군들이 배에서 내려 도망가려는 것을 외륜선들이 몰려가 간수군들이 소총으로 쏴서 모두 쓰러뜨렸다. 오늘은 절영도가 이민호의 작전 지역이었다.
이민호는 각 외륜선에서 단정 한 척씩을 내리고 절영도에 병력을 상륙시켰다. 다른 단정에는 말 네 마리를 태웠다. 그 말에는 외륜선 기함에서 뜯어 분해한 함포가 나눠 실려 있었다.
“가자!”
절영도 서쪽에서 내린 이민호와 간수군 200명은 함포를 실은 말 4마리를 이끌고 초량목 방향으로 달려갔다. 절영도의 주봉인 봉래산에는 진채를 만들어봤자 거리가 너무 멀어서 부산포 공격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이민호가 진채를 세우려는 곳은 초량목과 가까운 절영도 북쪽 해안이었다. 그리고 지난번 부산포를 공격할 때 왜군의 해안포대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그곳 포루에서 판옥선을 향해 조총을 쏘던 왜병들이 간수군들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사격을 가해왔다.
- 타타타타탕!
- 탕! 타앙!
며칠 사이 왜군의 해안포대에 증원이 이루어져 있었다. 간수군들이 왜군 조총병들과 치열하게 총격을 교환했다. 무기나 병력은 간수군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지만 왜군의 해안포대가 조금 높아서 공격이 쉽지 않았고 아군에게 인명피해까지 생겼다.
- 쾅! 콰콰쾅!
결국 어느 대정이 포루 옆으로 돌아가 수류탄 하나로 정리해 버렸다.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옆에 화약을 쌓아놨는지 그것이 폭발하면서 해안포대를 휩쓸었다. 이민호가 총구를 앞세운 채 포루에 올랐다.
“부상자 후송하고, 화포 가져와! 화포 먼저 내리고 부상자를 말로 후송해!”
함포의 분해와 조립은 이민호가 혼자서 다 해야 했다. 계복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는 연도에서 직할군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