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19.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 =========================================================================
매캐한 화약 냄새와 피 비린내 넘치는 포루에서 이민호가 끌과 나무망치를 가지고 함포를 조립했다. 함포 옆에 시뻘건 살덩이가 흩어져 있어 발로 멀리 차내면서 포신과 주퇴복좌 장치를 결합시켰다.
포탄을 몇 십 개밖에 못 가져왔는데 반동을 줄여 사격 속도를 올려주는 유기압식 주퇴복좌기는 사치 같았다. 이민호가 간수군들의 도움을 받아 이것을 들어서 나무로 만든 포가 위에 얹었다.
이민호가 간수군들을 지휘해 해안포대를 점령하고 포를 조립하는 사이 초량목에서 규모는 작지만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한 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절영도와 부산진 사이, 미래에 영도다리가 놓일 좁은 곳을 막으려고 급히 달려오던 왜선 네 척은 아주 살짝 늦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겨우 몇 초 늦은 바람에 왜군 입장에서 그 결과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과감하게 돌입한 판옥선들이 먼저 초량목에 진입해 왜선들에게 화포를 퍼붓고 활을 쏘아댔다. 왜선에서도 조총병들이 일제히 조총을 발사하며 저항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판옥선들이 초량목을 지나면서 시간이 갈수록 전력 차가 확연히 벌어지게 되었다. 이민호는 함포를 조립하느라 바빠 해전을 구경하지 못했다.
“동지 영감! 왜군들이 헤엄을 쳐서 절영도로 건너오고 있습니다.”
“몰라! 다 쏴버려!”
이민호는 간수군 대정에게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함포 조립에 집중했다. 포신 뒤에 폐쇄기를 꼼꼼하게 조립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함포를 항상 선미루에만 둘 줄 알고 조립 편의성에 신경 쓰지 못했다가 급한 시점에 와서야 후회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지상전용 화포 개발은 지금까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젯밤에 분해조립 연습을 해둔 것이 실전에 와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민호는 민희와 민영의 도움을 받아 끌을 대어 나무망치로 두들기고 포신과 폐쇄기 사이에 콩기름을 쳐 가면서 힘겹게 폐쇄기를 조립했다. 직할군의 전선에는 선미루와 선수루에 하나씩 탑재돼 있는 것이 함포였지만 간수군이 쓰는 대형 외륜선에는 여덟 척 통틀어 딱 하나밖에 없었다. 예전에 팽호도의 해적들을 소탕할 때 해적두목이 탄 서양범선에게 쐈던 바로 그 함포였다.
시간이 지나 간신히 함포 조립을 마친 이민호는 간수군들과 함께 무거운 함포와 포가를 들어서 겨우겨우 발사 위치로 돌렸다. 함포와 포탄을 모두 말에 싣고 오느라 포탄이 겨우 30발뿐이라서 여유가 없었다.
함포는 대충 3인치 규격으로 포신을 제작해 사거리도 짧고 위력도 크지 않은 편이었다. 포신 구경이 76mm 정도 되겠지만 정확한 자가 없고 아직 미터법도 제정되지 않은 시기라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 총소리가 계속 나서 이민호가 고개를 들었다. 조선 수군에게 박살난 왜선 네 척에서 뛰어내려 절영도로 헤엄쳐 건너온 왜군들이 바닷가에 숱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민호는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헤엄쳐 온 표류자들 정도로 예상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많이 왔다. 이들이 단순히 침몰하는 왜선에서 도망쳐온 것인지, 아니면 절영도 해안포대를 탈환하러 온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쩌면 부산포를 지키는 왜군 대장이 판옥선들을 상대하기 위해 세키부네 상갑판에 조총병들을 과도하게 몰아넣은 탓일지도 몰랐다.
“돌아왔습니다, 동지 영감! 동쪽에 포대가 둘이나 더 있었습니다. 왜군 스무 명 외에 화포가 합해서 네 개가 있었는데 포신에 화약을 가득 쑤셔 넣고 터뜨려 버렸습니다. 포구가 찢어졌으니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간수군들이 저마다 왜군 수급을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왔다. 이민호가 잠시 흠칫했지만 놀라지 않은 척했다. 수급들이 가마니에 담긴 후라면 몰라도 목 부위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생 수급을 보는 것에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 잘했다. 서쪽으로 가서 혹시나 왜적들이 건너오면 막아!”
대정들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하고 포대 주변에도 3개 대를 배치했다. 전에 사천해전에서 왜선을 수색했던 대정이 이곳에서 선임이라 임시 여수를 맡겨 전체를 지휘하도록 했다.
포구 후미에 포탄과 장약을 집어넣은 민영이 폐쇄기를 닫았다. 이민호가 본격적으로 표적을 찾았다. 바다 건너 불타는 왜선들 너머 언덕에서 조총과 화포를 쏘는 왜군들을 우선 잡아야 할 것 같았다.
“거리가 예상보다 머네.”
이민호가 예전에 배를 타고 부산항을 지나가거나 TV로 볼 때는 몰랐는데 절영도에서 부산진성까지 거리가 3km가 넘었다. 함포의 최대 사거리 안에 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정확도를 보장할 수 없는 거리였다. 고산국 사공들이 전선에서 함포 사격 훈련을 할 때는 2km 거리에 낡은 어선을 표적으로 놓고 쏘았고, 그래도 잘 맞지 않는 것은 조선 수군의 주력 화포인 지자총통과 마찬가지였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에서 포를 쏘려면 포 안정장치나 정밀한 사격통제 장치가 필요했다. 이것은 이민호의 전문 분야에 가까웠으나, 이 시대에 과연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 싶어서 개념만 세워두고 아직 실제로 만들지는 않았다.
여기 초량목에서 북쪽, 부산진성을 기준으로 그 동쪽, 현대의 감만동 언덕 여러 곳에도 왜군들이 토굴을 파고 진채를 세우는 등 방어 시설이 꽤 많이 늘어나 있었다. 이민호가 기억하기로 예전보다 방어가 훨씬 강화된 셈이었다.
이게 다 며칠 전에 이민호가 화약 쌓인 곳을 포격해 부산포 전체를 홀랑 태워먹은 탓이었다. 역시나 부산진성 한쪽 성벽이 허물어져 있었고,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다. 화약이 쌓여 있던 곳은 움푹 팬 웅덩이로 변해 며칠 전에 온 비로 인해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 퍼버벙! 펑!
- 타탕! 탕!
부산포 앞 바다에 들어선 연합함대 판옥선들이 수없이 많은 왜선들에게 화포를 퍼붓고 있었다. 조선 수군은 기존에 갖고 있던 천지현황 뿐만 아니라 불랑기포도 꽤 많이 보유했다. 1563년 이전에 이미 조선에서 복제해 보유한 화포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인기가 없던 것을 이민호가 몇 가지 개량했다. 이후 전라좌수영에서 다량 생산하고 다른 수영에도 나눠주었다. 오늘 같은 날 왜군 진영을 향해 일시에 화력을 퍼붓기에는 자탄이 분리되는 불랑기가 훨씬 좋았다.
왜군들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을 타고 나와서 싸울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주로 육지에서 조총을 쏘는 식으로 대응 공격에 나섰다. 부산포 방어 임무를 맡은 정식 일본 수군은 병력 수송선을 호위하기 위해 대마도와 나고야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부산포에 들어오면서 이미 다 깨부순 왜선 34척이 부산포를 지키는 왜 수군의 전체 전력일 수도 있었다. 부산포에 정박 중인 왜선 470여 척 중에서 그 어떤 배도 조선 수군과 함대전으로 맞붙으려 하지 않고, 그저 쏘면 쏘는 대로 맞아 부서졌다.
왜군들이 몰려있는 부산진성 가까운 바다에는 거북선과 함께 유군장 이응화가 지휘하는 외륜선 여덟 척이 해안 가까이 버티고 서 있었다. 절영도에 내린 200명 외에 간수군 800명이 왜군 조총병들과 치열하게 총격을 교환하고 있었다.
외륜선에는 소총을 쏘는 병력도 충분하고 간수군들이 보유한 화기도 우수했다. 그러나 왜군들은 숫자가 훨씬 많았고, 부산진성 여장이나 다른 지상 구조물에 숨어서 조총을 쏘아댔다. 그래서 피차 인명피해가 많이 나지 않는 양상으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사이 판옥선들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들에 포격과 활 공격을 퍼부어 조총병들을 처치하거나 몰아낸 다음 왜선에 타르를 붓고 횃불을 던져 불태웠다. 오늘 해전의 실제 목적이 왜선 분멸에 두고 가능한 한 더 많은 왜선을 불태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판옥선들이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높은 언덕에서 왜군 조총병들이 판옥선에 집중 사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판옥선 방패판은 물론 전라좌수사의 깃발도 온통 구멍투성이로 변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언덕에 토굴을 파고 숨은 채 조총과 소형 화포를 쏘는 왜군들을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바로 이 진채가 이민호의 목표였다.
- 쾅!
이민호에 의해 첫 번째 포탄이 발사됐다. 직사화기 주제에 거의 30도 가깝게 포구를 올리고 쏜 포탄은 왜군 진지 바로 아래쪽 바위 절벽에서 터졌다. 주퇴복좌기가 뒤로 확 밀렸다가 앞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민영이 폐쇄기를 열고 탄피를 뽑는 사이 민희가 밀대로 포신 내부를 청소했다. 둘은 어젯밤에 간단히 연습한 것을 잊지 않고 잘 움직여주었다.
주퇴복좌기 덕택에 다른 구식 화포처럼 사격 절차를 완전히 새로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포신을 조금 올리고 싶은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함포에는 쇠로 만든 포가 위에 포신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포가가 너무 무거워 임시 나무 포가를 만들어서 그 위에서 조준하려니 사격 각도를 제대로 수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젠장! 포 각도를 정확히 조절하기 힘들어.”
“포신 밑에 수건을 끼울게요.”
“그래. 수건을 한 겹 더 접어서 끼워.”
간수군들 몇 명까지 동원돼 포신과 주퇴복좌기를 들어 올린 사이 민희가 수건을 접어 끼웠다. 말 네 마리가 나눠서 들고 온 함포는 사람이 들기에는 엄청나게 무거웠다.
- 쾅!
2탄이 발사되고, 운 좋게 왜군이 몰려있는 곳에서 폭발했다. 이 시대에 작렬탄은 약간 사기적인 무기였다. 그러나 작렬탄 개념이 조선에 아직 생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 뻐엉~
대형 외륜선에서도 본격적으로 대완구를 사용해 비격진천뢰를 발사했다. 언덕에 떨어진 진천뢰가 떼굴떼굴 굴러 내리다가 돌무더기에 걸렸다. 잠시 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터지면 주변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정확히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위력만큼은 좋았다.
- 콰쾅!
비격진천뢰를 쏘는 대완구가 점표적을 맞힐 능력은 전혀 없었지만 부산진성 같은 면 표적에는 쓸 만한 수준이었다. 외륜선 여덟 척에서 대완구를 연속 발사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발사된 진천뢰는 부산진성 안에서 터지면서 허름하게 지은 왜인들의 오두막 지붕을 날리고 토벽까지 무너뜨렸다.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침착하게 숨어있던 왜인들이 갑자기 아우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응화와 간수군들, 그리고 조선 수군들은 잘하고 있었다. 이민호만 아직 제 역할을 다 못했다.
이민호는 언덕의 왜군 진영을 노리고 함포를 연속 발사했다. 가끔 명중탄이 나와서 왜군 조총병들이 함부로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왜군 조총병들이 판옥선을 향해 조총을 쏘지 못하게 만들 정도면 충분히 견제했다고 할 수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잘 안 맞아요.”
“이 함포가 정확하지 못한 거야. 무겁더라도 포가를 가져올걸 그랬어. 포탄도.”
어느새 포탄이 다 떨어져 마지막 포격을 남겨두게 되었다. 절영도 지상에서 함포를 쏘아 부산진성 동쪽 언덕의 진지를 견제한다는 것이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민호는 충분히 활약하고 있었다. 일단 절영도를 점령해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뒤에서 날아오는 포탄과 총탄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이 날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입은 피해는 부친 이응화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다. 전사자 6명에 부상자 25명으로 기억한다는데 오늘 해전에서는 전사자가 둘, 부상자가 11명뿐이었다.
그리고 녹도만호 정운이 살아남았다. 모과만한 철탄이 방탄유리를 뚫고 들어왔으나 그 와중에 위력이 약해지고 방향이 틀어져 정운의 갑옷 옆구리에 맞았다고 한다. 갈비뼈 부위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정운은 살아남았다.
- 쾅!
신중하게 조준한 마지막 포탄이 왜군 조총병들이 밀집한 목책을 무너뜨리면서 폭발했다. 파편과 화염에 왜군 여러 명이 휩쓸린 것 같았다. 이후 다른 목책에 숨어서 조총을 쏘던 철포병들이 언덕 위로 도망가고, 사무라이가 칼을 휘두르며 그 조총수들을 쫓아갔다. 아시가루가 지휘관의 명령 없이 도망가는 경우는 드무니 뎃포 아시가루는 절대 아니고 아마도 돈에 고용된 잡병일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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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역사상의 부산해전과 날짜와 전개가 전혀 다른 해전입니다. 어려운 부분이 끝났네요.
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