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36화 (85/1,000)

00136  20. 막간  =========================================================================

“민호야! 너도 다 컸으니 이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피난 온 양반네 중에 몇 곳에서 중신이 들어왔는데 다들 가문이 제법 괜찮고 규수가 무척 참하다더구나.”

오랜만에 부친 이응화가 좌수영 저택에 들렀다. 여자가 여럿인데도 이민호는 아직 법적으로 총각이었다.

“전쟁통에 무슨 결혼입니까? 끝나고 말씀하세요.”

“좋은 규수가 있다던데 네가 싫다면 할 수 없구나. 김 씨 규수가 천하절색이라는데 아쉽게 됐다.”

“그 처녀가 그렇게 예뻐요? 하하! 농담입니다. 전쟁 끝나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녀석! 꼴에 사내라고. 혜진이는 아직 안지 않았지? 섭섭해 하더구나. 놓치기 아까운 아이이니 얼른 안아서 딴 생각 못하도록 해라.”

부친 이응화는 이민호에게 시키지 않은 공부를 혜영과 혜진 자매에게는 직접 시켰다. 물론 좋은 글선생도 모셔서 가르치기도 했다. 이민호는 지혜로운 혜영이 여러 모로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응화는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안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다른 데 시집도 못 가요.”

“민호 이 나쁜 놈! 잘했다. 크크크!”

이럴 때만 시대의 논리에 철저히 영합하는 이민호였다. 이민호도 혜진에게 투자한 시간이 많았다. 식이요법과 적당한 운동, 그리고 이민호가 직접 해주는 마사지로 인해 혜진은 이민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매를 갖추게 되었다. 얼굴도 어려 보여서 현대 대한민국 같으면 베이글녀 소리 듣기에 딱 맞았다.

이틀 동안 좌수영 저택에 머물며 푹 쉰 이민호는 오랜만에 대장간이 몰려 있는 봉산골로 향했다. 이민호가 방문하자 30여 호의 철장과 대장장이들이 몰려나와 기쁘게 맞이했다.

그 동안 이민호는 이들의 생활을 돌봐주면서 쇠부리가마나 강엿쇠둑 같은 제철시설을 새로 설치할 때마다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또한 흑토, 즉 석탄을 써서 더 효율적으로 철을 뽑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생산은 잘 되고 있습니까?”

“예! 동지 영감. 수영과 해동상단에서 쇠돌을 열흘에 40바리씩 보내주고 있습니다. 3주야 동안 하루에 쇳물을 세 번씩 뽑아 잡쇠를 만들고 80근짜리 판장쇠를 사흘에 20바리씩 뽑아내고 있습니다.”

철장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노인에게 영감 소리 들은 이민호는 기분이 참 묘했다.

노인 철장의 말은 수영과 해동상단이 교대로 보내주는 철광석을 받아 열흘 동안 사흘씩 두 번 제철 작업을 하고 나흘은 쉬거나 준비 작업을 한다는 뜻이었다. 이 시대에는 4단계의 제련과정을 거쳐 철광석 40바리에서 철 15~20바리를 뽑아내고 있었다. 한 바리는 300근이니 하루에 1.2톤씩 사흘에 3.6톤 단위로 철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제철작업이 진행됐다.

이 시대 조선에서 철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적정한 재고를 보유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철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재 생산량은 그 몇 배를 웃돌았다.

이곳은 아직 철광산을 운영하지 않는 고산국과 해중국이 건국 과정에서 소모되는 막대한 양의 철을 얻는 곳이었다. 이민호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들 중에서 순위가 꽤 높은 곳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지도 모르니 교대로 쉬어가면서 일하세요.”

“매양 하던 일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항상 보살펴주신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서로 돕고 있는 것이니 그런 걱정은 하질 마시오. 이대로만 하셔도 됩니다.”

마침 서당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우르르 몰려나왔다. 부친 이응화가 해삼을 잡아 방답에 보내는 바닷가 마을마다 지어준 서당이 이곳에도 있었다. 잘 먹고 잘 자란 아이들은 전쟁 와중에도 걱정이 없어 보였다.

방답에 있던 이민호와 이응호 부자를 전라좌수영에서 사환을 보내 호출했다. 해동상단 상선을 타고 선전관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기에 두 사람은 무슨 일 때문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갑옷을 차려 입은 이민호, 이응화 부자가 함께 좌수영에 출두해 보니 다른 고을 수령들과 수군 장수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다른 장수들은 이미 승차 교지를 받고 마지막으로 이민호 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전관이 호통을 쳤다.

“뭐하시는 게요? 국왕전하의 사신이 교지를 들고 있소. 이 가선대부 응화와 이 동지중추부사 민호는 어서 무릎을 꿇으시오!”

이민호와 이응화가 선전관 앞에서 후다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선전관이 교지를 펼쳐들고 읽었다.

메뚜기도 한 철이듯이 당상 무관들이 수두룩한 수영의 동헌에서 무과에 갓 급제한 새파란 무관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한 때였다. 여기 모인 장수들 대부분이 젊었을 때 선전관을 역임했었다.

“왕은 이렇게 이르노라. 동지중추부사 이민호는 전라좌수사 이순신 등과 함께 왜적을 무찌른 공이 크므로 자헌대부로 품계를 올리면서 지중추부사를 제수하며 삼도수군통제영 조방장 겸직을 명하노라. 왜적을 잡는 일에 더욱 힘쓰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무릎을 꿇었던 이민호가 교지를 받으며 일어섰다. 이민호는 벼슬보다는 달필인 선조 임금이 직접 쓴 어필 교지를 받아 더욱 뿌듯했다. 승서 교지를 공손히 받들면서 활짝 웃는 이민호를 보면서 장수들이 과연 충신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민호에게는 나쁠 것 없는 오해였다.

이번 당포와 당항포, 부산포해전의 전공으로 인해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정2품 상계 정헌대부로 승차하고 원래 역사보다 1년여 빨리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됐다. 다른 수군 장수들도 골고루 품계가 올랐다. 특히 순천부사 권준과 흥양현감 배흥립이 이번 해전의 전공으로 당상관에 올랐다.

이민호의 부친 이응화에게는 자헌대부로 품계가 오름과 동시에 통제사의 차장인 통제부사에 제수되었다. 이응화가 그 동안 실직을 사양했는데도 요즘 급한 상황이라 거의 강제적으로 벼슬이 내려졌다. 이 당시 중군이란 직책은 아직 명나라 군대에서나 있었고 조선군에는 중군의 개념이 없어 중군 대신 통제부사 직책을 받게 되었다.

자헌대부는 정2품 하계로서 정헌대부 바로 아래 품계였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오응정은 종2품 하계 가선대부로 승차했다. 품계만 따지면 병마절도사나 감사의 기준 품계가 같았다.

“통제 대감! 경하드리옵니다.”

이민호가 이순신에게 축하를 건넸다. 정2품부터 대감이니 이순신도, 이민호와 이응화 부자도 대감 호칭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고맙네. 자네도 축하하네. 이 모두가 통지 자네가 많이 도와준 덕택일세.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게나.”

“물론입니다. 대신 나중에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기억하고 있네. 정말로 그 일을 할 작정이로군. 이번 부산포에서 보니 통지 자네의 계획이 꿈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네. 이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자네를 도와주겠네.”

“고맙습니다, 치트공! 앗! 실수입니다, 통제 대감.”

역덕이라 불리는 일부 역사에 취미를 가진 네티즌들은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끝내 이기고 마는 이순신을 게임의 치트키를 쓴다는 의미에서 치트공으로 불렀다. 이순신의 도움을 받게 됐으니 나중에 아주 편하게 됐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부산포를 치고 돌아온 이후 이민호는 6월 내내 간수군들을 지휘해 경상도의 관군과 의병에게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에 매진했다. 대형 외륜선에 무기와 군량을 가득 싣고 움직일 때마다 경상우수영 판옥선들이 호위해주었으나 마치 거북선을 판옥선이 호위해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외륜선 자체에 최소 50명에서 125명의 간수군이 소총을 들고 지키므로 보급작전 중에 큰 위험을 겪은 일은 없었다. 오히려 보급품을 운반하다가 왜군의 정찰선 몇 척을 잡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민호는 경상우병사 유숭인에게 제주에서 산 말 1천 필을 전달했다. 덕택에 경상우도의 기병 세력이 두 배로 늘어났다. 진주성에는 전라좌수영에서 제작한 수군총 200정과 천자, 지자총통 등 화포, 그리고 화약을 충분히 제공했다.

이 시기 진주판관 김시민은 진주성의 병력이 너무 적어 불안하다며 기병을 이끌고 수시로 성 밖으로 나가 진주성에 접근하는 왜군들을 요격하고 다녔다. 왜군이 진주성을 아예 정찰도 못할 정도로 철저히 막은 것이다.

김시민은 사천과 고성을 휩쓸고 진해현에서 소평태라는 이름의 왜장을 사로잡는 등 대활약을 했다. 왜군들에게 모쿠소 호칸, 즉 목사판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왜군을 쫓던 김시민은 경상도 남해안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던 경상우병사 유숭인을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기겁한 유숭인이 진주성 바깥은 병사가 책임지겠다고 설득해서 김시민을 간신히 진주성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제가 이번 달에 벌써 세 번째로 진주성에 왔는데 김 판관의 얼굴을 이번에 처음 봅니다. 만에 하나 판관께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진주성을 지키겠습니까? 다른 고을의 왜적을 토벌하는 것보다는 진주성을 지키는 일이 우선입니다!”

경상우병사 유숭인이 걱정하는 말을 들은 이민호는 김시민이 진주성 방어에 집중하도록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하! 죄송합니다, 지사 대감. 대감께서 부족한 무기를 꾸준히 보급해 주시니까 제가 자꾸 나가서 왜적을 치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무기가 남아돌아서 적에게 쓰고 싶었다고요? 어휴! 못 말리겠군요.”

원래 역사에서 김시민은 조정 기준으로 7월 26일에 진주목사로 승진하며, 10월 6일에 당상관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러나 선전관이 교지를 갖고 진주성에 내려갔을 때 김시민은 10월 5일부터 시작된 진주성 전투에서 승첩을 거두고 10월 10일에 전사한 다음이었다.

그런데 김시민의 복장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김시민이 갑옷은 찰갑 계열인 수은갑을 입었는데 투구를 쓰지 않고 새까만 전립을 쓴 것이다. 이 당시 무관들은 갑옷을 입을 때는 투구를 쓰고, 철릭 위에 전복을 입으면 챙이 넓은 전립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이민호가 물어보니 김시민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창칼이 난무하는 백병전을 할 때는 투구가 낫고, 시석이 쏟아질 때는 전립이 낫다지 않습니까? 왜적들이 조총을 쏘는 것을 보고 나서는 전립을 쓰고 다닙니다.”

“안 어울립니다만.”

“안 어울린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멋을 부리다가 총탄에 맞아 허무하게 죽는 것보다는 남들에게 놀림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아 왜적을 하나라도 더 잡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실용적인 김시민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민호는 왜 그가 진주성 대첩을 거둘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진주목사를 지낸 전 관찰사 김제갑이 선정을 베풀어 그 조카인 김시민이 진주 성민들의 인심을 얻기 쉬웠다지만 김시민의 합리적인 판단과 노력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짐승 털을 다져서 만든 전립이 부드럽고 두꺼워 총탄과 화살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높다는 이야기는 조선후기 백과사전인 <임하필기> 18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립과 벙거지는 모양은 좀 다르더라도 몽골족과 거란족이 털을 다진 전(氈)으로 만든 모자를 쓴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민호가 이끄는 간수군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경상도 각 지역의 의병들에게 활과 화살, 수군총 등 무기를 지급했다. 군량은 각 지역 소규모 민간 사창에서 대신 지급하도록 편지를 보냈다. 이를 위해 이민호가 처음으로 어음을 발행했다.

사창 주인들 사이에서는 한꺼번에 백미 수십만 석을 동원할 수 있는 이민호의 신용이 매우 높았다. 어차피 가만 놔두면 의병이든 왜군이든 사창의 곡식을 빼앗아갈 것이므로 이민호가 개입한 덕택에 손해를 모면하게 되었다.

사창에 보관된 곡식이 동이 나면서 주인과 사창을 지키던 경비 일부는 의병에 가담하고 일부는 전라도와 보급선을 유지하는 일을 도왔다. 민간 사창 관계자들은 사창 신문의 주요한 구독자였으므로 가족 대부분을 전라도로 피난을 떠나보냈다.

이민호가 경상도 남해안을 자주 들르다 보니 섬이나 산에 숨어있던 피난민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땅굴을 파거나 숲속 깊이 숨어 있다가 조선 수군 군선이 지나갈 때 왜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전라도나 왜군이 점령하지 못한 경상도 서부로 피난을 하라고 해도 이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이민호는 해동상단 소포 지점에 경상도 섬에 숨은 피난민들에게 쌀을 공급하라고 지시해놓았다.

“저 사람들은 어째서 피난을 안 가는 거야? 고맙긴 한데 불안해.”

“집 뒷마당에 금송아지라도 묻어놓았나 봅니다. 공짜로 척후를 부리는 셈 치지요, 뭐.”

계복이 연도에 오래 있으니 너무 심심하다고 이민호를 따라다녔다. 이민호가 직할군이 조만간 명나라의 영하로 출정할지도 모른다니까 계복이 너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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