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21. 웅치전투 =========================================================================
그러나 왜병들은 군율이 강했다. 석환이 쓸고 가서 빈 줄은 뒷줄의 왜병들에 의해 금방 메워지고, 왜병들은 화포를 두려워하면서도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그 직후 창병대열이 본격적으로 조선군을 향해 전진했다. 널찍한 나무방패와 둥그렇게 말아둔 대나무방패를 들고 조총병과 궁병들도 줄을 맞춰 전진해왔다.
“끄응! 부럽다.”
이 시대의 군대로서 지극히 이상적인 왜병들의 대응에 이민호가 솔직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장을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흔한 조선군이나 명나라 군대와는 전혀 달랐다.
일본에서 전국시대를 거치며 신분의 차이를 떠나 전쟁에 참가한 모든 자들에게 용기가 가장 중시되었다. 에도시대 이전의 조총병들은 실제로는 병사이면서 토지 분급에 있어서는 사무라이와 비슷한 아시가루가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시가루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군역에 종사하므로 동료들보다 먼저 도망갈 경우 고향에 돌아가서 낯을 들 수 없게 된다.
사무라이들은 더 용맹했다. 사무라이들이 전공을 세우면 포상으로 치교(知行)라고 해서 주군이 봉토를 넓혀주고, 용기가 없다고 평가받으면 낭인무사로 떨어지므로 사무라이 입장에서 전쟁은 목숨 걸고 하는 사업이었다. 하인이라고 부르는 일본 백성들은 쉽게 도망가지만 작정하고 싸울 때는 왜구처럼 무서운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전란기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일본인들이 불쌍하기도 했다.
“저건 바보짓이에요. 사람의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니 훌륭한 장수는 저런 식으로 병사들을 집단에 매몰시키지 않아요. 여진족이라면 이럴 땐 당연히 흩어져서 포위하거나 야습을 할 거여요.”
민희가 괜히 흥분해서 떠들었다. 조금 맹해 보이는 민영은 민희와 이민호 사이에서 눈치만 살폈다. 둘 다 가슴을 강조하지 않은 남자용 군복을 입고 있었으나 여전히 미모가 빛을 발했다.
“저들의 주력은 기병이 아닌 보병이니까 저게 나을 수도 있어. 화포와 좋은 활을 사용하는 조선 관군이 괜히 저들에게 판판이 깨진 것은 아니거든. 전국시대 100년 동안 단련된 강군의 모습이야.”
이민호가 왜병들을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자였다. 저런 강병을 깨뜨릴 수 있다면 조선 관군과 의병들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이민호는 믿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군사들은 전쟁에 이기거나 지거나 이익이 없고 불이익도 없는데 열심히 싸울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상벌이 명확하지 않으니 전투 중에 죽으면 죽은 사람만 손해였다. 물론 조선에도 상벌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지만 군사들이 목숨 걸고 적과 싸우게 할 만한 강력한 동인은 되지 못했다.
“거리 됐다. 일제 사격 후 자유 사격. 각 대별로 쏴!”
- 타다다다다당!
이민호가 지시를 내린 순간 간수군들이 일제히 발사했다. 조총병들이 가장 먼저 쓰러지고, 궁병들도 표적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왜군이 들고다니는 커다란 나무방패는 보병총 탄환에 맞을 때마다 구멍이 숭숭 뚫렸다. 대나무방패는 총탄이 직선으로 관통하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관통해서 뒤에 숨은 왜병들을 쓰러뜨렸다.
오늘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간수군들에게 실탄을 충분히 지급했다. 그리고 총병들 대열 바로 뒤에도 실탄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평소 여수가 관리하던 탄약 상자를 오늘은 대정에게 분배 권한을 주었다.
25인의 대원들마다 그 뒤에 탄약 상자가 다섯 개씩 쌓여있었다. 든든해진 간수군들은 평소 사격 훈련을 할 때보다 훨씬 빠르게 장전한 다음 보병총을 쏘았다. 마치 총탄을 퍼붓는 듯했다.
“대감. 왜군 일부가 북문으로 나와서 멀리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들 가볍게 입고 뛰는 것을 보면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을 포위하려는 것 같습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보낸 척후들이 말을 타고 와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적이 수적 우위를 믿고 단순하게 정면에서 계속 몰려온다면 좋겠지만, 상대 지휘관은 일본에서 나름대로 지장으로서 명성을 얻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였다. 역시나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민호가 척후들에게 계속 감시하라 명하고 다시 정찰 위치로 보냈다. 실제 역사에서 고경명 의병도, 조헌 의병도 고바야카와군에게 포위당해 전멸했다. 이민호도 이곳에 오기 전부터 왜군이 포위공격을 시도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전투는 계속됐다. 왜병 수천 명이 정면에서 꾸준히 몰려왔지만 간수군들이 펼치는 불의 장막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아주 가끔 사무라이가 칼을 높이 들고 총병 대열에 뛰어들려고 하면 옆에서 의병과 관군들이 활을 쏘아 쓰러뜨렸다.
대완구를 맡은 화포장들은 이민호의 지시에 따라 다른 곳의 전황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금산읍성 안쪽으로 비격진천뢰를 쏘아 넣었다. 금산성은 완전히 불구덩이로 변했으나 이민호는 계속해서, 진천뢰가 다 떨어질 때까지 쏘라고 명령했다.
고바야카와군의 보급품이 집결한 금산읍성이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 작전이 성공하면 오늘 전투의 승패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든 고바야카와군은 더 이상 충청도나 전라도를 노릴 수 없게 된다. 그들은 다른 왜군 부대에게 식량을 구걸하거나, 감자를 구워먹으며 부산까지 걸어가야 할 것이다.
전투가 이런 식으로만 계속된다면 조선군의 승리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왜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대감마님! 남쪽 진악산에서 왜군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숫자는 3천 명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후방에 배치된 간수군 대정이 달려와 낮은 목소리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배후에 왜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포위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의병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도망칠 우려가 있었다. 이민호는 의병들이 전투에 집중하도록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방법은 의병장 및 관군 장수들과의 작전회의 때 이미 준비되었다.
“간수군 전원 착검! 좌군 사격 중지. 우군 전진!”
계복이 이끄는 200명이 참호에서 나와 앞으로 걸어가면서 총을 쏘았다. 각 대마다 지정된 탄약병들이 지게에 탄약을 싣고 따라갔다.
미리 약속한 대로 간수군 대열 왼쪽에 전라방어사 곽영의 관군, 오른쪽에 권율과 황진, 이복남의 군세가 보조를 맞춰 전진했다. 그 뒤로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 본군이 따라갔다.
이민호는 곽영과 만나 인사하지 않고 서로 공장만 교환했다. 작전 계획에 관한 의견도 문서를 통해 주고받았다. 곽영은 이미 15년 전에 전라우수사와 경상병사를 역임했던 노장이라 젊고 품계가 높은 이민호를 만나는 것을 꺼린 탓이었다. 그래도 지휘부가 결정한 작전에 강짜를 부리며 반대하거나 사사건건 방해하거나 하는 일은 없이 조용히 순응하는 편이었다.
잠시 후 금산읍성 남문 밖에서 양측 공히 1만씩에 달하는 군세끼리 맞붙었다. 간수군이 가진 보병총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계복이 지휘하는 겨우 200명으로 왜군 1만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함께 움직이는 관군과 의병들이 창칼과 활로 지켜주는 사이 간수군들은 계속 사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왜군은 기본적인 부대 단위로 장창방진을 중심으로 좌우에 조총병과 궁병을 배치했다. 왜구가 아닌 정규군답게 조직력에 최우선을 둔 진형이었다. 그러나 간수군 200명의 화력은 사격 겨우 몇 번에 그 조직력을 박살내 버렸다.
절반쯤 구멍이 난 장창방진은 환도나 단창을 들고 뛰어든 조선 관군의 공격에 취약했다. 조총병이 몰살하고 남은 궁병들은 각궁을 쏘는 조선 궁수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조선군은 왜군의 방진 여러 개를 차례로 부수면서 북쪽으로 전진했다.
이민호는 북쪽에서 진행되는 전투와 남쪽 진악산을 번갈아 살폈다.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남쪽에서 산길을 달리는 왜병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고바야카와군은 늦지 않게 남쪽에 도착해 조선군의 배후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길을 이동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인 탓에 계획은 이미 틀어져 버렸다. 혹은 이치와 웅치에서 그렇게 당해놓고도 간수군의 화력을 잘못 계산해 금산성 동문과 서문에서 너무 빨리 나왔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조선군에게 유리했다.
“온다! 화포장들은 총통을 남쪽 진악산 방향으로 돌려라!”
동차에 올려진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이 뒤로 반 바퀴 돌았다. 간수군과 관군, 의병이 전진한 다음부터 화포는 놀고 있었다. 이민호가 시킨 대로 화포장들은 천자, 지자총통의 포구에 조란환을 꽉꽉 눌러 담아놓았다. 이민호는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을 언급할 때마다 히틀러나 대만 총통을 떠올리곤 했다.
그 사이 이민호는 관군과 의병들을 따라온 종들을 전투현장과 화포 포대 사이로 이동시켰다. 말구종이나 몸종, 심부름꾼 같은 허드렛일을 맡은 비무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만 해도 2천 명이 넘어갔다.
남문 밖 전투는 금산성의 성벽 때문에 달라질 수 있었지만 그 남쪽 들판에서의 전투는 몸을 피할 곳 없는 순수한 야전이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사거리가 긴 화포를 철저히 이용하기로 했다.
이민호는 후방에 배치됐던 간수군 50명을 화포들 사이에 배치시키고 포대 좌우에 100명씩 배치시켰다. 그 사이 산길로 이동하던 왜군들이 들판으로 내려와 전열을 가다듬었다. 왜군의 수는 4천 정도로 추산됐다. 화포가 지원하는 간수군 250명과 왜군 4천 명의 대결이 바야흐로 시작될 순간이었다.
이민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본군끼리 싸우는 현장을 살폈다. 계복이 이끄는 간수군들이 왜군 창병방진을 몇 개나 깨뜨려 전열을 흩트려놓는 사이 관군이 돌진해서 왜병들을 찌르고 베었다. 조선 관군이 싸울 때는 잘 싸웠다. 도망을 잘 가서 그렇지.
의병들은 관군 대열 뒤에서 주로 활을 높이 곡사로 쏘며 지원했다. 화력과 기세에서 밀린 왜병들이 금산읍성의 남쪽 성벽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 타타탕! 탕!
역시나 고바야카와가 준비해놓은 것이 또 있었다. 전투가 금산성의 남쪽 성벽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자 성벽에 왜군 조총병들이 나타나 총을 마구 쏘아댔다. 곽영이 지휘하는 관군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고, 만약 두 번째 조총 사격이 이어졌다면 도망병이 다수 발생해 하마터면 전열이 무너질 뻔했다.
- 펑!
계복이 딱 두 발 남은 유탄 중에서 천금 같은 한 발을 성문 위 장대를 향해 발사했다. 장대 밑에서 총구를 통해 화약을 쑤셔 넣고 있던 조총병 몇 명이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나 계복의 목표는 조총병들이 아니었다.
공격 초반에 대장군전과 차대전, 철환과 석환에 연달아 얻어맞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장대 지붕이 잠시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장대 밑에 숨은 왜병 수십 명을 깔아뭉갰다.
간수군들도 성벽에 붙어서 조총을 쏘는 왜병들을 먼저 노리고 보병총을 연속 발사했다. 왜군 조총병들이 여장에 숨거나 총안구를 통해 조총을 쏘는 바람에 오히려 간수군에 인명 피해가 늘어났다.
총격전 와중에 나주판관 이복남이 병사들을 이끌고 무너진 옹성을 타고 금산성 성벽으로 올라갔다. 성벽 밑은 물론 위에서도 싸움이 이어졌고, 몇 안 되는 왜군 조총병들은 곧 나주 군사들의 창칼에 도륙됐다.
누구든 금산성에 진입하면 왜군 보급품을 불 지르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복남은 작전을 잊지 않았고, 금산성을 탈환하는 것보다는 왜군 보급품을 불태우는 것에 집중했다. 진천뢰 포격을 피하기 위해 남쪽 성벽에 바짝 붙여서 쌓아놓은 왜군의 보급품이 일제히 타올랐다.
이민호가 피식 웃었다. 이제 조선군이 금산에서 물러서더라도 고바야카와군은 거지 꼴이 되어 부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감마님! 왜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 화포를 쏴라!”
지금 이민호가 맡은 지역은 남쪽이었다. 싸움 구경하다가 하마터면 적절한 포격 시기를 놓칠 뻔했다.
- 퍼버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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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전투편은 쓰다 보니 길어졌고, 이제 한 회 마무리만 남았습니다.
내일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