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8 22. 출정 =========================================================================
이민호는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미카와 왕명명을 호출했다. 두 사람은 이 기회에 해남도를 어떻게 하면 꿀꺽 집어삼킬 수 있을지 밀도 깊게 정보를 수집하고 또한 사전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우물에서 숭늉 찾는 꼴이었다.
“이봐, 명명! 관작을 받기는커녕 아직 출정도 안 했어. 발배의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주애백을 받기로 했잖아?”
“주인님이 가시면 당연히 이기시겠죠. 그리고 원정을 가지 않더라도 황제폐하께서 주인님께 주애군을 주시려고 했을 거여요. 수군을 유지하기 어려운 명나라 입장에서는 남쪽 바다를 주인님께 맡기는 편이 가장 싸게 먹히니까요.”
명나라 초기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정화의 원정이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것은 함대 유지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이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해군 또는 수군을 국가예산으로 유지하기 어렵고, 그것은 과도한 군비 지출에 시달리는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해군 유지비는 같은 인원의 육군 유지비용보다 몇 배나 더 들고 해군 창설비용은 함선 건조비용 때문에 몇 십, 몇 백 배나 든다.
해양제국이라는 근세 영국도 17세기까지만 해도 왕실 해군 소속 군함은 극소수였으며 그것마저 평화시에는 상인들에게 빌려주고 전시에는 상선을 징발하는 시스템이었다. 사략선이나 해적선, 상선을 해전에 동원한 것은 오스만 제국이든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지방에서 판옥선 건조 및 유지비용을 댔으니 대규모 수군 보유가 가능했고, 일본도 임진왜란 전에 각 지역에 군선 건조 수량을 할당했다.
이 시대에 국가예산으로 함선을 건조하고 대규모 해상세력을 유지하는 국가는 거의 없었고, 있다면 국가 파산을 선언한 에스파냐 정도였다. 깔레해전에 투입된 에스파냐 무적함대 소속 함선 130척 중에서 왕립해군 전함은 22척에 불과했다. 고산국의 경우에도 전선 제조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국가예산 외에 왕실재산에서 절반 이상 투자돼야 했다.
“그런가? 그래도 몽골 기마병들하고 한 판 붙어보고 싶어서 그래.”
화승총만으로는 대규모 기마병의 돌입을 제압하기 아직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뇌관식 탄약과 후장식으로 장전하는 단발 소총이라면 기마병 제압이 가능할 것으로 이민호는 생각했다.
“혹시 조선 북쪽 옛 금나라 땅을 갖고 싶으신 건가요?”
“만주? 추운 황무지 땅을 가져서 뭐하겠어? 요즘 건주여진이 커져서 불안하니까 나중에 여진족으로부터 조선을 지켜주고 싶은 거야.”
“흐음!”
왕명명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지도를 펼쳤다. 영하로 출정할 군대는 준비됐지만 수송과 보급문제는 아직 논의하지 못했고, 오늘 대충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만주라는 지역 명칭은 건주여진의 성장과정에서 나온 말이며 처음에는 20세기 초의 만주국이나 동북3성과 같은 지역 개념이 아니었다. 이때는 건주여진 그 자체 세력 또는 건주여진이 장악한 여러 여진 부족과 그 영역을 나타내는 명칭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계속 만주라고 떠들고 다녀서 주변 사람들도 조선 북방의 넓은 땅을 만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보바이가 반란을 일으킨 곳은 영하인데 현재 오르도스의 몽골족들하고 연결되어 있어요. 오르도스는 황하가 북쪽으로 달리다가 남쪽으로 꺾은 만곡부 안쪽이에요.”
오르도스는 황하 남쪽인데도 초원과 목초지가 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북방 기마민족이 이곳을 장악하면 가까운 북경이 위험해지는 민감한 지역이기도 했다.
올해 3월에 부총병 발배(哱拜)와 아들 발승은, 유동양(劉東暘), 허조(許朝) 등이 영하(寧夏)에서 순무 당형과 부사 석계방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발배, 즉 보바이는 원래 몽골 타타르부 출신인데 부하 천여 명을 이끌고 명나라에 항복하여 3년 전에 부총병에 임명되었던 장수였다.
현재 총독 위학증이 6로로 군사를 나누어 영하를 포위했으나 반란군의 농성에 막혀 패배만 거듭하고 있었다. 영하 지역에는 영하성과 만리장성 말고도 요새 역할을 하는 보루가 20여 개나 산재해 있었다. 진압군이 이것들을 일일이 점령하자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요동총병 이여송은 6월에 이미 영하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것은 이민호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여차하면 발배의 난이 이민호가 도착하기 전에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원래 역사대로라면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수공을 해야 하므로 준비 시간이 좀 더 걸릴 가능성이 컸다.
“기병과 보병 수천을 끌고 가야하는데 보급이 가능하겠지? 황하로 수운이 어디까지 되나? 가능하다면 병력도 배에 다 싣고 가면 좋겠어.”
“올해는 황하의 수량이 풍부해서 낙양까지는 확실하고 그 위로는 알 수 없어요. 황하는 수시로 토사가 쌓이는 곳이니까요.”
물 열 말에 황토 여섯 말을 섞은 것이 황하 물이라는 속설이 있었다. 심한 지역은 물이 아닌 물질이 절반에 육박하니 그 속설은 과장이 아니었다.
“일단 내가 사흘 먼저 출발해서 황성에 들렀다가 황하 하구에서 원정군을 만나면 되겠구나.”
“사흘 만에 돌아와서 만날 수 있겠어요? 주인님은 혹시 황하 하구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산동반도 북쪽에 있잖아? 천진 남쪽이겠지.”
이민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민호가 기억하기로 황하는 북쪽, 양자강은 남쪽에 있었다. 명나라 황궁에 입조할 때 대운하를 통해 북경으로 가면서 두 강을 조금씩이지만 지났으니 확실했다.
“황하 하구는 산동반도 남쪽, 강소성 해주에 있어요. 도대체 주인님은 어느 시대에 발간된 지리서를 읽으셨는지 모르겠군요. 황하가 400년 전에 회하와 합쳐졌어요. 확인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뭐? 강이 왜 돌아다녀?”
“어머나! 방금 그 말씀은 못 들은 척할게요.”
강소성 해주(海州)는 현대 연운항의 옛 이름이었고 1855년까지 황하 하구에 위치한 도시로서 수운과 해운, 육운을 연결하는 기능을 했다. 황하는 1887년까지 발해가 아닌 황해, 즉 조선의 서해로 흐르고 있었다.
토사를 수량의 절반이나 싣고 다니는 황하는 물길을 수시로 바꿔서 한때 양자강과 합해진 적도 있었다. 하남(河南)이 이름과 달리 황하 북쪽에 있는 시대였다.
“지도 좀 자세히 보자.”
이민호가 황하 유역에 위치한 도시들을 짚어가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오르도스와 영하가 의외로 북경에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500km라면 기마병 입장에서나 가깝지, 보병이 보급품 수레를 끌고 가기에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몹시 힘겨울 듯한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왜군이 부산포에서 한성으로 군량 보급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의병의 활동으로 인해 사실상 실패했다. 이것을 본다면 육상 보급로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조선시대 조운선이 쌀 천 석, 일반 판옥선이 천오백 석을 운송할 수 있는데 반해 수레는 13석, 길이 없을 경우 말 한 마리가 1.6석, 사람은 3분의 1석을 운반 가능했다. 물론 말이나 사람이 먹을 식량은 별도로 준비해야 했다.
일정 거리가 넘으면 육로 원정은 불가능해지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었다. 물론 명나라 영토 내에서는 식량과 말먹이 곡식을 구입할 수 있으므로 추가 운송 부담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보급품 수송 문제가 항상 군대의 발목을 잡았다.
“좋아. 그럼 병력과 말, 보급품을 모두 싣고 일단 낙양까지 가자. 그 다음에 황하의 수량을 봐서 더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로 하자. 수레는 내린 곳에서 사지 뭐.”
“너무 주먹구구 아닌가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요.”
“황하의 유랑이 불확실하니까 할 수 없지. 명나라 백성들을 군량 수송 부역에 동원할 수도 없으니 우리가 육로로 갈 수는 없잖아?”
8월 초순에 보바이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원정군이 고산국을 출발했다. 대외적으로 원정군 대장은 고산국 대원수 계복이었고, 이민호는 기함에 타고 나흘 먼저 천진으로 향했다.
원정군은 기병과 승마보병 3천, 말 5천 마리, 흑인 위주로 구성된 보병 3천, 해병 1천, 짐을 운반할 마부와 하인 5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산국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총동원한 셈이었다.
병력과 보급품을 수송하기 위해 고산국의 운송능력을 총동원하고도 모자라 조선 해동상단에서 외륜선 12척, 류큐왕국에서 5척을 빌려야 했다. 그런데 황하 하류인 해주 인근 바다가 토사로 막혀 준설하느라 사흘 넘게 시간을 까먹었다.
“황제폐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만세, 만세, 만만세.”
“의용공주는 더 예뻐졌구나. 행복해 보여서 애비로서 무척 기쁘다.”
이민호와 의용공주는 8월 17일, 일명 성탄절에 명나라 황제를 황궁 깊은 곳에서 알현했다. 황제와 황후, 황태후 두 사람은 물론 후궁들까지 주상아의 첫 번째 근친 방문을 몹시 기뻐했다.
“의용공주 전하. 정말 장하십니다. 부마도위도 헌앙하셔서 이 어미는 마음이 놓인답니다.”
의용공주 주상아의 생모인 공각황귀비 정 씨는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다. 모녀지간에 손을 잡고 훌쩍이는 것을 가슴이 찡하게 지켜보는 이민호에게 황제가 물었다.
“국왕은 아직 정식 혼인은 안했다지? 초혼인 공주를 자네에게 주면 좋겠지만, 대신들이 자넬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아 차마 못하겠군.”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명나라의 역대 부마도위들 중에서 저만큼 신분이 높은 사람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의용공주의 경우 조정 신료들이 많이 참은 것 같습니다.”
황후나 후궁들이 평범한 집안 출신인 것처럼, 명나라 공주들도 평범한 집안의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규례로 정해져 있었다. 문무대신의 자제들은 공주를 부인으로 얻을 수 없었다. 외척의 발호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의미였다. 의용공주의 경우 흠집이 있어서 명나라 조정 대신들이 눈감아 준 셈이었다.
그래도 역대 황제들은 아버지로서 딸인 공주를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해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환관을 시켜 부마 후보의 뒷조사를 철저히 시켰다. 그러나 공주라는 신분은 호사가들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만큼, 환관이 뇌물을 받고 부마 후보에 대한 신상 조사를 허술하게 하고 넘기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돈만 많은 병자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불행해진 공주들이 몇 있었다.
“주애군이 비록 남방의 절해고도이지만 국왕에게 필요할 것 같더군.”
“남방 무역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었는데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황제가 이민호에게 해남도에 대한 확실한 언질을 해주었다.
“하지만 하잘 것 없는 땅이라도 대명의 영토일세. 자넨 절대로 대명의 영토에 욕심을 내지 말고, 조정 신료들에게 의심도 사지 말게. 물론 국왕 자네에게는 항구만 있으면 되겠지만, 조정의 신료들은 우려를 많이 할 거야.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게나.”
“물론입니다. 마침 안남, 시암 등과 무역할 때 중간 거점으로 사용할 안전한 항구가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위치가 아주 좋습니다.”
무역하기 좋은 위치라면 일반적으로 군사상 요충지일 가능성이 컸다. 해남도는 안남, 즉 베트남을 견제할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반대로 안남의 어느 지방에서 배가 출발해도 해남도에 닿을 수 있으니 방어하기 유리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다행이군. 이번에 발배의 난을 진압할 때는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게. 국왕 자네는 병력을 동원하는 성의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몽골족은 솔직히 나도 두렵네.”
“앞으로는 기마병이 별로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무기가 훌륭한 것은 알지만 자넨 국왕일세. 내 사위이기도 하고. 절대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게. 조선에서 왜적과 싸울 때도 위험할 뻔했더군.”
이민호가 뜨끔했다. 황제의 눈길은 조선에도 미치고 있었다. 어쩌면 일본에도 미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 말씀처럼 금산성에서 조금 위험했습니다. 하명하신 대로 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듣자 하니 조선 수군의 전선에서 화포를 쏘아 나고야 성의 천수각을 주저앉혔다더군. 그때 평수길은 천수각 근처의 궁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오줌을 지렸다더군. 하하하! 그 일을 한 사람은 국왕 자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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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는 게 좀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