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49화 (98/1,000)

00149  22. 출정  =========================================================================

“헉! 예. 맞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고하리까?”

정말로 명나라에서 일본에 첩자를 파견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게 겐타로가 보고한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황제가 쥐고 있었다. 출발 직전 겐타로가 새로 보낸 편지에는 풍신수길의 행방에 대한 여러 가지 상반된 다른 정보들이 있었다.

당시 성주나 다이묘가 천수각 안이 아니라 그 근처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황제가 한 말이 맞을 것 같았다. 몇 달 뒤에 다시 알아보니 나고야 성의 천수각이 무너진 바로 그 날 오전에 풍신수길이 허겁지겁 성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명나라는 일본 내부의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1591년 절강순무 상거경과 양광총독 유계문은 히라도 등에 거주하는 재일 명나라인, 일본과 무역하는 절강상인과 유구국 상인 등을 통해 일본에서 꾸준히 정보를 빼내서 조정에 보고하고 있었다. 히라도에 살고 있던 중국인들이 명나라를 오가는 상선을 통해 몰래 편지를 보내다가 풍신수길에게 붙잡혔다가 처벌 없이 풀려난 이야기는 꽤 유명했다. 복건 사람 허의후와 객상(客商) 진갑은 일본이 임진년에 침공할 계획이라고 명나라에 미리 알려 사서에 이름까지 언급됐다.

이 당시 일본의 정세를 판단하기 위해 명나라에서 활용할 정보 소스는 다양하고 간첩의 숫자도 충분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황실에서도 동창을 움직여 일본에 간세를 다수 파견했다. 풍신수길에게 불만을 품은 다이묘에게 접근해 반란을 일으킬 계획이라지만 쉽지 않을 일이었다. 금의위 지휘사 유수유가 직접 키운 간세들도 다수 일본에 파견했다고 하는데 이민호는 황제가 슬쩍 지나가는 말로 해서 알게 되었다.

다만 조선만 일본 사정에 대해 깜깜했다. 조선은 임진왜란 전에는 상인이나 포로가 됐다 돌아온 사람들을 통해 일본의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신묘년(1591)에는 <왜의 정세를 진술하는 주문>을 통해 일본이 침공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명나라에 알려 명나라가 복건, 절강, 직예 등에 전쟁준비를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는 왜군의 침공에 정신없이 밀리다 보니 일본 내부의 정보를 구할 겨를이 없었다. 조선에서는 나고야 성이 공격받은 사실을 삼도수군에게 새로 붙잡힌 왜인 포로를 통해 몇 달 후에나 알게 되었다.

“역시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도 열심히 왜적과 싸우고 있었군 그래. 고산국왕 자네는 재주가 많고 충심이 깊은 사람일세. 이 정도로 나라를 키웠으면 아무리 고국이라지만 조선과 관계를 끊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일세. 그래서 나도 안심이 되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앞으로도 영원히 제 마음이 변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민호는 억지로 황제에게 충성맹세를 하게 되었다. 이민호는 두 나라를 배반할 생각은 갖지 않았다. 조선과 명나라가 망하지 않는 동안에는 직접 침공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반란군 혹은 기마민족에게 망한 후에는 당연히 그 영토에 욕심을 낼 생각이었다.

“국왕은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겠지만 소인배들에게 시기도 많이 받을 거야. 항상 보중하게나.”

“각골명심하겠나이다, 폐하.”

“황하 중류와 하류에 준설선이 몇 척씩 있네. 뱃길을 가로막는 토사를 파헤쳐 배가 다닐 만한 깊이의 물길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네. 해당 아문에 칙서를 내릴 테니 준설선들을 자네 함대를 위해서 쓰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가 천리를 내다본다던데 정말이었다. 이민호는 환관이 지휘 책임을 맡는 정보기관인 동창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원정군을 실은 함대가 아직 명나라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원정군에 무엇이 부족한지 바로 알아보고 해결해주었다.

“이번에 고산국에서 보병총이라는 것을 하나 입수했지. 국왕이 직접 바치지 않아서 섭섭했지만 대강 뜯어볼 수 있었네.”

“예에?”

“고산국에서 일하는 누가 황실에 그 총을 바쳤다네. 국왕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아랫사람들을 잘 간수하게나.”

“죄, 죄송합니다. 황공하옵니다.”

황제에게 되물은 것 때문에 주변에서 금의위 위사들이 이민호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위사들이 쏘아 보낸 살기가 이민호의 몸을 관통한 듯 찌릿한 기운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몇 발 쏘는 것을 친람했는데 참으로 신묘한 무기더군. 조총보다 훨씬 좋았어. 그래서 대명의 병장국과 화약국에서 복제하라고 시켰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네. 총알이 아주 특이하더군.”

“남만국에서 수입한 물건이라 고산국에서도 총과 총알을 많이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몇 정 헌납하겠으나 항상 충성스러운 금의위가 있으니 황실의 경호에는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민호는 많이 놀랐다. 아마도 임노동자를 가장하여 고산국에 스며들어온 동창의 간세가 보병총을 훔쳐간 모양이었다. 이민호는 총기 관리를 철저히 지시했는데도 이렇게 빈틈이 생겼다.

만약 간세가 무기창고에서 교묘하게 보병총을 훔쳐갔다면 그 총을 보유한 부대에서는 없어졌는지 아직 모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당시 기술로 명나라에서 복제하지 못할 것으로 이민호는 확신하고 있었다.

“총알 뒤쪽에 붙은 얇은 판이 기술의 핵심인 것 같아. 불을 붙이지 않고 다만 쇠와 빠르게 충돌만 시켜도 화약이 터져 총알을 앞으로 밀어내니 말일세. 화약도 뭔가 좀 다르고.”

“헉!”

이민호가 헛바람을 삼켰다. 황제의 말을 들어보니 탄피일체식 후장소총의 복제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연화약은 복제가 절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민호에게는 이럴 때 이름을 팔아먹을 유럽 나라들이 많았다.

“저희도 서반아를 통해 이태리라는 남만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정확한 기술은 알지 못합니다. 보병총과 탄환이 금의 무게보다 비싼 무기이긴 하지만 사지 못할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게 비싼가? 고민해봐야겠군. 이태리는 또 어느 나라인가?”

“사람을 사자나 호랑이하고 싸움시키고, 남자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때수건을 만드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특이한 야만국이로군.”

당시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탈리아를 야만국이라 칭할 수는 없었다. 영국 왕립해군과 스페인 무적함대가 깔레에서 싸울 때 양측이 동원한 화포는 이탈리아 또는 독일제였다. 나라가 분열돼 정치적인 영향력은 별로 없더라도 금속가공업이나 기계공업의 전통은 오래 전부터 유지하고 있었다.

그 뒤에도 황제와 이민호 사이에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민호나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던 큰일은 없었다. 황제는 그저 노파심에서 사위의 안전을 촉구한 것뿐이었고, 그 와중에 국익을 챙기려고 시도한 것뿐이었다.

이민호와 황제는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일단 겉으로는 명나라와 고산국은 확실한 우방으로서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았다. 황제는 비어복을 입은 금의위 고관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알현실을 떠났다.

이민호는 황태후와 황후, 후궁, 공주뿐만 아니라 친왕의 딸과 외손녀인 군주, 현주들에게 골고루 선물을 나누어 바쳤다. 궁중의 여인들이 좋아하는 옥 도자기와 과자는 물론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와 예쁘게 염색된 비단도 바쳤다.

황실에서는 그 보답으로 이민호가 명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생사를 잔뜩 넘겨주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명나라 상선을 몇 척 고용해서 고산국으로 실어 보냈다. 역시 황실에 뭔가를 바치면 몇 배나 많은 양이 회사품으로 내려왔다.

“어마마마와 충분히 회포를 풀고 오셨소?”

“감사하옵니다, 전하. 제가 행복한 모습을 어른들께 보여드릴 수 있어 처음으로 효도를 한 기분입니다. 황실의 어른들께서 그 동안 저를 걱정 해주셨는데 이제 한 시름 놓으셨습니다. 만수절(萬壽節)에 모인 다른 군주나 현주들에게 시샘도 많이 받았답니다.”

의용공주 주상아는 정말로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민호도 오늘을 위해 주상아에게 자금을 쏟아 부었다. 여자가 아무리 힘이 없다지만 보석 몇 근을 머리와 몸에 걸치고 비단옷에 달고 다닐 힘은 따로 생기는 모양이었다.

“결국 자랑하러 황궁에 오고 싶었던 게로군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그런 욕심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그 동안 자랑할 것이 없어 서글펐던 공주가 오랜만에 기를 편 날이었다. 이민호가 공주를 끌어안았다. 지금은 밤이고 이곳은 침실이며 이민호는 공주의 남편이었다. 당당하게 공주의 잠옷을 벗기자 하얗고 반짝반짝 빛나는 몸이 드러났다.

“황태후께서 공주와 과인을 위해 좋은 별궁을 내주셨소. 이곳에서도 추억을 남겨야 하지 않겠소?”

“전하. 아랫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사옵니다. 하악~”

신체에 미치는 인간의 심리라는 게 특이해서 침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공주의 몸은 이미 충분히 준비돼 있었다. 공주는 동기간인 다른 공주들이나 조카뻘 현주들과 대화하면서 감정이 고양된 것 같았다.

몸을 결합시킨 상태에서 달뜬 숨결을 끊임없이 내뱉는 공주에게 이민호가 입을 맞췄다. 침대 주변 사방에 앉은 시녀들이 꼴깍 침을 삼켰다.

고산국 직할군이 영하로 원정 중이기 때문에 황제는 이민호를 오래 붙들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이민호는 공주에게 원정이 끝날 때까지 황실에 남아있으라고 권했다. 눈물로 배웅하는 공주를 남겨두고 황궁을 떠났다.

이민호는 천진에서 전선을 타고 산동반도를 빙 둘러서 해주로 향했다. 오직 기함에만 기관을 4기나 장착해서 속도가 다른 배들보다 훨씬 빨랐다.

- 쿠웅!

“윽! 좌초인가?”

급히 달리던 기함 앞부분에 작은 충격이 왔다. 그러나 좌초는 아니었고, 저번처럼 고래와 충돌한 것 같지도 않았다. 사공이 함수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보고했다.

“물고기입니다! 선수에 커다란 물고기가 누워 있습니다. 함수 부분은 이상 없습니다. 계속 운항하겠습니다.”

이민호와 민희, 민영이 함수로 달려가서 구경했다. 사람보다 커 보이는 물고기가 파도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민희가 이민호에게 물었다.

“주인님! 저게 뭐죠? 납작한데 얼굴은 순하게 생겼어요.”

“몰라몰라.”

“어머! 불쾌하셨나 봐요. 죄송해요, 주인님.”

“아니. 개복치라는 물고기야. 다른 이름이 몰라몰라라고.”

날이 맑아 수면 위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을 개복치가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다. 배를 타고 바다를 돌아다니다 보면 해양생물과 충돌하는 사고가 꾸준히 발생했고, 딱히 방지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다.

기함이 해주에 도착하니 준설선들이 활동하며 기함이 황하로 진입할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단 며칠 전에 고산국의 함대가 지나갔지만 그 수로는 이미 토사로 메워진 뒤였기 때문에 새로운 배가 지나갈 때마다 수로를 새로 만들어줘야 했다.

1년에 13억 톤의 토사를 운반하는 황하에서 강 하구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황하의 강어귀는 1년에 500미터씩 바다로 전진해서 해안 도시가 가끔 새로운 해안선을 따라 옮겨 다녀야 했다.

준설선 세 척이 이민호가 탄 기함보다 앞서가며 일정한 거리마다 황하의 수심을 재었다. 그리고 가끔 얕은 곳이 나오면 기다란 막대 끝에 달린 갈퀴 같은 것으로 강바닥을 긁었다. 바위도 아닌 토사가 쌓인 곳이라 기함이 지날 만한 적정 수심을 이렇게 간단히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서 이민호는 무척이나 답답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러다가 황하 중류인 정주를 지나자 오히려 하구보다 강폭이 훨씬 넓어졌고, 이곳에서 준설선들이 해주로 돌아갔다.

정주부터 기함이 빨리 운행할 수 있었다. 돛도 노도 없이 황하를 빠르게 달리는 기함을 구경하기 위해 명나라 사람들이 강변에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기관이 달린 배였지만 명나라 사람들은 고산국 배들이 여전히 소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줄 알고 있었다.

10일 넘게 걸려서 8월 말에 간신히 계복과 만날 수 있었다. 거리는 짧은데 대부분의 구간에서 기함이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던 탓이었다.

“별 일 없었어?”

“한 열흘 동안 공짜로 녹봉 받는다 생각하고 편하게 쉬고 있었습니다.”

“긍정적이네. 잘했다.”

원정군 수송함대는 섬서성 의천현과 산서성 길현 사이 황하호구(黃河壺口)에서 약 20리 남쪽에 멈춰서 이민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구는 병목이라는 뜻인데 황하 강폭이 10분의 1로 확 줄어들고 이 위쪽은 폭포이니 큰 배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폭포 위쪽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타는 방법이 있었지만 북쪽 오르도스를 뱃길로 돌아서 가느니 차라리 여기서 내려서 육로로 직접 가는 편이 훨씬 나았다. 사실 올해는 황하의 수량이 풍부해서 여기까지 아무 문제없이 배로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황하호구라니, 어쩐지 정겨운 이름 같습니다.”

“그래, 그래. 준비됐으니 가자.”

============================ 작품 후기 ============================

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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