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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54화 (103/1,000)

00154  22. 출정  =========================================================================

회족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으므로 교육수준은 오히려 일반 명나라 백성이나 고산국 병사들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었다. 또한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자들일수록 자부심이 강한 경향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지에서 온 병사들이 점령군 행세를 하며 원주민들을 무시하거나 약탈하면 극도로 분노하게 된다. 종족이 다른 몽골족의 반란에 가담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쟤들이나 나나 다 컸는데 왜 나를 계속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이민호는 계복에게 지휘를 맡기고 천막으로 돌아왔다. 침대에서 할 일 없이 뒹굴다가 민희에게 물어보았다.

“계 대원수도 주인님을 그렇게 부르시잖아요. 수원이나 좌수영에서 주인님을 모시던 사람들에게는 주인님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에요.”

“그런가? 너희들도 나를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불러.”

“어머! 주인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얼마 안 돼요.”

“그게 더 특권이야? 사람들 참! 별 쓸데없는 걸로 자부심을 느끼나 봐.”

이민호는 진압군이 수공을 준비하는 이틀 동안 천막 안에서 놀았다. 밖으로 나가면 모래바람 때문에 눈이 따갑고 목이 컬컬하고 온몸에 미세한 모래가 쌓여서 밖에 나가기도 싫었다.

오늘 점심식사도 여전히 튀김 요리가 주를 이루었다. 민희와 민영은 재료 몇 가지를 섞어 불에 구운 다음 향신료를 뿌린 음식을 준비했다. 이민호는 마치 피시 앤 칩스를 세 끼 연속 먹게 된 사람처럼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튀김과 고기를 너무 자주 먹으니까 느끼해서 더 이상 못 먹겠다. 끓여먹고 삶아 먹을 수는 없나? 뜨거운 국물도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

“물이 없잖아요.”

바로 옆에 황하가 흐르는데도 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황하의 물은 점토질 때문에 식수로 사용하기 어려웠고, 영하성 주변의 모든 우물에는 반란군이 독을 타서 마시지 못하게 했다.

이민호가 나무통에 자갈과 모래, 숯을 겹겹이 쌓아 간이 정수기를 만들었으나 정수기를 통과한 강물도 하루쯤 묵혀놓으면 바닥에 누렇게 점토가 쌓였다. 이것을 허드렛물로 사용하기는 했으나 식수는 항상 부족했다.

이틀이 지나 드디어 수공을 하는 날이 돌아왔다. 며칠 전처럼 동시에 제방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영하 전역에 얕게 물이 깔리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잘하면 큰 희생 없이 영하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모든 병력을 말에 태우고 영하성의 북관, 즉 정문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지대에 배치했다. 후문이 있는 남관 방향에 주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여송의 요청에 의한 병력 배치였다. 이민호는 직할군에게 실전 공성전 경험을 시키고 싶었으나 동시에 병력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이여송이 요청한 대로 해주었다.

- 콰콰콰쾅! 쿠우웅~

제방 여러 곳에서 폭발이 일어난 직후 기다란 제방이 거의 동시에 무너졌다. 어제 연속된 작은 폭음이 여러 번 일어난 것을 들었는데 화약통을 동시에 폭발시키는 훈련을 했었던 것 같았다.

제방이 무너지자 거대한 저수지에 가득 담긴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해일처럼 쏟아진 물살이 저수지와 성 중간의 마을을 덮쳤다. 담벼락과 집과 나무 등 중간에 걸리는 모든 것을 무너뜨린 누런 물살이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지나 영하성의 북관에 밀어닥쳤다.

물살에 실린 돌과 나무가 북관을 연속 때렸다. 성 바깥 해자 바로 안쪽에 진흙을 이겨 단단히 쌓은 양마장이 순식간에 휩쓸리고 거대한 바위로 쌓은 성벽이 충격을 받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벽에 올라가 활을 쏘던 반란군들이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우와! 엄청나군요.”

“계복아! 반드시 수공을 고려해서 성을 쌓아야겠다.”

“도련님은 수공을 해서 적의 성을 빼앗을 생각부터 하세요.”

“내 것부터 지켜야지.”

영하성의 북관이 기우뚱하더니 결국 우르르 소리를 내면서 무너졌다. 6개월 넘게 명나라 진압군의 맹공을 버텨내던 성벽이 이렇게 어이없이 최후를 마쳤다.

북관 안쪽의 성문과 성벽도 마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벽에 오른 반란군들이 거센 물살에 휩쓸려 버렸다. 그리고 영하성 안에 물이 가득 차올랐다.

영하성 안에는 반란군뿐만 아니라 백성 수만 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잘못하면 한꺼번에 몰살할 것 같았다. 주로 회족인 영하성 백성들이 2층 가옥의 지붕에 올라가 아우성을 쳤다.

“와! 이 정도면 전투가 필요 없겠는데요?”

“앞으로 영하성은 못 쓰겠구나. 언덕으로 성을 옮겨서 다시 지어야겠다.”

고산국에서 멀리 이곳 영하까지 왔는데 수공 한 방에 반란이 진압될 것 같아 허무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바라는 대로 끝나지 않았다. 성에서 물이 점점 빠지면서 성벽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시야에 잡혔다.

반란군 우두머리들이 군사들을 성벽에 내세웠다. 다들 온몸이 물에 젖었으나 저항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반란군 우두머리들 사이에서 갑자기 커다란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새는 곧장 북쪽 하늘로 날아갔고, 계복이 그 새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전서응! 아니, 훨씬 더 큽니다. 몽골 초원에서 늑대와 여우를 사냥한다는 검독수리입니다.”

“몽골 유목민들과 연락하려고 날린 것 같다. 어서 쏴 맞춰!”

계복이 하늘을 향해 신중히 조준하더니 보병총을 한 발 발사했다. 그 직후 커다란 새가 빙글빙글 돌면서 땅으로 추락했다. 계복이 현대 한국 같았으면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될 만한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직할군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발 빠른 흑인 전령이 달려가서 흙탕물에 빠진 커다란 새를 주워왔다. 이민호가 검독수리의 다리에 묶인 작은 통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뽑아내 읽었다. 내용이 무엇인지 계복이 물었다.

“하투의 몽골족에게 구원을 청하는 서신입니까? 역시 하투에서 온 몽골 기병이 더 있죠?”

“몽골 문자라서 읽을 수가 없다. 전령! 이것을 저기 이여송 제독에게 보내라.”

“알았다, 왕!”

이민호가 전에 친구 삼은 피그미족 전령이 발목까지 잠기는 거리를 지나 이여송의 군막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전령이 돌아오며 이여송의 감사를 전하고, 곧 공격이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이여송과 소여훈이 이끄는 병력이 벌써 언덕 아래로 내려서고 있었다. 선봉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영하성에 이르는 거리에서 물이 조금 더 빠지길 기다렸다. 말에 타고 있으니 신발이 젖을 염려는 없었지만, 너무 일찍 나서면 전공을 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관을 향한 공격은 사실 주공이 아니었다.

“와아!”

역시나 남관 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반란군이 북관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사이 운제 여러 개가 남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유격 공자경이 묘족 군사들을 이끌고 운제를 지나 남관의 성벽에 올라섰다. 이여송의 동생 이여장도 정예병을 이끌고 함께 남관으로 침투했다. 반란군 우두머리들은 남관이 점령된 사실을 알고 어쩔 줄을 몰랐다.

이것으로써 전투는 결판난 것 같았다. 이민호는 늦지 않게 병력을 몰아 북관으로 접근했다. 이여송이나 소여훈의 병력보다 약간 뒤쪽, 몽골의 화살 사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이었다.

“그만! 그만하시오. 우리가 졌소!”

발배, 보바이가 드디어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들은 계속해서 성벽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해자는 이미 무너져 평평해진 땅을 따라 운제와 사다리가 성벽에 달라붙었다. 선두에 이여송이 서고 뛰어난 장수들인 동생들과 가정들이 앞서자 성벽은 금방 점령당했다.

“여기 역적 유동양과 허조의 수급이 있소! 이제 그만합시다! 제발 살려주시오!”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한족 반란군 두목들의 수급이 발배의 두 손에 들려 있었다. 계복과 이민호가 발배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참 애절하게도 비겁하네요.”

“몽골족이 저따위 짓을 하다니, 실망이다.”

항복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여송은 계속해서 공격명령을 내렸다. 반란군들이 저항을 하지 않는 사이 소여훈과 마귀, 그리고 유승사 등이 직접 사다리를 타고 반쯤 무너진 북관으로 올라섰다.

“그냥 쳐 죽여 버리는군요.”

“그러게 말이다.”

발배와 발승은 부자의 수급이 창에 꽂혀 무너진 성문 기둥에 내걸렸다. 이어서 명나라 진압군에 의해 영하성 내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거나 최소한 민가가 병사들에 의해 약탈당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더 이상 전투는 없었다. 몽골족 출신 반란군들이 무기를 내려놓는 순간 이여송이 전투를 중지시킨 탓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명나라 군이 아닌데요? 반란에 가담한 자들뿐만 아니라 전공을 과장하기 위해 백성들까지 참수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반란군 손아귀에 들어갔었지만 그래도 자기들 백성이니까. 어쨌든 반란 주모자만 죽인 것은 신기하다. 총독이나 감군어사에게서 특별한 명령을 받았겠지.”

전투는 이것으로 싱겁게 끝났다. 그러나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투의 몽골족 3천여 기병이 오르도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여송이 이끄는 기마병 2만 기가 접근하자 서둘러 퇴각해버렸다.

이로써 반란은 완전히 끝났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발배가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족이 외부에서 도와줘서 만리장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명나라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이 있지 않나 의심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영하와 오르도스에 병력을 증강시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황제가 이여송의 요동군을 조선으로 출병시키면서 이 지역에 다시 전력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이민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때 명나라는 더 이상 군비를 증강시킬 수 없는 막판에 몰려 있었다.

영하성이 탈환된 날 오후에 감동과 감불이 기마병 2개 려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런데 출발할 때보다 말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도련님! 몽골 말 450필을 잡아왔습니다! 잘했죠?”

“어이쿠! 잘했다. 어쩌다가 말을 이리 많이 구했어?”

“도련님이 저희한테 보급로를 돌아보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몽골족 기병 2천 명이 보급 거점 방향으로 몰려가기에 먼저 총을 쏘면서 돌격했습니다. 도망가는 놈들을 쫓아가면서 좀 더 죽였고, 이 말들은 전리품입니다.”

감불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확실히 여진족들은 몽골족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몽골 기병의 숫자가 훨씬 많은데도 선제공격으로 들이쳐서 이겨 버리는 군대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너희들이 보급 거점에 가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아주 잘했다. 대원들 모두에게 상을 내려주마. 그런데 그 수급은 뭐냐?”

“몽골족 기병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단옷을 입었기에 혹시나 높은 놈인가 싶어서 베어 왔습니다.”

이민호는 감불을 시켜 이여송에게 그 정보를 알려주었다. 수급은 발배의 양아들 극력개(克力蓋)의 것으로 판명이 났다. 반란군에서 항복한 자들 중에서 극력개의 얼굴을 알아보는 병사들이 많았다.

극력개는 하투의 몽골 기병들을 모집해서 만리장성 안쪽으로 유도한 자였다. 극력개는 발배의 주요 장수들 중 하나이니 감불이 운 좋게 대박을 쳤다.

이여송은 하투에서 넘어온 몽골 기마병이 최소 1만을 넘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개 유목민 부족들이 명나라 영토 내에서 일어난 반란을 순수하게 응원할 목적으로 황하 너머로 파견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이여송은 북경에 파발을 보내고 황하 남단의 하투 지역과 오르도스 사막 지역에 정찰대를 보내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몽골 기병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이여송은 더 많은 병력이 이 지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며칠 후 이여송과 요동군 전체에게 요동으로 이동하라는 조칙이 내려왔다.

영하가 수복되고 나서 황제로부터 조칙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사이 이민호는 며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거처도 숙영지에서 성내로 옮겨 오랜만에 목욕을 제대로 하고 깨끗한 물로 조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간신히 올립니다. 내일 한 회 더 올려서 이번 편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환경이 전혀 다른 지역 원정이라 자료수집하느라 좀 버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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