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23. 해남도 발전 계획 =========================================================================
결국 고산국에서 금 한 냥과 한 돈, 그리고 은 한 냥과 한 돈 단위로 금속화폐가 발행됐다. 앞면은 마치 로마황제 얼굴이 새겨진 옛 금화처럼 이민호의 옆모습을 새기고, 뒷면은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로 단위를 적었다. 위조 방지를 위해 이 시대 기준으로 몹시 정밀한 도안이 적용됐다.
숫자와 문자는 단순히 한 냥이거나 한 돈이라는 뜻이지 액면가는 아니었다. 금과 은의 공식적인 교환 비율도 정하지 않았다. 금과 은 교환비율이 요동칠 때도 가끔 있었지만 아직 5.7배 정도의 교환 비율이 지켜지고 있어서 한 냥짜리 금화는 한 돈짜리 은화의 57배로 교환됐다.
금화와 은화의 도안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몰랐던 이민호가 금화를 보고 펄펄 뛰었다. 주화에 이민호의 얼굴을 새기자고 한 범인은 왕명명이었는데 이민호의 반응을 예상하고 금화가 처음 찍혀 나오는 날 안남으로 도망가 버렸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다음의 이야기지만, 조그마한 금화의 인물상을 보고 이민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생겨났다.
이후 동아시아의 무역에서 고산국이 발행한 금화와 은화가 금과 은 교환을 위한 계산 통화가 되었다. 기축통화가 아니면서 환율 계산의 편의를 위한 제3의 통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명나라와 일본은 물론 멀리 베트남이나 심지어 말래카에서도 이민호의 낯짝이 새겨진 주화가 유통됐다. 고산국 금화가 기축통화가 되길 원하지 않으니 바람직한 현상은 절대 아니었지만, 무게와 함량이 일정해 금화의 신용도는 확실히 높이 쳐주었다.
서양 상인들이 범선에 상품을 잔뜩 싣고 귀국할 때는 고산국에 들러 남는 화폐를 순금으로 바꾸어갔다. 교환할 때 수수료로 1할이나 떼었어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거의 두 배의 이익을 얻으니 서양 상인들은 좋다면서 바꿔갔다.
아주 가끔 향신료 가격이 폭락했을 때 에스파냐 상인들이 고산국에 와서 범선에 실린 은괴 100톤을 통째로 금과 바꾼 적도 있었다. 그런 재정거래를 하려고 서양 범선이 아리수 항에 입항할 때마다 은을 금으로 교환해주느라 나라 전체가 법석을 떨었다. 가끔은 왕명명이 복건과 광동 상인들에게 급전을 빌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지급을 늦춘 적이 없어 국가 신용도가 끝도 없이 올라갔다. 금과 은을 금화와 은화로 바꾸려는 명나라 상인들의 요구도 꾸준히 늘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궁궐 지하에 쌓이는 금과 은의 양은 점차 늘어났으니 화폐 주조는 일단 대성공이었다.
이민호는 보조화폐로 동전을 발행하고 싶었으나 아직은 구리가 부족해 주조하지 못했다. 동전마저도 구리의 가치에 따라 수시로 가치가 변하는 시대였으니 구리 함량을 줄여서 발행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는 엽전 중간에 구멍을 뚫고 줄로 꿰어 다니는 모습을 고산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액면가가 통용되는 시기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지폐는 발행하지 않았으나 상인들 사이에 어음이 교환됐다.
화폐 문제가 결정 나고 조금 여유가 생기나 했더니 강화부에서 반란이 일어난 소식을 해동상단에서 급보를 띄워 전했다. 생각보다 반란이 큰 규모로 일어난 모양이었다.
마침 강화도에 주둔하고 있던 전라병사 최원이 지휘하는 관군 4천과 창의사 김천일이 이끄는 의병 2천이 강화부 백성들이 일으킨 반란 진압에 나섰다. 관군과 의병은 그 동안 강화부를 지키며 한성에 결사대를 파견하고 한성 주변과 양천, 김포의 소규모 왜영을 공격하고 있었다. 양화도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강화도에 주둔한 관군과 의병은 왜군이 원릉을 도굴하는 것을 막았고, 삼남지방과 행재소 사이에서 연락을 중재해주는 중간 거점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이렇게 왜군과 싸우던 차에 갑작스런 반란이 일어나서 관군과 의병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의주까지 밀려난 조정에서는 이때 강화도로 천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반란 때문에 행재소는 의주에 계속 남기로 결정했다. 왜군이 점령한 한성 바로 앞이 강화도인데도 조정 대신들은 강화가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이 반란으로 인해 인식이 바뀌었다.
“도련님! 오랜만에 황금상 구경 좀 합시다. 하나씩은 봤는데 줄줄이 세워놓으면 장관일 것 같습니다.”
“뭘 구경해? 다 녹여서 금화 만들었는데.”
“예? 전부 다요?”
계복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황금상을 다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금괴가 궁궐 지하 창고에 쌓여 있는 것을 계복도 알고 있었다. 계복이 생각하기에 당연히 황금상을 놔두고 금괴를 먼저 녹일 줄 알았는데 이민호는 가차 없었다.
“아깝네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던데 남겨두시지 그랬어요.”
“황금상을 보고 사람들 마음이 홀릴까봐 그런다. 반란에 가담한 강화부 사람들도 잠시 제 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황금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못한 강화부의 백성들과 관군, 의병들의 전투는 이틀 동안이나 이어졌다. 인명피해도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황금상은 이미 반란 주모자들이 어선에 싣고 빠져 나갔으니 다들 헛싸움을 한 셈이었다. 이 반란으로 인해 강화부는 일시적으로 강화군으로 격하되었다.
며칠 동안 고산국의 산록을 둘러보던 회족 아이샤가 적당한 곳을 목초지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민호가 말을 타고 달려가서 보니 인부들이 밤에 양이 지낼 외양간을 산기슭에 만들고 있었다. 캐시미어 산양들은 전부 눈처럼 흰색이었다.
“산양이 아니라 염소 같은데?”
“염소 맞아요.”
캐시미어 산양은 염소 종류이고, 산양은 소에 가깝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염소를 산양으로 불렀다.
“어때? 목축이 가능하겠어?”
“큰일이에요. 손바닥만 한 풀밭에서 산양을 몇 마리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목초지가 이렇게 넓은데 좁다고?”
“풋! 아니, 죄송해요.”
아이샤가 은근히 사람 성질 돋우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 말을 말자. 혹시 사탕수수 찌꺼기나 볏짚 같은 것을 양한테 먹이면 안 될까?”
“고기는 맛있어지겠지만 털 품질은 장담 못해요. 그리고 또 문제가 있어요. 이곳은 산록이라 덥지는 않더라도 비가 너무 많이 와요. 비가 적게 오고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큰 곳이 없을까요? 추울수록 털이 더 가늘어지니 품질이 좋아져요.”
“음. 그렇군. 일교차가 큰 곳이라면 있지.”
“섬나라에 일교차가 큰 곳이 있기가 힘들 텐데요.”
“고산국에는 없고 조선에 있어. 철원이나 중강진이라면 충분할 거야. 지금은 전쟁 중이라 곤란하고 내년에 같이 옮기자. 그 사이 번식에 주력해줘. 아니면 영하에서 몇 천 마리쯤 사올까?”
“우와! 몇 천 마리라는 말씀을 쉽게 하시네요. 산양 값보다 수송비가 몇 배나 많이 들 거여요. 괜찮아요. 산양은 번식률이 높으니 금방 불어나요.”
“그럼 그렇게 해. 그런데 비단하고 섞어서 천을 짜볼래? 캐시미어는 일반 털이 아니라 그 사이 가는 털을 쓰는 거잖아. 명주하고 의외로 잘 어울릴 것 같아.”
“양털과 명주를 같이 짠다고요? 음. 광택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가장 가느다란 목덜미 털로 시험해볼게요.”
이렇게 해서 얼렁뚱땅 파시미나를 개발했다. 털과 명주의 혼합 비율은 7대 3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아이샤가 발견해냈다.
“그런데 양이 싸는 똥이 식수를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해. 전염병이 생길지도 모르거든.”
“제가 회족이니 그건 기본이죠. 회족에게 식수와 가축을 두고 얼마나 많은 법과 관습이 정해졌는데요?”
“그런가?”
회족 사람들은 우물 근처에서 세수와 빨래를 하지 않고 물을 뜰 때는 반드시 손을 먼저 씻어야 한다. 가축에게 물을 줄 때는 우물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서 물을 먹이는 식으로 여러 가지 제한이 정해져 있었다.
“회족 여자는 아홉 살에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야?”
“예언자 무함마드의 처 아이샤가 아홉 살에 결혼하고 그 다음 해에 동침했어요.”
“그건 좀 심하다. 역사적 인물이 그랬다고 해서 다 따를 수는 없잖아?”
“아홉 살이나 열 살이면 충분해요.”
여성부가 들었다면 펄쩍 뛸 말이었다. 열 살에 동침한다는 말에는 이민호도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출산할 때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위험했다.
직할군을 소집해 배에 태우고 9월 말에 조선 남해안으로 향했다. 일단 방답진 남쪽 무인도인 연도가 목적지였다.
기함은 중간에 빠져 나와 제주 포구에 들렀다. 포구를 지키는 관군이 수하를 요구하자 계복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정헌대부 대감께 감히 무슨 소리냐?”
“참아. 우리 복장이 이래서 외국인으로 보일 거야.”
웅치와 이치, 금산전투의 전공으로 이민호는 한 품계 올라 정2품 상계 정헌대부에 올랐다. 판서의 기준 품계와 같았다. 이민호는 영하에서 원정 중이라 선전관에게 직접 승서 교지를 받지 못하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민호가 미리 작성해둔 공장을 건네주었다. 제주 관군이 굽실거리면서 받아 동헌으로 달려갔다
포구에서 가까운 현대의 삼도2동에 제주목 관아가 있었다. 잠시 후 제주목 관아에서 공무를 보고 있던 이경록이 포구까지 말을 타고 달려왔다. 나주목사였던 이경록은 7월 13일에 제주목사에 제수된 것으로 실록에 기록됐으나 행재소와 연락이 닿지 않아 실제 임관은 한 달 뒤에 이루어졌다.
“이게 누구야? 통지 아닌가? 어서 오게! 이 먼 곳까지 웬 일인가?”
“중경 형님 당상관 승차를 축하드립니다. 하하!”
“높으신 정헌대부 대감께서 하잘 것 없는 목사 나부랭이에게 하실 말씀이 아닌데 그래?”
“제 명나라 벼슬은 정1품 도독에 이국공입니다.”
“어이쿠! 대인!”
이민호와 이경록은 포구 언덕 정자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 기함 승조원들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두 사람은 대화를 계속했다.
“제주 백성들이 자네가 전복 공납을 없애준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더군. 육지에 있어서 몰랐는데 그 동안 어민들이 고생했다고 들었어.”
“어차피 세금 낼 것, 백성들한테 생색이라도 내야죠.”
“자네 마침 잘 왔네. 전복하고 해삼 좀 사주게. 제주도에 농사가 잘 되질 않으니 다들 너무 가난해. 배를 타고 나가면 풍랑에 휩쓸릴 위험이 크니 요즘은 남녀 모두 홀딱 벗고 바다에서 자맥질이나 하면서 연명한다네.”
“해삼과 전복이라면 저도 좋죠. 가격이 좀 낮더라도 화내지 마셔야 합니다.”
“홍해삼이라 싸다면서? 어쩔 수 없지.”
제주도 홍해삼은 명나라에서 흑해삼보다 가격이 낮다지만 그래도 조선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는 훨씬 많이 받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홍해삼도 명나라에 수출할 계획이었다.
이민호는 해삼과 전복의 종묘와 종패를 키워서 바다에 뿌리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이경록이 진지하게 들었다.
이민호는 제주목에 수출 관련 부서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해삼과 전복을 말릴 기술이 제주도에도 있으니, 잘 말려서 포구 옆 창고에 상품을 보관하도록 했다. 이경록이 중간에서 이익을 빼돌릴 사람이 결코 아니라서 제주 백성들은 이때부터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밀감 묘목은 잘 자라나요?”
“자네가 보낸 편지를 받자마자 밀감 농장에 가 봤네. 아주 잘 자라고 있더군. 아마 내년쯤에는 제대로 열매가 열릴 것 같아. 이제 꺾꽂이로 쉽게 증식할 수 있겠어.”
자그마한 제주 토종 밀감이 아닌 일본에서 가져온 큰 품종이었다. 이민호는 어떤 작물이든 품종이 다양할수록 좋으니 토종 밀감도 살려놓으라고 부탁했다.
“잘 키워보세요. 제주 백성들이 육지에 밀감만 팔아도 충분히 먹고 살지 혹시 압니까?”
“그렇다면 좋겠지만, 가능할까? 겨우 진상만 조금 하던 물건인데, 육지 백성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과일을 사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요즘은 전쟁 통인데도 굶어죽을 염려가 없어졌잖아요. 과일 수요가 커지면서 이국적인 밀감도 많이 먹을 겁니다. 해동상단이 몇 년이나 투자한 사업입니다. 꼭 성공할 겁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주에 쌀이 모자랄 때마다 그 상단에서 도와줬다더군. 농민들이 해동상단에 은혜를 많이 입었어. 그래서 농부들이 밀감을 그 상단에만 독점 공급하겠다더군.”
한반도에서 유일한 아열대 지역인 제주도에서 시도할 만한 사업은 많았다. 고산국 전체가 아열대, 또는 열대 지역이라지만 제주도는 한반도에 붙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약간 높더라도 공급 측면에서 훨씬 유리했다.
“차나무도 잘 키워보세요. 찻잎을 따는 시기하고 가마솥에 덖는 방법도 다 기록돼 있죠?”
“그래. 하도 자세히 써놔서 백성들도 잘 알아먹더군. 내가 제주목에 있는 동안 제주 백성들이 굶을 걱정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어.”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형님이 해내실 겁니다.”
이경록은 명성을 얻고, 이민호는 돈을 버는 멋진 공생관계가 성립됐다. 정경유착이긴 하지만 비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민호가 제주도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보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히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