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8 27. 순행 =========================================================================
결국 해남도에 남아있는 정옥남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이민호 등이 일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옥남이 한 마디로 평했다.
“귀한 진주를 진주조개가 품게 만드는 일이었군요.”
“그래. 앞으로 네가 중점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다. 오크남! 이 섬에 진주조개 양식장을 만들고 조개에 핵을 심어 진주를 키워라. 이 섬을 중심으로 4마장 이내는 출입을 금지한다고 포고령을 내려.”
“관아 앞이라서 이 섬에는 어부들이 안 옵니다만 명하신 대로 포고령을 내리겠습니다.”
주애공부에 오자마자 내린 첫 포고령이 백성들 못 살게 구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양식진주가 생존해서 진주를 키워낼 수 있다면 해남도에 사는 모든 백성들은 다만 해남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이민호는 인공진주를 생산하면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독점할 생각은 없었다.
이민호는 작은 수영장처럼 생긴 조개 양식장을 만들어 새끼 조개를 키우는 방법부터 옥남에게 설명했다. 진주조개 양식에 관련된 세세한 설명은 그림이 그려진 문서로 넘겼다. 조개의 인공수정 방식을 읽어보더니 옥남이 많이 놀랐다.
이민호는 옥남에게 새끼 조개를 3개월 동안 키워 손톱만큼 커지면 선별해서 양식 바구니에 넣고 적당한 수온과 수심에서 키우는 방법까지 자세히 가르쳤다. 그리고 3년 동안 키운 다음 조갯살을 살짝 베어 접어 넣고 대합이나 진주조개 안쪽 껍질로 된 먼지만한 핵을 심는 방법도 가르쳤다. 시술한 진주조개를 얕은 물에서 안정시켰다가 다시 20미터 깊이의 수심에서 자라게 하도록 했다.
“조개를 3년간 키워서 핵을 삽입하고 또 2년간 더 키운다고요? 채취할 때까지 5년이나 걸립니까?”
“좋은 것을 만들려면 시간을 들여야지.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은광 하나 운영하는 것보다 나을 거야.”
연간 세 번 채취하고 한 번 채취한 조개에도 다시 핵을 삽입하는 방법도 이번 기회에 다 가르쳤다. 그러나 두 번째에 삽입하는 핵은 채취해서 빼낸 진주 크기와 비슷한 크기였다. 이민호는 큰 핵은 조개껍질을 둥글게 갈아서 만든다고 설명했다.
“주사기로 아주 작은 핵을 넣는 것하고 다릅니다. 그럼 처음부터 핵을 큰 것을 넣으면 그 위에 진주층이 덧씌워질 테니 채취할 때 더 큰 진주를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큰 핵을 넣으면 조개가 못 견디고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채취한 작은 것은 천연진주라고 우길 거야. 하지만 두 번째 채취한 것부터는 인공진주라고 밝힐 거다. 지금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나중에는 보석상들이 진주를 반쪽으로 잘라서 확인할 거야. 진주가 너무 크면 의심하는 게 당연하니까.”
바다에서 채취한 진주는 당연히 모두 천연진주라고 알려진 시대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송화강 유역에서 유행하는 인공진주 생산법을 해수진주에 적용시켰다.
“지금은 진주가 비싸지만 인공진주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천연진주도 가격이 떨어지고, 인공진주로 낙인찍힌 지역의 진주 값도 폭락할 거야. 그러니까 진주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오랫동안 천연진주와 같은 가격을 받아내야 이익이 커진다. 그리고 인공진주라도 장신구로 쓰기에 품질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몇 십 년 후에는 적정선에서 가격이 결정되겠지.”
“몇 십 년이라고요? 아주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군요. 인공진주가 아닌 척하려면 핵을 아예 전복 껍질 안쪽의 반짝반짝한 진주층으로 만드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판매할 때 상인에게는 인공진주라고 밝혀야겠지만 소비자에게는 그럴 필요 없어. 아니, 상인들하고 입을 맞춰서 소비자들에게는 천연진주라고 우겨야겠지. 겉으로 봐서는 천연진주와 차이가 없으니까. 소비자들이 확인할 방법이 없어. 신뢰하는 상인에게 판단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거야.”
인공진주가 한 번 쏟아져 나오면 나중에는 유통되는 진주 대부분이 인공진주가 된다. 천연진주는 그만큼 희귀하기 때문에 시장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럴 때는 대놓고 인공진주라고 말하면서 판매해도 되겠지만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상인과 소비자를 속이기로 했다.
“하지만 쉽게 인공진주라는 것이 드러나게 하면 나중에 판로에 문제가 생길 거야. 어차피 보석상들도 금방 양식 진주라는 것을 알아채겠지. 하지만 상인들이 소비자들에게 팔 때는 입을 다물 테니 소비자들은 꽤 오랫동안 인공진주라는 사실을 모를 거야.”
“알겠습니다. 진주조개 양식부터 핵 삽입까지 일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고용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군요.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떠나겠다고 하면 잡지 못합니다. 기술을 훔쳐가는 사람을 죽일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인공 양식진주를 만드는 법의 비밀을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핵 삽입이 그렇게 어려운 기술도 아니니 어부들이 말만 듣고도 시험해서 그대로 양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공 진주를 만드는 법이 수온이 비슷한 광동성과 복건성까지 퍼져 나가면 자칫 한 해에 몇 십 톤 단위로 진주가 생산될 수도 있었다.
현대 중국 정부는 양식진주의 생산을 통제하지 않았다가 진주 가격이 폭락해 인민들이 큰 손해를 보게 만드는 경험을 맛보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시대를 막론하니 인공양식 진주가 과잉 공급되면 진주 양식장도 손해를 보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진주조개 양식에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지 사실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비밀을 유지할 수 없을까?”
“제가 이 용모로 여자들을 유혹해서 평생 진주만 캐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죽을래?”
제비 옥남과 앵벌이 동가공주를 맞붙여 놓으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었다.
“한 마을 사람들을 통째로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묘족에게 밀리고 있는 려족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닷가 마을 하나를 주애공부에 전속시키고 직업은 무조건 진주조개 양식장 일꾼으로 만드는 겁니다.”
“가능하다면 해봐. 대신에 대우를 잘해줘라.”
“예. 비밀을 지켜야 먹고 산다는 식으로 적당히 협박하겠습니다. 지금보다 두 배로 잘 살게 해준다고 하면 비밀을 지키겠죠. 일이 힘든 것도 아니니 좋아할 겁니다.”
비밀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전하! 지금 고산국의 가장 큰 문제가 인구 아니겠습니까?”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나?”
“예. 제가 남쪽을 돌아다녀 보니 광서, 광동, 운남에 한족과는 다른 부족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한족에게 수천 년 동안 대대로 탄압받았다는 피해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토지를 마련해준다고 하면서 대량으로 고산국으로 이주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과연 그들이 국가체계 안으로 들어올지 의문이야. 역대 중국 조정으로부터 수천 년 동안 시달렸어도 여전히 중국 백성이 되길 거부하잖아.”
“차별과 착취를 당했으니 그랬지요. 전하께서 한족이든 묘족이든 어느 누구나 똑같이 대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묘족 입장에서는 한 마을 또는 부족, 어쩌면 한 민족의 미래를 함부로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었다. 이민호는 묘족을 고산국으로 유인하기 위해 협상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묘족도 너무 분열돼 있었다. 사천부터 시작해 명나라 남부 지방 전역, 심지어 안남의 산악지역까지 퍼져 사는 모든 묘족들과 연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 마을 또는 부족 단위로 유인해 잘 정착시킨 다음 적극적으로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묘족 인구를 작게 잡아 500만이라 추산하더라도 그 중에서 10분의 1만 고산국으로 이민시켜도 시급한 인구부족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세습 선위사 양응룡이라고 아나?”
“묘족의 반란과 관계되는 자입니까? 사천 가는 길 파주(播州)에 있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원하시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산국이 묘족과 연결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양응룡이었다. 조만간 양응룡이 이끄는 묘족들의 반란이 일어난다면 이민호가 직접 토벌에 나서야 할 수도 있었다. 이민호가 한 편에서는 묘족들을 잡아 죽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 호의를 베푼다면 믿어줄 묘족들이 없을 것이다.
“그래. 잘 알아보고, 묘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되 함부로 반란을 획책한다는 식으로 연결되면 안 돼. 내 신분이 황제의 사위라는 사실을 잊으면 절대 안 돼.”
“물론입니다. 전하의 신분을 이용해서 명나라에서 최대한 빼먹어야지요. 공주님을 데리고 살면서 명나라에서 실익을 취하는 것을 보면 전하께서 마치 미인계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듭니다.”
“제비족은 오크남 너다!”
“제비가 뭐 어때서요? 전하께서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시는 겁니다. 크크!”
아직 제비족이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용공주 주상아가 황실의 친인척들에게 인사 편지를 보내면서 이민호를 자랑하기 바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족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서 나쁠 것은 없고 덕택에 이권이 저절로 굴러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민호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특히 주상아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황족의 공주나 군주들이 이민호에게 은근히 추파를 보내기도 해서 몹시 불쾌했다.
이틀 후 오전에 해남도의 모든 관리들이 주애공부에 몰려왔다. 높은 자리에 앉은 이민호가 명나라 관리들을 뜰에 세워놓은 채 인사를 받았다. 이민호의 공식 직함을 감안하면 관리들과 신분 차이가 컸다.
그런데 지부와 지현들만 만나는 줄 알았는데 양광총독 소언지(蕭彥持)와 광서성 포정사, 그리고 광동성 안찰사까지 인사하러 왔다. 양광이란 광동성과 광서성 지역이며, 순무가 1개 성의 행정과 군사를 모두 장악하는데 비해 총독은 그 이상의 지역을 아울러 총괄하는 자리였다. 양광총독은 광저우에 주재하고 있었다.
“부마도위께서는 이번 정조(正朝)에 참예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마도위란 조회 때 황제폐하 옆에 서 계시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자리 아니겠습니까?”
“황상께서 조회를 참가하지 않으신지 오래 되셨소. 본직은 조회에 참가하는 대신 황제폐하께 사소한 선물을 바치는 것으로 갈음하였소이다.”
총독이 은근히 이민호를 무시했다. 공식적인 자리인데도 주애공이 아닌 단순한 부마도위로 부르는 것도 큰 실례였다. 명나라에서는 국초부터 외척과 환관, 정승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영락제는 환관들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았고 정승을 두지 않음으로써 신권의 지나친 발호를 막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신임을 바탕으로 환관들이 정치의 전면에 서고 품계가 낮은 대학사들이 정승 역할을 대신했다.
중국 역사 내내 환관과 정승이 발호한 적은 많았지만 모두 필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대학사들이 없다면 황제는 매일 수천 장씩 올라오는 상소문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환관들이 글을 알아야 심부름이라도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부마는 평범한 백성인 서인들 중에서 뽑는 제도가 정착돼 명나라에서 부마의 사회적 지위는 낮은 편이었다. 게다가 명나라 말기까지 고위 관리의 자제는 부마 후보에서 완전히 배격됐다. 그래서 관리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 공주라는 높은 신분을 가진 여자를 얻는 것이 호사가들의 일이 되어버렸다.
“총독! 섬라의 군사가 조선에 파병되거나 일본을 직접 공격한다는 이야기는 뭡니까?”
“에이! 그놈들 수로로 원정을 떠날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명나라 여러 장수들 밑에 가정(家丁)으로 들어간 경우는 꽤 됩니다. 섬라인들이 남만 야만인답게 용감하기도 하지만 남만 야만인답지 않게 화약무기에도 익숙해서 잘 적응한다고 합니다.”
이민호는 한족 관리들을 모두 이끌고 주애공부에서 나왔다. 관아 바로 앞이 바닷가였다. 이민호가 수평선을 가리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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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