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1 29. 행주대첩과 한성탈환 =========================================================================
“여해 형님은 잘만 하시던데요 뭐. 옛날처럼 편하게 대하세요.”
“에이~ 이 통제 그 사람이야 무관이라 배포가 커서 그런 거지.”
“지금도 잘 하시네요. 그렇게 하세요.”
“험! 험! 죄송합니다. 일단 병력 이동 상황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당시 한성 주변 조선군 배치 상황은 실록 1593년 2월 17일자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비변사가 보고하길 행주대첩이 진행 중인 2월 12일 현재, 양주목사 겸 경기방어사 고언백과 평안병사 이빈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한성 바로 북쪽에 있고, 충청감사 허욱과 충청수사 정걸, 건의부장(建義副將) 조대곤은 모두 한강 건너 양천 등지에 있고, 전라병사 선거이는 노량에 있고, 추의장(秋義將) 우성전은 고양 심악에 있고, 창의사 김천일은 다시 강화에 들어가 있었다.
한 달 간격이 있어 약간 변동이 있겠지만 병력은 1월 11일자 기록에서 대략 확인할 수 있다. 전라병사 최원의 군사 4천 명, 경기도 순찰사 권징의 군사 4백 명, 창의사 김천일의 군사 3천 명, 의병장 우성전의 군사 2천 명, 전라도 순찰사 권율의 군사 4천 명, 양주에 주차한 경기방어사 고언백의 군사 2천 명, 양근군에 주차한 의병장 이일의 군사 6백 명, 여주에 주차한 경기순찰사 성영의 군사 3천 명, 충청도절도사 이옥의 군사 2천 8백 명 등이다. 행주대첩 직후에 용산창 앞에 왜군의 수가 2만을 넘는다는 충청수사 정걸의 보고가 있었으나 한성 주변을 포위한 조선군만으로도 한성 탈환이 가능했었다고 주장한 사관의 발언도 실록에 실려 있다.
“도원수 김명원의 지휘 하에 고언백과 이빈의 군사가 북동쪽 혜화문 밖에, 충청감사 허욱의 지휘 아래 양천의 군세를 모두 도강시켜 용산에 주둔시켰습니다. 노량에 있던 전라병사 선거이의 군세는 왜적을 추격하기 위해 미리 수원 독산산성으로 보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여송 제독이 왜적들과 휴전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만약 도성에서 왜군과 싸우면 200년이 넘은 도성의 빼어난 경관이 파괴되고 도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다칠까 두려워 월권을 각오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답니다. 자~ 어서 식사를 드시면서 대화를 나누지요.”
“예. 별로 공감하지는 않지만 덕택에 쉽게 한성을 탈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제독이 조선군 여러 부대에 패문을 돌려서 최소한 한강을 넘어갈 때까지만 왜적을 추격하지 말아달라고 분부를...... 아니 부탁을 했습니다. 어제까지 기고만장했는데 이번에는 웬 일로 예의를 차렸습니다.”
이여송은 도성 탈환의 전공을 독차지하려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왜군과 휴전 협상을 한 것이겠지만, 잘못하면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왜적과 내통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직책상 언제든 상관이 될 수도 있는 이민호가 불만을 터뜨렸으니 당분간 이여송은 설설 길 수밖에 없었다.
“비록 상대가 적이라도 일단 약속을 했으니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성은 조선의 도성, 퇴각하는 왜군이 도성을 약탈하거나 불태우지 않도록 조선군이 잘 감시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도성 8문 밖에 주차된 병력을 성문 안으로 옮기고 왜군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다만 싸움이 나지 않도록 왜군 주둔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주둔하게 하십시오. 내가 지휘하는 병력은 조선군이 아니라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기 곤란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대인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성룡이 말만으로는 이민호의 제안을 조선 국왕의 명령에 우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류성룡은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일일이 조정, 특히 임금에게 보고를 하면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인께서 용산창을 불태운 것을 두고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왜적들이 도성 안에서 못 나오니까 용산창의 군량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인간들에게 수레라도 한 번 끌어봤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그리고 대가가 몽진하실 때 용산창을 책임진 자는 잡았소?”
“그게, 조정 권신의 자제가 있어서 조정에서 처벌하기가 곤란했습니다.”
“눈앞에 보듯 선합니다. 음직으로 주부 자리라도 받은 대갓집 자제가 왜군이 한강에 접근한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먼저 도망갔거나, 아니면 술을 퍼마시다가 책임을 못 졌겠지요. 군량을 적에게 넘긴 것은 큰 죄요. 그러나 다른 무관들의 목은 뎅겅뎅겅 잘 자르면서 권신의 자식이라 흐지부지 넘어갔겠지요? 그리고 이제 와서는 내가 용산창을 불 지른 것을 가지고 비난하지요?”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류성룡이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젊은 관료들도 얼굴을 들지 못했다. 기득권자들이 전쟁 중에도 특권의식에 절어 있으면서 일반 백성들을 어떻게 전쟁에 내몰 수 있는지 이민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부끄러운 줄 알면 다행이었다.
“다른 이야깁니다만, 대인께서는 비록 고산국 군대를 이끄신다 하나 대인의 또 다른 신분은 천조의 제독총병관이십니다. 다른 명장, 그러니까 명나라 장수들처럼 접반사나 사후배신을 붙여드리리까?”
“필요 없습니다. 저를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어명으로 여쭙는 것도 있지만, 제 생각에도 대인께서 젊은 관료들에게 사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저한테 배울 것도 별로 없지만, 수시로 말을 타거나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녀야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자가 저를 따라다니기 어려울 겁니다.”
이민호는 감시가 붙는 것 같아 류성룡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민호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가 조선 조정에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군량 보급 문제를 논의했다. 조선 영토에 쌀과 식량은 충분히 있는데 이것을 필요한 곳에 모으는 수송 문제가 현안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명군은 벽제관 패배 이후 길이 진창이라느니, 군량이 부족하니 하는 핑계를 대며 전진을 늦추고 있었다. 현대도 마찬가지지만 전쟁에서 병참문제가 가장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 날 오전부터 고산국 원정군은 왜군의 퇴각로로 지정된 남대문 밖에 진을 쳤다. 이민호는 유사시에 언제든 왜군 3만을 상대할 수 있도록 각 부대를 도로에 밀착 배치했다. 그러나 왜군에게 적대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유구국 보병들은 예비대로서 도로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했다.
남대문 바깥 시장 초가집들은 모조리 불에 타 무너져 있었지만 남대문을 통과한 왜군이 용산 방향으로 지나갈 길은 충분히 넓었다. 왜군이 전투행위로 오인할까봐 기마병과 승마보병들은 전원 말에서 내리고, 이민호는 일부러 친 천막 안에 태연히 앉아서 왜군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주인님. 도성 남문 앞 상가인데 어째서 기와집이 아닌가요?”
민희가 가까이 와서 속삭이기에 이민호가 얼른 뺨에 뽀뽀를 했다. 민희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민영이 생글생글 웃으며 이민호에게 뺨을 내밀었다. 이민호는 민영의 뺨에도 입을 맞췄다.
이민호가 이런 짓을 하도 자주 해서 호위들이 봐도 하품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류성룡과 조선의 젊은 관료들은 이민호의 자유로운 애정 표현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잘못하면 짐승만도 못한 야만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판이라 이민호도 자제하기로 했다.
“무허가 건물이고 언제든 허물 수 있어야 하니까 기와집이 아니지. 만약 전쟁을 하는데 성문 앞에 집이 있으면 적이 성벽 위에서 쏘는 화살을 피해 접근할 수 있잖아? 그러니 정식 허가를 내줄 수가 없거든. 성벽 바로 뒤에 붙은 집들도 죄다 무허가야. 그러니 초가집을 지을 수밖에 없어.”
“저번에 주인님이 조선에 외적이 쳐들어오면 국왕전하가 도성을 버리고 파천한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건 외적이고. 역적들이 내전을 일으켜도 전쟁이잖아. 그때는 시간이 없어 파천을 못하고 도성 사대문에서 싸울 때도 있어.”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도성 남대문 밖 시장 상가 건물이 초가집이라고 현대 일본인들이 비웃던 생각이 나서 이민호가 자세히 설명했다. 종로나 다른 시장에서도 기와집은 안쪽에 줄 지어 서 있고 도로변 상가 건물은 임시 가건물이라서 초가집인 경우가 흔했다.
“대인! 왜적들이 나옵니다! 전투할 기미는 안 보입니다.”
“오오!”
류성룡이 가리킨 남대문을 통해 왜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군 조총병들은 조총과 화승을 분리시키고 화승에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 이것도 이미 합의한 내용이었다.
함경도나 강원도, 황해도에 있다가 한성으로 밀려난 왜병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 동안 계속 한성에 주둔했던 왜병들은 잘 먹고 운동 부족으로 뒤룩뒤룩 살이 쪄서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용산창만 제대로 불을 질렀다면 왜군은 훨씬 더 고생했을 것이다.
“대인! 설마 싸움이 나지는 않겠지요?”
“싸움이 나면 더 좋지요.”
류성룡이 걱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왜병들은 마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듯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지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승마보병 중에서도 흑인 천여 명이 대로에 검문소를 만들어두고 왜병들을 하나씩 검색했다. 왜병들이 검색을 앞두고 길게 줄을 서고, 중간에 조선 조정에서 급히 지원해준 왜학훈도가 통역을 해주었다. 수레는 따로 정밀 검색했다.
“이봐! 보따리 열어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희 고향 절에 안치하려고 그저 자그마한 불상을 모시고 가는 것뿐입니다.”
“이건 금불상 아냐? 어디서 훔쳤느냐? 어쨌든 압수다!”
“흑흑!”
흑인 승마보병들이 왜병들이 조선에서 약탈한 물건들을 압수했다. 불상을 빼앗긴 왜병이 통곡을 하면서 이미 검색대를 통과한 왜병들의 행렬로 들어갔다. 만약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기만 하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는 꿈이 사라졌으니 의욕을 잃었을 것이다.
아침에 이민호가 내건 휴전의 추가 조건을 왜군 다이묘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투를 통해 얻은 정당한 전리품이 아니라 민간에서 약탈한 물건은 도성에 내려놓고 가야만 하고, 만약 왜군이 약탈품을 소지한 것을 들키면 압수하겠다고 거의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다만 식량은 예외로 두었다.
“이 여자애는 뭐냐? 일본 옷을 입긴 했는데 이거 남자 옷 아닌가?”
흑인 보병이 소녀를 끌고 다니는 왜병을 멈추게 했다. 흑인들은 고산국에서 일본인 처녀들을 자주 봤기 때문에 여자 아이가 입은 옷이 원래 여자 옷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봤다. 그러나 왜병이 다급히 변명했다.
“얘는 일본에서 데려온 내 딸이오. 절대로 조선인 소녀가 아니오! 옷이 없어서 내 옷을 입힌 거요.”
“아니에요, 저 조선인이에요. 이 왜놈이 제 머리를 깎아 일본 여자 행세를 시켰어요. 구해주세요! 노예로 팔려가기 싫어요!”
자그마한 여자애가 울며불며 흑인 승마보병에게 매달렸다. 왜병이 소녀에게 벌컥 화를 냈다.
“네 이년! 거짓말하면 죽인다!”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흑인 병사들이 창칼을 들이대자 왜병이 오줌을 질질 쌌다. 화난 얼굴의 흑인을 처음 본 왜병들은 마치 귀신을 본 듯이 겁에 질렸다. 그 사이 다른 흑인 병사가 소녀를 이끌어 냈고, 병사들이 창대로 후려쳐 왜병을 검문소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이런 식으로 왜병들이 개인적으로 데리고 다니던 조선인 포로 6천 명을 구해냈다. 그러나 석방된 이들 대부분은 왜인처럼 머리가 깎이거나 왜인 옷을 입고 있었다. 이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면서 대부분 고산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이민호는 그들을 해동상단 직원에게 넘겨 배에 태워서 남쪽으로 보냈다.
“전하!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나베시마 나오시게, 과도직무(鍋島直茂)가 직접 천막으로 찾아와서 이민호에게 항의했다. 나베시마는 55세나 됐지만 무장답게 여전히 정정했다. 실제 역사에서 나베시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80세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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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나마 오전중에 올렸습니다.
내일 1회 또는 2회 연재분을 더 올리면 행주대첩과 도성 탈환 편이 끝납니다.
다음 편에서는 주인공이 잠시 조선을 떠날 예정입니다. 명나라는 아니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