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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25화 (17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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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섬에서 섬으로

이민호가 정주 행재소에서 떠나는 길에 조선 국왕이 백관을 데리고 나와 동구 밖까지 환송했다. 행재소에 도착할 때와 전혀 달라진 위상이었다. 이여송도 이민호가 출발한 다음 한성으로 가서 왜군을 추격하기로 했다.

이민호는 출발 전에 세자 광해군을 따로 만나 지지해줄 테니 힘내라고 격려해주었다. 나중에 젊은 왕끼리 대화가 잘 통할 것 같다고 했더니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민호는 함대를 둘로 나눴다. 왜군 포로들과 전리품을 가득 실은 배들은 계복이 지휘해 천진으로 향하고, 나머지 전선 위주로 구성한 함대는 이민호가 이끌고 일단 남쪽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계복이 재미없는 일을 맡았다고 툴툴거리며 배에 탔다.

“전하! 저는 왜적과 싸우고 싶은데 어째서 북경으로 보내십니까?”

“왕자! 전쟁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데 왕자라면 나라 다스릴 걱정부터 해야지. 그리고 조선에 돌아와서는 잠시 왕자가 존경하는 이 통제사 밑에서 싸우게.”

“그거 하나는 괜찮군요.”

이민호는 불만 가득한 쇼호 왕자를 유구국 세자 자격으로 북경에 입조시키려고 내쫓았다. 그 전에 유구국 왕세자가 황제에게 바칠 주문을 조선국 예조의 도움을 받아 잘 작성해서 들려 보냈다.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와 포로 몇 백, 수급 1천도 유구국의 전공으로 해서 딸려 보냈다. 착용한 갑옷이 왜군과 비슷한 유구국 병사들이 북경을 행진할 때 명나라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 같았다.

유구국은 현재 명나라에 2년 1공을 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이번에 올린 전공을 황제에게 보고하면서 유구국을 1년 1공으로 바꾸고 감합무역 허가장을 다수 받게 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유구국 상선이 명나라 남부의 몇몇 항구에 수시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유구국 입장에서는 명나라와 더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는 동시에, 이민호가 더욱 편하게 일을 부려먹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부려먹히는 게 좋은지 원정군을 따라온 유구국 대신이 이민호에게 고맙다고 절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민호는 이웃나라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자고 잘 다독여 보냈다. 나이 차가 큰 사촌 간인데도 친남매처럼 친한 아라 공주와 쇼호 왕자는 남매들이 보통 그렇듯 서로 악담을 하면서 작별했다.

“오라버니~ 괜히 까불다 물에 빠져 죽지 마세요~”

“그래, 그래. 아라 너는 얼른 서방님 꼬셔서 합방해라. 아직이지? 어려서 몸이 볼품이 없어서 그래. 큭큭! 서방님은 아야한테 넘겨!”

“죽어버려!”

칼을 뽑아서 건너편 배로 집어던지려는 아라 공주를 시녀들이 간신히 말렸다. 계복과 쇼호 왕자 등이 탄 배는 서쪽으로 향했다.

원정함대는 항로를 남서쪽으로 잡고 순조롭게 항해했다. 백령도를 지날 때 또 명나라의 선단을 만났다. 대청도와 소청도 주변 바다를 가득 메운 명나라 어선들이 이번에는 알배기 조기와 꽃게를 잡는 것 같았다. 명나라 어선들은 조업이 아니라 씨를 말릴 작정으로 바다 밑을 샅샅이 훑는 것 같아 기가 막혔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 해안에는 해산물이 많이 잡히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남을 믿지 않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특히 어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국 어민들은 대대로 바다 바닥을 싹싹 긁어 새끼나 알까지 남김없이 잡아버렸다.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연근해에서 나는 전복은 명나라 때부터 거의 멸종 상태고 해삼은 나중에 인공양식을 하게 된다.

이민호는 현대에서 수천 척의 중국 어선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EEZ를 넘어 한국 근해에서 조업하는 것을 TV에서 보고 기겁한 적이 있었다. 중국 해안에서 물고기의 씨를 말린 중국 어민들은 한국 근해에 고기가 있으니 잡으면 좀 어떠냐는 식의 개념을 갖고 있었다. 한국 해양경찰이 제지하면 중국 어민들은 죄의식이 전혀 없으므로 당연히 분노해서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저항한다.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무척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도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민호는 명나라 어민들을 타이르려고 기함에 제독총병관의 깃발을 올리고 어선들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명나라 어선들이 급히 그물을 끊어서 바다에 버린 채 부리나케 서쪽으로 달아났다. 500여 척의 대선단이 돛을 올리고 최고 속도로 달리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왜 저러지? 명나라 깃발을 올리니 반응이 전혀 다르네. 같은 나라 군선이 무섭나?”

“해금령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바다에 나가서 조업하는 것만으로도 벌을 받을 거여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소. 그런데 공주! 바닷바람이 차갑소. 어서 선실로 들어가시오.”

“전하께서 안 계신 곳에 저 혼자 있으면 너무 쓸쓸한 걸요?”

아라 공주가 눈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꼬마 신부가 못하는 말이 없었다. 쇼호 왕자가 놀린 탓에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제가 아니라면 시녀라도 안아주세요.”

“그렇게 하겠소.”

“말씀만 하시고 자꾸 미루지 마세요.”

더 이상 늦출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해하는 공주의 어깨를 가볍게 안고 선실로 데려왔다. 그리고 공주가 권한 대로 시녀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야를 안았다. 슈리 궁궐 앞 시장에서 과일 행상을 할 정도로 활달하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종아리에 단단히 박혀 있어 묘하게 색기가 넘쳐흘렀다.

그러나 이민호가 아무리 애무해도 상전인 공주가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지 아야의 몸은 쉽게 준비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불을 덮어쓰고 한참을 문지른 다음 결합했다. 아야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눈물을 쏟아내는 눈에 입을 맞춰 위로하고 끝날 때까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나중에는 시녀가 안심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제 걱정 마시오, 공주.”

“헤~ 고마워요, 전하. 이제야 제대로 시집 온 것 같아요.”

아라 공주가 속옷만 입고 침대에 들어와서 이민호의 품에 안겼다. 그 사이 아야는 다른 시녀가 부축해 욕실로 들어갔다. 애처로워 보였다.

“아야는 제 사촌 언니에요. 그러니 신분이 낮다고 무시하면 안 돼요.”

“쇼호 왕자의 여동생이오?”

“그건 아니에요. 부왕 전하께 형제가 많아요. 다른 시녀들도 제 사촌이나 가까운 친척이니까 잘 대해주세요.”

유구국왕에게 후궁도 있을 테고 그럼 형제나 사촌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갔다. 얼마 전까지 유구국 왕실에서 종친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왕녀가 과일행상을 해야 할 정도로 쇠락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잘 먹고 살 정도로 형편이 피었다. 유구국 입장에서는 이민호가 하늘에서 내려온 든든한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이민호는 저녁 식사 전까지 아라 공주를 꼭 껴안았다. 목욕을 마친 아야도 같이 품에 안고 편히 누웠다.

그러나 밤이 되고 아라 공주가 졸라서 다시 시녀 하나를 더 안게 되었다. 새로 안게 된 시녀는 몸이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워 이민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시녀는 몹시 기뻐하며 이민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주상아 공주 빼고는 고산국의 후궁들이 다들 노동으로 단련된 튼튼한 몸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그쪽이 이민호의 취향에 더 맞았지만, 같은 숫자라면 여자의 몸은 다양할수록 좋았다.

원정함대가 제주도에 도착하니 제주목사 이경록이 마중 나왔다. 제주항은 말을 가득 실은 배가 오가는 커다란 항구로 변했다.

피난민이 넘쳐나는 육지와 달리 제주도는 더 없이 평화로웠다. 예전에 왜구가 제주도를 공격한 경우가 많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조선 조정에서 제주도는 자체 방어에 주력하도록 지시해 전란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제독총병관 대인!”

“오랜만입니다, 형님!”

자주 보면서 하는 인사말이었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올라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음력 2월 말인데도 제주항은 따뜻했다.

“요즘 어때요?”

“동해국에서 매달 실어오는 여진 말이 2천 마리가 넘어. 육지에서 사가는 것은 천 마리가 좀 넘고. 그래서 목장을 계속 확충하고 있네.”

제주도에서는 국영 목장 외에도 여진 땅에서 수입해 온 말을 키우고 전마로 훈련시켜서 육지에 팔고 있었다. 면포 50필 이하에 사서 500필에 파니 열 배 장사였다. 재력을 갖춘 의병이나 말이 부족한 관아에서 가끔 수백 마리 단위로 사간다고 했다. 그 이익을 이민호와 제주목이 나눠 가졌다.

“말, 차, 전복, 해삼을 무역하고 있어. 말 빼고는 고산국에서 전량 좋은 값에 사줘서 자네에게 고맙네. 제주도는 식량 자급이 안 되니까 뭐든 팔아서 쌀을 사와야 해.”

“그렇죠. 이거 맛있네요.”

이민호가 밀감 껍질을 까서 새콤한 과즙을 터뜨려 먹었다. 맛은 좋았지만 밀감을 대량 판매할 단계는 아직 아니었다. 지금도 무역에서 흑자가 나고 있으니 밀감만 제대로 판매되면 그때부터 제주도에 여유가 생길 거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남는 자금을 어선 건조에 투자하고 있네. 제주도에 여자가 많은 게 아니라 남자가 부족해. 남자들이 작은 배로 먼 바다에 나가 조업하다가 풍랑에 휘말려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야.”

통나무 10개를 엮은 제주도 뗏목 테우와 별로 다르지 않을 작은 어선으로 고기를 잡다가 물에 빠져 죽은 남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경록이 제주목사로 온 다음부터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조업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육지에서 제대로 만든 배를 들여와 무이자로 어민들에게 불하하고 있었다.

제주 백성들은 조선 개국 이래 최고의 목민관을 맞아들인 셈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밀감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면 일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도 될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될 수 있었다.

제주 백성들에게 유일한 불만이라면 같은 바닷가에서 남녀가 벌거벗고 물질을 하지 못하게 이경록이 금지시킨 것뿐이었다. 이민호도 이경록의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럼 앞으로 제주도 남자가 여자 2, 30명씩 거느리기는 힘들겠군요.”

“그건 너무 지나쳤지. 남자나 여자나 피차 불행한 일이야.”

“저도 사실 불행합니다.”

“많을수록 좋지만, 그것도 적당해야 말이지.”

말하다 말고 이경록이 슬쩍 공주의 눈치를 살폈다. 아라 공주는 어느새 새치름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아름다운 공주님! 차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어머나! 고마워요, 아주버님.”

이민호는 앞으로도 전마가 많이 필요할 테니 말 목장을 계속 확장하라고 했다. 일본 정벌에 대비해 필요한 전마 숫자가 10만 마리라고 하니 이경록이 많이 놀랐다.

이경록은 감목관 및 마의와 함께 품종을 개량하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 품종 개량 사업은 말의 체구와 지구력뿐만 아니라 색깔에도 미쳤다. 고상해 보이는 백마는 물론 명나라 장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라말, 흑마는 의외로 간단히 만들어냈다.

그러나 새해 들어 말들 사이에 역질이 돌아 이경록이 고민이었다. 말이 죽어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힘이 없어 제대로 달리지를 못했다. 명나라 군대가 왜군 추격을 늦춘 이유로 든 것도 말의 돌림병이었다.

“그리고 서귀포에 집 두 채를 지어주세요. 기와집은 형님이 서귀포에 가실 때 개인적으로 사용하세요. 공용 아니고 제 개인 집이니 아전들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세요.”

“석조건물은 아주 특이하게 생겼군.”

이민호가 설계도 두 장과 은이 든 상자를 내밀었다. 하나는 전통 기와집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고산국 별궁이나 바기오, 해남도에 지은 것과 같은 고전주의 양식의 석조건물이었다. 대목장이나 도편수가 쉽게 지을 수 있도록 설계도가 상세했다.

“돌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방바닥 밑에 돌려서 온돌 효과를 노린다? 괜찮겠군.”

설계도만 슬쩍 본 이경록이 온수 온돌의 정체를 바로 알아봤다. 이 정도라면 조선 전역에 온수 온돌이 금방 퍼질 것 같았다.

“제주도가 아무리 따뜻한 섬이라 하나 노인이나 임산부, 환자가 자는 방은 온돌이 좋을 겁니다.”

“내헌에도 온돌방이 있다네. 구리를 구해서 내 방부터 바꿔야겠군. 대나무 대롱은 몇 년 못 가서 썩을 테니 어렵겠지?”

이경록이 뜻밖에 건축에도 관심이 많았다. 마정이나 무역, 차와 귤 생산에도 적극적이었고 명나라에서 사온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뭐든지 새로 개량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민호는 혹시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 아닌지 경계했다. 그러나 같은 편이 되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이경록은 기술 쪽으로, 이순신은 행정 쪽으로 능력이 충분히 되니까 반드시 영입하기로 작정했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이 이곳저곳 다니겠습니다.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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