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2 31. 혼슈 봉쇄 =========================================================================
31. 혼슈 봉쇄
이틀 후, 노지마자키 곶을 지난 고산국 원정 함대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랜만에 순풍을 받아 범선들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동안 함대의 기동력을 깎아 먹었던 음력 3월 중순의 남풍이 이때만큼은 큰 도움이 되었다.
동쪽 해안가 멀리서 왜군 전령이 말을 타고 북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아마도 외국 배들이 에도만에 출현했다는 사실을 에도성에 급히 알리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산길이 구불구불하고 바다 모양에 따라 우회해야 하니 기마전령보다 원정 함대가 먼저 에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덕천가강,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연 이래 에도성은 도쿠가와 막부의 성이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왕의 거처인 고쿄(皇居)가 된다. 이 당시 에도성은 덕천가강이 1590년 8월에 본거지를 옮긴 이후 성을 개축하지 않아 아직 소규모 성으로 남아있던 시기였다. 다만 성 아래 마을만 먼저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다.
이민호는 현대의 도쿄라는 상징성보다는 이 시대 에도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봤기 때문에 이번에 중요한 공격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풍신수길의 기반인 큐슈와 혼슈 서부의 다이묘들이 조선에서 죽거나 병력 태반을 손실 당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민호는 일본이 오랫동안 내전에 휘말리길 원했다. 세키가하라 합전 한 번만으로 끝나면 섭섭할 것 같았다.
겐타로는 에도가 오사카나 나고야만큼은 아니지만 덕천가강이 주요 다이묘라서 당연히 에도를 상세히 조사했다. 어부로 위장한 첩자들을 침투시켜 해안 수심을 정확해 재어 몇 십 장에 달하는 지도와 함께 두꺼운 보고서도 만들어 이민호에게 보냈다. 에도성의 평면도와 병력배치도까지 입수했다.
원정함대가 에도성에 가까운 해안에 도착했다. 에도성이 2km 거리에 있어 함포 사거리 안에 충분히 들어왔다. 최소한 성곽은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에도성의 경계는 무척 훌륭한 편이었다. 원정 함대가 에도만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성에서 기마병과 보병들이 성에서 쏟아져 나왔다. 성이 작아 주변의 주둔지에서도 병력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원정함대가 도착한 해안으로 접근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쓸어버려!”
- 쿠쿠쿵!
덕천가강은 분명히 정보를 중시하는 다이묘였다. 조선에도 첩자를 파견해 전쟁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덕천가강과 그의 가신들이 아는 수군과 관련된 특이 정보는 전선이 아닌 중형 또는 대형 외륜선이었다. 함포가 없거나 하나를 탑재하고 조총병 100명이 탔다고 보고된 외륜선 여러 척을 막기 위해 에도성에서 조총병 수천 명을 위주로 한 2만여 명의 대병력을 바닷가로 보냈다. 대포도 몇 문 수레에 실어 말이 끌고 갔다.
그러나 덕천가강 가문이 알고 있는 정보는 부정확했다. 아니, 변화가 정보 수집 속도보다 빨랐다는 말이 정확했다. 부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판단을 했으니 이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이민호가 알고 있는 정보와 이에 근거한 판단도 부정확했다. 조선에 도해하지 않고 나고야성 주변에 주둔했던 10번대 이하 12만 병력 중에서 덕천가강의 병력이 3만이나 됐으니 에도에는 얼마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에도성과 그 주변에 주둔한 병력만 2만이나 됐고, 다른 지역에서 지원 병력을 보내면 얼마나 불어날지 알 수 없었다.
- 콰쾅!
창병으로 이루어진 방진 옆에 대열을 맞춰 서 있던 조총병들이 한꺼번에 수십 명이 날아갔다. 포탄이 터지면서 생긴 쇳조각 파편 말고도 조총병들 몸에서 분리된 피와 살, 그리고 뼛조각과 갑옷 조각으로 이루어진 파편이 주변 창병 대열에 쏟아졌다.
뼈와 이빨 파편에 맞은 창병들이 쓰러지고 피와 살의 파편에 맞은 창병들은 얼굴과 몸이 시뻘겋게 변했다. 부상당한 왜병들뿐만 아니라 이런 끔찍한 장면을 상상도 못해본 왜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무라이가 급히 지휘해 조총병들이 사격자세를 잡았다. 누군가 사거리가 안 된다고 건의하자 사무라이가 그 병사를 단 칼에 베어버렸다. 곧이어 조총병들이 일제히 사격했다. 그러나 고산국 전선 바로 앞에 총탄이 떨어져 수면에 마치 비가 오는 듯했다.
왜병들도 전선을 향해 대포를 쏘기 위해 서둘렀다. 덕천가강군이 보유한 포는 제법 괜찮은 포르투갈 산 불랑기였다. 왜병들이 수레에서 모포를 내린 다음 모래주머니 위에 올렸다. 미리 화약과 탄환을 장전한 자포(子砲)를 모포(母砲)에 끼워 넣고 앞으로 밀어 포열에 단단히 결합시킨 다음 쇠막대를 돌려 잠갔다. 왜병들이 전선을 향해 불랑기포의 포구를 돌리고 높이를 조정하는 사이, 전선에서 포탄 하나가 날아와 포병 진지를 날려버렸다.
임진년 초기 조선에서 노획한 지자총통도 어찌어찌 흘러들어서 에도성에서 몇 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모래주머니에 포신을 올린 왜병들이 포구를 통해 화약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포구 안으로 격목을 넣고 막대기와 나무망치로 두들긴 다음 작은 쇠구슬 수십 개를 포구 안으로 굴려 넣었다. 다시 포구에 흙을 쏟아 붓고 나무망치로 다질 때 전선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왜병들이 해안 가까운 곳까지 가져와 대포를 쏘려고 하다가 전선에서 포병들이 빤히 눈으로 보고 대응해 왜군은 포탄을 단 한 발도 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왜군이 이동식 방패를 들고 해안에 거의 접근했다. 철포병들이 조총을 들어 조준하기도 전에 대나무방패를 노리고 유탄이 먼저 비 오듯 쏟아졌다.
- 콰쾅! 쾅!
- 타타타탕!
유탄 폭발에 놀란 왜병들이 대열을 잠시 흩뜨리는 사이 전선 갑판에 늘어선 해병과 승마보병들이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왜군 조총병들이 짚단 쓰러지듯이 줄줄이 쓰러졌다.
기마무사들이 모래사장까지 말을 타고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칼만 허공에 휘두르다가 전선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살아서 돌아간 기마무사는 열에 한둘도 되지 않았다.
전선과 외륜선 합 30척에서 퍼부은 포탄과 총탄이 바다에서 에도성으로 이어지는 평지에 우글거리는 왜병들 위에 계속해서 쏟아졌다. 방진 하나가 깨지면 그 다음 방진이 무너지고, 다시 그 다음 방진을 구성한 창병이나 철포병들이 허무하게 죽어갔다.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에서 사무라이들이 전열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압도적인 화력 차를 병력과 용기만으로 극복할 수 없었다. 결국 왜병들이 에도성 방향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패주가 아니라 포격과 총격을 받아 죽어가면서도 대열을 맞춰 서서히 퇴각하는 모습이었다.
“군기는 제대로 갖춰져 있군. 그럼 뭐해? 상륙!”
- 삐리리~
이민호가 지시하자 기함에서 상륙 깃발이 오르고 취타병이 태평소를 불어 높은 음을 냈다. 그 직후 해안에 바짝 접근한 원정 함대에서 병력과 말을 쏟아냈다.
이곳은 덕천가강의 본거지였다. 덕천가강은 사가성이나 오사카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에도성과 성 아래 마을을 적당히 공격하고 빠질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기마병 500기와 승마보병 5천 명이 자기 말을 찾은 다음 소속 부대를 찾아가 대열을 이뤘다.
- 쿠쿵! 쿵!
그 사이에도 전선에서는 끊임없이 포탄을 발사했다. 왜병들이 에도성으로 퇴각하는 길을 따라 포탄이 연속 터지며 무수히 많은 시체를 남겼다. 해안선 주변에도 이미 왜병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함포는 왜군의 퇴각로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마지막 왜군 부대가 에도성 해자를 넘어 들어가는 순간, 에도성에 대한 포격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남쪽 망루가 무너져 내리고, 에도성 북쪽에 위치한 천수각도 포탄을 몇 발 못 견디고 무너졌다. 이어서 성문 위의 야구라가 줄줄이 박살났고 에도성 내부의 건물 기와지붕에도 포탄이 떨어졌다.
“전하! 더 이상 함포 유도를 못하겠습니다.”
“함대 전체 사격 중지 시키고 기함이 쏴서 유도해. 이런 건 앞으로 함장이 알아서 해.”
고산국 원정함대는 기함의 함포가 전체 함대의 함포 사격을 유도하는 체제였다. 다른 성에 비해서 작지만 그래도 큰 구조물인 에도성을 공격하는 동안 어느 포탄이 기함에서 쏜 것인지 다른 배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포격이 중구난방이라 효율이 많이 떨어졌으니 기함 함장은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조언을 한 셈이었다.
깃발 신호가 오가고 함포 사격이 멈췄다. 아주 잠시 정적이 흐르고, 오직 기함에서만 에도성의 성벽 모서리 한 곳을 향해 발사했다. 다시 사격을 명령하는 깃발 신호가 기함의 깃대에 올라가자 다른 전선에서도 기함에서 노리는 석축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각이 진 성벽 아래 커다란 돌에 포탄이 계속 명중하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기마병들과 승마보병들이 에도성으로 달렸다. 최소한 대정 이상급은 에도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 인쇄하느라 종이 값이 많이 들었다.
성 아래 마을에 도착한 승마보병들은 마치 화적처럼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면서 시가지를 불태웠다. 일본이 아무리 습기가 많다고 하지만 봄철이라 지붕을 지탱하는 서까래가 말라있었다. 말을 타고 달리던 승마보병이 처마 밑에 횃불을 잠시 대면 목조건물의 지붕부터 활활 타올랐다.
“주인님! 위험한데 기함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그래도 공성전이니 가까이서 지휘해야지.”
이민호는 불안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난 민희와 민영 등 호위대를 이끌고 에도성 동쪽으로 향했다. 기마병들이 포를 내려놓고 쏘는 곳이었다. 승마보병들도 1천 명이 배치돼 말에서 내린 채 성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이민호가 도착한 바로 그때 마침 동쪽 망루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성에 들어간 왜적들이 웬만큼 다 죽었을 테니 이제 성으로 돌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성으로 안 들어간다니까! 아까운 병력 잃고 싶지 않아.”
“예, 예.”
감불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여진족 청년에게 얌전히 명령만 들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할 짓이 못됐다. 그때 기마병 후방을 감시하던 척후가 달려와 보고했다.
“북쪽에서 적 기마병입니다! 500기 정도입니다.”
“오오! 딱 좋다. 가도 되죠, 도련님? 헤헤!”
감불이 두 손을 맞잡고 싹싹 비볐다.
“그거야 기병 지휘관이 판단할 일이다. 맞붙기 전에 총부터 쏴! 알았지?”
“쳇! 알았습니다.”
감불이 천방지축인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이민호가 내린 명령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했다. 감불이 기마병 500기를 이끌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왜군 기마무사들은 에도성 북쪽을 맡은 계복이 지휘하는 승마보병 2천을 향해 달리다가,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는 기마병을 맞아 싸우기 위해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그러나 승마실력이 좋다고 자부하며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20여 명의 젊은 사무라이들은 마치 감불처럼 천방지축이었다. 이들은 승마상태로 각종 무기를 뽑아들고 고산국 기마병들을 향해 돌격했다.
“총 먼저 쏘라니까 뭐하니?”
이민호가 걱정하는 사이 감불이 왜군 기마무사들 사이로 말을 몰았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기마무사 둘 사이로 파고들어간 감불이 칼을 휘둘러 오른쪽 기마무사의 목을 베는 동시에 몸을 숙여 왼쪽 기마무사가 찔러오는 창날 끝을 피했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 몸체로 밀어붙이다가 기마무사의 허리를 안고 전진해 말에서 떨어뜨렸다.
세 번째로 달려오는 기마무사의 칼날을 칼날과 맞부딪친 다음 감불이 세 번 연속 빠르게 공격해 목을 찔렀다. 네 번째 기마무사가 커다란 칼을 횡으로 휘두르자 감불이 안장 뒤로 눕다시피 해서 피하고 얼른 일어나서 칼을 휘둘러 기마무사의 등을 후려쳤다. 기마무사가 중심을 잃고 말에서 떨어지다가 등자에 한 발이 걸려, 말에 끌려가면서 말발굽에 짓밟혔다.
그 사이 다른 기마무사들을 기마병들이 모두 처치했다. 그리고 이미 하마한 왜군 기마무사들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감불이 권총을 빼어들며 명령을 내렸다.
“쏴!”
- 타타탕!
둥그렇게 뭉친 왜군 기마무사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쏜 총탄에 맞아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놀라서 뒤로 물러서다가 기마무사들끼리 엉킨 곳을 향해 유탄 수십 발이 날아가 연속 폭발했다. 아직도 서 있는 소수 기마무사들을 기병총을 든 기마병들이 연속 발사해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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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