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2 32. 뜨거운 바다 =========================================================================
“잠깐, 복건 순무가 보낸 편지 좀 읽어볼게.”
복건 순무 허부원이 황제의 명으로 일본에 간첩 다수를 파견할 계획을 진행 중인데 드디어 인원 선발과 훈련이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간첩을 침입시킬 수단이 없어 고산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현재 고산국과 명나라, 그리고 유구국은 일본과 전쟁 상태이니 무역선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가끔 나가사키에 들르는 해중국 상선도 언제 정체를 들킬지 몰라 불안했다. 나가사키의 일본인들이 해중국이 고산국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한다는 느낌이 가끔 들었다. 무역으로 인한 이득을 얻기 위해 묵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마카오에 협조를 얻어서 나가사키로 보내면 되겠네. 미카가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갈 배를 3척 정도 수배한 다음 나가사키의 니시무라 씨에게 안내장을 써줘.”
“네, 주인님. 나가사키 외에 사카이로 가는 포도아 배도 수배해볼게요.”
“응. 사카이가 더 중요하겠군.”
사카이에 도착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 사카이는 물론 그 넓은 오사카까지 홀랑 타서 지금은 재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워낙 억척스러워서 이익이 생기는 곳이라면 금방 시장을 재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 간첩들이 얼마나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예나 지금이나 대국의 자부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어서 명나라 간첩들이 일본에 가서도 큰소리 뻥뻥 치고 다닐 것 같았다. 영주나 사무라이에게 건방지다고 체포돼서 참수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차라리 겐타로가 큐슈와 혼슈에 깔아놓은 정보망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명나라 조정에서도 이민호에게 일본 정보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끔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망은 남의 것보다는 가능하다면 직접 갖고 운영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이민호도 인정했다.
회의를 일찍 끝낸 이민호는 궁궐에서 멀지 않은 최고재판소로 향했다. 이민호와 민희, 민영은 마차에 함께 타고 마차 주변을 호위대가 말을 타고 달렸다. 특제 마차는 겉을 철판으로 둘러서 혹시 모를 저격에 대비했다. 유탄은 관통력이 낮아 총탄을 방어할 정도면 충분했다. 이럴 때는 천자총통에서 대장군전을 쏘는 것이 더 확실했다.
“오늘 판결하실 재판은 세 가지에요. 살인, 강간, 간첩죄에요.”
민희는 고산국으로 돌아와서는 수행비서 역할을 잘 수행했다. 혜영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전수받았다고 한다. 민영은 이민호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 못지않게 강한데 좋은 말로 해서 백치미가 있었다.
“강간죄는 보통 10년에서 30년 동안 탄광 강제노동형이 아니었나?”
수도 동쪽의 원숭이 탄광은 올해 초 노천탄광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산에 갱도를 파고 들어가야 했다. 일이 힘들고 위험하며 분진 때문에 작업환경은 극히 열악했다. 이민호가 광부들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개발했으나 갱도 속은 덥고 축축하며 탄가루가 온몸에 묻어 더러웠다.
고산국 백성들에게는 경작지가 배분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 고산국 평균 가정소득의 두 배를 줘도 탄광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 법원에서 징역형을 언도받은 죄수들을 막장에 몰아넣었다. 이민호가 눈을 질끈 감고 명령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 겨우 두 달 전이었다. 백성들은 표면적으로는 환영했지만 이 조치가 사회 전반에 은근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래서 흑인 노예들은 금광에서 편하게 일하고 범죄자들은 발에 쇠사슬 차꼬를 차고 탄광에서 힘겹게 일했다. 덕택에 철광에서 난 철광석과 함께 고로에서 철을 대량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탄광과 금광 갱도에 까는 레일도 나무에서 조만간 철로 바꿀 예정이었다.
이제 고산국에서 철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조선에서 생산된 철이 훨씬 싸기 때문에 꾸준히 수입했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만 백성들이 무보수 부역으로 힘들게 일해서 만든 생산품은 가격이 헐하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산국에서 남는 철은 농기구와 창칼 등 수출품 생산에 사용됐다.
원숭이 탄광 북동쪽 금산광산에서 채굴 중인 금광에서 채굴 초기부터 금 생산량이 엄청나게 많아 이민호가 놀랄 정도였다. 품위도 높아서 금광석 대략 1톤 중에서 35그램 이상이 정련됐다. 19세기 금광석의 품위가 1톤에 평균 20그램인 점을 감안하면 순도가 높은 편이었다. 연간 순금 7톤 이상을 정련하고 누적 200톤 이상을 채굴한 가고시마 히시카리 광산의 품위는 1톤에 40그램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필리핀 바기오에서는 금광이 다섯 군데나 발견됐다. 그 중에서 품위가 높은 순서로 두 군데에서만 생산 중인데 이곳도 생산량이 많았다. 금광 세 군데를 합해서 한 달에 1톤 가량이 정련됐다. 아직 개발 초기라서 그렇지 본격적으로 채굴할 경우 산출량은 훨씬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2010년 금 생산량 세계 1위인 중국이 연간 340톤을 생산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작은 나라에서 충분한 생산량이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금이 필요할 경우 남아프리카를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호주는 금광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쓸모가 많고 특별한 정치세력이 아직 없으므로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을 예정이었다.
“피해자가 어리고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해서 최고재판소까지 올라왔어요.”
민희가 문서를 살피면서 보고했다. 피고가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강간죄만으로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을 수 있는지 이민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 고산국에서 사법제도가 정비되고 있었다. 웬만한 일은 마을에서 재판 형식을 빌려 촌장의 중재 하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했다. 고산국 전체를 20개 지역으로 나눈 군(郡) 중에서 5개 군에 형사와 민사 재판소, 그리고 경찰과 검찰 역할을 맡는 포도서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수도에 위치한 고등 재판소가 일반 민형사 사건의 최종심인 2심을 맡고, 살인 등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에 한해서 최고재판소가 관할했다.
최고재판소 소장을 당분간 국왕인 이민호가 겸임하기로 했다. 이민호는 법률이 정비되고 판례가 충분히 쌓이면 다른 전문 법관에게 자리를 넘길 예정이었다.
최고재판소는 조선의 관아와 비슷한 구조였고 동헌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첫 번째 살인죄는 증거가 부족해 지방 포도서에 재수사를 명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커가면서 언젠가는 다 경험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조금 일찍, 제가 몸소 시켜준 것뿐입니다. 제가 여자들 좀 후리고 다녀서 여자 몸을 잘 알고 조선에서 양반 출신이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덟 살짜리한테 그렇게 했나?”
“그거요? 앞으로 잘 안 들어가서 짜증나서 뒤로 억지로 집어넣었습니다. 나중에는 앞에도 들어가던데요? 헤헤! 어린년이 살이 아주 야들야들해서 맛이 끝내줘요.”
피고는 극악한 수준의 인간 쓰레기였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잡아떼어야 사형을 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인지할 정도의 지능도 없는 하급 사이코패스였다. 그 동안 가족에게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가 뭔가 큰 범죄를 저지르고 고산국으로 급히 이민을 온 것 같았다.
이런 자들은 문명국에서나 생존이 가능했다. 야만적인 나라였다면 그 성질 때문에 이웃과 숱하게 싸우고 적을 무수히 만들어나가다가 벌써 맞아죽었을 것이다.
이런 악질 범죄자를 위해 국선 변호사가 자기 일처럼 열심히 변론을 해주었다. 조선 형조의 하급 관리 출신이거나 지방 관아에서 형방을 했던 사람들이 고산국에 이민 와서 판사나 검사, 변호사를 하고 있었다.
법조인들의 수입은 고산국 평균인 농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군인의 절반이며 요즘 인기 업종인 담뱃가게 주인보다는 훨씬 적었다.
“여러 증인들이 증언하다시피 피고는 2년 전부터 피해자의 어미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피고가 그 동안 모녀를 지켜주었고, 가정생활을 위한 경제적 기여도 많이 했습니다. 사건이 난 날 피고가 술에 만취해 정신이 없어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어미가 피고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피고가 유죄인 사실은 변론의 여지가 없으나 이런 상황을 감안해 형을 감경해주실 것을 존경하는 최고 재판장이신 국왕전하께 요청합니다.”
문제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피해자인 딸이 아니라 가해자인 남자를 감싸도 돈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신고한 것도 아니고 아이의 비명소리를 들은 이웃 주민이 신고해서 범죄가 알려지게 되었다. 피해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앞으로 평생 고생해야 할 정도로 회복 못할 큰 부상을 입었다.
이민호는 열 받아서 퇴정한 다음 사무실에서 배석판사들과 협의했다. 혈압이 오른 배석판사들이 이민호보다 먼저 날뛰었다.
“완전 짐승에 정신병자입니다. 사회에 풀어놓으면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습니다. 저런 마귀는 인간 세상으로부터 영구히 격리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12세 이하이니 대명률에 따르면 교수형이지만, 사실혼에 의한 친족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는 만큼 참형을 시켜야 마땅합니다.”
조선에서 현령과 형방을 지낸 두 사람이 최고재판소 배석판사로 참가하고 있었다. 고산국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었으나 지금까지 살아오던 행적은 어쩔 수가 없어서 가끔 양반 출신들이 실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전 출신은 어수룩한 양반 관료들을 꼭두각시로 삼아 갖고 놀아버리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에 아전들이 항상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서 형법은 명나라의 형법, 즉 대명률을 가져와 적당히 손질해서 시행하고 있었다. 조선은 경국대전에서 아예 대명률을 형사법의 기본법으로 적용한다고 천명했다.
고산국에서도 일단 형법은 명나라와 같은 대명률을 임시로 차용하고 있었다. 앞으로 손 볼 곳이 많았으나,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대명률도 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법률이었다.
대명률은 기본적으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따른다. 하지만 법조항에 없는 범죄의 경우, 국왕의 처결 등 정당한 절차를 밟아 비슷한 조항을 적용하는 인율비부를 인정해 사실상 유추해석을 허용한다. 또한 불응위율(不應僞律)이라 해서 ‘율령(律令)에 정한 조문이 없으나 사리상(事理上) 하여서는 아니 되는 중대한 것을 범하면, 태(苔) 80의 형에 처한다.’고 <대명률직해>에서 명시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이민호는 이 시대가 그렇고 특히 건국 초기에는 사회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통치자가 되면 생각이 조금 바뀌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시기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법체계를 만들리라 다짐했다.
“그 피해자의 어미라는 사람도 이상하군요. 이건 제도나 법률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요. 딸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는 그 어미를 엮어 넣을 수 있겠소?”
몹시 흥분한 이민호는 중립적인 재판장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석판사들은 그 누구도 그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어미가 자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 편을 든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형벌을 주기 어렵습니다.”
“어미가 반항하는 피해자의 몸을 눌러 범인에게 협조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를 강간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왜 못해요? 여자를 강간죄의 공범이 아니라 정범으로 처벌할 수도 있습니다.”
배석판사 두 사람이 깜짝 놀랐다. 강간범은 남자, 피해자는 여자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시대였다.
“예? 여자에게는 그것이 안 달려 있습니다만. 그리고 대명률에도 여자를 강간죄의 정범이나 공범으로 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느 여자가 다른 여자를 묶어놓고 남자들에게 은화 한 푼씩 받고 여자 몸을 팔았다 칩시다. 피해자 여자는 분명히 강간을 당했소. 강간죄의 정범은 누가 되겠소? 남자요?”
“그건 아닙니다. 남자는 강간을 위한 공동의 범행의사가 없었으니 강간죄가 아닌 매춘죄로 처벌되겠지요.”
고산국에서는 매춘이 불법이었다. 여초현상이 지속되고 자유연애가 점점 확산되고 있으며 모든 백성에게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됐기에 매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적었다. 강간 등 성범죄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공창을 만들어 집중 관리하려고 했던 이민호는 다행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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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법률도 어려운데 대명률은 더 어렵네요.
오전에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