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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73화 (22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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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일은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 같았다. 영덕 어부 김 가선이 전라좌수영 소포의 해동상단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함경도 단천 은광의 갱도에 물이 가득 고여서 채굴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하수가 터져 갱도에 물이 들어찬 것이 아니라 비 오는 날 갱도 바깥의 물이 새어 들어간 것이었다. 사람들이 물동이로 퍼 나르기에는 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아무래도 부역에 동원된 주민들의 사보타주 의혹이 있었으나 증거를 잡지 못했다.

이민호는 단천으로 배수펌프를 보낼 수도 없어 잠시 고민하다가 단계별로 수차를 이용하라고 지시했다. 김 가선이 무릎을 쳤다. 해삼 양식장에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물레방아가 있으니 그것을 그대로 만들면 갱도에 찬 물을 길어 밖으로 빼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간단한 것을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장기적으로는 주민을 부역에 동원하지 말아야겠소.”

“옳으신 말씀입니다. 주민들은 땅에 매인 농부들이니 노임을 많이 준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는 전문 광부들만 고용하겠습니다.”

평민 출신이라 평생 군역과 부역에 시달렸던 김 가선이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함경도도 고산국만큼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야 노동력에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니 지금으로선 광부만으로 채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였다.

“은맥을 살펴보니 어땠소? 괜찮았소?”

“그 보고를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광산 덕대에게 채굴을 온전히 맡겼더니 은맥을 잘 찾아서 한 달에 은이 1만 냥, 금이 2천 냥이 나오고 있습니다. 채굴과 정련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으니 대부분을 전하께 바칠 수 있습니다. 아니, 금과 은은 온전히 전하께 바치고 비용은 다른 곳에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벌써 생산에 들어갔소? 양도 쏠쏠하구려. 하지만 그 정도에서 그칠 은광이 아니니 다른 방향에서도 은맥을 찾아보도록 하시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17세기 이와미 은광에서 막부에 진상한 양이 1년에 4~5천관, 즉 매년 40~50만 냥이었다. 매년 15톤이 한 은광에서 쏟아지는데 단천 은광이 그보다 못하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민호가 선조 임금에게서 받은 광산은 평안도 운산과 태천, 함경도 안변과 단천이었다. 단천 외에는 광부들을 고용해 운산 금광을 먼저 개발 중이었으나 지금은 광산으로 통하는 도로부터 닦는 중이었다. 이민호가 거는 기대가 가장 큰 곳은 바로 운산 금광이었다.

김 가선은 동해국과 아이누 섬에 대한 보고를 마친 다음, 여진족 동향에 대해서도 보고했다. 건주여진과 해서여진 사이에 전운이 짙어지고, 해서여진 쪽에 몽골 부족들이 다수 참가했다고 한다.

“건주여진이 더 위협적이긴 하긴 한데 섣불리 한쪽 편을 들면 안 되오. 동해국은 철저히 중립을 지키라고 전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해서여진이라는 오랜 숙적을 앞둔 건주여진은 인구와 생산량이 적은 동해국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동해국이 군사력이나 무역을 통해 건주여진을 압박하지 않자 건주여진이 오히려 동해국을 수출입 창구로 여기고 중개무역을 통해 몽골에 상품을 팔기도 했다. 이민호는 누르하치가 어서 여진을 통일해 명나라 국경을 건드려주길 원했다.

이민호는 전라좌수영 동정에 위치한 저택에서 묵었다. 그 사이 저택은 경호를 위해 확장공사를 해서 조금 더 넓어졌다. 원래 텃밭이었던 곳을 정원으로 가꾸고 남는 공간에 부속 건물을 몇 채 더 지었다. 조선에 집이 전라좌수영과 수원, 한성 서소문까지 세 채나 있었으나 겨울 피한지로 사용됐던 이곳이 이민호에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인님! 사쓰마가 초토화된 것은 이미 확인했습니다. 주인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문의 원수인 시마즈 가문의 둘째 당주, 시마즈 요시히로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미카가 시녀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이민호에게 청했다. 표정은 결연했으나 유카타도 아니고 품이 넓은 핫피만 입어 상체 속이 다 드러나고 하체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저런 옷을 왜 입는지 이민호는 알 수 없었다.

시마즈 가문에는 현재 당주가 실질적으로 세 사람이나 있었다. 전 당주 시마즈 요시히사는 풍신수길의 큐슈 정벌 때 패한 책임을 지고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계속해서 시마즈 가문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17대 당주에 오른 시마즈 요시히로는 주로 군대를 이끌고 외정에 나서거나 풍신수길과의 외교를 담당했다. 요시히로의 아들 시마즈 히사야스가 조선에서 병으로 죽어서 그 동생 시마즈 다다무네가 형수와 결혼해 시마즈 가문 전체의 후계자로 지명됐다.

“조만간 울산에서 큰 전투가 있을 거야. 시마즈 요시히로와 다다무네가 빠져 나가지 못하고 아직 그곳에 있다니까 조만간 죽겠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할 원수이니 반드시 주인님이 잡아 죽여주십시오.”

“요즘은 전투 중에 열다섯 꼬마가 쏜 총에 장군이 죽기도 해. 반드시 그를 사로잡는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만약 시마즈 요시히로가 도망간다면 끝까지 그를 찾아 잡아오겠다. 그리고 미카 네 손에 복수를 맡기마.”

“감사합니다.”

미카가 엎드려 절을 했다. 속이 다 보여서 이민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미카가 목숨 바쳐 청원하는데 차마 민망하다고 옷을 입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미카는 예전 영지를 되살리고 싶지 않나?”

“제 고향이긴 하나 후계자도 없는 작은 영지입니다. 그러니 원수만 갚을 수 있다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

미카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했다.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주인님 곁에 있고 싶습니다.”

“나도 미카를 곁에 두고 싶어.”

이민호가 무릎 꿇은 미카의 하얀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푹신하고 좋았다. 미카가 이민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혹시 제가 아이를 낳더라도 일본의 영지를 다스리게 한다는 이유로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혹시나 반란에 휘말릴까 걱정됩니다.”

“그런 문제가 있긴 해. 하지만 나는 내 자식들에게 영토를 나눠줄 생각이 없어. 통치권을 나누면 당연히 후대로 갈수록 분열이 심해지거든. 어쩌면 아무에게도 안 물려줄지도 몰라.”

“요순시대처럼 성군의 자질이 있는 분에게 왕위를 물려주실 건가요?”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그것보다는 일단 애부터 만들자.”

이민호가 고개를 돌려 희고 탄탄한 미카의 허벅지를 살짝 베어 물었다. 그리고 뜨거운 샘이 있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미카는 이민호가 처음으로 안은 여자였으니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건국 초부터 지금까지 이민호만을 위해 열심히 일한 여자였다.

처음에는 미카만을 안았다. 이미 서로 익숙해진 몸이었으나 안고 있으면 여전히 좋았다. 혜영의 몸에서는 향긋함이, 주상아 공주의 몸에서는 달콤함이 느껴진다면 미카의 몸에서는 허브향처럼 상큼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씩씩한 여자 사무라이로 성장한 시녀들 셋과 어울렸다. 미카의 시녀들 중에 네이가 빠져서 조금 아쉬웠으나 나머지 시녀들도 네이만큼 적극적이면서도 순종적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여자 사무라이들이 이민호 앞에서만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척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이민호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함으로써 셋에게 공평하게 정을 나눠줄 수 있었다.

이민호는 전선 여섯 척만 데리고 한성으로 향했다. 나머지 병력에게 짧은 휴가를 주어 고향이 며칠 이내 거리로 가까우면 잠깐 다녀오도록 했다. 친척들까지 고산국으로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예전에 비해 병사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경우가 조금 줄어들었으나, 아직 친척이나 친구가 남아있는 고향에 가는 병사들은 여전히 많았다.

지나는 길에 들른 완도의 전복 양식장은 잘 운영되고 있었다. 이민호는 늦은 봄이라 다시마가 아닌 미역을 먹이는 양식장과 종패장을 돌아보고 어민들을 격려했다.

양식장 관리인들이 처음에는 어민 20호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50여 호로 늘었고 양식 면적도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것만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전복 유통량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으며, 더 이상 생산량을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민의 아이들이 비단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이민호는 충분히 만족했다.

5월 14일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에 전선 여섯 척을 정박시켰다. 그리고 기마병 250기와 해병 500명이 길을 따라 행군해 서소문 밖에 주둔시키고, 이민호는 호위대와 함께 서소문 집에서 묵었다. 해동상단 대방이 일꾼들을 시켜 서소문 저택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저녁에 한성에서 예조참판을 비롯한 조선 관리들이 와서 고산국 예국참판 등과 함께 조문 절차를 두고 논의했다. 임금의 발상은 승하 후 100일이 넘어서고 길일을 잡느라 더 늦춰져 결국 8월 초로 잡혔다. 장례 절차가 몹시 길고 복잡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광해군 즉위 초부터 임해군이 역적모의를 했다가 잡혀 들어가서 난리가 났다. 임해군과 가깝다고 지목된 문무 관료들이 의금부에 끌려가 공초를 받는 등 한성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뒤숭숭했다.

다음 날 오전 고산국과 유구국 조문 사절을 앞세우고 정릉동으로 향했다. 이민호를 비롯해 조문사절단 관리들은 상복을 입었고 병사들도 전원 흰 제복을 입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군했다. 백성들이 나와 연도에 늘어서서 이민호와 고산국 병사들을 소리 없이 환영했다.

정릉동 행궁은 옛 월산대군의 거처였고 광해군 대에 경운궁으로 이름이 바뀌고 나중에는 덕수궁으로 다시 바뀐다. 석어당에서 임금이 승하한 직후부터 문무관료들의 분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어언하아아~ 끅끅! 어이하여 어린 백성들을 두고 먼저 가셨나이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신 다음에 가시든지 하셔야 할 게 아닙니까? 너무하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서운하옵니다. 어흐흑흑흑~”

구성지게 곡을 하는 자들은 고산국에서 데려온 곡 전문가들이었다. 흐느끼면서 하는 곡 속에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 들어있어서 이민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민호가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처럼 보여서 왕실 사람들이나 조정 대신들에게 점수를 많이 딸 수 있었다.

이민호는 절차에 따라 절을 몇 번이나 한 다음 분향을 마칠 수 있었다. 이민호는 상주인 광해군과 맞절을 한 다음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위로의 말을 건넸다.

“황망 중에 더욱 망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국휼을 당하여도 조선은 바로 일어설 것입니다.”

“저는 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소방(小邦)이 복이 없어 이렇게 큰 슬픔을 당했으니 망극한 심정을 견디지 못하여 감히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려 황공합니다. 우러러 몹시 절실하고 방황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이민호는 어제 조문 절차를 논의하러 온 예조참판에게 귀띔을 받았다. 선조 임금 때는 고산국이 조선의 속국으로 취급 받았으나, 임금이 바뀌면서 고산국의 현재 위치를 감안해 관계가 현실적으로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조선 조정과 신임 국왕도 수용했다고 한다.

고산국과 조선은 앞으로 동등한 형제관계로 하되, 그래도 조선이 형 노릇을 하기로 했다. 이민호는 앞으로도 조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새로 즉위한 광해군이 정치를 얼마나 잘할지 기대가 됐다.

선조 임금이 일찍 승하함으로써 실제 역사와 달라진 것이 꽤 많았다. 선조 임금이 계비인 인목왕후를 맞이하지 못하고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폐모살제 등 광해군에게 가해진 여러 가지 안 좋은 인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임해군의 역모에 대한 조사 문제가 걸렸으니 앞으로 어찌 된다고 예단하기 어려웠다.

============================ 작품 후기 ============================

한 편 더 올릴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기다리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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