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7 35. 기술개발 =========================================================================
“저번에 주인님이 내명부 소속 후궁들의 생리주기를 조사하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한데 호위들이 우연인지 몰라도 주기가 많이 겹쳐요. 그래도 한꺼번에 다섯 명씩 안을 수는 없지 않아요? 물론 주인님은 그러신 적이 있으시지만 말이에요.”
“그거야 뭐. 이틀로 나누거나 저녁과 밤으로 나눠야지.”
신료들과 백성들이 불안해하는 것 같아 후세 생산에 힘을 쏟기로 했다. 남에게 맡기지 못하고 그야말로 이민호가 직접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함께 생활하는 여자들은 생리주기가 비슷해진다는 설이 있었다.
“주인님은 앞으로 주상아 공주를 한 달에 한 번만 안으실 건가요?”
“그럴 수는 없지. 헤헤! 좀 봐주라. 혜영이도 자주 보고 싶잖아?”
“몰라요! 당분간 주인님의 밤을 둘로 나눠야겠어요. 누군가 하나가 임신할 때까지만 이렇게 하세요. 낮에 주인님 업무량을 좀 줄이고 쉬는 시간을 늘릴게요.”
“그렇게 해.”
이민호 입장에서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급히 할 일이 기술적인 발전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문제가 되자 얼떨떨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호의 후계문제를 신경 쓰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반드시 후계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후사가 없는 군주는 은근히 무시당하게 되고 권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민정과 민지가 화려하고도 치렁치렁한 여진족 결혼예복을 입고 이민호의 침실에 들어왔다. 화장을 해서 아예 다른 사람 같았으나 그때처럼 부끄럼을 몹시 많이 타는 둘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민호가 둘을 탁자에 앉히고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야! 화장을 적당히 하니까 정말 예쁘다.”
역시나 민정과 민지는 대꾸가 없었다. 이민호는 다짜고짜 둘의 손목을 잡고 침대로 올라섰다. 그리고 민정과 민지가 걸친 결혼 예복에 딸린 장식물을 하나씩 치우고 두꺼운 옷도 벗겼다. 건강미 넘치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보니 전에 안았던 둘이 확실히 맞았다. 사실 호위들은 예외 없이 신체에서 건강미가 넘쳐흘렀다.
“머리를 올리거나 짧게 치니까 보기에 좋다. 대답 좀 해, 제발.”
“네. 고마워요.”
이민호는 둘을 안고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첫날밤에 겪은 일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둘을 다 벗기고도 한참 동안 몸을 만지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조바심이 난 민정이 얼굴이 빨개진 채 입술을 꼭 깨물면서 입을 열었다. 자못 비장한 표정이었다.
“안아주세요, 주인님.”
“응? 그래.”
민정이 용기를 낸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했다. 혜영이 후궁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한 내용을 나중에 간추려 들을 수 있었다. 누구든지 좋으니 이민호의 후계를 생산하는 일에 최고 우선 순위를 두자는 내용이었다.
만약 이민호가 젊은 나이에 전사하거나 병에 걸려 죽더라도 후계자만 있으면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민호가 후계자 없이 죽으면 후궁들은 자칫 아주 비참한 처지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배우자를 잃은 여자들이 재혼하기 어려운 시대였고, 특히 왕의 여자로 낙인찍힌 순간부터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른 남자가 고산국의 권좌는 물론 후궁까지 인수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았다. 다들 머리 깎고 단체로 절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나 안 죽을게. 걱정 마.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
어떤 유희든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재미가 확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민정과 민지라는 새로운 여자를 안을 때는 그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민정은 겨우 두 번째이면서도 이번에는 거의 아파하지 않았다.
민지도 그 가냘픈 체구로 누워서 이민호의 몸을 받아들였다. 몸집이 작아서 민지는 하체보다 이민호의 체중이 실린 상체가 더 힘겨워 보였다. 남자 맛도 모르고 방사에 대해 거의 모르는 민지에게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자세를 시키면서 이민호는 묘한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민정과 민지는 이민호의 침실에 들어온 목적을 확실히 상기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파정을 마치는 순간 혜영에게 배웠는지 가만히 누워서 수정 가능성을 높이려고 애썼다.
“너무 부담감 갖지 마. 너희들이 아니면 다른 여자가 낳겠지. 그리고 시간이 가면 너희들도 언젠가는 애를 가질 거야.”
“칫! 주인님은 아무 것도 모르시면서.”
민정이 입술을 삐쭉거렸다. 겨우 두 번째였지만 이민호의 첫 아이를 낳고 싶은 욕심은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후궁들이 침실에 들어올 때 다들 적극적으로 변해서 이민호도 진지하게 상대해주었다.
“이번에는 파폴라족 지역에 침입해서 15세, 13세 남자 아이 둘을 납치해 석 달 넘게 강제로 노동을 시킨 자입니다.”
배석판사가 혐의를 요약해서 이민호에게 알렸다.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 부족 관계자, 신문기사 등이 방청객을 가득 메웠다.
법원을 2심에서 3심제로, 이름도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바꿨다. 그 동안 판사들이 많이 보강됐어도 이민호는 국왕으로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 사건에 한해서 이렇게 가끔 대법원 결심공판에 참가했다. 조금 더 지나면 아예 공판에서 빠지고 확인만 하려고 했다.
파폴라족은 일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다음 명목상 부족 전체가 10년 동안 국왕의 노예가 되는 처벌을 받았었다. 성인 남자들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주변 다른 적대적인 부족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임시적인 처분이었다.
“국왕전하! 파폴라족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이웃 부족들을 침략해 살인을 일삼아왔습니다. 그 동안 제 조상들과 이웃들이 입은 피해가 말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복수를 하는 뜻에서 파폴라족 새끼들을 잡아와서 좀 때리고 죄과를 갚으라고 일을 시켰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끝나자 국선변호사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변호사가 가르쳐준 대로 발언하지 않고 기분에 따라 멋대로 말한 것이었다.
“조사해보니 피고인이 파폴라족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없습니다, 전하. 납치와 인신구속, 강제노동 등 피고는 명백히 유죄입니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이득을 챙기려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피고인은 국왕전하의 재산인 파폴라족 노예를 침탈했고 파폴라족 영역에 들어가지 말라는 왕명을 어겼습니다. 유죄입니다.”
“유죄요. 형량은 어느 정도가 좋겠소?”
이민호가 배석한 판사들에게 물었다. 이전에는 배석 판사들이 단순히 조언 정도만 해줬다면 요즘에는 합의체 형식으로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 동안 판사들이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믿어도 될 수준에 올랐다.
“대역죄를 지어 최대 사형에 해당합니다만, 정치나 군사가 아닌 경제적 분야에 한해서 감형을 해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큰 부상을 입지 않은 점을 감안해 징역 15년을 언도하는 게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폴라족의 경우 주변 부족들과 특이한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고 파폴라족이 부족 자체가 와해될 우려가 있으니 일벌백계를 해서 주변 부족들에게 경고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마땅히 사형을 시켜야 합니다.”
사람을 납치해 강제로 일을 시킨 것보다는 하필 왕실 재산을 손댄 것에 더 큰 형량이 부과됐다. 물론 파폴라족을 보호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피고인 공성산, 왕실재산 침해죄로 징역 15년에 처한다.”
- 땅! 땅! 땅!
이민호가 나무망치를 두들겼다. 이건 꼭 해보고 싶어서 목탁을 잘 만들기로 소문 난 목공에게 시켜 예쁘게 만들었다. 피고인이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항의했다.
“이런 미친!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요?”
“피고인 공성산, 법정모욕죄, 왕실모욕죄로 5년 추가다.”
“으흐흐흐~ 잘못했어요! 엉엉~”
피고인이 법정 경비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 끌려 나갔다. 이로써 탄광에서 무료로 일해 줄 튼튼한 장정이 하나 더 충원되었다.
다음은 명나라 사람이 분명한 중년 남자 셋이 피고인석에 섰다. 배석판사들이 이민호에게 설명하는데, 정말 역겨운 내용이었다.
“사산된 아기의 사체를 약재로 가공해 판매하고 복용한 일당들입니다. 명나라 한족 출신으로서 이민 6개월 차에 접어든 고산국 백성이며 의원인 이소치, 상인으로서 복건성을 왕복하며 생활하는 한인 왕득명, 한인 사노항 등 3명입니다.”
“좋소. 변호인은 최종 변론을 하시오.”
국선변호사가 새로 공포된 형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는지 다른 소리를 했다. 이민호는 저 변호사의 자격을 정지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변호사로 남고 싶으면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할 일도 안 하고 권리만 누리려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태아는 사람이 되기 전의 생물이며, 이미 죽어서 배출됐기에 땀이나 털 같은 인체의 부산물이나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대국에서는 이런 행위가 관습상 죄가 되지 않습니다!”
조선에서도 <삼강행실도>에 나왔듯이 자식이 손가락을 베어 병환 중인 부모에게 피를 마시게 하는 등 식인은 아니지만 인간의 신체 일부를 약재로 사용한 사례가 있었다. 지극한 효성에 감탄하는 것이야 인간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런 행위를 국가적으로 격려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효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에 특별한 약효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나중에는 사람의 간이나 쓸개가 불치병에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퍼져 생사람을 잡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들 피고인들은 치료 목적이 아닌 정력보강을 위해 태아를 요리해서 먹었다.
“고산국에서는 임신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사체 훼손, 식인행위까지 합해서 징역 10년입니다.”
배석판사들과 함께 형량을 정하고 있는데 변호인이 허락도 받지 않고 긴급 변론에 나섰다. 여기에 피고인까지 가세했다.
“재판장님! 피고인들의 국적이 고산국이 아닌 대명제국입니다. 고산국에 재판 관할권이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저 대국으로 돌아갈래요.”
피고인들이 대국인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잘난 척해서 국가모독으로 10년 추가하고 싶었지만 그런 죄명은 없었다. 고산국에서는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 없더라도 관료들도 명나라를 흔히 대국으로 칭하기도 했다.
“징역 15년이오. 이번 사건을 관보에 게재할 때 특별히 식인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고산국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는 국적을 불문하고 고산국 법원에서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있소.”
고산국 법률은 속지주의를 채용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외국, 그것도 명나라 국적을 가지고 고산국에 거주하는 자들에 대한 재판권을 확실히 행사했다. 나중에 복건순무가 황급히 달려와 항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선고가 명나라 국적을 유지하며 그 동안 은근히 고산국을 무시하면서 살던 한인들에게 교훈이 될 것으로 믿었다. 또한 대명률과 다른 법체계를 가진 형법이 공포되고 시행됨으로써 한인 출신들이 명나라 관습이나 대명률로 변호할 시기가 이미 지났다.
바쁜 와중에도 이민호는 휴식시간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서산대사는 과연 훌륭한 분이었고, 혜영이 적극 도와주었다.
더운 여름이라 관료들이나 장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할 시간에 이민호는 주상아 공주와 함께 아리수 강 하구로 소풍을 나왔다. 시녀와 호위대 등이 줄줄이 따라와서 오붓한 느낌은 즐길 수 없었으나 오랜만에 탁 트인 야외에 놀러 나오니 기분이 확 풀렸다.
“잠깐 낚시를 하겠소. 공주를 위해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오겠소.”
“물고기를 잡아오시면 제가 매운탕을 만들어드릴게요.”
지렁이 미끼를 바늘에 꽂아 낚시를 하는데 앞에서 숭어들이 물 위로 뛰어 올랐다. 이민호는 훌치기 낚싯바늘로 바꿔 낚싯대를 휘둘렀다. 잠시 후 옆구리에 바늘이 걸린 숭어가 퍼덕거리면서 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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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자신은 없지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