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0 36. 소 해적시대 =========================================================================
36. 소 해적시대
고산국은 병력을 증강하기 위해 꾸준히 모병을 실시하고 있었고, 병사들의 수입이 농민의 평균 2배나 될 정도로 대우도 좋았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항상 병력이 부족했다.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조선인 출신들은 군역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탓에 입대를 하겠다는 청년이 생기면 가족과 친지들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는 분위기였다. 군대 가지 않아도 잘 먹고 살 수 있는데 구태여 갈 필요가 없는 환경도 한몫했다.
명나라에는 ‘좋은 쇠로는 못을 만들지 않고 좋은 사람은 병사로 만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군인을 낮게 보는 풍조가 강했다. 일본인 출신은 위에서 시키면 하겠지만 굳이 지원하지는 않겠다는 식이었다.
흑인이나 묘족 같은 명나라 남부 소수민족 출신들이 아니었다면 현재 병력을 절반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농업기술이 뒤쳐져 농사를 짓기 어려운 자들이라 군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만 원주민들 중에서는 고산국에 처음으로 복속된 케타갈란족과 아타얄족이 그나마 입대에 적극적이었다.
이민호는 계복과 함께 특수전사령부 훈련소를 방문했다. 현재 신병이 아니라 특수전사령부로 옮긴 장교와 부사관들이 먼저 훈련을 받고 있었다. 간부들이 훈련을 받아봐야 신병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기초는 체력, 그래서 체력 훈련과 유격 훈련에 중점을 두었다. 나중에는 사격이나 침투 훈련도 하겠지만 특수부대만큼 체력이 중요한 곳도 없었다.
간부들을 훈련시키는 교관은 호위대 남자 대원들이 맡았다. 예전에 수원에 살 때 집안 노비와 여진족 애들에게 이민호가 장난삼아 유격 훈련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게 인상적이었는지 호위들이 훈련 시설을 만들어 몇 번 해보더니 그것을 체조를 빙자한 얼차려까지 포함해 교관들에게 가르쳤다. 한 번도 못해본 이들은 당연히 죽어났다.
“병력이 너무 부족해. 군 복무를 일정 기간 마쳐야 시민권을 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도련님?”
“지금도 이민 희망자가 별로 없는데 병역을 강제로 부과하면 아무도 안 온다. 있는 사람도 도망갈 거야.”
벌레가 적인 어느 SF 영화에서는 군 복무를 마쳐야 투표권을 얻고 출세할 수 있는 세상이 배경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이 군대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획기적인 유인책이 필요했다. 봉급을 올려줘 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원주민들 같으면 외국에 나가보고 싶어서 입대하는 경우가 많더라. 일정 기간 원하는 지역에 순환 배치하면 어떨까?”
“그것도 좋겠지만 열대 지역에 배치되고 싶은 애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팔라완과 브루나이에 주둔하던 병사들 중에서 말라리아 환자 여덟 명이 발생해 그 중 한 명이 사망했다. 주둔지마다 군의가 배치되고 개똥쑥을 치료제로 비치했지만 그 병사는 약을 쓰기도 전에 사망해버렸다. 몸살감기로 가볍게 여기고 잤다가 다음 날 아침에 못 일어난 것이다.
순직한 병사는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나, 그 이후 열대 지역 주둔 희망자가 뚝 떨어졌다. 모자라는 인원은 필리핀 바기오 지역에서 고용된 용병으로 채웠다.
이민호는 훈련을 받는 부사관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그를 불렀다. 부사관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이민호 앞에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자넨 케타갈란족 족장의 아들 아닌가? 이름이 뭐였더라?”
“맞습니다, 국왕전하! 이름을 고산국 식으로 새로 지어 귀염둥이가 됐습니다.”
“이름이 뭐 그래? 새로 지어줄까?”
“아닙니다! 제 아내가 지어준 이름이라 바꾸지 않겠습니다.”
부사관은 원주민 출신이라 국왕이 하사한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를 수도 있었고, 이민호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결혼생활에 대해 물어보니 아주 만족해했다. 나라에서 세운 학교에 들어가서 조선말을 배우고, 초등과정을 졸업하자마자 담임을 맡았던 조선인 출신 여선생을 유혹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능력도 좋았다.
학교 선생은 조선의 지식층 중에서 양반 아래 계급인 중인들이 많이 지원했다. 그리고 남녀구별을 하지 않아 여선생들이 조금 더 많았다. 만약 교사들의 성비가 한쪽으로 쏠린다면 조정할 필요가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현재 전국 모든 마을에 작으나마 초등학교가 있고 그것은 원주민 마을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학생보다 교사들이 배워야 할 게 더 많아 방학 때마다 수도로 와서 교육을 받았다. 덕택에 고산국에서 교육대학이 가장 먼저 세워졌다. 마카오 대학을 본 받아 조만간 수도에 종합대학도 세울 계획이었다.
“자넨 똑똑한 것 같던데 사관학교에 들어가지 그랬어?”
“근무하는 중에 시험 봤다가 작년 말과 올해 봄에 두 번이나 연속 떨어졌습니다. 원주민 가산점을 받아도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필기시험 성적이 덜 필요한 부사관으로 2년째 근무하고 있다가 특수전사령부에 차출됐다고 했다. 호위대원에게 물어보니 체력이 좋고 특히 산을 타는 능력이 출중하다고 했다. 사냥으로 다져진 몸이라 특수부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조선말은 잘 하는데 한글로 된 책을 읽는 게 힘들어? 그럼 문제인데. 시험제도를 좀 고쳐야 할까?”
“그건 아닙니다. 제 마누라가 그러던데 제가 돌대가리랍니다. 걱정되기도 하고, 귀여워서 같이 살아준답니다.”
“좋은 마누라를 얻었구먼.”
귀염둥이가 다시 훈련받으러 돌아갔다. 장교가 되면 부하들의 목숨까지 챙겨야 하므로 알아야 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래서 아무리 창군 초기라지만 아무나 장교로 뽑지 않았다. 최소한 전술을 이해하고 전쟁사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을 장교의 기본 조건으로 삼았다.
이민호는 귀염둥이를 당분간 특수전 부사관으로 근무시키다가 나중에는 병무청 관리직으로 뺄 생각이었다. 원주민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병관을 시키면 아주 잘할 것 같았다.
조선의 국상에 참가한 예국 참판이 8월 중순에 돌아왔다. 이민호는 예국 참판을 접견해서 조선에서 이뤄진 외교적 성과를 보고받았다. 혜영 대신 혜진과 계복, 최 선생, 미카가 배석했고 민영이 호위들을 지휘했다. 닌자들의 습격 이후 낮에도 호위가 대폭 강화됐다.
예나 지금이나 즉위식이나 국상 같은 국가적 행사는 외교전의 현장이었다. 광해군은 선왕의 승하 다음 날 즉위했기 때문에 따로 즉위식이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장례 때는 고산국과 유구국, 명나라와 건주여진에서 보낸 조문사절이 조선을 방문했다. 예국 참판은 조선 예조 관리들뿐만 아니라 세 나라 사절들과도 여러 번 만나서 우의를 다졌다.
“누르하치가 신경을 많이 쓰는군요.”
“예, 전하. 아직도 해서여진이 더 강성한데도 누르하치는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 명나라와의 마시무역이 축소됐으니 동해국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웃으면서 상거래를 하지만 언제 안면을 바꿀지 모르겠습니다.”
여진족만 따지고 봤을 때 건주여진이 해서여진보다 더 강했다. 그러나 해서여진은 몽골 부족들과 혼인동맹으로 맺어져 있어서 건주여진이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상대였다.
방어전과 공격전은 성격이 아예 달랐다. 6월에 9부 연합군을 물리친 건주여진이라도 해서여진 1개 부족을 공격해서 이긴다는 보장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건주여진은 전쟁에서 이기면서 중립적인 부족들을 흡수한 대신, 명나라 국경의 마시무역이 축소되고부터 이탈한 부족들이 많아 전체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이민호는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이 서로 상대방 때문에 함부로 본진을 비운 채 동해국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 여진 지역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동해국에 침을 흘리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동해국을 점령하는 쪽이 몽골과의 무역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 있어서 여진족의 주도권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해국의 실체는 고산국의 무역거래소에 불과했다. 만약 고산국이 동해국에서 손을 떼면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이 얻을 것은 작은 땅과 여진족 포로 몇 명에 불과했다.
이민호는 여진족들이 그것을 알기 바랐지만 황금 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경우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되고, 이민호가 가장 우려하는 사태였다. 이민호는 여진족의 주도권이 어디로 가든 동해국이 그대로 남아 계속 모피무역을 하게 되길 원했다.
“백산부에 대해서는 말이 없던가요?”
“예. 백산 여진 3부가 동해국을 거쳐 연해주로 도망간 것을 건주여진 사절도 알고 있었습니다. 당장은 인삼을 캘 사람들이 없어져서 곤란하겠지만 빈 땅이 생긴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백두산 인근에 거주하던 백산 3부는 동해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 전에 미리 여자와 아이들을 빼돌렸다. 그리고 9부 연합이 패한 직후 성인 남자들 모두가 백두산을 넘어 함경도로 도주한 다음 동해국 영역에 들어섰다. 건주여진에서 추격했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텅 빈 마을뿐이었다. 강을 건너면 조선국 영토라서 더 이상 추격할 수도 없었다.
동해국 북동쪽 지역의 이름은 현대와 똑같이 연해주라고 붙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연해주와 달리 흑룡강 하구까지를 그 영역으로 삼으니 한반도의 4~5배 정도 넓이였다. 현대 러시아의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주 남쪽 절반을 합한 광대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이 너무 넓어 당분간은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연해주에 들어간 백산 3부 여진족들은 경쟁 부족이 없는 이곳에서 마음껏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고 산삼을 캐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동해국 시장에서 호피와 표피 값이 적정하게 형성된 탓에 미친 듯이 잡아서 호랑이와 표범이 멸종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건주여진에게 착취당하지 않고 동해국을 통해 쌀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어서 식량 부족을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
“명나라 대신들은 황제폐하와 달리 일본 정벌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조선 대신들도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 재건이 우선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복수하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텐데요. 나중에는 일본한테서 적당히 사과를 받고 흐지부지 넘어가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전하. 명나라나 조선 대신들은 일본 정벌이 성공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보는 탓입니다. 고산국 원정군의 능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본 원정은 또 다른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쟁에는 변수가 워낙 많아 섣불리 승패를 점칠 수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도 근대적인 화기로 무장한 유럽 군대가 창칼 또는 원시적인 총기로 무장한 원주민들에게 패한 사례가 숱하게 많았다.
“그렇구려. 준비를 잘해봅시다. 그리고 예국 참판은 병국 관리와 함께 섬라에 가 보셔야겠소. 과연 그들이 원정을 갈 여력이 있는지 판단해주시오. 참판을 자꾸 외국으로 보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마땅히 제가 할 일입니다.”
“국서는 며칠 안에 마련해주겠소.”
아쉽게도 태국에서 수입할 것은 몇 가지 금속 외에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버마가 보석과 목재 등 천연자원의 산지로서 무역하면 돈이 될 만한 곳이었다. 포르투갈이 몇 십 년째 용병으로 일하면서 군침을 흘릴 만했다.
“그리고 운산 금광에 직접 가서 확인했습니다. 관리들이 말하길 금이 예상보다 많이 산출되고 있답니다. 굴을 파고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벌써 금을 3만 냥이나 지련했습니다. 대암천에서 채취된 사금을 빼고도 그렇게 많습니다.”
“좋은 소식이오. 하지만 좀 더 나올 겁니다.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면요. 그리고 주변 다른 지역도 살펴보라고 하시오.”
운산에서 금광의 존재는 조선 초부터 알려졌으며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채굴했다. 그러다가 구한말에 미국으로 사업권이 넘어간 다음 20세기 전반 수십 년 동안 매년 3톤 가까운 금을 생산해 한때 동양 최대의 금광으로 평가받았다.
채굴 기술이 좀 더 좋다면, 그리고 다른 갱도를 더 발견할 경우 매년 거의 10만 냥 가까이 정련할 수 있는 곳이 운산 금광이었다. 그리고 고종 황제가 1년 산출량도 안 되는 헐값에 미국에 넘긴 것보다 선조 임금이 이민호에게 훨씬 높은 가격을 받아낸 셈이었다.
============================ 작품 후기 ============================
현재 작중 1593년 8월 시점인데 10월 말까지 좀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오전에 한 회 더 올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