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02화 (251/1,000)

00302  36. 소 해적시대  =========================================================================

1593년 음력 9월의 어느 날 오전 이민호는 관리들과 함께 농지 시찰에 나섰다. 이 시대 어느 나라든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러나 인구에 비해 식량생산이 넘쳐나는 고산국에서는 고추나 담배 같은 환금작물은 물론 사탕수수 같은 전략 작물을 식량 작물보다 더 많이 재배했다.

고산국에서는 소와 돼지, 닭 등을 키우는 축산업도 발달했다. 아기나 성장기 아이들을 위해 젖을 짜는 양과 염소의 고산지 방목도 성행했다. 이미 농지로 개간했으나 농민이 부족해 경작하지 못하고, 땅을 묵혀둘 수 없어서 대충 사탕수수를 키우는 땅이 아직 절반 이상 남았다.

“저 빈 밭은 목화밭이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전하. 객토와 시비 작업을 한 다음 콩이나 땅콩을 심어가면서 몇 년을 더 묵혀야 합니다. 지력이란 쉽게 보충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60대 촌장의 설명처럼 목화는 인삼과 함께 지독히 토양 약탈적인 작물이었다. 두 가지 작물은 땅에 남은 양분을 남김없이 흡수해서 다음 해에 콩과 식물을 제외하곤 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었다. 콩을 심어 질소고정을 하고 퇴비를 뿌려 묵히고 가끔 목초지로 전용하기도 하면서 지력이 살아나길 기다려야 했다.

“비가 많이 오는 고산국 특성상 목화는 잘 안 어울리는 작물이라는 생각이 드오.”

“하오나 백성들이 옷을 지어 입으려면 면포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목화를 재배해야 합니다. 아무리 고산국 백성들이 부유하다 하나 차마 비단옷을 입고 거친 농사일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촌장이 나이가 많지만 않았다면 당장 관리로 임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아들이라도 출사시키길 이민호가 권했는데 아들 내외는 몇 년 전에 조선에서 돌림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대신 고산국에 이민 온 다음 손녀는 교사, 손자들은 승마보병과 해병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촌장! 만약 다른 나라에서 솜만 수입해온다면 어떻겠소? 복건성이나 광동성은 햇빛이 더 강하고 건조한 지역도 많아 목화 재배에 유리하다오. 솜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요.”

“우리나라에서는 기계로 천을 대량 뽑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오나 일정 수량은 계속 재배해서 수입국의 목화 흉년에 대비해야 할 줄 아옵니다. 밀도 많이 남는 농사가 아니지만 일부에서 계속 밀농사를 짓고 있기에 외국의 밀 가격변동에 여유롭게 대응하는 줄로 압니다.”

촌장과 협의해서 지력이 많이 소모되는 목화 재배를 그만 두기로 했다. 빈 땅은 많이 남는 반면 일손이 지나치게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화를 재배하고 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작물을 키우는 게 나았다. 아시아에서 면포가 화폐 역할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우 관보에 공고하면 관보를 받아보는 촌장들이 농민들에게 통보한다. 조정에서 특정 작물을 외국에서 싸게 수입할 예정이라고 미리 공고하면 대부분의 농민들이 그 작물 재배를 그만 두게 되어 있었다. 농민들에게 이익이 남는 작물은 얼마든지 있었고, 조정에서 권고한 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고산국 농민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노인께서 많이 아시는구려.”

“자영농을 하다 보면 작물 가격 동향에 민감해지기 마련입니다.”

현대 한국에서는 농민들이 가격 동향에 지나치게 민감해져서 배추 등 가격이 매년 폭등과 폭락을 반복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촌장이 말했다.

“지금처럼 바쁜 수확철에는 일손이 많이 부족할 것 같소. 혹시 두레나 향약이라든가, 마을 단위로 일하는 조직이 있소?”

“두레는 모르겠고 모내기나 벼 베기, 퇴비 작업할 때 품앗이를 합니다만, 일대일이 아니라 거의 마을 공동 작업이 될 때가 많습니다. 향약은 양반네들이 말 안 듣는 농민들을 멍석말이해서 휘어잡으려는 것 아닙니까?”

“향약이 그런 것이오?”

이민호가 교과서에서 배운 아름다운 전통 문화가 신분에 따라서는 전혀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았다. 다행인지 몰라도 고산국의 농촌마을에는 양반이 거의 없어서 향약이 아예 생기지 않았다. 촌장도 농민들의 지혜로운 대표자일 뿐 다스리거나 군림하는 자는 아니었다. 전에 농민들을 노비 부리듯 하던 몇몇 촌장들은 조정의 감찰단에 걸려 해임되거나 심한 경우 탄광으로 끌려갔다.

“노인은 혹시 농업 관련해서 관리를 해볼 생각은 없소? 출사하라는 뜻이오.”

“하하! 전하 밑에서 일하다가는 과로로 제 명에 못 죽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저보다 나은 사람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저보다 젊고 훨씬 많이 아는 농부입니다.”

“촌장에게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인 모양이구려.”

“좀 그렇습니다. 하하! 이 기회에 보내버려야지요.”

촌장이 불러온 30대 후반 농민은 전형적인 조선의 농부였다. 그러나 새로운 작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종자를 구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키워보고 괜찮으면 다른 농가에도 재배를 권해 농가소득 향상에 일조하고 있었다. 그 농부는 조선에 있을 때 이민호가 감자와 고구마 등의 종자를 나눠준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민호는 그 농부와 대화를 해보다가 새로 만든 농업연구소 소장에 임명했다. 소장 밑에 마카오 대학을 졸업한 연구원 몇 명을 붙여주었다. 멘델이 태어나기 한참 전이었으나 이민호는 간단한 유전 법칙 몇 가지를 알려주고 작물의 품종 개량에 주력하도록 했다.

이후 고산국에서 미운 사람을 국왕에게 관리로 추천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실이었고, 그런 시도는 꾸준히 계속됐다. 그런 소문 덕택에 이민호는 쓸 만한 인재를 많이 추천받아서 현업에 배치시킬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음력 10월 초가 되었다. 국토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에 속한 고산국도 제법 쌀쌀해졌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라방 장 점주와 그를 따르는 세력은 고산국의 왕립상단에 흡수되어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신라방에 소속된 사람들은 건국 초부터 고산국으로 서서히 국적을 옮겼고, 지금은 대부분 고산국에서 만족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장 점주와 달리 같은 신라방에서도 아직 명나라에 남아있는 세력도 있었다. 공장이나 거래처 등 생활기반 대부분이 명나라에 남아있어 국적을 옮기기 어려운 경우였다. 이민호나 왕명명은 고산국 왕실상단이 나서기 어려운 경우 필요에 따라 그런 상인 세력을 이용했다. 집무실에 찾아온 공 점주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전하! 히라도에서 거래되는 명나라 비단 가격이 전쟁 전보다 두 배로 뛰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도대체 돈이 남아도는 거요?”

“전쟁으로 인해 상품 공급이 줄어든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일본에서 금과 은의 가치가 예전보다 대폭 떨어진 탓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명나라에서 해금정책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다를 열고 닫는 식으로 탄력적으로 운영됐다. 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으나 시기별 항구별로 적용되는 정도가 전혀 달랐다. 일본과 전쟁 중인 와중에도 광저우는 여전히 외국 상인들에게 열려 있고 오직 일본 상인들에게만 닫힌 시장이었던 반면, 닝보(寧波)는 외국과의 무역을 일체 단절했다. 그래서 임진왜란 기간 동안 닝보에 조공사절단을 제외한 외국 배가 들어갈 수 없었다.

닝보나 푸저우, 광저우 등 명나라 항구로 일본 상선이 들어갈 경우 명나라 관군에 의해 즉시 나포되고 선원과 상인들은 구금됐다. 명나라 상인들도 일본으로 무역하는 것이 금지됐지만, 밀무역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명나라 비단을 히라도로 가져가는 것만으로 열 배의 이익이 남으니 중소 상인들은 땅과 바다 양쪽에서 가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섰다. 닝보에서 히라도 사이는 아직도 살아남은 왜구 외에 명나라 해적들이 창궐하는 해역이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명나라 군과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명나라 상선과의 무역은 언제든 환영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선만으로는 일본의 사치품 수요를 채워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서 가격이 많이 뛰었다.

공 점주는 이때 고산국 왕실상단을 대행하는 상행을 하고 있었다. 왕실 상단 외륜선들이 고산국 깃발을 휘날리면서 히라도나 나가사키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 대신 고용한 상인이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최근에 일본에서 금광과 은광을 대규모로 채굴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고산국과 유구국 상선들이 일본에 가지 않으니 상품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공 점주는 이 기회에 큰 재산을 모으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밀무역자로 분류됐다. 해적은 아니었으나 해적에 대항할 정도로 상선에 중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공 점주는 히라도 근해에서 서로 해적으로 오인하고 포르투갈 상선과 싸움을 벌일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공 점주가 이민호 앞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가끔 만만한 상선을 약탈하는 해적행위를 저질렀을 수도 있었다.

“전시에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지 않다니 신기하구려. 일본 다이묘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치를 하는 경우가 적다고 들었는데 혼란스럽소.”

“비단은 사치품이지만 동시에 투자 상품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서양 상선이 명나라 비단을 가져와 일본에 팝니다. 그러나 간혹 광저우나 고산국에서 비단을 못 구한 서반아 상선은 일본에서 비싼 가격에 비단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일본 상인이나 영주들은 가격 변동이 심한 금과 은 대신 비단으로 갖고 있으면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게 됩니다.”

“오호! 그럴 수도 있군요.”

에스파냐 갈레온 무역선이 고산국에 들렀다 일본에 간 다음 북위 38도 선에서 북태평양을 횡단하는 경로를 잡는다. 그런데 가끔 고산국에서 에스파냐 상인들이 원하는 비단 수량을 못 맞춰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나가사키 등에서 비싸게라도 사서 멕시코로 가는 모양이었다.

“전하께서는 일본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는군요. 혹시 전하께서는 비단으로 일본에서 장난을 치실 요량이십니까?”

“공 점주는 역시 눈치가 빠르오. 일본에 금과 은이 남아돌고 비단도 많이 갖고 있다면 어떻게든 털어 먹어야지요. 일단 공 점주는 비단을 많이 갖고 가서 판매하시오. 명나라 비단보다 품질이 좋은 고산국 비단이오.”

이민호가 공 점주에게 위탁판매를 주문했다. 고산국 창고에 비단이 얼마나 쌓여있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고, 이것이 상인들의 최고 관심사였다.

“고산국 비단은 일본에서 최고 품질의 명나라 비단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판매대금은 가급적 은으로 가져 오겠습니다. 하온데 닝보 앞바다 주산군도 근해에서 명나라 해적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한 탓에 상인들의 생계가 막힌 탓이 아닌가 합니다.”

“해적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해적질을 하게 되어 있소. 공 점주의 배는 무장을 충분히 하고 있겠지요?”

“고산국 배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자체 방어를 위한 수단을 갖춰야 합니다.”

공 점주가 대답하면서 씩 웃었다. 역시 이 사람도 해적 겸 상인이었다.

“명나라 사정은 어떻소? 대충 아는 대로 알려주시오.”

“절강과 복건, 광동에서 수군이 징집되는 중입니다. 요동에서도 새로 병력을 모은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명나라가 조선과 함께 12월에 일본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래요? 금시초문이구려.”

이민호가 관심 없다는 듯이 간단히 부정했으나 공 점주가 씩 웃는 것 같았다. 얼굴 표정을 충분히 감췄다고 생각한 이민호는 속으로 탄식했다. 노회한 상인들을 상대하기에 아직 멀었다.

잠시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그 앞에서 민영이 호위와 대화를 나눴다. 성벽 전망대에서 근무하는 호위와 대화를 마친 민영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국왕전하! 에스파냐의 갤리선 한 척이 궁성 앞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갤리선이라 하니 전하께서 한 번 직접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갤리선이?”

이민호가 창밖을 내려다봤다. 지난번에 브루나이를 구원하고 술루왕국을 정벌하려던 합동작전할 때 봤던 길쭉한 배가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오는 와중에 에스파냐 귀족 복장을 한 사람이 궁성을 향해 뛰어왔다.

봄에 멕시코로 출발했던 마닐라의 남작 돈 페드로 란조르 데 고이티가 어느새 멕시코에서 마닐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범선이 아닌 갤리선으로 고산국 왕도까지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또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전 중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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