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5 38. 큐슈 점령 =========================================================================
하기를 초토화시킨 고산국 함대는 오후에 간몬 해협으로 다시 돌아왔다. 새로 지은 목책 안쪽에 위치한 항구에서 전선에 포탄 보급을 하는 중에 명나라 전령이 달려와서 이민호를 찾았다. 잠이 부족해 낮잠을 잘까말까 망설이고 있던 이민호는 전령을 국왕좌승함의 집무실로 불러 들였다.
“주애공 노야! 천군에 2만 병력 정도의 추가 보급을 요청합니다. 현지 지원병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왜인들이 명군에 자원입대했고, 그들을 유 제독이 병사로 받아들였다고?”
“그렇습니다, 노야! 천군이 히고 국 구마모토와 우토를 점령한 다음 시마바라와 아마쿠사의 기리시탄이라 칭하는 왜인들이 황제폐하의 위엄을 흠모하여 천군에 종군하고자 합니다.”
시마바라(島原) 반도는 상륙 교두보인 나고야의 남쪽 100km 정도 거리에 있었고, 동시에 큐슈의 지리적 중심인 히고(肥後) 국 구마모토에서 서쪽 바다 건너편에 위치했다. 시마바라 반도에서 바다 건너 남쪽에 있는 아마쿠사(天草)는 동쪽 가미시마(上島), 서쪽 시모시마(下島)를 합한 지역이었다. 아마쿠사는 고니시 유키나가, 시마바라는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 등 두 지역 다 천주교 다이묘들이 지배하던 곳이라서 천주교 신자가 많은 곳이었다.
구마모토는 가토 기요마사의 거성, 우토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거성이었으나 다이묘들이 조선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린 자식들이 계승해서 아직 안정되지 않은 곳이었다. 전령이 어린 다이묘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포격에 무너진 천수각에 깔려 죽어서 시체도 못 찾은 모양이었다.
“그거, 풍신수길이 내린 기독교 금령 때문에 신자들이 우리 편에 가담한 것 아닌가?”
“하여튼 저희 천군에 병사로 복무하겠다고 지원했으니 기리시탄이라는 왜인들은 천군 소속입니다.”
종교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인 연합군 편을 들겠다는 일본인 기리시탄들도 사실 제 정신은 아니었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의 백서 사건에 대한 뮈텔 주교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가톨릭은 신앙을 위해 국가를 배반하는 것을 좋게 봐주지 않는다.
그러나 억지로 일본인 천주교도들을 명나라 군대에 받아들이려는 명군 지휘부도 뭔가 이상했다. 이민호는 명군 병력이 많이 부족해졌다고 추측했다.
“이번에 구마모토와 우토를 점령하는 동안 명군이 얼마나 전사했나?”
“그, 그게. 전투가 치열했으나 많이 전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천군이 용감하기도 했고 유 제독 대인이 뛰어난 기략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산국 포병이 도와준 덕택이기도 합니다.”
“왜인 기리시탄 지원병은 몇 명이지?”
“자그마치 3만 명이 넘습니다! 위대한 황제폐하의 공덕과 위엄이 멀리 왜인들의 땅까지 미치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입니다.”
왜인 3만 명이 늘었는데도 2만 명에 대한 보급을 추진해달라고 했으니 명군 전사자가 지금까지 1만을 넘어선 모양이었다. 반면에 명군을 따라다니는 조선군은 사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이 시기 명나라 군대는 한족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명나라가 후기로 갈수록 공식적인 징병체제가 무너지면서 무관 개인의 사병집단인 가정(家丁)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명군에서 외국인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북병에 속한 무관들의 가정은 기마술이 뛰어난 여진족과 몽골족이 다수였고 일부 조선인이 포함됐다. 남병에는 묘족, 섬라, 버마 등 여러 종족이 가담했다. 임진왜란 때는 소수지만 흑인들도 남병 무관의 가정으로서 조선에서 종군한 기록과 그림이 남았다.
점령지에 사는 현지인을 징집하거나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전쟁 중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해안에서 왜인이 발견되면 왜구로 간주해 무조건 참살하는 명나라 입장에서 왜인들을 지원군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뭔가 어색했다.
“명군에 대한 보급을 2만으로 줄이는 대신 왜인 3만을 무장시키고 먹일 수 있도록 조치하겠네. 쌀 외에는 현지에서 보급을 추진할 수 있으니 병참선 유지가 훨씬 수월해질 거야.”
“명군 전사자는 극히 소수지만 그게 합리적이겠습니다. 제독 대인께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노야.”
전령이 명군 병력은 그대로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나 억지에 불과했다. 끝까지 사상자 수를 숨기며 외교적인 수사로 일관했던 명군 전령이 돌아가자 민영이 갸웃거렸다.
그 전까지 참모 역할을 해준 민희가 비운 자리를 메우기 위해 민영은 요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민호가 머리 쓰는 일은 이순신과 참모들에게 맡겼으나 국왕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호위대장으로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도 맡은 일 중 하나였다.
“명군이 전투 때마다 인명피해가 많이 나는데도 계속 선봉에 서려고 해요. 명군이 조선에서는 은근히 전투를 피하지 않았나요?”
“맞아. 아무래도 도원수 이항복이 뭔가 꽁수를 쓰는 것 같아. 천군이 최고니까 계속 선봉에 서야 한다고 꼬드겼겠지. 그 사람 말솜씨라면 충분히 가능해.”
임진왜란 때는 조선군과 명군이 서로를 못 믿었다. 조선군은 앞장서서 왜군과 싸우려 했고, 조선군이 약하다고 철저히 무시하던 명군은 조선군이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막으면서 자기들도 싸움을 피했다. 그런데 큐슈를 정벌하는 중에는 명군만 계속 싸우고 조선군은 뒤따라 다니기만 했다.
“도원수 혼자 판단한 것 같지 않아요. 혹시 조선 국왕전하께서 도원수에게 그런 어지를 내리신 게 아닐까요?”
“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조선 국왕은 선조 임금이 아니라 광해군이었다. 사르후 전투 때 도원수 강홍립에게 상황에 따라 판단하라고 맡긴 임금이 광해군이니 이번 원정에서도 도원수 이항복에게 비슷한 밀지를 내렸을 수도 있었다.
강홍립은 1589년에 진사가 되었으나 아직 문과 급제도 못한 시기였다. 원래 역사에서는 1597년에 알성문과에 급제해 시강원 설서(說書), 예문관 검열, 사헌부 장령 등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했다.
“우리 민영이 머리 쓰는 게 많이 늘었다.”
“헤헤! 정말요?”
“그럼! 아주 정확한 판단이야. 아무래도 의뭉스런 조선국 도원수를 한 번 불러서 호통을 좀 쳐줘야겠어. 왜군과 싸우려고 원정을 왔으면 싸워야지.”
이민호는 사르후 전투에서 광해군의 밀지를 받은 도원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한 것은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라고 이해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국력을 기울여 오직 일본에 복수하기 위해 원정을 왔는데도 조선군이 싸움을 회피한다면 원정군의 총대장 입장인 이민호로서는 몹시 불쾌했다.
“설마 주인님이 도원수 대감에게 곤장 치실 것은 아니죠?”
“조선국 도원수한테 곤장을 칠 정도로 내가 경우가 없지는 않아. 군령에 따라 참수한다면 몰라도.”
“세상에!”
이민호가 허리에 찬 상방검의 검병을 만지작거리자 민영이 꽤나 놀랐다. 그러나 민영은 어쩐지 이민호를 더욱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모리군은 공격 준비가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공격해오지 않을까요? 우리 함대가 무라카미 수군과 해전을 벌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모리군 주력이 간몬 해협을 공격할 줄 알았어요.”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해전을 벌인 곳은 간몬 해협에서 먼 곳이 아니잖아.”
“그럼 모리군이 언제 올까요?”
“아마도 명군과 조선군이 큐슈 남쪽 끝까지 내려간 다음에 올 것 같아. 히로시마 주변에 배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모았는데 아직도 배를 건조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모으고 있어.”
민영이 지도를 살폈다. 큐슈 남쪽 끝에서 간몬 해협까지는 천 리나 떨어져 있었다. 명군과 조선군은 이제 겨우 큐슈 중간쯤 위치인 우토에 도달해 작전 중이었다.
“남쪽 끝까지 점령했다가 이곳으로 오려면 적어도 열흘은 걸릴 걸요?”
“그 이상 걸릴지도 모르지. 어쨌건 명군이 큐슈 남쪽에 도달할 때를 모리군의 공격 시점으로 예상해서 대비해야겠어.”
이민호는 고산국 원정군 직할 기병대대는 명군과 조선군를, 3연대 기병대대는 여진족 기마대를 지원하라고 붙여주었다. 구마모토 남쪽 우토 점령 후에는 명군과 조선군이 둘로 나눠 남쪽을 향하기로 계획이 짜여졌다. 여진족 기마부대는 셋으로 나뉘어 큐슈 동부의 나머지 지역을 공략하기로 되어 있었다. 섬라군은 큐슈 북서쪽 지역 점령을 마쳤고 유구군은 여전히 나고야의 교두보를 지켰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 연합 원정군이 지나치게 분산된 감이 있었다. 만약 연합군 각 부대가 간몬 해협에서 최대한 떨어진 시기에 모리군이 간몬 해협을 공격해 온다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적이 너무 많지 않을까요?”
“뭐 어때? 여차 하면 우리 원정군만으로 왜국 전체를 상대하려 했는데.”
이민호는 좌승함에서 내려 목책을 건설 중인 곳을 시찰했다. 목책 건설은 거의 끝나고 지금은 그 위쪽에서 석성을 쌓기 전에 기초 공사를 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기중기 비슷한 장치에서 도르래로 바위를 끌어 올려 땅 다지기를 하면서 곳곳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민호는 호위들과 함께 말을 타고 요새 정상에 올랐다. 야포가 이미 바다 쪽을 향해 거치돼 있고 이곳에서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병사들이 철근으로 뼈대를 잡고 자갈과 시멘트, 모래를 섞은 콘크리트를 부어 포병들이 안전하게 포를 쏠 수 있는 포루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유개호들을 연결한 참호를 파서 전선과 화포, 보병의 삼중 방어선을 갖춰 나갔다.
“전망 좋네.”
요새 정상에 오르자 사방이 확 트여 안 보이는 곳이 없었다. 남쪽부터 동쪽은 넓은 스오 여울(周防灘), 북쪽은 지금은 폐허가 된 시모노세키 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간몬 해협 건너편의 산은 1연대 병사들에 의해 벌채가 끝나 왜병들이 숨어서 접근할 곳을 아예 없애버렸다.
“바다 건너편에 왜군 기마정찰대가 움직이고 있어요.”
“어디?”
“북동쪽 20리 산 아래를 지나는 기마병 셋이 안 보이세요?”
“안 보여.”
“커다란 벚나무 가지 밑을 지나가고 있어요. 주인님은 안 보이시는구나. 헤헷!”
민영이 뭐가 좋은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활짝 웃었다. 이민호는 여진족 몇 명을 이곳 정상에 배치시켜 관측병으로 활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호위들도 민영이처럼 시력이 좋아?”
“다 비슷할 걸요. 평원에서 살던 부족 출신이 눈이 좋아요.”
“그래. 이곳에 호위를 배치하긴 아까우니까 여진족 기병 중에 어린 애들을 불러서 적의 움직임을 살피라고 해야겠다.”
이민호가 다시 항구로 내려와 단정을 타고 해협을 건넜다. 계복과 감불이 마중 나와 야전 축성 현장으로 안내했다.
간몬 해협 북쪽의 절반 정도는 시모노세키에 거의 붙은 히코시마 섬의 해안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섬은 폭이 좁은 바다로 시모노세키로부터 분리돼 있었으나 20미터 길이의 짧은 다리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거의 냇가 수준인 작은 해협이라 걱정했는데 건너편이 평탄한 지형이고 이쪽은 언덕 지형이라 방어하기 훨씬 좋습니다. 도하할 만한 지역에 목책을 세우고 높은 언덕에 포병 배치를 마치고 나니 조금 안심입니다.”
“좁은 곳은 말 타고 뛰어서 건널 수도 있겠는데?”
“우리 기병들이 시모노세키로 정찰 나갈 때는 직접 건넙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말이 헤엄을 쳐야 합니다. 의외로 물이 깊습니다.”
고산국을 떠나면서 가져온 기관총 4정 중에서 2정이 이곳에 배치됐다. 시모노세키 방면에서 왜군 수만 명이 몰려올 경우 기관총 2정이 교차 사격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나머지 기관총 2정은 해협 동쪽, 옛날에 세워진 모지 성에 배치됐다. 간몬 해협에서 가장 좁은 곳이며, 세 방향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왜군이 히코시마를 먼저 공격할 경우 모지 성에 배치된 야포뿐만 아니라 기관총도 지원 사격을 해줄 수 있는 거리였다.
“감불이 잘할 수 있겠어?”
“괴물이 있으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1연대장 감불이 언덕에 배치된 기관총을 가리키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계복은 동쪽 요새에 올라가서 전체를 지휘하고 이곳은 감불이 지휘를 해야 했다. 이민호는 방어를 이들에게 맡기고 곧 간몬 해협에서 떠날 예정이었다.
원래 감불은 기마병으로 뛰는 것을 좋아하고 방어작전은 싫어했다. 그러나 모리군이 조만간 7만 넘게 몰려올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기관총은 언제든 고장 날 수 있어. 그걸 감안해서 방어를 하도록 해.”
“예. 만약 기관총이 고장 나거나 총알이 떨어지면 2연대 것을 가져오라고 하죠 뭐.”
“감동이가 빌려줄 것 같지 않은데?”
“쳇! 그래도 최초의 사단장은 제가 될 겁니다.”
이민호가 감동과 감불에게 바람을 집어넣어 둘 사이에 묘한 경쟁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계복은 처음부터 장군이었으니 제외하고, 연대장에서 승진해 최초로 창설되는 사단을 맡고 장군으로 진급하는 것은 두 사람의 꿈이었다. 물론 둘은 여전히 친한 친구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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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