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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37화 (286/1,000)

00337  39. 간몬 해협 전투  =========================================================================

39. 간몬 해협 전투

“도련님. 옵니다!”

늦은 오전에 국왕좌승함 집무실로 대원수 계복이 직접 와서 보고했다. 비올레타, 주상아 공주와 함께 각 군에 보낼 보급품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던 이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달력을 확인했다. 1593년 음력 12월 21일이었다. 니시무라 겐타로가 예상한 모리군의 출동 날짜보다 이틀이나 늦었다.

“바다에서?”

“땅과 바다 양쪽에서 동시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직 거리가 있어서 서너 시간 후에 이곳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가보자.”

이민호는 민영의 도움을 받아 전투복 위에 방탄조끼를 걸치고 두툼한 외투를 입었다. 지난 가을 이민호는 거위 솜털을 모아 구스 다운 패딩 점퍼를 개발했다. 이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호위대장 민영에게 압수당했다. 이민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민영은 적탄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털가죽 외투를 입으라고 이민호에게 강요했다. 이민호는 왕이 된 이상 전쟁터에서 가볍고 따뜻한 패딩 점퍼를 입을 자격이 없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오늘도 무겁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검은담비 외투를 입고 나섰다.

말을 탄 채로 국왕좌승함에서 내린 이민호는 계복과 민영 등 호위들과 함께 요새 정상으로 올라갔다. 지난 열흘 사이에 정상까지 도로가 닦이고 남쪽에 나성이 먼저 완성돼 있었다. 성벽 중간 중간에 토치카 비슷한 보루가 서 있고 더 높은 곳에는 참호선이 하나 더 자리 잡았다.

성벽 앞에 무성하게 자라던 나무와 낮은 언덕들은 보병총 사거리까지 깔끔하게 밀렸다. 부사관들 중에 우공처럼 산을 옮기는 행보관들이 여럿 있었던 모양이었다.

“추웅! 성!”

이민호 일행이 말을 타고 통과하는 길에서 마주친 3연대 소속 흑인 병사들이 앞에 총을 하며 예의를 표했다. 영상의 추위에 고생하는 흑인 병사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도 모자라 모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흑인들은 옷을 벗고 근육 잡힌 몸을 드러내야 멋있지 두꺼운 옷을 껴입고 모포까지 둘러쓰니 추레해 보였다.

산 중턱에 오르면서 간몬 해협이 내려다보이고, 더 올라가자 어느덧 동쪽 바다도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포병이 배치된 곳에서 멀리 왜선들이 보이긴 하는데 거리가 멀어 잘 분간되지 않았다. 이민호는 계복을 따라 요새 정상 등대 비슷한 건물의 꼭대기 층에 올랐다.

“배가 정말 많다. 대략 2천 척 정도인가? 역시 고바야 중심이로군.”

“2610척까지 확인됐습니다, 전하. 아다케는 세 척, 세키부네는 대형과 중형으로 100여 척에 불과합니다.”

이민호가 원수부 참모에게 보고를 받으며 망원경을 들었다. 대략 20km 거리에 수많은 배들이 노를 저어 오고 있었다. 왜선들은 역풍을 받으며 항해하고 있어서 돛은 아예 접어 버렸다.

“바로 요새로 들이밀까, 아니면 남쪽에 상륙할까?”

“고산국 야포의 위력을 아는 자들이니 요새 남쪽에 상륙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석성을 쌓은 것을 저쪽도 알 거야. 어차피 야포와 총에 죽어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니 배 몇 백 척이 가라앉을 것을 각오하고 그냥 요새에 상륙할 수도 있어. 육지는?”

이민호가 계복에게 물었다. 겐타로가 보낸 간세를 통한 정보는 이민호가 먼저 보고받지만 정찰대나 특전대대 대원들을 침투시켜 적지를 정찰한 내용은 계복이 먼저 보고받았다.

요새 주변 동쪽과 북쪽, 그리고 간몬 해협과 맞닿은 서쪽 해안에는 왜선이 상륙할 만한 지점에만 목책을 세웠다. 방어군의 열 배쯤 되는 병력이 한꺼번에 상륙한다면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요새 점령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제 오전 기준으로 야마구치(山口)에 5만이 집결하고 추가 병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첨병에 해당하는 일부 병력이 어제 서쪽으로 출발했습니다.”

“오고는 있는데 아직 우리에게 관측될 거리보다 먼 곳에 있나 보군.”

방어작전이 유리한 것은 미리 아군에 유리한 조건을 준비한 다음 적을 맞이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호는 본격적인 혼슈 공략을 앞두고 왜군을 최대한 소모시키기 위해 일부러 적을 끌어 들였다.

“조선 수군까지 동원해서 왜선들 정면에서 막지 말고 측면에서 포격하도록 해야겠어. 여진기병도 비상을 걸어야겠다.”

이민호가 전령들을 불러 명령을 하달했다. 모리 군을 비롯한 왜군이 간몬 해협으로 공격해올 것은 누구나 예상하던 것이었고, 드디어 바로 오늘 그 날이 왔다. 전령들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것을 보다가 민영에게 물었다.

“감상이 어때? 왜선이 수천 척이야.”

“우리가 상륙하는 것만 보다가 상륙 방어를 하게 되니 어색해요. 주인님은 전선에 타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바다를 잘 모르는 여진족 호위들은 전선이 무적이라고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민영이 이민호에게 해전에 참가하라고 한 것은 여차하면 도망치기 쉽다는 해전의 특성도 작용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전선이라 해도 넓은 바다에서 적선의 숫자가 20배쯤 되면 감당하기 힘들고, 도망치기도 어렵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배의 숫자 차이로 인한 전력의 승수효과를 줄이기 위해 이순신은 해협을 자주 이용했었다.

해전은 해전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최고지휘관은 더 중요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마침 해군 지휘관은 총함장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국왕좌승함을 제외한 고산국 전선 42척과 조선 수군 판옥선 110척, 거북선 5척을 요새 동쪽 바다에 집결시켰다. 이렇게 모이고 보니 수천 척에 달하는 왜선보다 연합 해군이 훨씬 강해 보였다.

사후선과 단정들이 요새와 함대를 오가며 물을 실어 날랐다. 해전을 벌이기 전에 병사들에게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였다. 이민호도 남는 시간을 보내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이 시설은 나중에 등대로 쓸 예정이라서 식탁과 침실, 화장실 등 등대지기들이 거주할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적이 밤에 상륙하지 않을까요?”

“왜군 입장에서는 그게 낫겠지.”

이민호가 침대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큐슈 정벌이 시작된 이래 고산국이 일본 정벌군 전체의 보급을 떠맡아 이민호는 전투가 아니라 격무의 연속에 시달리고 있었다.

보급을 맡다 보면 정말 온갖 일이 다 벌이지고, 그럴 때마다 이민호가 해결해줘야 했다. 간장을 가득 실은 조운선이 대마도 근해에서 고래와 충돌해서 싣고 있던 간장 대부분을 바다에 쏟았을 때가 가장 암담한 순간이었다. 급하게 고산국에 덜 숙성한 간장을 보내달라고 연락하고 조선에서도 민간의 간장을 돈을 주고 사들여 급한 것을 메우고 있었다.

“조선군과 명군이 아직도 사쓰마에 묶여 있어서 안타까워요.”

“사쓰마가 항복했다면 모리 군이 며칠 더 일찍 쳐들어왔을 거야.”

이민호가 민영을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둘 다 방탄조끼를 입고 두터운 외투까지 입어서 양팔을 넓게 벌려도 민영을 감싸지 못했다. 다른 호위들은 작은 식당과 거실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 큐슈는 거의 다 점령했다. 뒤늦게 연합군을 구성한 큐슈 다이묘들이 남쪽 사쓰마의 산악지대에서 최후의 결전을 시도하는 모양이었지만 전황을 뒤집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산성에 고립된 왜군과 피난을 떠나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갇힌 왜인들 합 10만이 마지막 절망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산성을 포위한 연합군은 조선군이 3만, 명군이 2만, 기리시탄 군대가 또 늘어서 5만에 여진 기병이 2만 이상이었다. 연합군 12만이 왜병 2만에 피난민 8만 정도의 산성을 포위하고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10만에 달하는 왜군과 왜인들은 모두 굶어죽을 운명이었다.

“전황이 기울었는데 어째서 항복하지 않는 걸까요?”

“내가 특별히 사쓰마를 미워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으니까 항복해도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했겠지.”

미카와 겐타로의 원수인 사쓰마의 시마즈 가문 병사들이 유구국에서 난리를 치다가 이민호에게 완전히 찍혀 버렸다.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그들을 이민호는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을 다 죽일 건가요?”

“글쎄. 상관없지만 유 제독이 묘한 제안을 하더군.”

“포로를 노예로 삼아 연합군이 나눠 갖되 명군의 몫을 고산국에서 사달라는 이야기죠? 고산국에 노예제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한 제안을 하는군요.”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노예제가 없는 고산국은 노예가 된 포로들을 명군에게서 인수하는 즉시 먹여 살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주로 사쓰마 사람들인 그들을 자기들 땅에 다시 정착시키고 수확 전에 식량을 배급해준다면 큐슈를 정벌한 의미가 사라진다.

일본 원정을 계획할 당시부터 이민호는 큐슈에 거주하는 왜인 전체를 혼슈로 몰아낼 계획이었다. 수백만에 달하는 왜인들을 혼슈로 강제 이주시키면 일본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잉여 농산물이 많지 않은 시대이니 강제 이주당한 수백만 명이 한 해를 못 넘기고 굶어죽을 것이 뻔했다.

“왜인 노예들을 1, 2년 노역을 시킨 다음 풀어주려고 해도 큐슈에서는 별로 쓸 데가 없어. 그런 쓸모없는 노예를 받아들이는 대신 빚을 탕감해달라니, 말이 안 돼.”

“주인님은 조선이나 다른 나라는 적당히 봐주면서도 유독 명나라에 한해서는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려고 하세요.”

“뭐, 명나라는 부자 나라니까.”

“무역액이 해마다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명나라 상황이 별로 안 좋다고 들었어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명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환관들이 은광을 개발한다고 온 나라를 헤집고 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것은 단지 말기적 현상에 불과했다. 욕은 환관들이 먹게 해두고, 실제로는 관리들의 부패와 가렴주구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전쟁을 핑계로 비록 임시적인 조치라지만 전세와 염세, 상세 등 모든 세금이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시장이 활기를 잃는 정도가 아니라 텅 비다시피 했다. 세금을 내고 나면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니 시장에 상품을 내놔도 물건을 살 사람이 없었다. 명나라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명나라로 수출하는 사치품은 날이 갈수록 물량과 거래 금액이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 황실 외에는 고관대작들만 사용하던 옥 도자기가 어느덧 관리들과 상인, 지주들에게 필수품이 됐으며, 해삼과 전복은 비싼 상품일수록 더 잘 팔렸다.

그러나 사치를 부려서 명나라가 망해가는 것이 아니라, 명나라 부유층들이 불안해서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는 판국이었다. 사치품 거래가 활발하고 필수품 거래가 줄어든다면, 그 나라는 곧 망하게 된다. 부자는 적고 가난한 자는 많은데 그런 상황이 길어지면 백성 다수의 생존 한계점을 계속 시험하기 때문이다. 반란을 일으켜 죽기 전에 먼저 굶어죽을 것 같으면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돼 있었다.

이민호가 명나라 조정에서 예산을 소모하도록 유도할 필요도 없었다. 일본 원정에서 사용되는 군비 정도는 거대한 명나라의 규모에 비해 사실 간에 기별도 안 갔다. 그러나 명나라가 어차피 망할 나라라면, 최대한 돈을 뽑아내길 원했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꾸벅꾸벅 졸던 이민호가 오후 늦게 깨어났다. 민영이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안는 것처럼 품에 안은 채 이민호의 얼굴을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깨셨어요? 지금 해전이 진행 중이에요.”

“그래? 구경 가야지.”

바깥에서 포성이 연이어 울리고 있어서 이민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사격 명령을 내리며 군대를 직접 통솔하던 때가 그리웠지만 지금은 각자 지휘관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계복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등대 위층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 해는 서산에 걸려 있었고 동쪽 바다에서는 해전이 한창이었다. 이미 격파된 왜선들이 수백 척에 달해 왜선의 잔해가 바다에 떠다녔다.

“잘 돼?”

“예, 도련님. 왜선 800척 정도가 연합 해군을 상대하고 있고 나머지 2천여 척은 요새로 접근 중입니다.”

요새에서 포를 쏠 때마다 창문이 크게 흔들렸다. 작은 왜선에 포탄이 명중해 터지는 순간 절반 이상의 인원이 몸이 찢기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나머지 인원도 부상을 입어 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서쪽 섬에서도 전투 직전입니다.”

계복이 가리키는 대로 히코시마 섬에 자리 잡은 고산국 1연대 병력을 살폈다. 그리고 그 북쪽 시모노세키 시가지 주변에서 돌격 대기 중인 왜군을 살폈다. 적의 병력은 보고를 받은 5만이 아니라 10만 정도 되어 보였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간신히 올리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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