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8 39. 간몬 해협 전투 =========================================================================
“바다에서 최소 10만, 땅에서 최소 10만이네?”
“우리는 1만 겨우 넘습니다. 긴장 좀 하세요, 도련님.”
적의 지상군이 예상을 넘어가는 숫자였지만 딱히 겁낼 것은 없었다. 왜선이 3천 척에 가까워서 이미 놀랄 만큼 놀란 탓도 있었다.
이민호는 그 전에 나카쓰에 주둔시킨 기리시탄 의용병 1만을 북상시켜 요새 남쪽에서 왜군의 상륙에 대비했다. 노획한 조총 3천여 정을 그들에게 넘겨 비록 훈련은 부실해도 무장 하나만큼은 충실한 편이었다.
만에 하나 이들이 배신한다면 몹시 곤란해질 것 같았으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포르투갈 신부가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다독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고 지역에 커다란 성당 하나를 지어주기로 이민호가 약속한 다음부터 천주교 의용병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계복이 너도 긴장하지 않는데 내가 왜?”
“저야 방어군 지휘관이니까 긴장하면 안 되죠. 도련님은 물주니까 긴장해야 돼요. 포탄 한 발에 쌀 스무 가마라면서요? 소문이 퍼지면서 포병들이 포탄을 몹시 아끼고 있다고요.”
“내가 겨우 물주였구나. 쳇!”
바다 쪽에서 해전이 계속 진행됐다. 전선과 판옥선들이 합동으로 바다에 가득 찬 왜선들을 격멸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처음에 적선이 너무 많아 걱정됐으나 지휘관이 이순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그 동안 고산국의 전선과 함포의 성능, 그리고 포수들의 능력을 세심하게 파악한 이순신은 최고 효율로 적선을 분멸하고 있었다.
요새에서도 계속 야포를 쏴서 사정거리 내에 들어온 왜선들을 격파했다. 그러나 왜선들이 본격적으로 요새에 접근해 상륙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민호는 연합 함대가 어서 왜선 800척을 격파하고 나머지 왜선들도 부숴주길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해가 지면서 어둑해지는 순간 시모노세키에 포진한 왜군 쪽에서 변화가 생겼다. 왜병들이 슬금슬금 남쪽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괴성을 지르면서 히코시마 섬 쪽으로 몰려왔다. 동쪽 바다에서 왜선들이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당장 급한 것은 지상 쪽이었다.
“어? 작은 배나 뗏목으로 건너오는 것이 아니었어? 아무 것도 준비한 게 없잖아?”
“설마 왜적들이 헤엄쳐서 건너겠습니까?”
간몬 해협 서쪽 출구에 위치한 히코시마 섬과 시모노세키 사이에는 폭이 좁은 해협이 있었다. 유일하게 하나 있던 나무다리는 이미 철거돼 고산국 특전대대에서 정찰을 나갈 때는 배를 이용하거나 말 타고 헤엄쳐서 건너야 했다.
- 콰쾅!
히코시마 섬을 지키는 1연대 포병은 물론 요새에 자리 잡은 2연대 포병들도 시모노세키 방향으로 포를 발사했다. 고산국의 악명 높은 야포를 감안해 왜군은 평소와 달리 넓게 분산한 채로 몰려오고 있었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왜병들이 대여섯 명씩 쓰러졌다. 방진을 이뤘을 때 한꺼번에 수십 명씩 쓰러지는 것보다는 훨씬 적은 인명피해가 났으나, 왜병들은 4개 포병대대 분량의 야포 96문의 위력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 콰콰쾅! 콰쾅!
들판에 섬광이 연속 터질 때마다 왜병들이 와르르 쓰러졌다. 그러나 왜병들은 시모노세키 시가지가 있었던 들판에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남기면서도 계속 남쪽으로 몰려왔다. 왜병들의 선두 대열을 따라 탄착점도 계속 남쪽으로 이동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꾸역꾸역 몰려오는 것이 마치 중공군의 인해전술 같았다. 그러나 중공군도 한 지역에 10만이나 투입해 돌격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둠이 땅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야간 소이탄이 중간 중간에 떨어져 포병들이 목표를 포착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조명을 제공했다. 그런데 왜병들이 어떤 지침을 받았는지 불이 붙은 곳마다 얼른 달려가 흙을 덮어서 불을 껐다. 소이탄을 더 쏘게 했으나 섬 건너편은 금방 어두워졌다.
포격과 화재로 인해 평탄화된 시모노세키 시가지를 지난 왜병들이 히코시마 섬 사이의 물길에 도달했다. 돌격을 멈춘 왜병들은 아주 특이한 행동을 했다. 1연대 병사들이 발사하는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왜병들이 바다를 향해 뭔가 커다란 것을 던지는 것이었다.
“계복아! 아니, 대원수! 저놈들이 바다를 향해 뭘 던지는데?”
“흙더미 같은 거겠죠. 마치 해자를 메우듯이 하네요.”
물가에 접근하는 왜병들이 어깨에 지고 있는 것은 커다란 돌이거나 자갈을 가득 채운 자루였다. 1연대의 포와 총이 노리는 앞에서 다리를 건설할 수도 없고, 비좁은 다리를 건널 수 없어 생각해낸 것이 해자 메우듯 바다를 메우는 것이었다. 10만이나 동원됐으니 인원은 충분했다.
왜병들 중에 총탄이나 포탄 파편에 맞아 사상자가 발생하면 왜병들이 그 사상자까지 바로 물길에 던져 넣었다. 총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왜병들이 물에 가라앉으면서 세상에 저주를 퍼부었다.
- 타타탕!
몇 안 되는 왜군 철포병들이 남쪽 섬을 향해 조총을 발사했다. 벌써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 조총 쏘는 화염만큼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철포병과 궁병들이 엄호 사격하는 가운데 왜병들이 바다에 끊임없이 돌과 흙을 퍼부었다.
- 콰앙!
철포병들이 대열을 이룬 곳에 포탄 한 발이 떨어져 쓸어버렸다. 수십 명이 부상당했으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조총을 잡고 남쪽을 향해 발사했다. 궁병들도 마찬가지였다.
- 퍼벙! 펑!
1연대 병사들이 총을 쏘면서 유탄이 끝없이 물길 건너편으로 날아가서 터졌다. 물길이 넓은 곳이라 해도 200미터에 불과하기에 건너편에 몰려있는 왜병들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유탄이었다. 그러나 위력은 포탄에 비해 훨씬 약했다.
“좀 불안하네.”
잘못하면 1연대가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민호가 입맛을 다셨다. 큐슈 북동쪽의 오목한 만 안쪽으로 히코시마 섬이 이빨을 맞추듯이 들어온 지형이 간몬 해협이라서 적에게 섬을 빼앗길 경우 수비해야 할 면적이 수십 배로 늘어나 방어 효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섣불리 히코시마에서 후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민호보다는 1연대를 지휘하는 감불이 훨씬 더 불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총알이 부족해 가급적이면 늦게 쓰라고 이민호가 지시했으나, 감불은 전투 초반부터 기관총 사수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 따따땃! 땃! 땃!
왜병들이 집중적으로 바다를 메우는 곳 주변에 2정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뭔가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드는 연발 총소리가 울리며 왜병들이 픽픽 고꾸라졌다. 이민호가 보기에는 기관총이 아직 답답한 물건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기겁할 정도로 강한 무기로 인식됐다.
해협 동쪽 모지 성터에 배치된 2연대 소속 기관총 2정도 건너편을 향해 발사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 왜병들이 물길을 메우는 곳을 공격하지는 못했지만 목표가 될 만한 왜병들은 해협 건너편에 얼마든지 있었다.
- 콰쾅!
1연대와 2연대 포병들도 왜병들이 몰린 곳을 향해 야포를 집중 사격했다. 주변에서 돌과 나무토막을 주워와 물길을 메우는 왜병들은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무수히 많은 시체가 차곡차곡 쌓였다가, 현장에서 지휘하는 사무라이의 지시에 의해 아직 살았든 이미 죽었든 모조리 물길로 던져졌다.
섬을 가른 물길 절반 정도가 돌무더기에 파묻히자 이민호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민호가 명령서를 급하게 써 갈겨서 전령을 불렀다.
“전령! 좌승함 함장에게 1연대를 지원하라고 해! 수송선 남은 것도 모두 출동시켜! 1연대에 총탄과 유탄, 포탄 보급도 추진하라고 전해.”
“예! 모든 자원을 쏟아 부으라고 전하겠습니다.”
히코시마의 참호선에 충분히 비축했다고 여긴 탄약이 급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거의 평탄한 지형을 통해 10만 대군이 몰려오자 총과 포를 끊임없이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투 시작 겨우 한 시간 만에 1연대가 보유한 탄약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전령이 등대에서 뛰어 내려가고 나서 이민호는 동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동쪽에서 해전이 벌어지는 사이 나머지 왜선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며 요새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3연대 소속 포병대대 24문의 야포로 2천여 척에 달하는 왜선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어느 쪽이든 먼저 끝나면 다른 한 쪽을 지원하라고 해.”
“그게 안 될 겁니다. 저길 보십시오. 아마도 수륙군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시모노세키 북쪽 류오(龍王) 산에서 봉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다 건너 요새 북동쪽 해안가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동쪽에서 몰려오는 왜선들 중에서도 신호를 맡은 배가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저 먼 거리에서 서로 신호를 보낸다? 어이가 없지만 연습을 했다면 가능하겠지. 특전대대 투입해서 끊으라고 해.”
“보내는데 시간이 걸리고 위험하겠지만 시도해보겠습니다.”
계복은 봉화가 피어오르는 류오 산을 공격하라고 특전대대 2개 소대를 뽑아서 보냈다. 탐망선에 탄 대원들이 류오 산 서쪽 해안에 상륙해 두 방향에서 류오 산에 진입하도록 계복이 급히 특전대대 지휘관에게 지시했다. 고급 인력을 자칫 허무하게 잃을 수 있었으나 적의 신호체계를 파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 타타타탕!
갑작스레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등대 위에서는 땅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요새 동쪽 해안에 왜선들이 도착했다는 증거였다. 요새 동쪽과 남쪽 성곽을 맡은 3연대 병사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 퍼엉! 타타타타탕!
유탄사수가 조명탄을 쏠 때마다 총성이 격렬하게 울렸다. 한쪽 눈을 가리는 안대를 줘봤자 효과가 전혀 없을 테고, 다만 조명탄을 쏠 때마다 사수가 조명탄이라고 외치고 조명탄이 터지는 순간에 총병들이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해안에 닿은 왜선들이 포격을 받아 불타오르면서 조명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음력 21일이라 아직 달이 뜨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으나, 모리 군이 달이 뜨지 않을 시간에 맞춰서 공격해온 것으로 봐야 했다.
- 콰쾅!
이번 전투에서는 의외로 수류탄이 효과가 좋았다. 아군은 높은 언덕에 참호를 파고 들어가 있고, 왜병들은 해안가 절벽 아래에 위치했다. 파편과 함께 돌조각이 튀면서 수류탄 위력이 훨씬 강해졌다.
- 타타탕! 타탕!
해안에서 올라오는 길을 막는 중대에서 사격이 시작됐다. 요새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이 서너 곳인데 왜군도 이 지역을 훤히 알고 그런 길로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아군 중에서 사상자가 점점 늘어났다. 들것에 실려 온 부상자들을 야전병원으로 호송할 시간이 없어 군의와 의사들이 응급 처치했다. 의학도들도 마카오에서 멀리 큐슈까지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포병은 뭐해?”
이민호가 투덜거렸다. 물론 포병들은 죽어라 포탄을 장전해서 해안으로 접근하는 왜선을 향해 야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포신이 뜨거워 찬물에 담근 수건을 둘렀으나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났다.
“해군은 도대체 뭐하는 거야?”
“오! 드디어 800척을 다 때려잡고 옵니다!”
“정말이네.”
이민호가 괜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산국 해군과 조선 수군 함대가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해안에 도달하지 못한 왜선들 중에서 200여 척이 연합 해군 앞을 가로막았고, 다시 해전이 시작됐다.
“이런 식이면 해군은 요새 방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계복아! 총함장이 누구지?”
“이순신 대감이요.”
역시 이순신 장군이었다. 전쟁에서 뭐가 중요한지 알고 있는 이순신은 조선 함대를 위해 전선 10척을 남겨두고 나머지 전선은 왜선들을 밀쳐가며 요새 앞쪽으로 급속히 이동했다.
- 퍼버버버벙!
32척의 전선에는 함포 128문이 탑재되어 있었다. 왜선들 대부분이 작은 고바야이므로 제대로 명중만 한다면 함대에서 함포를 쏠 때마다 왜선 128척이 가라앉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왜선이 작아서 그 정도로 높은 명중률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거리가 가까운 덕에 전선 30여 척이 일제 사격을 할 때마다 왜선 50척에서 60척 정도가 가라앉았다. 이순신은 전선에 달려드는 왜선이 아니라 해안에 접안하려고 움직이는 왜선들을 향해 함포를 쏘도록 휘하 전선들에 지시했다. 그 사이 전선에 접근하는 왜선은 해병들이 총을 쏘아 막았다.
“됐다! 막혔어!”
히코시마 섬의 물길이 메워지는 것보다, 요새 동쪽 해안을 부서진 배로 막는 것이 더 빨랐다. 추가 병력의 상륙이 차단되자 겨우 숨통이 트인 3연대 병사들이 이미 상륙한 왜병들을 사살했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선들은 계속 왜선들을 격파했다. 반쯤 부서져서 표류하는 배들에 갇힌 왜선들은 고산국 전선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쏠 때마다 부서져서 또 다른 잔해로 요새 앞바다를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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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하나 더 올리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