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2 39. 간몬 해협 전투 =========================================================================
고산국 함대는 그날 밤 늦게 간몬 요새에 도착했다. 해협 양쪽을 지키는 1연대와 3연대 병사들이 모지항에 입항하는 전선들을 환영해주었다. 간몬 해협에서는 하루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의사들이 시모노세키에 흩어진 부상자들 중에서 200여 명을 살렸다고 한다.
이번 출동으로 하루 작전 반경의 최대치가 어딘지 시험해본 셈인데 아무리 전선이 빨리 움직인다 해도 역시 히로시마 이상은 무리였다. 아직 큐슈가 완전히 점령되지 않은 판에 병력을 다른 곳에 투입할 여유도 사실상 없었다. 다만 여진 기병 1만 기씩 해협 너머로 교대로 내보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이번 작전은 스케일만 컸지 사실 간몬 해협 전투에서 패주한 모리 군을 추격하는 후속 작전에 불과했다. 그리고 모리 군이 전멸하면서 군사력의 공백상태가 된 주코쿠 지방을 건드려본 것뿐이었다.
이틀 후에 주코쿠에 풀어놓은 여진 기병 1만여 기가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수송선을 타고 해협 남쪽에 내리는 여진 기병을 대충 세어본 결과 큰 피해 없이 돌아온 것 같았다.
여진 기병들은 돌아온 날부터 숙영지에 틀어박혀 이틀 동안 퍼질러 잤다. 다음 날 지휘관 오응태가 좌승함으로 와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하마다, 마스다, 하기, 나가토 등 북쪽 도시들을 불태우고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예견하신 대로 왜군 방어 병력이 거의 없고 주민들이 주변 산악지대로 피난 가서 도시를 불태우는 일은 아주 쉬웠습니다.”
“수고했소. 이번에 큐슈에 남았던 1만 기를 데리고 며칠 후에 다시 출동해서 한 바퀴 돌아오시오.”
혼슈 서부 주코쿠에 상륙하고 나서 초반 며칠 동안 마음껏 살육과 약탈을 할 것이라던 여진족 기병들은 의외로 차분했다. 전투에서는 여전히 용감하지만 예상 외로 야만족들이 흔히 저지르는 저열한 짓은 하지 않았다.
오응태가 말한 대로 고용주인 이민호에게 잘못 찍힐까봐 두려워하는 면도 있었다. 여진족들은 월봉으로 은 석 냥을 받는다고 해서 욕심을 자제할 자들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동해국이라는 국가 소속이 됨으로써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국가의 명예를 신경 썼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민호가 보기에는 여진족의 본성을 부정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후금이나 청나라 초기 만주 팔기군의 정연한 군기를 생각해보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이민호는 여진족 기병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전하! 포고령에 적힌 대로 전하께서는 진정으로 왜인들을 동쪽으로 몰아붙이실 계획이십니까?”
“그래야 큐슈를 방어하기 쉬울 테니까요.”
이민호 입장에서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엄청나게 큰 문제였다. 병사로 징집할 수 없는 인구 백만이 몰려와서 유랑민으로서 돌아다닌다면 혼슈 전체에 사회 혼란이 극에 달할 수 있었다. 농지를 잃고 중요한 성인 남자층이 빠진 인구 100만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는 이 시기에 없다고 단언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가장 쉽게 일본을 망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잘 알 테니,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관백이 크게 반발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군을 모아 큐슈 정벌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병력 집결은 하지 않고 우리에게 사신단을 보낸다는 것 같소.”
오사카 바로 남쪽 무역항인 사카이(堺)를 드나드는 첩자들이 수시로 간몬 해협으로 찾아왔다. 첩자들이 겐타로에게 보고하길, 이상하게도 아직 병력이 집결하는 징후는 전혀 없다고 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몹시 신기했으나, 일본은 이 시점에서 전쟁의 확대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점령된 큐슈보다 주코쿠에서 쫓겨날 백성들을 일본 조정에서 더 신경을 쓰다니 웃기는 일입니다. 설마 혼슈의 일본인들은 큐슈를 다른 나라로 여기는 겁니까?”
“나도 믿기지 않지만 아무래도 비슷한 것 같소.”
보고를 마친 오응태가 숙영지로 돌아갔다. 다시 주코쿠로 출동하려면 지휘관인 오응태부터 체력관리에 신경 써야 했다.
이민호가 배에서 내려 항구를 잠시 돌아다녔다. 운량병(運糧兵)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쉽게 말해 전쟁에 동원된 짐꾼들이 모지항에 가득했다. 징발된 조선인들이 짐을 나르며 바쁘게 움직이다가 호위들에 둘러싸인 이민호를 보곤 화들짝 놀라 길을 비켜서곤 했다.
그런데 비올레타가 아이샤와 함께 짐꾼들을 지휘해 짐을 옮기고 있었다. 상자에 넣거나 천으로 감싼 길쭉한 것은 누가 봐도 조총이었다.
“비올레타! 추운데 밖에서 뭐하고 있소?”
“전하! 지금까지 노획한 조총과 화약을 1연대에 보내는 중이에요. 탄약 재고는 이미 다 떨어졌고 다른 부대에 약간 남은 것도 직할 기병대대와 3연대 기병대대에 우선적으로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어요.”
“그 정도였소?”
이민호가 큰 충격을 받았다. 총탄과 포탄 재고가 거의 바닥났다는 이야기는 이민호도 수차례 보고 받았다. 2연대와 3연대 등 탄약이 조금 남은 부대에서 억지로 끌어 모은 탄약을 현재 전투에 투입된 부대로 옮기는 일을 마쳤다. 그런데 이제는 탄약이 완전히 바닥난 부대에 일본에서 생산한 조총을 쓰게 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산국 군대의 힘은 대포와 보병총에서 나왔으나 지금 당장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시기였다. 고산국에서 탄약을 가져올 때까지 적이 안 쳐들어오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틀 후에 탄약이 도착할 예정이지만 이 시대 해상 운송에서 확실한 것은 없었다.
며칠 동안 고산국에서 보내올 탄약을 기다리며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일본 사신들이 탄 배가 간몬 해협에 도착했다. 동쪽 바다 경계를 맡은 탐망선과 대화가 됐는지 탐망선의 안내를 따라 모지항에 접안한 아다케에서 일본 사신단이 내렸다. 이민호는 그들을 모지항에 세워둔 커다란 군막으로 안내했다.
사신 대표는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라는 30대 초반의 인물이었다. 풍신수길에게서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후원해주도록 부탁받은 오대로 중의 한 명인 마에다 도시이에의 장남으로서, 부친을 대신해서 이곳에 왔다고 한다.
마에다 도시이에는 일본에서 존경받는 다이묘로서 현재 크게 대립 중인 무단파와 문치파 양쪽을 조정해 분란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풍신수길이 죽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대 중인 도쿠가와 가문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었고 지금 당장 연합군에 의해 일본 영토가 침공을 당하고 있는데도 도쿠가와 가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도쿠가와 가문이 주군의 복수를 명분으로 당장 큐슈로 쳐들어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풍신수길이 사망하기 전에 임명한 오대로 중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우키다 히데이에, 모리 데루모토,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렇게 네 명이 고산국과 전투 중에 사망했다. 남은 자는 마에다 도시이에뿐이었으나 아직 어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부친을 계승하고 고바야카와 대신에 최근 우에스키 카케카츠가 임명돼 현재 오대로는 3명이었다.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리 님이 보낸 국서는 잘 받았소. 그래서 큐슈를 내 영지로 인정해주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전쟁을 멈춰주시면 천황폐하께 진주를 해서 전하를 친쥬타이쇼군(鎮守大將軍)으로 임명해서 만도코로(政所)를 개설해 큐슈를 통치할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노여움을 푸시고 다 같은 천황폐하의 신하로서 우호를 다지면 좋겠습니다.”
일본이 고산국 군대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됐었다. 혼슈 전체가 정복되느니 차라리 큐슈를 고산국에 넘기는 선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픈 것이 일본 다이묘들의 내심이었다.
그러나 일본 조정에서도 국내의 반발을 우려해 이민호를 기존의 일본식 정치체제 안으로 끌어 들이려 시도했다. 연합군의 일원인 명나라와 조선을 일본에서 애써 무시하는 것도 좀 웃겼다. 이민호는 당연히 반발했다. 사실 반발하는 척했을 뿐이었다.
“뭐야? 내가 일왕의 신하라고?”
“죄송합니다. 신하는 취소하겠습니다.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독립국의 국왕이십니다. 하하!”
“다시 비슷한 소리를 꺼내면 일왕을 내 신하, 아니 하인으로 만들어주겠소.”
“다른 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대역무도하다고 토벌 당하겠지만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는 그럴 힘이 충분히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빤히 알면서도 간을 보는 버릇은 아주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금방 물러서버리면 계속 비난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이민호 입장에서는 당장 탄약이 부족해서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핑계를 댄 것이 대명 황제였다.
“대명 황제폐하께 보고해서 지시를 받을 시간이 필요하겠소. 사신은 보름 후에 다시 오시오.”
“여섯 달도 아니고 겨우 보름이라니! 역시 고산국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온데 토도 다카토라 님은 어떻게 되셨는지요?”
“거제도에 억류돼 있소. 조만간 풀어주겠소.”
마에다는 토도 다카토라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이 아닌, 물어봐야 할 것의 대답을 얻은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주코쿠의 백성들을 동쪽으로 쫓아내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모리 군에게 징벌을 가하면서도 주코쿠를 점령하실 생각은 없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백성을 잡아다가 큐슈나 고산국에 데려가 일을 시키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필요 없으니 쫓아내는 것이오. 그 백성들을 어떻게 하든 일본에서 알아서 하시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전하께서 연합군을 이끌고 큐슈를 점령했어도 저희들이 지금까지 지은 죄가 있어서 꾹 참았습니다. 간몬 해협을 공격한 모리 가문에 응징을 가하셨어도 다이묘들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 다이묘들이 주코쿠 백성들을 쫓아내는 문제에서만큼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려하면 어쩔 거요? 그럼 병력을 모아 쳐들어오시오.”
“제가 싸우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가련한 주코쿠 백성들을 살려주자는 뜻이지요.”
이민호는 여기서 더 강하게 나서려 했으나, 아무래도 탄약 부족 문제가 걸렸다. 예정보다 늦게 온다면 생산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았다. 탄약 수송을 독촉하는 배를 급히 보냈으니 조만간 소식이 올 것이다.
“주코쿠 전역에 군사시설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 백성들이 고향에서 계속 살게 해주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이 문제에 관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일본은 죽자 살자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민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큰 상관은 없었다. 일본을 공격할 수단은 많으니 일단 시간을 끌기로 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고 민영이 귓속말로 보고해서 이민호가 군막 밖으로 나왔다. 성 남쪽으로 일본인 포로들이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민호는 탄약이나 정문부가 오면 반갑겠지만 마음에 들지도 않는 연합군을 환영하자니 씁쓸했다.
선두에 선 명나라 북병이 당당하게 간몬 요새에 입성했다. 요동 기병은 원정 첫 날 1만으로 출발해서 지금은 5천도 채 남지 않았다. 남병 2만은 1만 5천으로 줄어들었다. 인명피해가 많았어도 끝내 적의 영토를 정복했다는 자부심이 병사들 얼굴에 넘쳐흘렀다.
포로 행렬 뒤쪽에서는 조선군과 기리시탄 의용병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요새에 입성하지 않고 남쪽 벌판에 자리를 잡고 일본인 포로들을 감시했다.
“드디어 사쓰마에 대한 토벌이 끝나셨군요. 타이쇼군께 경하 드립니다.”
사신으로 온 일본인 다이묘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이랬다. 연합군 입장에서 큐슈 정벌은 전체 일본을 정벌하는 과정의 일부분인데도 마에다 도시나가는 의도를 숨기고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했다.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포로가 10만이 넘는군요. 저들도 이제는 타이쇼군의 백성입니다. 타이쇼군께서 잘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저항하다 잡혔으니 노예일 뿐이오. 참수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오.”
“고산국의 노예라면 곧 고산국의 국민이 될 자들이군요. 일본인이었던 자들을 받아들여 잘 대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마에다는 고산국 사정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짜증나서 두들겨 팰까 걱정됐다.
이민호는 연합군 장수들이 보면 안 좋다는 핑계를 대서 일본 사신들을 배에 태워 쫓아 보냈다. 마에다 도시나가가 다시 사신으로 온다면 몹시 피곤해질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