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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55화 (304/1,000)

00355  40. 혼슈 전쟁  =========================================================================

“히코시마 성벽 안쪽에 적의 대규모 병력이 갑자기 나타나서 전투 중이에요!”

“성벽이라면 외성 안쪽에? 알았다. 전선은 모지 항에 집결했지? 3연대에서 포병을 제외하고 전체 병력을 모지 항에 집결시켜! 1연대를 구원하러 가겠다.”

“예! 대원수께 주인님의 어지를 전달하겠습니다.”

이민호가 전투복에 방탄판을 끼우고 겨울용 야전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 투구도 다 쓰고 침전에서 집무실로 나왔다. 이민호가 간단히 명령서를 써서 민지에게 맡겼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대원수의 전령이 좌승함에 달려와 있었다. 명령서를 받은 전령이 말을 타고 간몬 요새 정상의 등대로 달렸다. 전투부대지휘권은 계복에게 맡겨 놓았으나 전략적인 판단은 이민호가 해줘야 했다. 이것이 원정을 계복에게 완전히 맡기지 못하는 이유였으나, 계복 밑에서 참모진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기대가 됐다.

이민호는 전령이 달리는 방향을 보면서 계복이 늦게까지 부대를 순찰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계복은 지휘관으로서 아주 뛰어난 무관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믿음이 가고 성실한 인간이었다. 수하들의 의견에고 귀를 기울여서 어떻게 보면 덕장에 가까운 지휘관이었다.

함교에서 보니 모지 항에서 서쪽, 해협 건너편 히코시마 요새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간몬 해협은 히코시마를 중심으로 V자 모양으로 생겼다.

상황을 잠시만 살펴봐도 조금 전에 민혜가 했던 말이 딱 맞아들었다. 모지 성으로 향하는 땅굴을 무너뜨린 순간 히코시마에 비상경계를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비상경계를 펼쳐도 저런 식으로 베트콩처럼 밑에서 기어 나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민혜 너는 내 작전참모를 해라. 이렇게 계속해서 기습을 당했으니 앞으로 경계 시간을 늘려도 병사들이 할 말이 없겠지?”

“전쟁터에 나와서도 편히 지냈던 병사들에게 봄날이 갔군요.”

호위들은 예전에 이민호가 알았던 순진한 여진족 소녀나 처녀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육체뿐만 아니라 지성도 그 동안 꾸준히 발전해서, 얼굴은 물론 뇌마저 청순했던 민영이 지금은 이민호와 함께 전술을 논할 정도였다. 특히 민혜는 이름에 괜히 슬기로울 혜(慧)를 붙인 것이 아니었다.

호위들은 커가면서 많은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며 실전에 여러 번 참가했다. 이민호가 관여해 번역 출간한 책을 읽으며 이 시기 동양의 무관들은 물론 유럽의 전술가들보다 앞서 나간 면도 일부분 있었다. 물론 고산국의 장교들도 똑같은 책을 읽으며 전술을 배웠다. 사관학교를 수료한 장교들이 호위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과 전략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남들과 같은 전술을 쓰면 금방 간파당하기 마련이니 남들과 다른 특성이 있어야 했다. 이는 실전 경험이 아니라 끝없는 고민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민호의 호위들은 절실함이 남달랐다. 단순히 호위만 해서는 후궁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니 혜영이나 혜진, 아라 공주나 비올레타처럼 뭔가 자기만의 분야에서 확실한 기여를 해야 할 때였다. 민혜는 작전 부문에서 뛰어난 편이었고, 오늘 최초로 이민호에게 건의를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제든 주인님을 도와드릴게요. 그런데 히코시마에서 1연대를 퇴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킬 계획이신가요?”

“히코시마에서 물러서도 되지만 갖는 게 더 낫지. 아직 1연대가 완전히 위기에 빠진 것은 아닐 거야. 그리고 잘 싸우고 있는 부대를 후퇴시키면 아군이 절반 이상 몰살당할 수도 있어. 나는 그게 더 두려워.”

그러나 요새 안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히코시마 요새에 화광이 충천하면서도 거리가 멀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접근하더라도 히코시마는 외성과 내성 등 구조물이 많아 간몬 요새처럼 높은 곳이 아니라면 외부에서 살피기 어려웠다.

“전하! 모지 항 부두에 3연대 집결이 끝났습니다! 국왕전하의 충성스런 3연대는 언제든지 적을 향해 돌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므부투가 국왕좌승함에 직접 와서 보고했다. 3연대를 서양의 왕실근위대처럼 묘사하는 므부투는 항상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다른 흑인 병사들도 이민호 개인에 대한 충성심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이에 더해 시험을 쳐서 뽑히는 왕궁경비대에 가장 많은 인원이 합격해서 흑인 병사들은 은근히 우월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초반에는 승마 실력이 딸려서 헤맸지만 현재는 신체 능력이 다른 인종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인종이 5할 이상 못 뽑히도록 제도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3연대 각 대대장에게 전해. 1연대 지원이 아니라 적이 점령한 요새를 탈환하는 전투가 될 것이라고. 전선에 탑승시켜.”

“예!”

3연대 병력이 중대별로 나뉘어 전선에 빠르게 탑승했다. 그리고 전선들이 출항 직전에 계복이 좌승함 함교로 들어왔다.

“히코시마에 도착하면 도련님은 전선에 계십시오. 제가 직접 지휘하겠습니다. 직할 기마대대에게도 소집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 대원수가 지상전을 지휘하도록. 아마 땅굴에서 나온 것 같으니 출구를 먼저 찾아서 막아야 할 거야.”

“예. 땅굴이 최소 서너 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민호는 급히 탐망선을 해협 동쪽 출구로 보내 총함장이 이끄는 함대 본대를 불러오도록 했다. 1전단 소속 전선들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선에서 이따금 함포를 쏘았지만 이 거리에서는 피아 구분이 어려워 요새 안으로는 쉽사리 쏘지 못했다.

전선 14척에 병력이 가득 들어찼다. 히코시마 요새 안에서 피아가 뒤섞여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되는 중에 전선에 3연대 병력이 승선했다. 기마대대는 아직 항구에 절반도 모이지 못했고, 간몬 요새 서쪽 방면에 배치됐던 2연대는 해협을 지키느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런데 저쪽 땅굴은 도대체 어떻게 소리도 없이 판 거야? 설마 숟가락으로 파지는 않았겠지.”

이민호는 감옥에서 죄수가 탈출하는 영화에서 수저를 이용해 굴을 파고 도망가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왜인 포로를 잡으면 땅굴을 판 도구에 대해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나중에 왜인 포로를 잡아 신문했는데 땅굴을 소리 없이 팔 수 있었던 이유는 뜻밖에 간단했다. 막장에 독한 술을 부어서 돌과 흙을 적신 후 곡괭이질을 하면 소리가 적게 난다는 것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이 아니라 벽을 파낸 후 조금이라도 빨리 습기를 증발시키기 위해 독한 술을 부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 쾅!

해협을 건너간 전선들이 명령도 없이 급히 함포를 발사했다. 전선 14척에서 요새 안쪽을 향해 끊임없이 포격과 총격을 퍼부었다. 이곳저곳에 불이 난 곳이 많아서 다행히 목표 획득에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외성 인근에 고립된 아군이 많아 포격을 할 때 극히 신경 써야 했다.

이민호가 히코시마 요새의 상황을 자세히 살폈다. 땅굴에서 갑작스레 몰려나온 왜병들이 혀내는 요새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아직도 왜병들은 끊임없이 땅굴 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1연대 병력은 철저히 분산된 채 구석으로 몰려 고립돼 있었다. 전사자도 많이 발생한 것 같았으나 왜병들에게 몰살당할 정도는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휴대한 탄약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전에 보냈던 탐망선이 금방 되돌아와서 포격전에 참가했다. 총함장 이순신이 계속되는 총성을 듣고 함대를 이끌고 간몬 해협 안으로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장군님!”

잠시 후 30여 척으로 늘어난 전선에서 왜병들이 몰린 곳을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상륙하지 않은 해병들이 전선 한쪽 갑판에 늘어서서 왜병들을 쏘아 쓰러뜨렸다. 그러나 목표가 너무 많았다.

“계복이나 감불이나 다들 잘하고 있군.”

성벽에 너무 가까워 후퇴하지 못해 고립된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병사들을 감불이 남쪽의 내성으로 이동시킨 다음이었다. 언덕 지형에 쌓은 야트막한 내성이 최후의 방어선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전투가 끝나고 나서 내성 안쪽에도 땅굴이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미처 출구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왜군이 나머지 땅굴 네 곳을 통해 기습을 가한 것이었다. 만약 이민호가 모지 성 쪽에서 땅굴을 파괴시키라고 명령하지 않았더라면 히코시마 요새의 내성부터 위험할 뻔했다.

왜군 지휘관이 조급해져서 섣불리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만약 내성까지 들어온 땅굴의 출구 공사를 위해 하루 이틀 연기했다면, 민혜에게서 조언을 들은 이민호가 히코시마 앞쪽을 점령해서 땅굴을 무력화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래서 지금은 어느 쪽도 압도적이지 못한 적당한 선에서 전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양군 모두에게 최적의 전장 조건은 전혀 아니었다. 왜군은 화약이 부족해 조총병을 많이 동원하지 못했고 장창과 활로 무장한 왜병도 극히 소수였다. 대부분의 왜병들이 칼만 들고 설쳤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인들이 왜병들은 칼과 조총만으로 무장했다고 인식했는데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고산국도 마찬가지였다. 피아 병력이 뒤섞이는 바람에 함포 지원을 받기 어렵게 됐고 총을 쏠 때도 같은 편이 아닌지 두세 번 확인해야 했다. 아군이 뒤섞여 있어 유탄을 쏘기는커녕 함부로 수류탄도 던지지 못했다.

3연대가 히코시마 요새의 내성 동쪽 해안에 상륙한 다음부터 전세가 확연히 나아졌다. 내성을 공격하는 왜군을 몰아내면서 3연대가 빠르게 북진했다. 예전에는 절반이 방패병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총병으로 전환된 흑인 병사들은 사격 솜씨도 훌륭한 편이었다.

1연대도 소수 병력만 남기고 내성에서 빠져 나왔다. 아직 외성 곳곳에서 버티고 있는 아군 병력을 구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1연대와 3연대가 만난 다음부터는 방어선을 둘로 나눠 분담했다. 훨씬 밀도가 높아진 화력을 바탕으로 왜군을 강하게 북쪽으로 밀어냈다.

“수송선을 타고 기마대대가 도착했어요.”

“아직 대기시켜. 어때? 보병으로 참가시킬까?”

“전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잠시 후에 적이 조금 더 밀려날 것 같아요. 기마대를 땅굴 출구까지 돌격시키면 어떨까요? 더 이상 넘어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빨리 출구를 봉쇄해야 해요.”

“과감하구나. 급한 상황이니 희생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하자. 계복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기마대대장도 의견이 같은지 병사들을 말에서 내리지 않고 돌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계복이 돌격 순간을 잡아서 기마대대를 지휘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바로 이때 시모노세키의 폐허 방향에서 거대한 어둠이 움직이고 있었다. 땅굴을 통해 히코시마에 들어온 왜군 2만은 소수에 불과했다. 최소 10만 이상의 왜군이 히코시마 건너편에 접근하고 있었다.

“온다!”

히코시마 너머 수로에 도착한 왜병들이 예전에 모리 군이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했다. 돌과 흙을 수로에 퍼부어 메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리 군이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빠른 속도로, 그것도 수로 전체가 한꺼번에 메워지고 있었다. 숫자 차이가 워낙 큰 탓이었다. 전선 30여 척에서 함포를 쏘았으나 왜병과 왜인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즉시 그 이상의 숫자가 보강됐다.

- 두두두두~

기마대대가 드디어 외성 안의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왜군의 본진이 히코시마 수로를 넘어오기 전에 외성 안에 들어온 왜병들을 전멸시키고 땅굴 출구를 봉쇄해야 했다. 그런 다음 외성의 성벽을 기반으로 적의 본진을 막아야 하는 일이 남았다.

1연대와 3연대의 틈으로 빠져 나간 원정군 직할 기마대대는 왜병들을 물살 가르듯 가르며 돌격했다. 1연대와 3연대가 일제히 전진하며 보조를 맞췄다. 숫자는 왜군이 두 배 이상이었지만 화력 차이 외에도 기마병의 돌격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기마대대의 선두에는 계복이 달리고 있었다. 기병총을 연속 쏴대며 말을 달리던 계복이 부하들과 함께 땅굴 출구 하나에 도달했다.

마침 그때 이민호는 민영과 민혜를 데리고 함교 위 관측창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계복이 어떻게 출구를 막을지 관심 깊게 지켜봤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연속되는 핵심적인 전투의 시작 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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